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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야구선수만 군대안가는 것 아니다
나의 군대이야기와 병역제도의 문제점
 
가랑비   기사입력  2004/09/21 [16:48]
다음은 국방에 관한 현행 헌법 제39조의 내용이다.
 
제39조:
①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②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모두 위 헌법조항에 따라 국방의 의무를 진다. 어떤 이는 납세를 통해서 국방의 의무를 지기도 하지만 국민일반이 '국방의 의무'하면 생각나는 것은 신체 건장한 남자라면 누구나 이행해야 되는 것으로 믿고 있는 병역의무(군대가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못했다. 신성한 것이라고까지 여겨지는 병역의 의무를 합법적으로, 비합법적으로 그리고 불법적으로 피해가는 국민(?)들이 너무나 많은 것같다. 때문에 세인들은 병역의무의 이행여부에 따라 신의 아들과 사람의 아들로 구별짓는지도 모르겠다.
 
1. 나의 군생활 이야기
 
단군이래 최대 잔치라 했던 서울올림픽이 끝나고 5공청문회, 광주청문회로 정국이 요동칠 즈음인 1988년 11월의 어느 날 필자는 논산훈련소의 XX연대에 입대하여 신병교육을 받았다. 자유분방한 대학생활도중의 군생활이라 모든 것이 고통스러웠다. 초겨울의 날씨속에서의 신병훈련은 손등을 갈라지게 만들었고 잠시의 쉴 틈도 주지 않는 교육훈련은 상당한 인내를 요구하였다. (논산훈련소가 아닌 사단교육대에서의 신병훈련은 더욱 고통스러웠다고 하니 그런 신병훈련을 받은 분들에게는 할 말이 없다)
 
4주인가 6주인가의 신병훈련을 마치고 주특기라는 것을 부여받았다. 훈련소 입대시 신체검사에서는 병참주특기를 받았던 것 같은데 퇴소시에는 공병 폭파(112) 주특기를 부여받았다. 왜 그렇게 바뀌었는지는 아직까지 잘 모른다.
 
훈련소 퇴소식과 함께 몇몇 후방부대 및 특수부대, 교도관, 전투경찰병력 요원들이 차출되어 갔다. 남은 전우들은 다시 주특기 교육을 받으러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필자가 도착한 곳은 경상남도 김해의 공병학교 거기서 8주간의 공병훈련을 받았다. 폭파, 지뢰, 축성, 도하 등의 공병훈련과목을 이수하고 다시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른바 '자대배치'를 받으러 가는 것이다.
 
중간중간 정차역마다 호명이 있었다. 이병 아무개 하는 관등성명 복창소리와 함께 동료 신참병사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갔다. 남아 있는 병사들은 불려나가는 동료병사들을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그 이유는 먼저 호출되는 사람일수록 후방에 배치된다는 것(그것이 편안한 군생활인지는 잘모르겠다) 때문이었다.
 
이윽고 야간열차는 용산역에 도착하였다. 시간은 새벽 6시나 되었을까. 일제히 전철을 갈아타고 의정부 근처의 어느 역에서 하차하여 보충대에 들어갔다. 각지역에서 온 신참병사들의 집결지인 듯하였다. 들리는 말로는 이곳에 온 병사들은 경기도와 강원도의 최전방부대로 배치될 것이라고도 하였다. 때는 1989년 2월의 어느 날..
 
보충대에서 두어 밤이 지냈다. 그리고 이른 아침에 버스에 태워졌다. 버스안에는 김해에서부터 같이 온 병사들이 대부분이었다. 버스는 가끔씩 이름모를 군부대 앞에서 정차하였다. 그리곤 대여섯명의 동료병사들이 떠나갔다. 점심녁이 지났을까 45인승버스에는 11명의 병사만이 남게 되었다. 이윽고 우리 일행은 모사단교육대에 도착하였고 전원 하차를 명받았다.
 
거기서 이틀간 머물렀다. 말하자면 대기병 생활이었다. 낯선 부대에 가서 어떻게 적응할지가 대기병들 모두의 고민이었다. 11명의 전우들 모두 집안이 보잘 것 없었다. 필자를 포함하여 대부분이 농민의 아들, 아니 후방에 배치될 줄도 빽도 없는 사람의 아들, 다른 말로 개털들이었다. 학력은 필자만이 대학재학 중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공고졸이었다.
 
이틀을 보내고 우리는 또다시 찢어져야 했다. 6명은 공병대로 나머지 5명은 수색대로 갔다. 필자는 다행히도(?) 공병대로 명받았다. 우리 6명은 각각 2명씩 1중대, 2중대, 3중대로 배치되었고 필자는 동기 1명과 함께 2중대로 배치되어 거기서 총 27개월[그때는 (가방끈이 길다는) 대학재학중 군사훈련 이수자의 복무기간은 27개월이었고 문교부혜택을 못받은 이들은 꼬박 30개월을 채워야 했다]의 군생활을 마쳐야 했다.
 
일반인들도 잘 알고 있듯이 공병대 생활은 노가다(건설노동) 생활의 연속이다. 폭파, 지뢰, 도하, 축성 등의 훈련은 극히 제한된 기간(1개월)동안만 하고 나머지는 각급부대 건설현장에서 삽과 괭이, 시멘트와 골재 속에서 파묻혀 지낸다. 필자는 가친의 농사일을 도운 이력과 군입대전 건설노동(알바) 경력으로 다진 몸이라 그리 고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막일에 익숙지 못한 병사들 중에는 무척 고통스러워하는 전우들도 있었다.
 
필자가 속한 중대원 전체수는 70여명이 되었다. 헌데 이상한 것은 병사들의 가방끈이 유달리 짧았고 (대학재학 이상의 학력소유자가 전중대원중 5명내외였으니) 부모의 직업 또한 농업이 대부분이었고 고향은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의 농촌이었다. 당시에도 도시인구비율이 70%는 넘었고 그 연령대 중에서 (전문대)를 포함한 대학재학 이상의 비율도 40%는 됐을 법했는데.. 또 결코 신체건장한 대한남아라고 볼 수 없는 (비실비실한) 병사들도 상당수 있었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었다. 필자가 속한 후임소대원 중 하나를 본부소대의 행정병으로 차출해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병사의 먼 친척뻘되는 분이 별이 셋이라던가. 그 병사는 신체건장한 쫄따구 중의 하나였다.
 
이런 저런 일을 겪은 후 부대동기들보다 적게는 3개월 많게는 5-6개월 일찍 27개월간의 군생활(가방끈이 긴 덕으로)을 마치고 다니던 학교에 복학하였다. 학교에 와서 보니 참 이상도 하였다. 학번동기들 중 필자와 같이 현역을 필한 동기들의 비율이 고작 10%에 불과하였다. 2대독자라 하여 6방, 이런 저런 이유로 하여 18방, 잘 말하지 않는 이유로 면제, 특수대학원 진학을 이유로 4주훈련후 면제, 방위산업체 취직으로 면제, 민주화운동으로 6개월정도의 실형을 받은 후 면제 등등... 참 여러 가지 이유로 군복무를 피해갔고 덜 복무했던 학우들 천지였다.
 
2. 필자가 느끼는 병역제도의 문제점
 
병역의무의 이행과 관련하여 연예인, 프로운동선수, 상류층 자식들의 등의 병역기피, 병역회피 혐의가 다분한 일부 계층의 원정출산 등이 세인들의 구설수에 오르곤 한다. 최근에도 프로야구선수 100여명과 탈렌트 등 연예계 종사자 수 십명이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편법으로 병역의무를 면제받았다고 하여 세상이 시끄럽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그러한 불법적 행위만이 문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현행 병역제도 자체가 지극히 불공정하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입으로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고 하면서 또 군대갔다 와야 남자가 된다고 떠벌리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합법적으로, 편법적으로, 비합법적으로, 불법적으로 비켜가는 대한남아가 너무나도 많았던 것이 과거의 그리고 현재의 병역제도가 아닌가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자유당시절에는 대학생은 나라의 귀중한 인적자산이라하여 군역을 면제시켜 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전통때문인지 별의별 면제와 대체복무제도가 판을 쳐 왔던 것이 우리네 병역사가 아니었는지. 만땅 현역복무자들이 겉으로는 무시하면서 속으로는 부러워 했던 그 수많은 제도들을 한 번 열거해 보자.
 
석사장교, 6방, 18방, 공익근무요원, ROTC, 학사장교, 의무장교, 사법고시?군법무관 시험합격후 정훈장교, 과학기술원생?방위산업근무자?이공계 연구원 4주훈련후 일정기간 해당업체 근무후 군역면제, 공익근무요원, 국제대회성적에 따라 면제받는 운동선수?예술계 종사자 등등 참으로 많다.
 
국가(정치인)는 그 신성한 군역을 면제해주는 것이 커다란 은전인 양 말하고 젊은 대한남아들은 그것을 면제받기 위해 안간 힘을 쓰는 나라.. 안간 힘을 쓰다가 안되면 인맥과 돈을 동원하고 없는 병을 만들어서 진단서를 떼어 면제받고자 용쓰는 나라. 그것도 모자라 태어나는 아이까지 미국가서 낳는 우리나라 대한민국. 그 대한민국을 지키려고 오늘도 개털들은 전방에서 용쓰는 나라.. 아 나의 조국 대-한민국.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데 장교는 월급받고 근무하고 사병은 자원봉사하는 나라. 양심에 따라 총을 들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은 감옥에 가두고 비양심에 따라 요리조리 빠져가는 자들은 거의 용인(?)하는 나라 나의 조국 대-한민국..
 
가방끈이 긴 사람에겐 면제길이 널려 있고 배운 것 없는 개털들은 몸으로 떼워야 하는 나라.. 나의 조국 대한민국은 그런 나라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이 개털들만의 나라는 아닐진대.. 부모의 계급장 따라 보직이 좌우되는 나라..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그런 나라 아니었으면..
 
3. 예외없는 병역의무 이행을 위한 제도정비를..
 
의무는 누구나 행하는 것이 의무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구멍을 만들어 놓는 그러한 제도는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 가방끈으로, 부모의 계급장으로 신성한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젊은이들을 차별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몇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이왕 징병제를 할 것이면 대한남아 누구에게나 군대에 가게 해야 된다. 합법적으로, 편법적으로, 비합법적으로 군역을 비켜가는 것을 봉쇄해야 된다. 그러한 제도상의 허점을 가장 잘 이용하는 분들이 배움, 재산, 권력이 많은 분들 자녀(신의 아들)들이니 더욱 그러하다.
 
둘째 장교든 사병이든 그것이 군역을 필할 목적의 군생활이라면 동등하게 대우해 주어야 한다. 즉 업으로서 군생활하는 자가 아니라면 그가 장교든 사병이든 월급줄려면 똑같이 주고 안줄려면 똑같이 안주어야 된다는 말이다. 장교에게 100만원을 줄 것이면 사병에게는 80만원이라도 주라. 나라의 형편상 그것이 곤란하다면 둘 다 주지 말라. 물론 직업군인의 경우는 당연히 적정 보수가 지급되어야 한다.
 
셋째 군부대관계자들은 인건비 아까운 생각을 하라. 민간에서 한 사람을 고용할라 치면 이것 저것 합치면 1인당 최소 고용비용이 2000만원은 될법하다. 헌데 왠만한 직위에 있는 장교분들은 운전병, 당번병, 참모 등 많이도 쓴다. 예를 들어 대대장 정도면 사회로 치면 과장 차장 정도의 신분일텐데 운전병 당번병(비서)을 쓰는 경우도 보았기에 드리는 말이다.
 
넷째 군역면제의 혜택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인정하라. 필자는 이런 경우에는 군역면제를 용인할 수도 있겠다. 신체장애가 현저하여 정상적 사회활동이 불가한 정도인 자, (ii) 종교 등의 이유로 집총이 불가하여 대체복무를 원하는 자, (iii) 직업의 특성상 젊은 시절에 군생활하는 경우 그 피해가 현저한 자의 경우는 당연히 면제시켜줘야 한다.

(ii)의 경우는 대체복무를 통해 군복무를 대신하게 해 주어야 한다. (iii)의 경우는 운동선수, 연예인 등 특수분야 종사자에 국한하여 그 예외를 인정해 줄 수 있으며, 단 이들은 군역을 대신하는 의무를 져야 한다. (iii)의 경우에 해당하는 자는 면제받지 않았으면 복무해야될 기간동안 자기의 총수입의 일정액(50%정도)을 국가에 납부하고 그것을 사병복지용도로 사용한다면 이들이 군역을 면제받는 사유가 어느 정도 정당화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섯째 국적 등의 이유로 군역의무를 지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기존의 공무담임권제한뿐만 아니라 국가에서 독점적 권리를 부여하는 의사,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 평가사 등등의 자격취득을 제한하여야 한다.
 
위의 다섯가지의 제안으로 병력자원에 여력이 생기면 당연히 의무복무기간이 단축되어야 하며 재정적 여유가 생기면 그것은 사병의 복지증진에 활용되어야 한다.
 
물론 나라살림이 나아지고 안보환경이 개선되어 모병제를 실시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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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9/21 [16:4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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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떡찐머리 2004/09/30 [14:50] 수정 | 삭제
  • 나 역시 징병제 보다는 모병제가 되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옳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제시한 대안이나 글 문맥이 너무 오류가 심한것 같다.

    모병제가 아닌 징병제의 경우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랑비님이 제시한 3가지 예외중 첫번째는 수긍을 하나, 두번째 세번째는 말도 안되는 예외 조건이며, 청소부는 젊은날 돈버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을 하는것인지... 종교를 이유로 대체복부를 인정한다면 그 역시 종교에 의한 특혜를 주는것 뿐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를 한다면, 징역을 살면 되는 것이다. 그래야 평등하다.

    또, 군복무를 이행한자나 아니면 면제된 자나 모두 병역의 의무를 수행한것으로 인정을 해줘야 한다.

    군 문제로 인한 또 다른 불평등이 생긴다면, 그 역시 합리적인 방안이라 할 수 없다.
  • 공감자 2004/09/28 [10:18] 수정 | 삭제
  • 나두 님과 비슷한 시절에 대학2년을 휴학하고 군을 갔었죠.
    주특기는 9xx 보급행정. . . 논산에서 우리는 대구인지 부산인지 행정병학교를 갈걸고 알고 있었는데, 퇴소식날 다른 놈들은 다 이리저리 데려가는데 우리들만 빼놓았지요.
    그때 조교에게인가 수령한 발령장을 보니까 1XX 전투병과. . .
    그래서 새벽에 기차를 타고 후반기학교를 내려갔습니다.
    중요한 병과이긴 했지만, 솔직히 후반기교육은 실무를 가르친다기보다는 교육사열을 위한 제식훈련, 즉 장난감병정을 만드는데 거의 시간을 다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온 친구들, 2년제대학이상 다닌 놈들은 10%를 안 넘더이다.
    안경낀 놈들도 없고 1급수만 데려다 놓았다는데, 창자빠지는 병 (탈항)걸린 놈도 있었고, 만성질환있는 놈 가지각색이더군요.
    거의 4개월이 되어 자대를 갔는데 주특기와 직책이 또 변경되더군요. 후반기학교에서 배운건 무시한다, 걍 자대에서 굴리면서 가르친다 이런 군대식 실용주의인데 그건 좋습니다.
    자대에도 대학다닌 놈들 10% 조금 넘을까말까였습니다.
    행정병들이 많은 본부중대 (100명내외) 에도 대학다닌 비율이 일반중대와도 다를바 없었고.
    군대를 나와 학교로 돌아와보니, 신체멀쩡하고 잘 사는 집 친구들. . .이런저런 사유로 면제, 6방, 18방 등등으로 먼저 졸업하고 빠이빠이하더군요.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