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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이건희회장이 '수도자적 경영인'?
중앙일보, <뉴스위크>선별 오역, 삼성그룹과 이회장 극찬
 
양문석   기사입력  2003/11/28 [11:14]

11월 19일 중앙일보 31면에서는 <"삼성이 한국경제 이끌어"/이건희 회장, 뉴스위크 표지인물로>라는 기사로 삼성이라는 한국의 1등 재벌의 입맛에 똑 떨어지는 '아부성' 기사를 선보인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11월24일 발행)는 아시아판 커버스토리 주인공으로 이건희 회장을 다루면서 <The Hermit King>이라는 제목을 사용했다. 한데 중앙일보가 이를 '수도자적 경영인'으로 번역한 것이다. 동아일보도 마찬가지였다.

▲11월 19일 중앙일보 31면 기사, "삼성이 한국경제 이끌어"/이건희 회장, 뉴스위크 표지인물로     ©중앙일보
'hermit'를 'COLLINS COBUILD ENGLISH DICTIONARY'라는 영영사전에서 찾아보면, "A hermit is a person who live alone, away from people and society"라고 정의한다. 각 포탈사이트 영영사전(英英辭典)도 별 차이가 없다. 사람과 사회로부터 떨어져 혼자 사는 사람 또는 은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중앙일보는 이를 '수도자'로 번역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아무리 영한사전(英韓辭典)보고 번역했다고 해도 너무 심하다. '수도자'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修道者)[명사] 1. 도를 닦는 사람. 2. 가톨릭에서, 수사와 수녀를 두루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Hermit'를 '수도자'라고 무리해서라도 번역을 하려면 최소한 '뉴스위크' 기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칭찬일색일 경우거나 '경영의 달인'을 의미하는 수식어로 '수도자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경우에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고서는 감히 갖다 붙일 수 없는 제목이 '수도자'다. 한데 칭찬일색도 '경영의 달인'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중앙일보가 뉴스위크를 인용 보도한 내용이다. 

…뉴스위크는 '수도자적 경영인'이란 제목으로 이 회장을 표지인물로 내세워 "그가 이끄는 삼성이 한국 경제를 부활시키고 있다"고 소개했다.…"신경영 10년만에 수익이 30배로 늘었으며, 열 아홉 개 제품에서 세계시장의 으뜸이 됐다"고 밝혔다.…"삼성은 브랜드 가치 108억달러를 달성,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한 브랜드로 선정…한국 수출의 20%를 담당하고 시가 총액의 30%를 차지하는 등 한국 경제를 주도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선정됐다"고 평가했다.…"임직원들에게 '처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주문을 한 신경영을 대표적인 경영혁신 사례로 들었다."…

중앙일보 기사를 보면 뉴스위크가 왜 그 많은 제목 중 'The Hermit King'이라고 뽑았는지에 대해서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뉴스위크를 직접 보면 'hermit'라는 단어가 '수도자'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담은 용어와 어울리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Newsweek 표지, 삼성이건희 회장은 The Hermit King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newsweek
…이 회장은 거의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가끔씩 하는 대외적인 발언은 영향력이 있고 또 그 만큼이나 괴팍하게 들릴 수 있다…이 회장은 그룹 본사를 자주 방문하지 않으며, 이국적인 자동차와 개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베이징산 개, 그리고 전세계에서 수집한 고가 예술품과 함께 귀족적인 생활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는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불려 왔다… 

사실 '경연대회에서 상 받은 개 키우며 귀족적인 생활을 즐기면서 도 닦는 사람 이건희'하면 어색하기 짝이 없다. 이 경우는 '수도자'보다는 가치 중립적 용어인 '은둔자'가 적당한 용어다. '귀족적인 생활을 즐기며 은둔해 있는 사람 이건희'라면 매끄럽다. 그리고 오히려 '숨어있는 배후조종의 제왕'이라고 번역해도 될만한 내용도 없진 않다.  

…이 회장은 공룡이다. 유교 윤리를 체득한 다른 한국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이 회장은 종업원들로부터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한다.…그의 재직기간은 정치인에게 뇌물을 주고 부실한 계열사를 지원한 혐의로 얼룩져 있다.…이 회장은 정치인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이 회장은 자신의 아들 이재용씨를 삼성그룹의 사령탑에 앉히는 데 몰두하고 있다…이재용씨에게 그룹을 물려주려는 시도가 "이 회장의 마지막 전투"…이재용씨는 편법 증여 의혹을 사고 있다

뉴스위크의 이런 부정적인 내용에 대해 중앙일보는 '지면 사정' 때문인지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하기야 제목 번역을 '수도자적 경영인'이라고 해 놨으니, '종업원들에게 절대충성을 요구하는 수도자', '정치인에게 뇌물 주는 수도자', '세습경영을 위해 인생의 마지막 전투를 수행 중인 수도자'가 어찌 어울리겠는가. 중세시대의 유럽이나 한국사의 고려시대라면 모를까.  

한국언론이 외신기사를 다룰 때 최소한 그 기사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메시지와 '냉온찬반'의 양면성을 공정하게 보도해야 한다. 하지만 중앙일보처럼 '뉴스위크'라는 공신력을 이용해서 자사의 이해관계를 노골적으로 관철시키는 '입맛에 따른 선별적 번역'과 '의도적 오역'은 기존의 조선일보 보도행태와 다를 바 없다.  

이런 중앙일보가 가소롭게도 같은 날 3면 하단 기사 <'아임 영(I'm young)→안녕'/럼즈펠드 발언 잘못 전달 해프닝>에서 조선일보가 제목과 본문에 럼즈펠드가 말한 영어 '아임영'을 한국어 '안녕'이라고 썼다며 비웃고 있었다.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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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11/28 [11:1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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