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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살아남을려면 'X파일' 다까발려라
[김영호 칼럼] 진실규명 없이 판도라 상자 덮으면 잘못된 역사 되풀이돼
 
김영호   기사입력  2005/08/03 [01:07]

  이른바 X-파일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삐죽 열리자 세상이 발각 뒤집어지는 듯했다. 돈으로 대통령을 만들자는 8년 전의 은밀한 논의가 도청 테이프를 통해 드러나니 말이다. 그것도 최대재벌의 실력자와 거대신문의 사주가 꾸민 일이라 사뭇 충격적이다. 그런데 당사자인 주미대사라는 사람이 사의를 표명하자 핵탄의 위력을 지녔다던 이 사건도 꼬리를 내리는 듯한 모습이다. 

 도청은 불법이다. 그것도 국가권력이 일삼았다면 국민의 사생활을 유리알처럼 발가벗겨 들려다보려는 것이니 응당 중벌이 마땅하다. 대충 처리하면 앞으로도 국가권력 앞에서 개인은 인격권도 사생활도 거부당한다. 또 그것이 불법적으로 유통된다면 국민의 권리와 자유는 무방비 상태에 노출된다. 그야말로 국가권력은 조지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빅 브러더'가 되고 만다. 또 국민은 제러미 벤덤이 설계한 '팬옵티콘'이라는 원형감옥에 갇혀 사는 꼴이다. 한 가운데 높은 망대를 만들어 모든 수인(囚人)의 행동거지를 훤히 들여다보는 그런 감옥 말이다.   

 공개된 X-파일은 도청 못지 않게 그 내용이 파괴적이다. 거기에는 보호해야 할 사생활이 없다. 주로 돈을 뿌려 특정인을 대통령을 만들자는 음모적 내용이다. 대통령은 국민이 투표를 통해 선출한다. 그런데 재벌과 언론이 결탁해서 금력으로 정치권력을 창출하자고 논의했다. 이것은 국민의 참정권을 훼손하는 중대한 문제다. 개인의 사생활 보호라는 사익과 국민의 참정권 보호라는 공익이 충돌하면 무엇이 우선하는가? 이 답변은 너무 간단하다. 공익이다. 

 도청내용을 보도했으니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판친다. 이것은 사안의 중대성을 무시한 형식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위법성을 이유로 언론이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사안을 보도하지 않으면 국민의 알 권리는 실종된다. 언론이 보도하지 않아서 얻는 사익과 보도해서 생기는 공익이 충돌하면 무엇이 우선하는가? 당연히 공익이다. 금권정치를 획책한 음모는 결코 사익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언론이 불법성을 이유로 보도하지 않으면 권력을 감시-견제해야 하는 기능과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다.

 2000년 페루 대선에서 일본계 후지모리가 3선연임에 성공했다. 그런데 총선에서는 과반의석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그러자 정보부장이 돈 봉투로 야당의원을 매수하려고 나섰고, 그것을 협박용으로 쓰려고 녹화했다. 그해 11월 그 비디오가 부메랑이 되어 TV에 방영되고 말았다. 때마침 APEC 정상회담에 참석했던 후지모리는 팩스로 사임서를 보내고 일본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X-파일이 엉뚱한 쪽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언론이 도청의 불법성에만 초점을 맞춰 본질적인 문제를 호도하는 느낌을 준다. 물론 불법도청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관련자 처벌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도청내용도 성역 없이 수사해서 국민에게 낱낱이 밝히고 처벌해야 한다. 밝혀진 내용만 보더라도 국민 따위는 안중에 없다. 금력을 지렛대로 삼아 한국사회를 간접적으로 지배하려는 야욕만 담겨 있다.

 더러는 입만 열면 다칠 사람 많다고 떠벌린다. 내용을 다 까발리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 몇인지 몰라도 해악을 일삼는 무리가 다친들 4800만명이 사는 나라가 거덜날 리 없다.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이 나라 성층권에서 이뤄지는 정치-재벌-언론 복합체가 어떤 추악한 짓을 하는지 말이다. 도청테이프가 아무리 많더라도 다 밝혀야 한다.
 
 법률에는 시효가 있지만 역사 앞에는 시효가 없다. 진실규명 없이 판도라의 상자를 덮는다면 잘못된 역사는 되풀이된다. 금권정치를 청산하고 언론개혁을 이룩하기 위한 계기로 삼기 위해 그 뚜껑을 활짝 열라. 누구도 닫을 권리가 없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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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8/03 [01:0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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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움새 2005/08/03 [17:52] 수정 | 삭제
  • 붓 끝에 돈 냄새가 나면 그 나라는 필히 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