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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호, 지역유지, 그리고 동네깡패들의 자본주의
[비나리의 초록공명] 지역깡패 자본주의와 깡패들의 대리전 된 지방선거
 
우석훈   기사입력  2006/05/16 [08:09]
1. 깡패를 정의할 수 있을까?

깡패를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불법적 경제행위’라는 방식으로 정의한다면 크고 작은 불법까지 포함해서 우리나라에서 단 하루도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사회 속에서 크고 작은 불법의 요소가 너무도 많다.
 
주관적으로는 누가 깡패인지는 쉽게 알 수 있는데, 막상 지역이라는 프리즘을 통하면 깡패와 민간인의 구분이 쉽지 않다. 뭔가 불법적이기는 할 것 같은데, 막상 그 불법이 무엇인가라고 따지고 들어가면 뿌리가 너무 깊게 엉켜있어서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특히 지역개발 사업을 결정하는 지구단위 계획의 도입 이후 단위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조차 깡패들과 분리되어 있는 ‘민간인 영역’과 깡패 영역들이 잘 구분되지 않는다.
 
약간 정의를 바꾸어보자. 아이가 커서 깡패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가 있을까? 돈도 잘 벌고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한국 자본주의가 칭송하고 동경하는 최선의 길은 깡패가 되는 길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자라나서 깡패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직은 한국 자본주의가 보수적이기도 하고, 건전하기도 하다. 아무리 깡패들이 정부와 지역 정치인을 옆에 끼고 골프장과 카지노 아니면 지방도로 건설사업 같은 것으로 쉽게 치부하고 또 쉽게 지역의 실력가가 되더라도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정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힘이 한 가지는 아직은 남아있는 것 같다.
 
이탈리아의 경우는 이게 잘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특정 몇 정치인의 실질적 권력이 많고 또 집중도도 심한 이탈리아의 정치는 정말 요지경이기는 하다. 심지어는 시민단체도 뭔가 빠르게 제도개혁을 하기를 바랄 때에는 이탈리아 마피아들과 간접적으로 손을 잡기도 한다. 특정한 환경법규 개선에서 마피아들과 전격적인 제휴를 한 적도 있기는 하다.
 
고리대금업은 깡패들이 하는 가장 전형적인 사업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가장 쉽고 불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이자를 반대한 중세사회에도 고리대금업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현대 사회로 올수록 고리대금업에 대한 사회적 규제가 강해진다.
 
우리나라에도 ‘달러이자’와 부유층의 곗돈과 같이 고리대금업과 관련된 몇 가지 경제활동이 있기는 했지만 요즘처럼 대놓고 고리대금업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일본에도 마피아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처럼 대놓고 고리대금업을 광고하는 일은 없는 것 같다.
 
고리대금업이 그럼 깡패들의 사업이야? 구분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건전한 경제활동이라고 하기에는 좀 문제가 있을 것 같다.
 
2. 마이크로 크레딧과 급전
 
서민들의 급전이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문제이기는 하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마이크로 크레딧이라는 제도이다. UN에서 여러가지로 전세계적으로 확산시키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생각보다는 잘 되지 않는 모양이다. 서민들이 100만원 근처의 급전이 필요할 때 담보나 신용평가 같은 높은 벽을 돌파하기가 어려우니까 간단한 서류로 신용대출을 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제도가 마이크로 크레딧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가지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 중이기는 한데, 생각만큼 속도감 있게 움직이지는 않는다. 떼어먹으면 어떻게 해? 물론 그런 면에서 마이크로 크레딧은 제도적 맹점을 가지고 있기는 한데, 생각보다는 대출회수율이 높기는 하다는 실증 연구들이 조금 있기는 하다. 전체적으로는 저소득층에 대한 생계지원 즉 일정 비율은 떼어먹힐 걸 감수하고 진행하는 제도이기는 하다.
 
이것이 생긴다고 해서 엄청나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최소한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전제 정도를 가지고 있는 제도이다.
 
정부에서 이런 걸 잘 하지 않으니까 신용협동조합 보통은 신협이라고 부르는 구체책이 생겨나게 된다. 신협운동은 원주가 우리나라에서는 정신적 고향이라고 할 정도로 생명운동 혹은 지역 민주주의 운동의 연장선에서 진행된 일이다. 잘 사는 동네에는 없을까하지만 송파구에도 신협이 존재한다. 아무리 잘 사는 동네에라도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은 존재하고 그렇기 때문에 마이크로 크레딧을 사회 운동의 일환으로 만드는 일의 역사가 우리나라에서도 10년은 족히 넘었다.
 
그러나 효과적으로 전국민을 대상으로 마이크로 크레딧을 진행하기가 여러가지로 어렵기는 어렵다. 잘 사는 사람들은 보다 안정적이고 높은 금리에 돈을 “굴리고” 싶어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리 제도를 잘 정비해놓아도 접근하고 또 잠깐이라도 수혜를 받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다.
 
이 중간에 비는 부분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사채와 급전이다. 전형적인 깡패 부문이라고 할 수는 있는데, 세상이 어떻게 되었는지 버젓이 영업하는 것은 물론이고 점점 제도화되면서 대규모화되는지 요즘은 TV에서 공공연히 급전광고를 한다.
 
누가 이 급전 광고의 모델로 나오는가 살펴보면 좀 민망하기도 하다. 대놓고 TV에서 급전광고하고, 또 이 급전을 통해서 돈을 빌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늘어감에 따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딱한 사연들이 늘어갈 것이다. 마이크로 크레딧으로 모든 문제를 풀 수 있을까? 물론 이걸로 구조적인 문제들은 풀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최소한 급전을 구하면서 앞으로 뻔하게 움직일 슬픈 사연들을 상당히 줄일 수는 있다. 양극화를 줄인다고 경제성장률을 높여야 한다는 요란하고 뻑적지근한 구호보다는 현재로서는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는 마이크로 크레딧 같은 것들이 있는데, 이미 마련된 법규는 국회에서 놀고 있고, 별로 티나지 않는 이런 제도들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는 동안에 깡패들이 마련해 놓은 ‘요상한 서민대책’이 점점 더 구조화되고 있다.
 
급전 돌아가는 사회,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깡패공화국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 같다.
 
"신용으로 대출해드립니다"... 이런 것은 사회가 마이크로 크레딧으로 풀 문제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돈들의 “정상적 경제활동”으로 해결할 문제는 결코 아니다.
 
도대체 어떤 광고모델들이 급전광고에 나오나 보면서 민망함을 감추기가 어렵다. 이거야말로 최소한의 윤리강령 같은 걸로 스스로 원칙을 세우는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모델 개개인에게 도대체 그럴 수가 있느냐고 물어보기에는 너무 광범위하게 많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 기꺼이 광고 모델이 되는 것 같아 슬프다!
 
3. 맹지와 도로
 
가끔 지방에서 진행되는 여러 가지 공공사업의 환경영향평가나 도로개발사업 공청회 같은 곳에 패널로 가게 된다. 솔직하게 별로 가고 싶지 않다. 교통비를 제외하면 남는 게 없는데도 제대로 볼려면 500페이지가 넘는 사업계획서를 꼼꼼히 볼 수밖에 없는 어려움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어지간하면 깡패들 봐야 피곤한 일만 생기기 때문에 별로 내키지는 않는 일이기는 한데, 깡패들이 추진하는 지역개발 사업에 대해서 동네에서는 반대하거나 다른 의견을 제시할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파주 같은 접경지역은 물론이고 지리산 골짜기까지 가게 된다.
 
이걸 토호라고 불러도 되고, 지역 유지라고 불러도 되고, 동네 깡패들이라고 불러도 별 상관은 없는데, 딱 봐도 깡패자본임이 뻔한 사람들이 노무현 정권 이전에는 “지역발전”이라는 말을 많이 쓰더니, 2년 전에는 “상생”이라는 말을 그렇게 많이 썼다. 서로 상생하는 길을 찾자? 이런 지역환경 문제와 깡패들 사이에 상생할 일이 뭐가 있나? 그렇지만 2년 전에는 깡패들이 입만 열면 상생하자고 그랬다.
 
작년부터는 이 깡패들이 “균형발전”이라는 용어를 들고 오기 시작했다.
 
경제학에서 ‘균형’이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19세기 말의 왈라스와 제본스 그리고 멩거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20세기 초에 마샬이 이 용어를 많이 썼다. 그야말로 균형, 우리나라 지방에서 심하게들 고생하고 있다.
 
수 년 동안 이유와 근거가 계속 변화하고는 있는데, 수도 없이 뚫고 가는 이름만 좋은 지방도로와 국도들의 실제 힘은 맹지라는 제도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르게 돈을 버는 방법은 아직도 여전히 맹지를 구입하고 몇 년 버티다가 도로가 개통되기를 기대하는 방법이다. 이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
 
맹지를 수 천평 구입하고, 나중에 맹지에서 풀리면 그 중에 몇 백평을 필지 분할해서 팔아서 개발비를 충당하고, 그렇게 들어온 돈으로 시설물을 만들면 10배든 100배든, 최고로 돈되는 장사가 경제학자인 내가 보는 우리나라에서 단위 수익률이 최고로 높은 사업이다.
 
그야말로 ‘비지니스’이다.
 
맹지에 투자하는 사람을 깡패로 정의할 것인가라고 하면 좀 구분이 어렵기는 하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거의 절반 정도가 맹지를 생각하면서 농지투기를 하고 있기는 한데, 진짜 배기는 산골 깊숙한 곳의 맹지를 사는 방법이다. 개발지도 아니고, 가격이 형성되어 있지도 않은 이 맹지를 사고 그곳에 길을 낼 수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토호라고 부르기도 하고, 지역 깡패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하여간 실체는 맹지 개발이기는 하다.
 
골프장, 최고로 좋은 시설물이다. 골프장이 생기면 접근로를 만들기 위해서 인근 산에 구비구비 도로가 뚫린다. 좀 심한 경우에는 천문대를 만든다고 하면서 조그만 천문대 하나에 대한 접근로가 세 개씩 있는 경우도 있다. 두 세명이 상주하는 천문대에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다고 접근로만 총연장 수 백킬로씩 만들까? 이경우가 전형적인 맹지 개발 때문이다.
 
산불나면 역시 깡패들한테는 최고로 좋은 기회가 열린다. 이름은 계속 바뀌기는 하는데, 본질은 똑같다. 우리나라에서 지금처럼 산불이 나기 전에는 이제 나름대로 수립된 ‘수목자원’을 활용해야 한다며 임도(林道)를 뚫어야 한다고 난리들을 쳤다. 그런데 박정희 때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조림사업은 약간은 무계획하기 때문에 종다양성의 문제가 있기도 하고, 특히 경제성이 없기도 했다. 그래서 임도를 뚫기 위해서 계획조림을 해야한다는 별 말도 안되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역시 이 임도의 절정판은 산불이다. 산불이 나니까 산불을 잘 끄기 위해서 임도를 뚫어야 한다고 역시 난리이다. 나무를 베기 위해서든 아니면 똑같은 도로를 통해서 불을 끄든 본질은 맹지를 관통하는 도로이다. 세상에 확률을 알 수 없는 산불을 끄기 위해서 임도를 뚫어야 하다니! 소방도로 혹은 비상방재도로라고 이름이라도 좀 바꾸면서 하는 염치도 없이 산불 날 때마다 지역의 깡패들은 임도가 필요하다고 관청에 건의하면서 검은 커넥션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흐름은 맹지를 사놓은 깡패들이 주저할 수 없는 부자들이 되고나야 끝이 난다.
 
테헤란로에 작년부터 새로 생긴 기획부동산 회사들이 맹지를 필지분할하면서 사기를 치기는 하는데, 그렇게 사기 당해서 재산을 날렸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나는 정말 조금도 불쌍하다는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그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깡패 경제에 묻어서 한 재산 만들겠다고 한 사람들인데, 오히려 망하는 것이 경제정의와 건전한 경제구조 실현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닐까?
 
4. 더러운 자본주의(Dirty capitalism)와 차가운 자본주의(Cold capitalism)
 
깡패들과의 싸움은 어렵기는 한데, 미국의 경우처럼 군산복합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세계 최고의 조직화된 깡패 정도가 되면 이제는 이게 깡패인지 아니면 미국 자본주의의 실체인지 아니면 그야말로 세상의 권력 그 자체인지 구분하기가 좀 어렵기는 하다.
 
깡패와 국가유공자의 구분이 어렵게 진화한 대표적인 시스템을 중남미형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브라질의 밀림 안으로 들어가면 도대체 어디가 정부이고 어디가 깡패경제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지형들이 나오기도 한다. 환경부에서 파견된 산림감시원은 권총으로 무장을 하게 되고, 벌목회사나 지역 농장의 주인들은 부시장이나 지역의원의 직책을 가지고 있고, 주민들은 반으로 나뉘어져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하고, 그 와중에 현대판 노예노동이 생겨나기도 한다.
 
미국과 유럽의 일부를 ‘차가운 자본주의’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용어를 빌려오면 그렇다. 자본주의가 끝까지 가면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경제논리가 완벽하게 자리잡는 ‘차가운 자본주의’가 자리잡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차가운 자본주의로 가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시민사회와 건전한 도덕관 같은 것을 필요로 한다. 미국이 차가운 자본주의인가? 이 질문은 어렵다. 세계 최대의 깡패집단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지도 모르는 미국이 차가운 자본주의일까? 어려운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성숙으로 애매하게 표현된 뭔가의 건전한 경제장치 없이 사회는 차가운 자본주의가 아니라 더러운 자본주의(Dirty capitalism)로 진화하게 된다는 생각을 해보면,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중남미형의 더러운 자본주의의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역의 깡패들이 토호로 진화하고, 자본력을 갖춘 금융계의 깡패들의 급전사업이 정상적인 금융사업으로 전환되어 나가는 것이 최근의 경향이다. 나쁜 것이냐? 물론 그것만 가지고 나쁘다고 하기는 어려운데,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깡패자본에게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있기는 한데, 대체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엘리트는 합법적인 깡패들의 사업에 대해서 무척이나 우호적이다. 점잖지 못하다고 비판하거나 경계하기 보다는 ‘새로운 비지니스’ 혹은 ‘새로운 사업기회’라고 우호적인 편이고, 심지어는 새로운 접목을 만들어내었다고 ‘혁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혹은 균형발전에 기여하는 좋은 사업이라고 기꺼이 박수를 치는 일이 있기도 하다.
 
더러운 자본주의로 진화할 가능성이 무척 높아 보인다.
 
지방의 기초의원을 비롯한 지방선거를 유심히 살펴보면 민주니 반민주니 혹은 사회의 합리성이니 제도의 개선이니 하는 얘기들은 배부른 얘기들이고, 꼭 깡패대리전을 보는 것 같다.
 
깡패들끼리 서로 자신들이 사놓은 맹지 앞으로 도로를 유치하기 위한 여러가지 공약들의 실체를 보면서 바야흐로 깡패 자본주의가 열리게 될 한 시대의 전조를 보는 것 같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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