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면 2004년은 매우 특별한 해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2004년에 있었던 중대한 정치적 사건들이 거의 예외 없이 사법부의 결정에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2004년 봄 헌법재판소에 의해 내려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기각 결정이 그러하고, 같은 해 가을에 동일한 헌법기관에서 내려진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위헌 결정이 그러하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기각 결정이나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위헌 결정은, 그간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행정부와 입법부에 비해 그 존재감(?)이 한결 떨어진다고 생각돼오던 사법부의 위상을 만천하에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능을 넘어서서 대한민국의 최고 헌법기관으로서 사법부를 자리매김하게 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대표와 책임의 원리’, ‘국민주권’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 아래서 사법부의 역할과 위상은 어떠해야 하는지, 국민들로부터 선출되지 않았지만 가공할 권한을 가진 사법부를 민주공화정의 유일한 주권자인 국민들은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안겨 주었다.
한편 위에서 열거한 예들과 같은 무게를 지닌 것은 아니지만, 지난 29일 있었던 대법원의 조승수 전 의원-민주노동당 소속-에 대한 의원직 상실 판결 역시 같은 성질의 고민을 국민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하급심 판사들과 대법관들이 판단한 것처럼 조승수 전 의원의 행위가 실정법상의 사전선거운동에 해당된다고 해석될 여지가 클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 정치인으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의원직 상실 판결이 일체의 정치적 고려를 배제한 법률적 판단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하고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은 법원이 극도로 편협한 법 해석과 적용을 했다는 점이다. 이는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에 대한 판결과 조승수 전 의원에 대한 판결을 견주어 판사들이 치우친 판결을 했다는 의심을 거두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
대의민주주의의 고갱이라 할 선거를 통해서 선출된 국회의원을 추풍낙엽처럼 만드는 사법부는 그러나 정작 선출된 권력이 아니며 따라서 국민들에게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법관들은 자신들이 내린 판결에 대해서 고작 자신들의 양심에만 책임을 지면 되겠지만, 이는 법관들이 행사하는 권한에 비해서는 턱 없이 낮은 수준의 책임이다.
사정이 한결 고약한 것은,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나 입법부의 구성원인 국회의원들과는 달리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가 제대로 된 견제나 감시를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선출되지도 않았고 별다른 견제와 감시도 받지 않는 사법부가-검찰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행정부와 입법부 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서 대한민국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것은 국민주권의 실현이라는 민주주의의 일반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할 것이다.
백보를 양보하여 전체 심급을 막론하고 대한민국의 모든 법관들이 일찍이 플라톤이 말했던 철인왕(哲人王, philosopher king)에 해당한다면 별다른 견제와 균형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어떤 자연인도 철인왕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일정수준 궤도에 오른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사법부에 대한 주권자의 참정권 행사 및 적절한 수준의 견제와 감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이 분명하다. 역설적이지만, 조승수 전 의원에 대한 의원직 상실 판결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주권의 실현이 얼마나 중요하고도 긴급한 문제인가를 극명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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