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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패>, 매우 특별한 우리 시대의 깡패영화
[비나리의 초록공명] 깡패공화국 노무현 시대를 잡아낸 류승완의 천재성
 
우석훈   기사입력  2006/05/31 [09:47]
1. B급 영화의 예술성

나는 B급 영화 매니아다. 어렸을 적에는 예술영화를 본다고 건방을 떤 적도 있었지만 어른이 되고나서는 주로 B급 영화들을 본다. 예술성 높다고 난리치는 영화들은 나 말고도 봐 줄 사람은 많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의 다양한 폐해에 대해서 맞섣던 것은 주로 B급 영화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B급 영화가 그렇게 시대를 읽고 시대에 맞선 것은 아니다.

▲ 영화 <짝패>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런 B급 영화의 감독 중에서 개인적으로 최고를 꼽으라면 역시 조지 로메로를 꼽을 수밖에 없겠고, 그의 시체 3부작에서도 또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이블 헌터"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시체 3부작의 두 번째 편, '시체들의 새벽'일 것 같다.

"쇼핑몰에서 물건 사고 좋아하는 너네... 다 좀비들이야..."

시대를 그리는 영화의 맨 앞에 서 있는 것들은 B급 호러물이다. 호러물이 시대와 숨쉬며 시대를 읽어내는 건 역사가 오래되었다. 대공황을 시대 무대로 한 드라큐라 백작과 프랑켄슈타인 그리고 미국이 악마의 제국이라는 섬뜻한 메시지를 던진 오멘까지...

여고괴담이 좋은 B급 영화인 것은 괴기스러운 우리 시대의 고등학교 그 안을 호러를 빌어서 까발렸기 때문이다.

B급 영화로 또 다른 쟝르를 개척한 것은 B급 코미디물이다. 예술영화인 척하는 프랑스 영화들은 다 꽝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프랑스의 코미디 영화들만큼은 속 깊은 영화들이다. 가장 최근 영화로는 "택시"가 그랬다. 택시의 다양한 코드는 미처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숨차게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액션 영화들이 처절한 시대를 담고 있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가 이 길을 열었다고 하기는 좀 그렇긴 하지만, 잔혹과 연결된 와일드 번치는 베트남 반전 분위기의 맨 앞에 선 B급 영화이다. 셈 페킨파라는 꼴통 천재가 등장해서 가능했던 일이다.

2. 류승완, 오 류승완!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보면서 류승완도 별 수 없다는 아쉬움을 가진 적이 있었다. 시골에서 서울 올라온 다음에 서울의 매력에 푹 빠져 헤어나올 줄 모르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아라한에 대한 소감이었다. 더 이상 유승완에게 나올 수 있는게 있을까? 기껏해야 뉴욕 스타일에 대한 그리움 같은 영화나 더 만들지 않을까... 솔직한 내 느낌이다.

아라한은 용산에 관한 영화였다. 용산을 개발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이기는 한데, 무의 본원으로서의 용산은 그냥 건물일 뿐이다.

류승완의 마음 속에는 시대와 공간이 있겠지만 시멘트에 대한 동경 같은 것들로 얼버무려진, 그래서 스카이 라인이 높아짐에 따라 모든 것들이 좋아지고, 남은 것은 "사랑없는 도시"라는 사랑 타령 밖에 남지 않을까...

우디 알렌의 수다 속에서 발가벗져진 맨하탄의 일상이 그랬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뉴욕의 또 가장 상층부인 맨하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전세계인의 이 궁금증에 대해서 우디 알렌이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은 놀라왔다.

"걔네, 연애중독증들이야... 사랑없이는 단 5분도 못 버티는 세계 최고의 부자 마을의 주민들, 걔네는 연애중독증들이야... "

현대 영화는 연애를 할 것이냐 연애를 하지 않을 것이냐의 두 가지의 소재로 나뉜다. 그리고 헐리우드 영화는 가족을 내세울 것이냐 가족을 내세우지 않을 것이냐의 두 가지의 주제로 나뉜다. 그 중에 일부는 미국의 건국 신화에 기대고 있고, 일부는 그렇지 않기는 하지만 별 거 없기는 대동소이하다.

연애를 빼고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나의 질문은 류승완의 B급 액션물이 결국 서울에는 연애중독증들만 살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연애 얘기로 갈 것인가 아닌가 정도의 질문이었다.

용산 만세... 를 외치고 났다면 마천루에서 남는 건 연애 얘기 밖에 없지 않을까...

오, 류승완, 그는 나의 이런 예상을 비웃고 짝패를 툭 던졌다.

연애? 그건 아니지...

연애, 해도 좋기는 한데, 연애 얘기 가지고 예술한다고 눈물로 범벅을 만들거나, 연애 영화가 아니면 어깨에 잔뜩 힘들어 가서 무슨 구조를 보여준다고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얘기를 마구 던져놓기 일쑤다.

최근 영화 중에서 이렇지 않은 영화로는 추창민 감독의 <마파도>를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B급 코미디물이지만, 역시 아주 재밌는 영화이다.

그렇지만 <짝패>는 마파도와는 급이 전혀 다르다. 개봉동의 3류 극장에서 고등학교 때 수업 빼먹고 가서 봤던 <고래사냥>과 <적도의 꽃>으로부터 시작된 나의 우리나라 B급 영화 관전 역사에서 <짝패>와 같은 영화는 없었다.

방화라고 우리나라 영화를 부르던 시절에 욕을 하더라도 돈주고 보고 나서 욕을 해야한다는 나름대로의 우리 영화 보기의 20년 역사 중에서 <짝패>와 같은 제대로 된 B급 액션 영화는 없었다.

3. <킬빌>과 비교될 영화는 아니다!

<킬빌>도 B급 액션물로서는 아주 좋은 영화이기는 하다. 두 편의 DVD와 두 장의 CD를 소장할 계획이다. 연기만큼은 정말 킬빌은 군더더기와 빈틈없고, 그야말로 액션 영화가 깔끔하면 얼만큼 깔끔해질 수 있는지의 거의 극한에 간 영화라고 생각한다. <킬빌>은 좋은 영화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순위를 매기라고 한다면 <레지던트 이블> 보다는 한참 밑으로 내려갈 영화라고 개인적으로 평가한다. <레지던트 이블>은 시대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고 누가 잘못한 것인가를 지적하는 좀비 영화의 전통적인 계보 안에 들어갈 영화이지만, 킬빌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저 재미있었던 영화 중의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킬빌에는 시대가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타란티노의 영화들이 재밌기는 하지만 와일드 번치와 동급으로 타린티노 감독의 영화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동시대와 어떻게 호흡하고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라는 관점 때문이다. 외국에서 배창호 감독의 영화를 우리나라와 달리 매우 높게 평가했던 것은 바로 박정희 시대에 아시아의 경제개발이 만들어낸 어두운 뒷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비슷한 이유이다.

<짝패>는 킬빌에 대한 오마쥬가 많이 등장하고 구도와 느낌만으로 아류작에 해당하지만 킬빌에는 전혀 없는 시대가 들어가 있다.

바로 노무현 정부, 그리고 왜 이 민주세력이 만들어 낸 참여정부가 결국에는 깡패 공화국이 되어버리고 말았는가에 대한 시대가 들어가 있다. 바로 내가 살고 있던 동시대의 아픔과 현실 그리고 조금 과장하면 진실이 들어가 있다.

서부극을 그리는 와일드 번치에 대해서 평을 할 때마다 베트남전의 살상과 반전영화라는 얘기가 따라붙은 것은 이유없는 인디안에 대한 학살과 정의로왔던 카우보이의 잔혹성 그리고 시대의 야만성으로 베트남의 밀림 안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영화사적으로 와일드 번치와 정반대에 서 있는 영화가 존 웨인의 <그린 베레>이다. 직접 백악관에 편지를 쓰고, 군대의 장비지원까지 받으면서 전쟁을 찬성했던 영화 그린 베레와 싸우기 위해서 만들어졌던 일련의 영화의 길을 열었던 영화가 바로 와일드 번치이다.

그래서 지옥의 묵시록, 디어헌터와 와일드 번치가 평화주의자들의 영화로 가끔 분류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짝패는 킬빌과 비교되기 보다는 와일드 번치나 시체들의 새벽 혹은 주성치의 쿵후 허슬과 비교될 영화이다.

스타일과 기법만 킬빌풍이지, 시대성과 사실성에서는 전혀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는 영화이다.

4. 일본 부동산 자본과 영화 <비지터>

전세계적으로 성공해서 사람들이 이름 정도는 알고 있을 영화 중에서 짝패와 같은 주제를 다룬 영화는 레옹의 장 르노가 주연을 맡은 <비지터>라는 영화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되는 헤이세이 공황 직전에 일본 자본들이 세계를 휩쓸었는데, 이 때의 부동산 자본이 유럽의 고풍스러운 성을 사들여서 호텔로 개조하는 일들이 유행을 했고, 더불어 성 개조라는, 유럽판 리조트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다. 일본의 경제가 폭발한 것은 리조트법에 의한 리토즈와 골프장 개발이 직접 도화선이 되었다.

왜 이게 은근한 일본 풍자이냐고? 돈에 환장하여 기사를 배신하는 시종의 이름이 자꾸이이다. 영화 내내 시종의 무식함과 천박함을 꾸짖는 장 르노의 대사는 몰리에르 희곡풍의 일본 야유를 아주 점잖고 은근하게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짝패에는 비지터와 같은 문학적이고 은근함 대신에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대사들이 들어간다. 물론 B급 영화들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우린 그런 예술 잘 몰라!

5. 매우 특별한 우리 시대의 깡패 영화

우리나라 영화의 거의 절반은 조폭 영화이다. 조폭이 좋다고 하는 영화와 좋지 않다고 하는 영화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짝패는 깡패는 치사하고 나쁜 것이라는 간결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여간 깡패는 친구도 없고 의리도 없는 그냥 나쁜 것이예유, 여러분... 깡패, 나쁜 겁니다...

이 메시지는 약간 특별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건 짝패의 이야기가 실제로 벌어진 일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앞으로 벌어질 일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시대... 역사는 이 시기를 깡패들이 최고로 신났던 시기라고 기록할 것 같기는 하다.

짝패가 다루고 있는 얘기는 기업도시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당과 야당이 유일하게 국회에서 포럼까지 만들면서 딱 궁합이 맞아서 이것만은 같이 한 번 해보자고 했던 특별한 법률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법률에서 결국 카지노를 만들고 그걸 기업투자라고 강변하는 이 시대의 특별한 사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짝패의 배경인 "온성"은 류승완 감독의 고향인 아산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사실상 제주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기타 등등 서울이 아닌 그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의 연장이기도 하다. 국회에서 법 통과시키고, 기업들이 투자하고, 지역에서는 뭔가 유치하는 동안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너무 무서워서 아무도 입도 뻥끗하지 못하는 사건에 관한 일이기도 하고, 작년에 서울에서 벌어진 내가 기억하는 몇 개의 칼부림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개발해야 잘 산다"는 노무현 시대의 민주주의 가 만들어낸 깡패 이데올로기 속에서 이미 벌어졌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벌어질 특정한 몇 개의 사건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진행되고 있는 일들이 그리고 아직 벌어지지도 않는 일들이 동시대에 누군가에 의해서 벌써 영화로 만들어져서 눈 앞에 던져지는 것은 희한한 경험이기는 하다.

아산의 기업도시는 아직 카지노 업체 선정이 안 끝났고 토지수용도 시작도 안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가상의 도시 "온산"은 그래서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과연 온산은 서산이야, 아산이야, 태안이야? 이런 질문은 무의미하다.

깡패, 치사한 넘, 범인은 누구야, 본사는 뭐지?

6. 다시 이런 영화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예술가들이 시대를 앞선다는 명제를 받아들인다면 류승완은 예술가 맞고, 천재는 33살 전에 모든 것을 다 이룬다는 정의를 사용한다면 류승완은 천재는 맞는 것 같다. 고만고만한 분위기와 고만고만한 소재로 비슷비슷해 보였는데, 툭 튀어나오는 것을 천재라고 보통은 부른다.

모차르트의 음악도 그 시대의 음악들과 그리고 가끔 표절시비가 붙는 소절들을 비교해서 들어보면 사실 고만고만하기도 하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모차르트이다.

짝패는 영화로서는 몇 가지 흠결이 있는 영화이다. 킬빌에는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에 녹아들어가지만 짝패에는 역시 전혀 연기 되지않는 몇 사람들이 나온다. 그래서 영화로 보면 B급 영화이고 어쩌면 혹평을 받아도 어쩔 수 없는 빈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짝패는 예술로서는 이 시대의 최고의 예술이다. 어떤 시나 소설도 아직 형상화시키지 못한 깡패들의 전성시대 노무현 시대를 하나의 완성된 예술로 우리 앞에 던져진 셈이다. 그런 면에서는 현재로서는 가장 치열하게 시대를 고민하는 예술의 맨 앞에 첨두에는 영화가 서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온산"에서의 비극에 소설가가 따라오려면 아직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소설에서는 그렇게 시대를 읽으려는 노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카지노가 나쁜 거라고 말하는 상식적인 말을 하는 예술가가 대한민국에 있는가? 기업도시법의 이면에 실제로 지역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틀어서 보려고 한 예술가가 우리나라에 있는가?

이런 영화가 또 나올까?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우연히 시대의 맨 앞에 선 천재가 펼쳐 보여준 시대의 비극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

용산에 펼쳐질 마천루에 대해서 좀 기분 나쁘다고 생각했던 류승완 감독이 짝패에서는 맘 먹고 단단히 실체에 대해서 보여주었다.

대안은?

B급 액션 영화에서 대안을 달라니... B급 영화만의 특권이다. 대안 같은 건 없다. 오직 액션만이 있을 뿐! 

천박한 대안을 찾지 않아도 되는 B급 영화를 사랑하는 건, 대안 없으면 비판도 하지 말라는 순혈주의자들의 비겁함과 연애중독자들의 연애 강박증을 마주대하지 않아도 좋기 때문이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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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5/31 [09:4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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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사레 2006/06/02 [11:43] 수정 | 삭제
  • 다음엔 A급영화도 좀 보아주세요. 이미 보시고 계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