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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와 시청광장 조문행렬에 놀랐습니다."
[참관기] 22일 오후 국회영결식 공사장과 서울광장을 가봤습니다.
 
김철관   기사입력  2009/08/23 [15:52]
▲ 22일 오후 국회 영결식장 공사가 한창이다.     ©김철관
 
고 김대중 전대통령 국회 영결식을 하루 앞둔 22일 오후 2시. 종로 3가에서 지하철 5호선을 타고 국회 분향소로 향했다. 지하철 안에서는 검정색과 하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근조 리본을 단 시민들도 더러 있었다. 여의도역 도착하자 많은 시민들이 우르르 내렸다. 3번 출구가 국회로 향하는 쪽이었다.
 
3번 출구로 향하면서 여의도공원을 지나 국회로 걸어가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지하철 입구에 나오자 뜻밖에 조문차량(버스)이 대기하고 있었다. 10분 간격으로 운행을 했다. 버스를 타고 국회를 향하는 창문 너머로 삼삼오오 모여 조문을 가는 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간간히 근조 현수막도 보였다. 바로 국회정문 앞을 통과할 무렵, 임시분향소 설치공사가 한창이었다.
 
영결식 날(23일) 입장하지 못한 조문객을 대상으로 설치한 것이었다. 국회 정문을 통과 바로 옆 조문버스 정류장이 내렸다. 오후 2시 20분 이었다. 그곳에서부터 줄을 지은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국회 정문 옥상에는 '근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삼가 애도합니다'라는 정사각형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 22일 저녁 서울광장 분향소     ©김철관

이 때 빗방울이 떨어졌다. 국회에는 '그날이 오면', '아침이슬' 등의 조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줄을 서 따라 왼편에 있는 의원회관 쪽을 향했다. 고인의 민주화 투쟁 사진들이 전시됐다. 국회 중앙통로에는 고인의 유품과 책들이 진열돼 있었다. 줄을 따라 의원회관을 지나 분향소가 차려진 국회 정문 좌측 입구에 도착하자, 고 김대중 전대통령의 영상화면이 방영되고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손을 번쩍 든 모습, 노벨평화상 연설, 대통령 이임식 등이 나왔다.
 
 이곳으로 부터는 하얀 천막이 쳐 있었다. 조문객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줄지어 몰려 있었다. 고인의 고향인 재경 신안군 자원봉사자들이 빵과 음료수를 나눠줬다. 빵과 음료수를 먹고, 약 15분정도 지나자 분향소 입구에 도착했다. 군악대처럼 화려한 복장을 한 군인이 국화꽃 한 송이를 건넸다. 바로 작전 캄보디아 외교사절들이 분향을 했다.
 
▲ 22일 저녁 추모 문화제에 참석한 추모객들     ©김철관

사회자의 음성이 흘러 나왔다. 마음을 울적하게 했다. "바로 분향소 뒤에는 고 김대중 전대통령이 잠들어 있습니다"라고 했다. 숙연한 마음으로 줄을 서 국화꽃을 영정에 바치고 묵념을 했다. 조문을 마치고 한명숙 전국무총리, 이해찬 전국무총리, 추미애 의원, 김영환 전의원 등 상주들과 악수를 하고 분향소를 빠져 나왔다. 옆 하얀 천막에는 노구를 이끌고 이희호 여사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안타깝게 느껴졌다. 분향소 중심으로 양쪽에는 조화들이 즐비했다.
 
출구 입구에 설치된 방명록에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귀를 간단히 남겼다. 방명록 서명을 마치자 안내자들이 홍보물을 나눠줬다. 머리 위에 양손을 꽉 잡고 미소 짓는 고인의 사진이 게재 돼 있는 민주당당보와 '김대중 마지막일기-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라는 소책자였다. 민주당보 전면에는 '김대중 대통령이여 민주주의여' 라는 제목으로 2003년 퇴임사 일부 내용도 게재돼 있었다.
 
진열된 조화를 따라 내려오자 고인 추모의 벽이 설치돼 있었다. 그곳에는 많은 추모객들이 근조 리본과 노란 메모지를 붙여 놓았다. 나도 메모를 남겼다. 바로 옆, 한 20대 여성도 메모를 한 후, 그곳에 붙였다. 그리고 눈물을 글썽이었다. 그 모습을 잠시 촬영했다. 주변에는 고인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주민들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노란 티셔츠에는 '그동안 행복했습니다. 영원한 우리의 대통령'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끌기도 했다.
 
▲ 언론악법 원천무효 서명     ©김철관

분향소 밑에는 23일 열릴 영결식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23일 영결식 날 잔디밭에 앉을 2만 여명의 조문단들의 의자가 잘 정리 정돈 돼 있었다. 가방, 지팡이, 등받이, 안경 , 만연필 등 유품이 전시된 중앙통로에서는 고 김 전대통령을 모신 최경환 비서관이 유품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곁들기도 했다. 유품과 고인이 지은 책, 그리고 생존 시절 타인들이 그에 대해 평가한 책 등을 둘러 봤다.
 
내일(23일)은 허가 되지 않는 조문객들은 입장하지 못한 탓에 영결식장 다시 보기위해 공사장을 향했다. 많은 인부들이 동원돼 공사를 하고 있었다. 영정이 설치됐고, 영정 주변에 국화꽃을 수놓은 작업들이 계속됐다. 차양막 위에 '근조 고 김대중 전대통령 국장 영결식' 현수막이 설치되는 순간이었다. 영결식장을 향해 묵념을 하고, 그곳 주변을 살펴봤다. 주변에는 이전 추모 벽에 글을 남긴 20대 여성이 떠나지 않고 그곳을 맴돌고 있었다.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흔쾌히 허락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다시 분향소로 가 이런 저런 장면을 촬영했다. 눈시울이 붉어져 나온 사람들은 물론 통곡을 한 사람도 더러 있었다. 이 때 잠시 후에 있을 서울광장 시민추모제가 생각이 났다. 저녁 6시 30분경 조문버스를 타고 여의도역에 내려 서울 광장 시민문화제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광화문역을 향했다. 광화문역 내려 서울광장까지 발길을 재촉했다.
 
7시경 서울 광장 입구는 언론악법 원천무효 서명운동이 한창이었다. 대자보를 통해 언론악법 원천무효 정당성에 대해 홍보를 하고 있었다. 조문행렬은 지하철 입구부터 길게 줄지어 서있었다. 시민문화제 주변에는 언론악법 원천무효, 서울광장 조례개정, 남북화해 등 서명운동도 펼쳐지고 있었다. 특히 언론악법 원천무효 서명운동에 많은 조문객들이 동참하는 모습이었다. 최문순 의원, 임순혜 기독연대 집행위원장, 안동운 전 언론노조 조직국장 등이 서명운동을 독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통일종이학 접기와 통일 그림전시회도 열렸다.
 
많은 추모객들이 잔디밭 광장에 모여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 시민문화제를 지켜봤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 한명숙 전국무총리, 박병석 의원, 장상 민주당 고문 등이 앞자리에 앉아 행사를 지켜봤다. 원불교 교무들의 축원문을 시작으로 김상근 목사가 무대에 올랐다. 그는 "지난날 당신을 매도한 사람들도 이 시대에 남긴 위대한 업적을 말한다"면서 "당신이 우리를 떠나는 지금 기나긴 남북분열을 또다시 조장하는 세력이 있다. 하지만 당신은 죽음으로 화해와 평화의 길을 열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세균 대표의 추모사가 이어졌다. 그는 "당신은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이라면서 "당신의 인생은 독재와 싸운 한겨울이었지만 당신이 국민과 이룬 성취는 가을 벌판처럼 풍성했다"고 말했다. 무대에 오른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이명박 정부의 인권탄압에 우려를 표시 했다. 그는 "사형선고를 내리고 빨갱이로 몰아간 사람들에게 당신은 포용과 용서의 손을 내밀었다. 대화와 용서가 살아 숨쉬게 했다"면서 "이명박 정부 하에 인권의 깃발이 내려지기 시작했다.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고 대량 투옥이 자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인의 생전 추모영상물을 본 일부 추모객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정현백 시민평화포럼 대표, 추성호 한국외국어대학 총학생회장 등의 발언도 이어졌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울러 퍼졌다. 이날 일부 추모객들은 고인을 추모하는 노란 풍등을 하늘나라로 올려 보내기도 했다. 저녁 11시경 추모행사를 모두 마쳤다. 추모행렬은 밤새 계속됐다. 잔디밭에서 잠을 청하는 조문객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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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8/23 [15:5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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