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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일이..."국가보안법은 살아 있었다"
최장기 수배 8년째 윤기진 씨, 서울 한 복판에서 경찰과 추격전 벌여
 
박준영   기사입력  2006/07/06 [18:43]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우리 사회가 통일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역시 국가보안법은 아직 서슬퍼렇게 살아 있었다. 

국가보안법으로 수배자 신세가 된 지 8년째를 맞이하는 윤기진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아래 범청학련) 남측본부 의장이 지난 6월 28일 서울 시대 한 복판에서 경찰(?)들과의 추격전을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청량리역 근처 모 건물에서 아내인 황선 씨를 만나고 함께 내러오던 중 3∼4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윤기진 의장을 잡기 위해 뒤쫓은 것이다.

▲ 수배 8년째인 윤기진 범청학련 남측본부 의장은 아내를 만나던 중 미행하던 경찰들과 추격전을 벌이는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그는 붙잡히지 않았다. 사진은 첫딸 민의 돌잔치 모습     © 자주민보 제공

현장에 있었던 황선 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오후 10시30분 경 만나고 함께 내려오는데 한 남자가 계단으로 올라왔어요. 그런데 우리 둘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지나치더니 다시 돌아섰습니다. 낌새가 이상해서 남편을 불러세웠더니 남편이 눈치를 채고 바로 뛰었죠. 그런데 남편이 뛰자, 계단 위에 있던 남자가 뒤쫓아 뛰고 보수대로 추정되는 3∼4명의 남자들이 주변에 있다가 함께 남편 뒤를 쫓는 겁니다. 뒤를 쫓던 한 명이 남편을 놓치자 주변 골목골목을 다 뒤지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따라가면서 '아, 너 누구야'했더니 뛰어서 도망가 버렸습니다. 시장 사람들도 '도둑 잡으려고 그러나'며 다들 놀랐더군요."

갑작스런 사고에 놀란 황선 씨는 남편의 행방이 걱정이 돼 곧바로 시경과 국정원 등에 연락을 취했는데 시경에서는 그런 적 없다며 '요즘은 그런 식으로 안한다'면서 "국정원이 움직인 게 아닐까 싶다"는 언질을 더하기도 했다.

1시간 여를 마음 졸인 황선 씨는 윤기진 씨의 무사하다는 연락을 받고서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겁이 나서 길게 통화를 못했어요. 그저 (제가) 안 다쳤냐고만 묻더군요." 아무래도 전화가 도청되었을 것 같다며 황선 씨는 "혹시 아이들이라도 데리고 나갔으면 어쩔 뻔 했나 싶은 생각에 지금도 아찔합니다"라며 아직도 놀란 가슴을 진정하지 못했다.

"최근 보수세력들의 득세 속에서 이런 퇴행적인 일을 벌이다니…." 황선 씨는 "얼마 전 시경에서 시어머니에게 아들 자수시키라는 전화까지 했다"며 시대에 역행하는 행태를 벌인 공권력과 국가보안법을 향한 화를 삭이지를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금강산으로 놀러 가고 개성공단에서는 남북합작품이 생산되고 남북 문화예술인들이 오고가며 공연을 하고 정치인들은 손을 잡고 통일을 이야기하는 6·15시대, 통일시대라며 감격스러워 한다.

그러나 2006년 6월 28일 서울은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서슬퍼런 칼날을 세우고 세상을 활보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황선 씨는 금강산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을 보면서 엄청 울었단다. 그렇게 오전 내내 통일시대를 감격해 했는데 오후에 눈앞에서 남편이 경찰에게 쫓기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 황선 씨에게 "아직도 우리 사회는 분단사회고 냉전사회"였다. 단지 우리 민족의 통일을 위해 제 한 몸 헌신한 것 뿐인데 8년째 수배자라는 족쇄에 매여 사랑하는 자식도 안아볼 수 없고, 신혼살림집에 가보지도 못한다. 그것뿐이랴. 범청학련 남측본부 의장이라는 남측 청년학생통일단체의 대표직에 있으나 수천의 남북 청년학생들이 만나는 자리에 설 수조차 없다. 국가보안법 때문에….

"사람들, 인권 참 좋아하고 많이들 이야기하는데 우리 사회 수준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 같습니다. 통일을 준비하는 사회가 맞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우리 사회가 인권사회가 맞습니까?"

황선 씨는 윤기진 의장에게 있은 오늘 일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전했다. 그래서 결코 국가보안법은 죽지 않았으며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우리 사회는 통일시대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직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윤기진 씨는 99년 한총련 의장을 역임, 그 해부터 지금까지 국가보안법에 의해 8년째 수배생활을 하고 있는 최장기 수배자이다. 수배생활 와중에도 왕성한 통일운동을 펼쳐온 그는 2000년 남북해외 청년학생들의 통일운동체인 범청학련 남측본부 상임부의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지금은 같은 단체의 상임의장을 맡고 있다. 
  
* 본문은 '자주민보'(http://www.jajuminbo.net)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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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7/06 [18:4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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