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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는 한 사람만 뽑는 행위가 아니다

[정문순 칼럼] 생리대에게 투표권이 있다면...
 
정문순   기사입력  2002/11/28 [22:14]
{IMAGE1_LEFT}최근에, 생리대 부가가치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성들의 요구가 있어서일까. 민주당·민주노동당·사회당의 대선 여성정책 공약에는 그런 요구가 반영되어 있다. 생리대 가격에 관심 있는 정당들이라면 모성보호 정책에 대한 최소한의 의지는 갖추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한다. 그러나….

지난 11월 중순 국회를 통과하여 내년 7월부터 시행될, ‘경제자유구역법’이라는 것이 있다.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곳에 투자하는 외국자본에게 특별혜택을 주는 것이 골자인, 일종의 경제적 치외법권과도 같은 법이다. 기업들로서는 경제 활동의 자유를 한껏 제공받는 것이니 각종 세금이나 규제는 크게 감면되거나 완화되며 구역 내에 외국인 학교나 병원 등의 시설도 지을 수 있다.

생리휴가가 무급화 된다?

반면에 그 곳의 노동자는 노동 3권이 제약되며, 월차휴가도, 생리유급휴가도, 유급휴일도 없으며, 말 많은 파견근로제도 확대된다. 법안대로라면 이 나라 안에 70년대 노동환경으로 되돌아간 경제 구역이 생기는 셈이다. 외국자본을 끌기 위해 국내 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권에 재갈을 물려놓겠다는 것이니, 노동계에서 ‘경제특구’(이 법의 원래 이름은 ‘경제특구법’이다)가 아니라 ‘노예특구’라고 강력히 반발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관련기사]인권하루소식, 경제자유구역 = 노동착취 자유구역, 대자보 93호

모성보호를 말하면서 생리휴가를 빼놓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생리휴가 무급화는 그 동안 사용자측에서 줄기차게 주장해온 단골메뉴지만, 이제는 국가가 먼저 나서기도 하나보다. 그런데 한나라당과 함께 이 ‘요상한’ 법안의 통과를 주도한 당은, 바로 생리대 부가세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정당 중의 하나다.

생리대에 붙은 세금은 뗄 수 있지만, 상황에 따라 여성노동자의 생리휴가는 없어도 된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랄까. 고작 생리대 값을 깎는 대수롭지 않은 일을 내세워 모성보호에 관심 있는 양 생색을 낸 것이다. 구름같이 반대가 일자, 그 당의 대선 후보는 문제가 있음을 부분적으로 시인하지만 불가피하단다. “특구법 없으면 동북아 물류 중심지역, 비즈니스 센터는 싱가폴과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하는 거다.”(노무현, 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한 여성정책 토론회)

아무리 생각해도 생리대 가격을 낮추는 데에 그건 안돼! 하고 딴죽을 걸 집단은 없을 것 같다. 당국에서 부가가치세 제도를 손질해야 하는 귀찮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국가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한 생리유급휴가는 문제가 다르다. 여성만 해도, 모든 여 성이 이 제도에 찬성한다는 보장은 없다.

[관련기사]정문순, 생리대가 왜 그렇게 비싼가 했더니, 대자보 88호

기업주의 아내는 반대할 가능성이 절대적이며, 사회활동을 하지 않는 중산층 전업주부들이라면 적극적으로 찬성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보수 정당이라면, 이처럼 여성끼리도 계층에 따라 이해가 같을 수 없는 문제에 대해 기득권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각계각층을 막론하고 꾸려졌다는 여성 2002인으로부터 노무현 후보가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각 계층을 망라한 모임이니, 여성끼리 이해가 충돌할 만한 사안을 놓고, 그가 소속된 정당이 어떤 집단을 편드는지는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일까?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은 그가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한 사람 뽑는 선거 아니다

그러나 그의 원칙과 소신은 더 많은 외자 유치를 위해 여성 노동자가 생리 때도 아픈 몸으로 일하게 만드는 법 제도에는 작동하지 않는다. 이것은, 한 정치인의 원칙과 소신이 자신이 속한 정치집단의 이해를 추월하지 못함을 말해준다. 한 사람의 정치인의 자질보다는 그 자질이 어떤 집단을 위해 쓰이느냐가 더 중요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대통령 선거를 대통령을 뽑는 행위에 국한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는 한 사람의 빼어난 정치인을 뽑는 행위라기보다 그 후보가 대변하고 있는 정치 세력의 권력 획득에 대한 승인이라고 생각할 때, 또는 유권자가 자신이 처한 집단의 이해와 일치하는 정당의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더 현명한 선택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편집위원

* 필자는 문학평론가입니다.
* 본 기사는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된 글(11. 28)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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