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박사 논문의 진실성 논란이 번지고 있고, 그 갈등의 각도는 이미 예각(銳角)을 넘어서 칼날처럼 날카롭게 되어 있다. 굴지의 공중파 방송 하나가 이미 그 칼날에 맞아 빈사 상태에 이르렀지만, 반대쪽도 마음을 놓을 상황만은 아니다. 그들을 향하고 있는 예봉(銳鋒)은 혹시라도 작렬할 경우 몇 몇 개인의 명예 실추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국가적 국민적 차원의 혼란을 낳을 만한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첨예하게 맞선 양쪽이 목청 높여 한목소리로 외치는 명제가 있다. 그것은 “이 문제는 무엇보다도 과학의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이 명제에 근거하여 한쪽은 황박사가 자신이 만든 줄기 세포의 검증에 어서 응해야 한다고, 또 다른 쪽은 과학자도 아닌 언론 매체나 ‘불순한 의도’를 가진 정치 세력 등이 함부로 과학자의 영역에 침입하는 행위를 단죄해야 한다는 정반대의 주장을 끌어내고 있다. 그래도 이 명제는 분명히 이 사태를 이성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나침반과 같은 원칙이다. 이 원칙을 틀어쥐지 않는 한 수 백개 난자와 무궁화와 돼지들과 도지사들이 매일 동일한 이슈로 연결되어 TV 화면에 등장하는 이 부조리한 상태를 옳게 헤쳐나갈 수 없을 것이다.
21세기의 과학은 산발한 괴짜 늙은이 혼자 밀실에 숨어 이것저것 내키는대로 섞고 끓이던 연금술이 아니다. 대학과 연구소와 정부와 기업이 엮인 거대한 네트워크의 환경 속에서만 가능한 사회적 프로젝트이다. 따라서 그러한 과학적 연구의 진정성이 사회적 논란이 되었을 때에 그것을 해소시키는 적절한 사회적 절차가 없을 리 없다. 따라서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며 맞서고 있는 지금, “과학적 연구의 진실성”을 해결할 수 있는 그러한 사회적 절차가 제대로 작동되는 것이 사태의 이성적 해결을 원하는 이들이 기대하는 유일의 해결책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사회적 절차가 지금 책임 방기의 절묘한 ‘삼각 패스’의 형국을 띠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들이 가장 먼저 기대를 걸게 되는 쪽은 정부의 주무부서요 또 황박사의 연구에 많은 재정적 지원을 행한 바 있는 과학기술처이다. 그런데 과기처의 오명 부총리는 8일 “(배아줄기세포 진위 문제는) 사이언스가 많은 학자의 검증을 거쳐 실은 것이기 때문에 황 교수팀과 사이언스 간의 문제고, 문제가 있더라도 사이언스가 검증할 문제” 라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리하여 공은 사이언스지로 넘어가는 셈이며, 우리의 시선과 귀도 사이언스지의 입장 표명으로 쏠리게 된다. 그런데 보통 제출된 자료의 진실성을 전제로 삼아 게재 여부를 판단하는 과학 학술지에게 현재 사태의 해결을 기대하는 것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문화방송의 한학수 PD의 질문에 사이언스 지의 편집장은 는 자신들의 결정이 “유전자 검사 아닌 황교수 자료만으로 심사”(오마이뉴스, 12월 2일)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자료 자체의 진실성 여부는 누가 해결해야 하는가. 미국의 관례로는 그 연구가 이루어진 대학이나 연구소 그리고 그 연구에 재정 지원을 한 기관이 1차적인 책임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재정 지원을 했던 과기처가 오히려 공을 사이언스 지로 넘긴 지금, 그 공은 결국 황우석 박사가 소속된 서울대학교로 넘어오게 된다.
실제로 서울대학교 생명과학 관련 소장 교수들 수십명이 바로 이러한 취지에서 정운찬 총장에게 문제의 황박사 논문의 자료 진실성 여부의 검증은 서울대학교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청원서를 제출하여 곧 각급 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서울대학교의 공식적인 결정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흘러나오는 말들은 공의 행방을 좇아 과기처에서 사이언스를 거쳐 서울대학교로 시선을 돌리게 된 우리를 허탈하게 한다. “갑자기 조사하면 해외에 황교수 연구에 괜한 의구심만 더 일으킨다”고도 한다. 또 “사회적 파장이 큰 문제이니만큼 세태를 보아가며 신중하게 대처하자”고도 한다. 현재 상황에서 서울대학교가 처한 위치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 회의가 든다. “사회적 파장이 큰 문제의 세태”를 바르게 인도해야 할 과학계와 대학이 바로 그 “세태를 보아가며 신중하게 대처”하자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또 [네이처]지와 피츠버그 대학 측에서 이미 본격적으로 조사의 필요를 제기한 상황에서 서울대학교가 “갑자기” 조사를 하면 어떻게 상황이 악화된다는 말인가?
만약 서울대학교가 대학 차원에서의 공정한 조사 - 이참에 불비되어 있는 해당 절차의 제도화도 함께 - 에 착수하지 않는다면, 결국 혼란은 계속되고 해결의 책임은 다시 정부로 돌아가게 된다. 결국 공은 과기처 - 사이언스 - 서울대학교의 삼각형을 한바퀴 돌아 원점으로 오고 마는 것이다. 축구장에서의 삼각 패스는 여유로운 팀플레이를 보는 즐거움을 관중들에게 선사한다. 그런데 이 책임 전가의 ‘삼각 패스’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성 제도와 학계에 대한 불신과 짜증만을 안겨주고 있으며, 혼란의 장기화만 낳을 뿐이다.
축구장의 선수들이 우리편 만이라면 이 삼각패스는 관중들이 모두 지쳐 떠날 때까지 계속해도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이 이미 [네이처]지와 피츠버그 대학이 본격적으로 자료 진실성의 검증을 제기하고 있다. 또 뉴욕 어느 병원에는 황우석 박사가 배양한 줄기세포도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혹시라도 바깥에서 먼저 본격적인 검증이 벌어져 그 삼각 패스의 공을 채어가는 경우는 어떻게 될까. 결국 황우석 박사 본인이 골 문 앞에 서서 막아 낼 수 밖에 없을 터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삼각 패스’가 더욱 더 하릴없이 느껴지는 이유이다.
사태의 성격을 파악하고 청원서를 제출한 서울대학교의 생명과학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제 대학 전체가 그들의 학자로서의 양식에 호응할 것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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