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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살리기 위해서는 ‘번역청’ 만들어야
[시론] 옛 책과 외국 책을 토박이말로 번역, 우리 고유 학문말 만들어야
 
이대로   기사입력  2006/02/16 [11:24]
오늘날 많이 배웠다는 사람들은 일본 한자말과 미국말의 노예가 되어 우리 토박이말로는 학문도 할 수 없다며 우리말과 한글을 업신여긴다. 남보다 출세하고 더 잘 살려면 한문이나 영어를 잘해야 한다며 어릴 때부터 제 나라의 말보다 남의 말글을 배우는 데 바쁘다. 앞서가는 나라, 잘 사는 나라가 되려면 하루빨리 풀어야 할 큰 문제다. 부끄럽고 답답한 일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지난 2월 13일 서울 배재대학교 학술 지원터에서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회장 정현기 연세대 교수)'이 "교과서 속의 학술용어와 외국어 번역문제"란 주제로 100여 명의 학자와 교사들이 참석하여 이야기 마당을 열었다. 이 이야기 마당은 이번에 10번째인데 매우 뜻깊은 이야기가 많이 나왔기에  그 중요한 내용을 간추려 본다.

▲ 지난 2월 13일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이 서울 배재대학교 학술 지원터에서 이야기 마당을 열었다.     © 김영조

이 모임을 주최한 정현기 회장은 "우리 모임은 2001년에 외국어대학 철학과 이기상 교수를 중심으로 시작해 지난 4년 동안 철학, 역사학 등 인문학자들이 모여 많은 일을 했다. 이제 중, 고교 선생님과 학자가 아닌 분들도 함께 의논하는 모임으로 키울 것이다. 우리말은 세계에서 그 힘이 15위 정도이고 우리 글자는 세계 으뜸이다. 그런데 영어만 섬기고 제 말로는 학문을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제 나는 누구인가부터 깨닫고 나답기 위해 힘써야 하겠다"면서 우리말로 학문도 하고 우리말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힘주어 인사말을 했다.

첫 번째 기조 발표를 한 김수업(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우리말교육연구소장)은 "학술 용어가 거의 모두 한자말과 외국말로 되어있고 토박이말은 10%도 안 된다고 하는 데 당연하다. 지난날 토박이말로 학문을 하지 않았으니 학문할 우리말이 없을 수밖에 없다. 이제 보통 일상용어도 학술용어가 되게 해야 한다. 오늘 우리가 마음을 바꾸어 애쓰면 내일은 학문할 우리말이 많아 질 것이다. 먼저 한문으로 된 옛 책과 외국 학술 서적을 빨리 토박이말로 뒤침(번역)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학자들은 우리 토박이말로 새말을 만들어 교육하고 학술 용어로 자리잡게 해야 한다. 나는 '문학'을 '말꽃'이라고 바꾸어 쓰고 있다. 남의 말글로 우리 삶의 속살을 제대로 담을 수 없다. 우리도 이제 우리 말글로 학문을 해서 학문 임자 노릇을 하자"고 주장했다.

두 번째 발표를 한 연세대 강호석(의대)교수는 "한자말과 외국어로 된 어려운 해부학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노력을 했다. 먼저 어려운 한자말을 바꿀 우리 고유어가 있으면  고유어로 바꾸었다. '이개'는 '귓바퀴'로, '안부'는 '얼굴'로, '치은'은 '잇몸'으로, '천문'은 '숨구멍'으로, '비배'는 '콧등'으로 바꾸었다. 다음에 어려운 한자말은 쉬운 우리말로 풀어 새로 만들었다. '습주'는 '주름기둥'으로 '추골'은 '망치뼈'로, '첩모섭'은 '속눈섭샘'으로 했다. 그리고 한 글자로 된 한자말은 알기 쉽게 두 글자 이상인 쉬운 말로 바꾸었다. '연'은 '모서리'로, '인'은 '비늘'로, '누'는 '눈물'로 바꾸었다. 각 분야에 이런 노력이 필요하고 온 국민이 이 새말이 자리잡도록 힘써야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조재수(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님은 "대한제국 때부터 대한민국을 세울 때까지 주시경 선생과 그 제자들이 어려운 한자말을 쉬운 말로 바꾸거나 우리 토박이말로 새말을 만들어 썼으나 1960년대부터 일본 한자말을 혼용하자는 사람들이 그 기운을 죽게 만들었다. 그리고 영어가 판치고 있다. 우리의 근대 선각자들도 이 문제를 지나치지 않았다. 대한제국 때 우리말을 지키고 살리기 위해 애쓴 주시경 선생은 '사전'을 '말모이'라고 토박이말로 지었고, 그 제자 김두봉, 최현배는 말본 용어를 우리말로 지었고, 김두봉은 언어학자로서 과학 용어의 일부인 물리학 술어(384개), 수학 술어(108개), 화학 술어(39)개 등을 만들기도 하였다. <한글 학회 50년사(246쪽)>.

그 때  김두봉이 지은 과학 용어 몇 개를 보자. 몬결갈[物理學], 되결갈[化學], 힘갈[力學], 몬바탕[物質], 몬몸[物體], 낱자리[單位], 굳몬[固體], 묽몬[液體], 피몬[氣體], 굳됨[凝固], 김됨[氣化], 물됨[液化], 섞됨[中和], 풀림[溶解], 배듦[吸收], 제되[還元], 맞되[反應], 밋감(밑감)[元素], 밋알(밑알)[原子], 감같몸[同素體], 빛몸[光體], 빛밋(빛밑)[光源], 달가림[月蝕], 해가림[日蝕], 되쏨[反射], 쪼임[輻射], 퍼섞[擴散], 모데[焦點], 녘모[方位角] <한글> 1권 4호(1932. 9.)에서"를 발표하며 오늘날 영어가 판치는 세태를 한탄했다.

또 김두루한(광양고 교사)님은 "배움책(교과서)이 문제가 많다. 새로 만든 말은 한자말에 의존하고, 한글만 쓰기를 반대하는 한자혼용 주장 자들이 토박이말과 한자말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우리말이라며 한자말 중심으로 가르쳤다. 이제 토박이말을 제대로 가르치고  한국말의 특성에 바탕을 둔 새말 만들기에 힘써야 한다"며 일본식 한자혼용 주장자들이 교과서에서부터 토박이말을 몰아내고 이른바 한자 낱말 중심 교육을 하는 걸 꼬집었다.

연세대 심희기(법학과)교수는 "세계화가 심해지면서 한글과 한국말이 영어로부터 위기를 맞고 있다. 지금 한자는 좀 숨을 죽이고 있는데 동아시아 공동체가 떠오르면 다시 한문과 한자가 고개를 들 것이다"며 한글과 우리말의 앞날을 걱정했다. 김영환(부경대 철학)교수는 " 번역 장려정책을 펼 것, 고전번역을 학위 논문으로 인정할 것, 외국대학에서 받은 학위 논문을 의무적으로 번역하게 할 것, 여러 대학에 번역론을 개설하고 번역사를 길러낼 것, 좋은 영한사전을 만들 것을 주장한다"며 정부와 학자가 고전과 외국 책을 쉬운 말로 번역해야 함을 강조했다.

영어 공용어 문제를 다룬 한학성(경희대 영어학) 교수는 "영어 공용어 주장은 영어 교육을 잘 하자는 데서 나온 비뚤어진 주장이다. 영어를 써야만 하는 미국에서도 영어가 공용어가 아니며, 공용어 자체만으로는 영어를 잘할 수 없다. 영어 공용어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영어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현실에서 무엇이 영어를 못하게 했는가에 대한 진지한 반성 없이 하는 말이다"며 영어 문제가 교육 양극화를 조장하고 사회 갈등을 불러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항공대 김유중(국문학) 교수는 "오늘날 도서관에 가 보면 대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한다, 그런데 막상 그들이 펼쳐놓고 공부하는 책을 유심히 살펴보면 취업 준비와 관련된 영어 토익이나 토플 책, 아니면 고시 서적일 것이다. 일반 학생들이 평소에도 전공 서적이 아닌 영어 참고서를 끼고 사는 현상은 큰 잘못이다"며 영어 편중 교육을 꼬집었다.

이 밖에도 아침 10시부터 밤 20시까지 많은 분들이 발표하고 토론했지만 줄인다. 많은 학자가 교육과 교과서가 우리다운 교육이 아니고 줏대 없이 남의 학문과 말글이나 매달리는 현상을 걱정했다. 이제 주제 발표자 조재수 선생이 소개한, 단재 신채호 선생과 주시경 선생의 말씀 한 마디를 소개하면서 이제 남의 나라 사람의 학설과 책 베끼기, 외래 사상 섬기기에서 벗어나 우리 쉬운 말로 학문을 하고 자주 말꽃을 피우자고 외치며 글을 끝맺는다.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利害) 이전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삼(무슨) 주의(主義)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하려 한다. <신채호: 낭객의 신년 만필('도덕과 주의의 표준' 후반부)>(1925. 북경에서)"

"이 때를 타고서, 외국의 말과 글은 바람 따라 흐르는 조수에 밀려 닥치는 사나운 물결처럼 몰려들어와, 미약한 국성(國性)은 전쟁에 진 싸움터의 고달픈 깃발처럼 움츠러지니, 이 때를 당하여 국성을 보존하기에 가장 소중한 제 나라 말과 글을 이 지경에 두고 도외시하면 국성도 날로 쇠퇴할 것이요, 국성(나라의 고유한 특성)이 날로 쇠퇴하면 그 영향이 미치는 바는 헤아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마침내 나라 힘의 회복은 바라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말과 글을 조사하여 바로잡아서 이를 장려함이 오늘의 급한 일이라 하겠다. <주시경: 조선어 문전 음학(머리말)>(1908. 박지홍 풀어 씀)"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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