* <대자보> 우석훈 논설위원의 '교육부 학제개편안은 미국 유학생용?'이라는 논설에 대해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이종태 상임위원이 '학제개편은 국가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라는 반론을 제기했고, 이에 다시 우 논설위원의 반론을 게재합니다. 본문에 대해 누리꾼 여러분들의 다양한 평가와 토론을 환영합니다-편집자 주.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아래 혁신위)의 6-3-3-4의 교육년제 개편에는 아직까지는 별 관심 없다. 혁신위가 어떤 동기와 의도로 이 체제를 개편하고자 한 것인지 경제학자가 이해할 수 있는 아무런 설명없이 교육년제를 개편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것이 ‘혁신’이라고 한 것에 대해서 정말 관심 없다. 7차교육과정 개편이 이루어지던 시절에 나는 총리실에 있었고, 일부 참여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이 개편의 원래 의도가 잘 구현되지 않는 요즘 상황에 대해서 안타까와 한다.
그런데 현 교육체계 개편은 꼭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아무런 설명이 없이 자기들끼리 이제 논의해보자고 하고, 왜 논의하느냐 하면, 왜 나를 몰라주느냐고 정색을 한다. 그렇지만 난 이 대통령 자문기구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이 없다. 어차피 다음 정권 때에 다시 진지하게 논의할 일이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논의 일정상 그렇다.
그러나 가을학기 개편은 전혀 다르다. 이건 교육부에서 하는 일이고, 행정부처의 방침으로 상당 부분 결정된 적이 있고, 정황상 혁신위의 교육체계 개편에 끼워놓고, 공론화 과정을 이미 시작한 정책이다. 안타깝게도 교육부가 혁신위를 ‘들러리’로 세우고 대변 매체로 활용하는 것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금번 혁신위의 학제개편토론회 발제문에 가을학기제는 원래 있지도 않은 것이었는데, 나중에 교육부가 보도자료에 가을학기 개편을 끼워넣었다고 한다
(<프레시안>, 8월 29일, 권태욱 기자 기사 참조). 그러니까 교육부가 이 정책을 진지하게 추진하겠다는 것이고, 혁신위의 행사는 다만 이 가을학기 개편이 수면에 떠오르는데 활용되었을 뿐이다.
위의 기사에 따르면 이미 신학기 변경계획은 작년 12월 28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인적자원개발 제2차 기본계획’에 이미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작년말에 자기들끼리 이미 얼개를 다 결정해 놓고, 적당한 시간을 보다가 마침 혁신위가 장기계획과 관련된 토론회를 한다고 하니까 보도자료 형식으로 기확정되었지만 눈치보다가 공개 안한 정책 하나가 비로소 국민들의 가시권에 들어온 것이다. 그러니 <대자보>를 포함해서 언론에서 “아니, 이런 일이 있단 말이야?”라고 놀라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교육부가 제시한 이유는 유학생이 늘어난다는 이유와 3월이 너무 춥다는 이유이다. 3월이 너무 추워서 겨울방학에도 공부하겠다는 건 애당초 말이 안되는 이유이고, 유학생이 늘어난다는 이유가 가을학기 개편의 골조인 셈이다.
내가 문제삼는 첫 번째 이유는, 유학생이 앞으로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그래서 유학가기 편하게 학기제를 바꾼다는 것이 교육부의 방침으로 옳은 것인가 그리고 이런 의사결정이 옳은 과정인가 질문하는 것이다.
교육부의 방침은 10월부터 공론화 작업을 하고 연말까지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이 벌써 9월이다. 이 이상한 정책에 대해서 시민사회단체가 문제제기를 하고 대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버렸고, 그나마 유일하게 남은 통로가 언론을 통한 시민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 외에는 없어보인다. 세세하게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교육부는 이미 세부계획까지 수립한 것으로 보이고, 올 12월이 지나면, 이미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 뒤늦게 문제제기한 것이라고 할 판이다. 이게 자기들끼리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행정이 아니라면 뭐가 탁상행정이고 밀실행정이겠는가?
이 과정에서 혁신위의 역할은 공론화 과정을 옷을 입고, “여론 수렴”이 되었다는 3개월 동안의 왜곡된 ‘작전’일 뿐이다. 그런데 혁신위에서 자신들의 학제 개편안이 이제부터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고 앞으로도 몇 년간 논의할 내용이라고 발을 뺀다면, 그야말로 업무파악이나 제대로 하시라는 말을 해줄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앞으로 3년간 우리나라에서 676개의 학교를 없애고, 5266명의 선생님을 교육계에서 내보내겠다고 확정한 만행을 저질렀다. 이게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이 땅에서 진행되는 교육부의 만행이다. 솔직히 지역에서 학교 하나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공들여서 뜻을 모으고, 돈을 모으는지 알기나 하시는가? 이 과정에서 ‘혁신’이라는 이름만 빌려주고 눈 꼭 감고 있던 혁신위가 교육년제 개편하는 일을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라고 하면, 상식을 가진 사람의 눈에 ‘숫자놀음’이라고 보이지 않겠는가? [관련기사 보기]
일년에 240개씩 학교 없애는 교육부의 ‘교육혁신’이 만행적으로 진행되는 이즈음에 결국은 총 16년의 초등, 중등 과정을 1년 늘이거나 1년 줄이거나 무슨 엄청난 일이 벌어지겠다고, 이걸 자신의 우선 업무라고 말을 하는가. 이 지방학교 말살정책에 혁신위는 그간 무슨 말을 한 적이 있는가? 한 쪽으로는 그렇게 학교들을 수 백개씩 없애면서 또 국제중학교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도시에 좋은 학교 짓고, ‘스마트 스쿨’ 같은 거 만들겠다고 하는 지금의 교육혁신이 정상적으로 보이시는가?
당장 눈 앞에 떠오르는 것은 어차피 한미 FTA로 우리나라 공교육 체계가 음으로 양으로 위험해질 것이니까 차라리 가을학기제라도 도입하자는 것이 교육부의 숨은 의도 아닌가하는 의심을 감추기 어렵다. 물론 한미 FTA와 가을학기의 연관성은 ‘사실’로 입증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정책은 올 10월부터 공론화 ‘작업’을 해서 12월에는 ‘기정사실’로 ‘확정’하겠다는 게 교육부가 혁신위 보도자료에 끼워넣은 내용 아닌가?
그런데 혁신위는 무슨 진정성 타령하면서 ‘선진 조국’과 ‘국가경쟁력’을 얘기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혁신위는 지금 시민들에게 욕 먹으라고 교육부가 등 떠밀려 나온 불쌍한 신세이다. 나도 행정의 실질적 권한이 없는 대통령의 자문위원회 중 하나에게 과도하게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다. 사건의 실체와 주체는 교육부이지, 토론회 한 번 열었다가 학교 폐교의 주범으로 몰리게 된 혁신위는 안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교육부는 앞으로 한 달은 더 혁신위 등에 숨어서 여론조작을 통해서 조기유학을 검토하는 학부형들에게 가을학기 개편의 지지여론이 높아지기를 기다릴 것이다. 시민단체나 교육을 걱정하는 많은 시민의 입장으로 보면, 이 밀실행정에 대해서 제어할 아무런 장치도 없이, 그야말로 교육부의 시계는 째각째각 흘러가는 중이다.
노무현 정권의 밀실행정의 기본전략은 딱 한 가지이다. 초기에 반대하면 “왜 확정되지도 않은 것을 단정적으로 비판하느냐?”고 오리발을 내밀고, 후기에 반대하면 “이미 결정된 것에 대해서 생산적 논의를 해달라”면서 “대안 없는 시민운동 혹은 대안없는 학자들이 문제다”라고 슬쩍 뭉개버리는 전략이다. 이 간단한 전략에 3년 내내 시민운동이 당할만큼 당했는데, 이종태 박사는 이미 실행계획까지 얼개가 수립되고 연말이면 확정되는 정책에 대해서 진짜 논의에 비하면 “오히려 작은 문제”라고 하였다. 나는 6년 동안 조정할지, 아니면 1년에 6개월을 조정할지 하여간 6개월을 앞으로 허비해야 하는 이 정책의 정신과 실효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동기가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이다. 정책담당자와 입안자는 ‘민원인’들의 질문과 비판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위치에 있지, “모르면 입 다물어라”라고 하는 위치에 있지는 않다.
어차피 가을학기 개편에 국민설득의 주체로 등 떠밀려 서게 된 혁신위와 이 사안에 대해서 길게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혁신위가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던지, 아니면 교육부가 사안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대통령 이름 뒤에 숨지 말고 공개적으로 논의를 해야 다음 단계의 사회적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