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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삼성 앞에서는 왜 작아지는가?
삼성불리한 기사 '보일락 말락', 이재용 편법상속 보도해야
 
양문석   기사입력  2003/12/02 [17:18]

삼성에버랜드 편법상속 의혹 고발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특수2부는 지난 1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아들 이재용씨 등에게 에버랜드 사모전환사채(CB)를 헐값에 넘겨 회사에 900억원대의 손실을 낸 혐의로 전·현직 사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씨    
검찰의 수사결과에 따르면, 당시 에버랜드 주식은 삼성 내부에서 주당 8만9천원에서 23만원까지 평가됐고, 93년에는 8만5천원씩에 실제로 거래된 사례까지 있었다. 실거래가인 주당 8만5천원짜리 125만여주 중 97%를 이재용에게 주당7천7백원으로 계산해 96억6천만에 넘겼다고 발표했다. 무려 969억원을 손해를 보면서 판 것이다.

그동안 삼성은 문제의 CB를 발행하던 1996년 당시는 세법이 정비 안된 시기였기 때문에 비상장기업인 에버랜드 주식을 외부 평가기관에 의뢰해 액면가(주당 5천원)에 50% 가량을 할증한 가격, 즉 7700원에 배정했다고 주장해 왔다. 약 1천억원짜리를 96억원대에 팔아놓고서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들이 하는 말도 가관이다. "급히 100억원이 필요해 자금 조달 목적으로 발행했다"는 변명을 늘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버랜드에 지분을 갖고 있는 삼성물산 등은 '급전 100억원'을 구하기 위해서 에버랜드가 내 놓은 사채를 사지 않은 이유도 기가 막힐 지경이다. 배당 등 수익이 없는 사채이기 때문에 살 권리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사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수많은 의혹들이 제기되어 왔는데, 그 중 가장 매를 많이 맞은 쪽은 삼성보다는 검찰이었다. 삼성 이건희회장의 4남매 특히 이재용을 위한 편법상속을 위해서 에버랜드가 '장난질'했다는 것보다는 이런 장난질을 세상이 다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검찰이 수사를 기피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그것이었다. 미적미적 거리며 시간끌기를 하면서 공소시효 만료 직전까지 이 문제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되지 않고 있다가 시민사회와 일부 언론들의 집요한 문제제기로 이제서야 수사의 한 자락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한국언론, 검찰의 법적용에 주목해야

지난 10월13일 검찰은 "공소시효가 7년인 업무상 배임혐의를 적용하는 것을 포기하고 공소시효가 10년인 특경가법을 적용할 것"라며 9월이후 본격 수사 운운하던 기존의 입장을 급하게 뒤집었다. 업무상 배임혐의보다 훨씬 죄질이 좋은 않은 사건에 적용하는 특경가법을 적용하겠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한겨레신문 대자보 프레시안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신문들은 단신 처리함으로써 재벌 삼성의 '보이지 않은 손' 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샀다. 그리고 논조도 문제였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삼성의 편법상속에 대한 수사 장기화'라고 보도했는데 시민사회단체나 일부 언론만 '검찰의 수사회피 의도'로 의심하며 검찰의 본격적인 수사를 압박했다. 공소시효 2달을 남겨놓고 검찰이 한 일도 밝힌 결과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경가법을 적용한다는 발표에 대해서도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무죄판결'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SK그룹 사건이 그것인데, 서울지법이 SK그룹의 형사 1심 재판에서 비상장기업인 워커힐호텔의 주식 교환으로 발생한 손해액을 확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특경가법상 배임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손해액을 확정할 수 없는 이유로 '비상장 주식을 평가할 유일한 기준은 없다'고 들었다. 삼성의 이재용 편법상속 의혹 관련 사안이 SK그룹 사례와 워낙 유사하여 '특경가법'을 적용하면 무죄처리될 수 있다는 우려가 검찰의 법적용 변경에 의심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검찰의 법적용 하나가 이후 재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언론은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검찰이 이번에 적용한 '특경가법상 배임'에 대해 대부분 언론은 설명도 평가도 없다.

지난 11월20일 서울고법이 삼성전자 소액주주소송 판결에서 에버랜드와 같은 비상장 회사인 삼성종합화학의 주식에 대한 평가방법으로 '실거래가'를 적용해 '업무상 배임 혐의'를 인정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올해 초 서울지법에서 최태원 SK(주) 회장의 부당내부거래 혐의에 대해 '비상장 주식을 평가할 유일한 기준은 없다'며 손해액을 확정할 수 없다고 판결한 것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즉 '비장상장 주식을 평가할 유일한 기준이 없다'며 특경가법을 적용하지 않았던 SK사례와 '실거래가'라는 기준을 적용시킨 삼성전자 사건이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그리고 이번 검찰발표는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특경가법을 적용한 것이다. SK판례가 기준이 될 것인지, 아니면  삼성전자 판례가 기준이 될 것인지는 법원만 안다.

하지만 검찰의 생각과 판단 그리고 이에 대한 언론의 보도와 평가가 있어야 할 대목이다.

중앙일보, 단세포적 보도태도를 극복해야

▲중앙일보 자료사진     ©encyber.com
그리고 중앙일보의 보도태도다. 대부분의 신문들은 이번 검찰의 기소결정에 대해서 해설기사를 보도하고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법률용어와 경제용어가 뒤엉킨 사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앙일보는 달랑 2면에 '사건기사' 모양새를 취하면 해설 등 이 사건의 과정과 의미에 대해서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10월13일 검찰의 수사방향 선회에 대해서도 침묵했고, 10월27일 참여연대가 삼성 이재용의 편법상속과 관련해 검찰에 보낸 공개질의서 관련 보도도 '없었던 일'로 처리한 전력이 있다.  이번에는 다른 대부분의 신문 특히 조선과 동아일보마저 1면에 보도했기 때문인지 어쩔 수 없이 보도는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내용과 편집이 삼성과 중앙일보의 '보이지 않는 파이프'를 연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난 달 뉴스위크 커버스토리 'The Hermit King'을 '수도자적 경영인'이라는 중학생들도 웃을 만한 영문번역실력을 선보였던 중앙일보는 똑같은 번역으로 망신을 당한 동아일보가 이번에는 이번 사건을 1면에 보도했음을 알아야 한다.

중앙일보. 삼성관련 좋은 정보는 키우기에 급급하고, 삼성관련 좋지 않은 정보는 '없었던 일' 또는 '보일락 말락한 편집'에 급급한 중앙일보. 삼성관련 정보에 대해 거의 무조건적 반사를 보이는 단세포 아메바처럼 보도하는 것은, 비록 지금은 3등신문이지만 적어도 한국 제1일의 신문을 지향하는 중앙일보의 위상에는 걸맞지 않은 태도다. / 논설위원

* 필자는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전문위원입니다.
* 본문은 <미디어오늘> '양문석의 뒤죽박죽'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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