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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눌한, 그러나 할말을 하는 이창동 장관
조폭문화부를 장악하듯이 조폭언론도 진압해야
 
늦깍이   기사입력  2003/04/16 [00:19]
양김에 이어 한국정치의 최고스타였던 노무현이 청와대에 입성한 것은 정치팬들에게는 최고의 기쁨이었다. 마치 10대 대중음악 팬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나 그룹을 성원해서 랭킹 1위로 부상시켰을 때 얻는 기쁨과도 대체적으로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대중가수는 자신들의 팬들만 만족시켜주면 되지만, 대통령은 모든 국민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진다. 그래서 더이상 노무현에게서, 그 특유의 자유분방하고 예리함으로 지지자들에게 카타르시시를 안겨준 스타정치인의 면모만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아쉽기도 하다. 우리의 이러한 아쉬움에 대해 노무현이 책임질 수 있는 길은,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스타들을 발굴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스타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노무현이 직접적으로 책임지고 새 얼굴들을 내놓을 수 있는 방법은 장관을 비롯한 정부의 정무직 인선이었다. 인선이 이루어진지 얼마되지 않았고, 또 새 정부가 해야할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인선에 대해 전반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은 아직 너무 이르다. 하지만, 스타탄생을 예감케 하는 소중한 인선들도 있었다. 여성 파워가 미약한 정치계에 권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법무부에 입성한 강금실도 한 예이고, 자고 일어나니까 유명해졌다는 스타탄생의 신비함이 느껴지는 행정자치부의 김두관도 다른 소중한 예이다. 그런데 그분들이 맡은 부서가 워낙 이해가 민감할 수 있는 분야들이다보니, 정말 스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는 가시밭길을 통과해야할 것이다. 그래서 아직은 그분들의 스타성을 예감만 할 뿐이며 아직 진정한 스타인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고자 한다.

반면에 맡은 부서의 성격상, 빨리 스타탄생을 선언하고픈 성급함을 무릅쓰고 싶은 사람이 있다. 문화관광부를 맡은 이창동 장관이다. 필자는 영화감독으로서의 이창동을 존경해마지 않지만, 행정조직의 리더로서의 그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이창동의 정치적 견해와 소신을 유일하게 들을 수 있었던 경우는 MBC 백분토론에서 마련한 대선 지지자 토론회 자리였다. 조금 어눌한 듯하지만, 노무현의 장단점에 대해 소신있게 말하고 왜 그가 대통령이 되야 하는지에 대해 진솔하게 표현했다. 자신이 할 말은 하되,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경청하는 자세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외의 정보는 없었기 때문에 그가 정부의 조직을 이끌 리더쉽이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예술가들이 흔히 갖는 지나친 자유주의적인 태도가 몸에 배어있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도 있었고, 혹시 세간에서 말한대로 대선의 공신인 문성근, 명계남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글, 인터뷰, 그리고 몇가지 정책수립에서 필자의 기우가 그아먈로 보기좋게 뒤집어지는 유쾌함을 경험했다. 그가 새 정부가 요구하는 자질들을 골고루 갖춘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그에 대한 인사에서 그야말로 적재적소의 원칙이 구현되는 짜릿한 쾌감을 얻었다.

새 정부에 필요한 인재는 탈권위주의적이면서도 세세한 정책에 치밀한 사람이다. 흔히 말하는 외유내강의 성품을 갖춘 사람이다. 권위주의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에 대한 당당함, 권력의 유혹이 주는 달콤함을 우습게 여길 수 있는 초연함이 있어야 한다. 어느정도의 상업적인 성공도 거두었지만 결코 상업적이지만은 않았던 그의 작품이력에서 그가 속세에 만연한 권위주의적 처세술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짐작했다. 문제는 얼마나 치밀하고 정확하게 자신의 리더쉽을 구현해가는가가 미지수였다. 그는 문화관광부의 목표를 세간에 만연한 상업적 문화가 아니라 인간에 소중한 가치를 실현시켜주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그리고 그러한 목표를 구현하기 위해서, 문화관광부가 직위고하에 상관없이 누구나 각자의 소신을 폄에 있어서 주저함이 없는 조직문화를 갖추도록 몸소 앞장섰다.

필자는 창의성을 북돋아줘야할 문화관광부마저, 이창동 장관이 인사말에서 언급한 '조폭문화'같은 권위주의에 젖어있었다는 사실에 충격받았다. 비록 문화관광부에는 뼈아픈 일갈이었지만, 필자는 그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그 일갈에 쾌재를 불렀으리라고 확신한다. 사고기능이 없는 조폭들이 아닌 다음에야, 그런 권위주의 문화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이창동 장관은 초기에 업무파악한다며 인터뷰도 하지 않은 채 웅크리고 있다가,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문제였던 정부와 언론과의 유착관계를 견제균형관계로 전환시키기 위해 바람직한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했다. 잃을 것이 없다는 그의 당당함이 기존의 관료들에게는 금기시되어왔던 대언론 독립선언을 가능케 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영화를 만드는 배우들이 '독종'이라고 할 정도로 현장의 세밀한 것들에 철저한 그의 성품이 제대로 빛을 보는 것 같다.

문화관광부와 이창동은 참으로 절묘한 궁합이다. 상대적으로 문화관광부는 복잡한 이해를 교통정리해야 하는 부처는 아니다. 그만큼 눈치를 봐야할 여지가 적기 때문에,  장관이 소신만 있다면 혁신적인 변화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 부처가 많은 산하 조직을 지배한다기 보다는, 국민들의 문화관광활동을 활성화하고, 문화예술인들의 창작공연활동을 최대한 지원해주는 일을 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부서보다도 탈권위주의적이어야한다. 그리고 문화관광부는 탈권위주의적인 모범사례를 시범해서, 다른 부서가 따르지 않을 수 없게 은근히 압박할 수 있는 전위대의 역할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문화관광부가 새 정부에게 있어 절호의 전략적 요충지였음이 이창동 장관을 계기로 밝혀졌지만, 필자도, 문화관광부는 대표적인 힘없는 부서이고 정권에 공을 세운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장관한번 해보는 '시다바리'같은 부서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한명의 장관 인사에 의해, 한 부처가 생기가 돌고 주목받게 되는 것을 볼 때, '인사가 만사이다'라는 말이 지닌 뛰어난 직관을 새삼 다시 확인케 된다. 이전에 장관의 승용차 문을 열어줘야 했던 문화관광부 사무관은 인제 보다 생산적인 문화활동에 그 에너지를 투여할 수 있을 것이다. 장관의 눈치를 보면서 이쁘게 결제서류 작성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장관의 면담 시간을 기다리며 노심초사했을 고위직 공무원들은, 이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그만큼 스스로 책임지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장관의 총애를 얻으려고 구차한 아부를 하기 보다는 하위직급의 공무원들과 지지와 동의를 얻기 위해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것이다. 장관이 출근했는지 퇴근했는지 등 장관의 동정에 관심이 없을 수록 우리 공무원조직의 생산성은 높아간다.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내려서 그 누구의 응접도 받지 않은 채, 자신의 서류가방을 맨 채 사무실로 올라가는 그의 모습을 TV 에서 보았을 때, 정말 감동받았다. 흔히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에서 고위직 공무원들이 전혀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모습들에서 보았던 부러움, 시샘이 말끔히 사라졌다. 오랫동안 신장에 거북하게 쌓였던 담석들이 말끔히 사라질 때 얻어질 듯한 그런 개운한 느낌이란! 이창동장관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너무나도 소중한 그릇은, 깨어질까봐 조바심이 나는 법이다. 나는 이창동 장관이 깨어지지 않고 소중하게 참여정부에서의 그의 역할을 수행하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그러면서도 그가 너무나도 잘해서 혹시 국회의원 등의 정치계에서 놓아줄 수 없는 사람이 될까봐 걱정이 되기도 하다. 장관직 수행으로인한 창작 중단은, 명계남 뿐아니라 우리 영화팬에게도 큰 손실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성공을 꿈꾸면서 동시에, 그가 장관으로서 '공익근무요원기간(?)'을 마치고는 영화로 돌아오겠다는 그의 약속을 꼭 지켜줄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그의 장관직 수행의 경험이 그의 영화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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