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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판 ‘비정규직 법안’, 좌우파 정면충돌
학생 노동자 150만명 거리시위 ‘노동악법’ 반발, 내각 ‘법철회 없다’ 강행
 
최별   기사입력  2006/03/20 [19:35]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가 이끄는 프랑스 중도 우파 정부가 청년실업률을 낮추겠다고 추진하는 '최초고용계약법' 반대 시위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신규 고용 2년 안에 해고를 자유롭게 하는 일명 '고용유연화법'에 반대하는 시위가 2주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시위대는 20일까지 이 법을 철회하지 않으면 23일(잠정) 전국적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경고하고 있어 내년 대선을 앞둔 우파정부가 위기를 겪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18일 전국 1백50개 도시에서 1백50만명이 길거리로 몰려나와 '최초고용계약법'(CPE) 철회를 촉구했다. 파리 등 일부 도심에서는 밤늦게까지 경찰과 시위대간에 폭력적 공방이 거듭되기도 했다. 경찰과 시위대원 52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167명의 시위대원이 체포되기도 했다.

노조, 학생지도부, 그리고 좌파 정당이 주도하는 이번 시위는 CPE가 상원을 통과한 지난 6일 이후 계속되고 있다. 이튿날 파리, 르네, 마르세이유, 낭트 등에서 10만명이 반대시위를 벌였다. 전국 35개 도시의 항공기와 육상 교통이 마비되기도 했다. 교육노동자의 7∼15%, 에어프랑스 소속 6개 노조, 방송라디오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여했다. 16일 30만명, 18일 150만명 등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18일 150개 도시 150만명 거리 시위
 
11일에는 소르본대학에서 점거농성이 시작돼 3일간 지속되기도 했다. 이런 모습 때문에 언론은 '68혁명'을 거론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이날 시위에서 "우리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세대간 차별"이라며 "법이 시행되면 고용불안이 심화되고 일회용 폐기 노동자가 양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위에 참여한 대학은 전체 82개 중 64개였다.

시위 지도부는 18일 빌팽 총리와 시라크 대통령에게 20일까지 이 법을 철회하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거절할 시 이번 주말 경 전국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경고했다. 지도부는 23일을 잠정적으로 총파업일로 예고했다. 시위 지도자 중 한 명인 '노동자의 힘' 장 끌로드 마이요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20일 오후 5시 지도부 대책회의가 열릴 것이라고 귀띔했다.

CPE 입법에 반발한 프랑스인들의 전국적 시위는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 20일 한 프랑스의 일간지가 내놓은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의 60%가 CPE를 철회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특히 법 적용 대상인 청년(15∼24) 층에서는 68%가 이 법 조항을 반대했다. 따라서 응답자의 69%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반대시위를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20일 리베라시옹도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의 73%가 CPE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38%는 문제의 법조항 개정을, 35%는 CPE법 철회를 원했다.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정부 대변인 장 프랑소와 꼬뻬는 옵저버와 대담에서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위가 격화되고 여론이 악화되자 취임 후 10개월만에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는 빌팽 내각은 대화를 하겠다고 언급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빌팽 총리는 20일 오전 10시 기업대표들, 오후 3시 시위를 주도하는 측인 학생과 청년실업자 대표를 면담했다.
 
시위 지도부 "법 철회 안하면 총파업"
 
빌팽 총리는 20일 열린 여러 모임을 통해 "지금 새 법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며 "이들을 언제든 만나 설득하는 대화를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위대가 요구한 'CPE법 철회'의 뜻은 결코 밝히지 않았다.

의회와 유럽연합도 빌팽 총리 지원사격을 했다. 장 루이 드브레 국회의장은 18일 AFP와 대담에서 "의회를 통과한 법을 철회하라는 시위대의 최후통첩은 정부와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비난했다. 유럽의회 호세 마누엘 바로소 의장도 한 프랑스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노동법 개혁은 불가피하다"며 "다만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정치적 위기가 고조되자 공개적 대화를 촉구했다. 자신과 같은 정파인 중도 우파 내각에 구원의 손길을 뻗친 것이었지만 별 도움이 안되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우파 내각이 실패하면 대통령과 내각 모두를 좌파에게 내줘야 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우파 정치권이 이번 위기를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 소위 우파진영에서 시라크를 대체할 지도자로 부각된 샤르코지 내무장관과 빌팽 총리가 모두 불명예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샤르코지는 지난해 11월 이민자 차별에 따른 6주간의 차량방화 시위로, 빌팽 총리는 고용유연화법에 따른 반발로 곤두박질 치고 있어서 그렇다.

옵서버지는 19일 이와 관련해 "지금 정국을 주도하는 우파 정치인들이 선거에 눈멀어 실책을 거듭하고 있다"며 "내무장관이며 대권을 꿈꾸는 샤르코지는 교외(이민자 자녀들) 불만세력(그는 '시골뜨기'라 부름)을 감언이설로 구슬리려다 실패했고, 그의 라이벌인 빌팽은 '청년 실업을 줄이겠다'는 취지의 왜곡된 입법으로 시위대를 길거리로 불러냈다"고 언급했다.
 
우파 빌팽 내각 "이해부족, 법철회 안돼"
 
하지만 시위 지도부는 빌팽 내각의 CPE 밀어붙이기에 결코 타협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시라크 대통령과 빌팽 총리의 대화 움직임에도 'CPE법 철회'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결코 수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18일 시위에 참여한 한 학생은 옵저버와 인터뷰에서 "프랑스 다국적 기업들이 2005년 한해 벌어들인 이익이 840억 유로라는 지난 주 발표를 봤다"며 "정부가 청년실업자들에게 고용유연성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들 기업들에게 이익을 더 안겨주려는 정치인들의 사기라 볼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랑스의 현 노동법 상 단기계약(CDDs) 조항은 2∼3개월 비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 기간 별 문제가 없으면 완전 고용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의회를 통과한 CPE에 따르면, 26세 이하의 신규고용자일 경우 2년안에 기업이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의 비정규직법(안)과 유사하다. 이 법은 덴마크가 도입한 '고용유연화' 정책을 본뜬 것이다.

영국의 가디언지에 따르면, 프랑스 전체 실업률은 9.6%인데 18∼25세 청년의 경우 실업률이 두배가 넘는 23% 수준. 유럽에서 최고 수준이다. 특히 빈민층의 청년실업률은 40%에 육박한다. 프랑스 청년들이 완전고용에 이르는 기간도 8∼11년으로 유럽 다른 나라의 두 배나 된다.

지난해 10월부터 6주간 지속됐던 프랑스 차량방화 소요사태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민자 후예들의 경우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쉽지 않아 실업률이 40%를 넘는 데다 정부가 이들을 차별대우하고 있어서 불만이 폭발한 것이었다.

결국 빌팽 총리가 내세운 게 CPE. 내년 대선을 노린 정책이었다. 고용유연화로 청년 실업률을 낮추겠다는 것이었다. 총리는 의회 연설에서도 "지난 20년동안 젊은이들이 고 실업률에 시달려왔다"며 "이제 프랑스가 용기 있게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라며 완전고용 정책의 변화를 호소했다. 그러면서 빌팽은 이 법이 현행 CDDs 조항보다 더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비정규직법(안)과 유사한 법조항

특히 빌팽 총리는 3월 초 의회에서 이 법안을 밀어붙이며 "독일에서도 '고용유연화'를 포함하는 노동개혁으로 실업률 낮추었다"며 "독일에선 사회보장비용도 줄이고 임금도 깎았지만 우리는 당사자간 교섭으로 임금을 처리하도록 해 독일보다 더 나은 정책을 채택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독일에서 지난해 기업 수익이 30%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그 원인은 임금 삭감이라고 가디언이 주장했다.

하지만 좌파 정치권과 노동조합 등 시위 주도세력은 프랑스 청년실업이 높은 원인에 대해 완전고용 제도 때문이 아니라 교육시스템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실제 지난 30년 동안 대학졸업자가 크게 늘고 있지만 실업률은 거꾸로 높아지고 있는데, 고등교육이 고용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옵저버는 이와 관련, 프랑스에서 대학졸업자 중 30∼35세 사이의 54%만 관리직을 차지하는데 이는 지난 70년대 같은 나이대의 관리직 임용비율의 70%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다. 이민 2세들도 학위를 취득해야 취업이 쉽다고 여겨 대학을 나오지만 이들의 실업률은 높아만 간다.

19일 사회당 제1서기 프랑소와 올랑드는 언론과 대담에서 "이번 위기는 지난 11월 교외에서 시작됐다"며 "이번 고용유연화 반발과 지난해 극빈층 2세들의 투쟁이 완전히 같은 건 아니지만 둘 다 사회적 차별과 고용 불안정성에 대한 반발이며, 지금 우리가 가야 할 일은 공화주의 해체가 아닌 사회연대운동"이라고 밝혔다.

지금 프랑스는 이윤을 위해 달리는 중도 우파의 열차를 타고 있다. 하지만 시민의 다수는 시라크 대통령과 빌팽 총리가 운전하는 이 열차를 저지하려고 나섰다. 이런 모습을 두고 언론들은 프랑스인들이 40여년 전의 '68운동'을 재연하고 있는 듯 하다고 묘사한다. 그리고 그 승리가 임박한 듯 하다고 덧붙인다.
 
68운동과 유사, 사회연대운동 전국 확산
 
한편, 68년 운동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로 시작됐다. 유럽 사회운동이 대부분 그렇듯이 당시 마오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아나키스트 등 학생&노동자들이 '반전, 제국주의 타도' 등을 외치며 파리외곽 낭뜨대학에서 동맹파업을 벌이며 시작됐다. 이 투쟁은 프랑스 전역으로 퍼져 1천만명이 참여하는 총파업으로 발전했다. 당시 4명의 시위자가 살해되기도 했다.
*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인터넷저널> (www.injournal.net) 편집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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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2006/03/21 [11:02]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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