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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는 선악 아닌 득실로 따져야"
[급변하는 남북한] 남북관계의 교과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에게 듣는다
 
공희준   기사입력  2009/03/27 [16:48]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으되 봄 같지가 않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래 펼쳐진 남북관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데 이것만큼 적합한 말을 찾기는 쉽지 않을 성싶다. 꽃피는 봄이 코앞에 닥쳐왔어도 나 홀로 계속 겨울잠을 자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한반도 정세에 따듯한 훈풍을 불어넣을 방법은 어디에 있을까?
 
통일포럼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남북관계 전문가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을 만나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해보기로 하였다. 대담은 여의도 동우빌딩에 있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약칭 ‘민화협’)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정 전 장관은 남북문제와 관련하여 오랫동안 쌓아올린 경륜과 역량을 현재 민화협 상임의장으로 일하며 이어가는 중이다.

2008년 남북관계는 완전한 올 스톱

- 통일포럼(이하 통) :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세현 전 장관(이하 정) :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웃음)

- 통 : 장관님으로부터 제일 먼저 듣고 싶은 말씀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작년 1년 동안 벌어진 남북관계의 명암과 부침을 평가해주셨으면 합니다.

= 정 : 작년 한 해 남북관계는 완전히 정지돼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국 차원의 대화가 없었으니까. 군사 당국자 사이에 대화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건 회담이 아니고 접촉에 불과합니다. 남북관계란 한편에서 당국 간 회담이 열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민간 차원의 경제적 교류협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사업도 함께 활성화되고요. 이것들을 당국 차원에서 조율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정치적 신뢰가 생겨납니다. 약속을 하면 지켜야하니까. 이 모든 것들이 심화되면 결국은 군사 분야에서의 긴장까지 완화시킬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됩니다. 지난 10년 동안 비록 부침은 있었지만 남북관계는 그럭저럭 잘 진행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경제협력과 인도적 지원이 군사 분야에서의 긴장완화마저 ‘불가피하게’ 만드는 구도를 짜놨다는 것입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 민화협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전 정부들이 퍼주기만 했다는, 퍼준 결과로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밖에 얻은 게 없었다는 의견이 지난 1년간 득세했습니다. 이는 단견입니다. 대북지원이란 것이 어떤 식으로 파급효과를 발생시키는 지에 대한 혜안과 통찰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완화되어가던 군사적 긴장이 오히려 다시 고조되면서 작년 7월 11일 금강산에서 관광객 피격 사건이 터진 겁니다.

- 통 :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이 남북한 사이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킨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인지요?

= 정 :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길목에서 하나의 분수령이나 전환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 통 : 이명박 정부는 피격사건 때문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 정 : 요즘 보면 원인과 결과를 뒤집어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부와 한나라당에서 남북관계 토론회에 나와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원인과 결과를 뒤집거나, 복잡한 인과관계가 작용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그러한 인과관계 자체를 부정하는 이상한 논법을 쓰기 일쑤입니다. 그런 면에서 작년 한 해는 외형적으로는 경제, 사회, 문화적 교류가 중단되고, 실질적으로는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구도로 남북관계가 변형된 시기입니다.

정권 초기마다 ‘남북관계 경색’ 주장은 사실관계까지 왜곡하는 국민오도

= 정 : 여기까지가 첫 번째 특성입니다. 두 번째 특성은 이겁니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 초기에는 으레 남북관계가 경색된다고 주장합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서 새로운 틀을 짜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작년 한 해의 남북관계 경색도 따라서 당연하다는 거지요. 이건 그야말로 심각한 사실관계의 왜곡입니다. 우선 가깝게는 노무현 정부 초기에 대북송금특검이 있었습니다. 햇볕정책을 심판하려는 태도를 취했었지요. 물론 한나라당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노무현 대통령과 그 주변 참모들이 끌려가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됐지만 어쨌든 정부 입장에서 특검을 수용했습니다.

- 통 : 외교를 법의 심판대에 올리는 조치였습니다.

= 정 : 그때 북한이 특검 때문에 굉장히 반발했습니다. 성명을 내고 시끄러웠습니다. 그럼에도 판은 안 깨졌습니다. 안 깨졌지. 2003년 2월 25일에 출범한 정부가 특검을 한 달 만에 받았습니다. 원래는 4월 3일에 평양에서 10차 장관급 회담을 하기로 약속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문에 북쪽에서 회담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자기네는 청정지역이라는 거죠. 실은 북쪽은 보건의료수준이 낮기 때문에 감당이 안 되니까 요청했겠죠.
 
어쨌든 북측 요청으로 4월 하순에 평양으로 갑니다. 그렇게 서로 왕래하면서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 1년 동안에 남북한 대화가 장관급 회담을 포함해 38회가 열렸습니다. 남북대화가 제일 많이 이뤄졌던 해가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됐던 1992년입니다. 총리회담을 포함해서 회담체가 8개나 있었던 때였습니다. 1년 동안 돌아가면서 88회나 남북이 회담을 했습니다. 노태우 정부 시절이죠. 그 이후에는 노무현 정부 첫해가 서른여덟 차례로 가장 많습니다. 38회나 회의를 해야 할 만큼 경제교류 협력과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이 활성화됐습니다. 군사적으로도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됐던 겁니다. 정권 초에는 으레 남북관계는 경색되는 것이라는 말은 국민을 완전히 오도하는 것입니다. 단지 국민들이 그런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거지요.

김대중 정부 초에도 비료를 달라고 하는 북측의 요청이 있어서 정권 초에 회담이 열립니다. 제가 수석대표로 나가 비료를 주는 대신 이산가족 상봉사업을 약속하라는 조건을 내겁니다. 그때 국민들의 요구가 비료는 주되 우리의 인도적 사업인 이산가족 상봉에 북쪽이 어느 정도 협조하라는 거였습니다. 북한이 이를 거절했지만 그럼에도 정부는 햇볕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당국 간 관계는 쉬어도 좋지만 그 대신 민간 차원의 경제적 교류협력과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을 앞세우기로 했습니다. 북쪽의 ‘마음의 창’이 열리도록 만드는 전략을 쓴 것입니다. 햇볕정책이란 인도적 지원과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경제적 교류협력을 활성화시킴으로써 북측이 남한을 필요로 하게 만들자는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북한의 대남적개심이라는 빙벽을 녹이는 정책입니다.

그 때문에 당국 간 회담을 안 해도 좋다고 해서 제일 먼저 들고 나온 것이 고 정주영 회장의 금강산 관광사업과 소떼 방북입니다. 사업가이기 때문에 감각이 탁월했던 거죠. 정부정책이 바뀐다고 하니까 제일 먼저 올라타더라고요. 물론 거꾸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 회장이 햇볕정책을 뚫었다고. 그건 아니고 정책이 그리로 간다고 하니까 사업가 특유의 감각을 발휘해 이벤트를 연출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벤트만 기억하지. 김대중 정부의 정책이 이명박 정부나 김영삼 정부의 그것처럼 북한과 왕래 안 하겠다는 방침이었다면 정주영 회장은 물론 그 누구도 대북사업을 실현시킬 수 없었을 겁니다.
 
통 - 금강산을 가봤는데 거기가 군사적 요충지던데요.

정 = 바로 그겁니다. 경제적 교류협력과 인도적 지원을 실시하다 보면 군사지역을 경제협력지역으로 바꿀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의 필요를 우리가 잘 관리하는 거지요. 그렇게 해서 98년 11월 18일에 금강산으로 가는 길이 열립니다.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과 경제협력이 활성화된 연장선상에서 2000년 6월의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북핵 책임은 부시에게 있다

정 = 북핵 문제는, 즉 핵과 관련된 북한의 행동은 남쪽의 정책을 의식하거나 우리 쪽 정책을 역이용해서 일어난 일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 측에서는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시기적으로 일치하니까 오비이락으로 그런 의심을 받는 겁니다. 쌀과 비료를 퍼주니까 핵을 만들었다고 그러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Asia Society 연설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우라늄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북한을 압박한 결과, 결국은 그들(북한)이 핵폭탄을 만들었다고.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는 북한이 핵폭탄을 만드는 데 아무런 원인이나 기회나 자금을 제공한 적이 없습니다. 뉴욕타임스도 북한의 핵개발 소식이 발표된 일주일 후에 이것은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이 잘못돼 빚어진 사건이라고 쓴 바 있습니다. 우리는 이걸 보지 않고 보수언론에서 쏘아대는 논조에 휘둘리고 있습니다.
 
▲ 지난해 11월 한미 정상회담.     © 청와대

김영삼 정부 초기에도 대화는 자주 없었지만 탐색 차원에서 계속 성명전을 발표하면서 접점을 모색하려는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긴장은 높지 않았습니다. 핵문제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핵문제는 미국과의 문제라는 거지요. 오히려 문제는 뭐였냐? 미국이 핵문제로 북한과 대화를 하려고 하는데 김영삼 정부가 미북대화를 반대하는 등 발목을 잡는 바람에 한미관계가 불편해진 적은 있습니다.

통 - <프레시안>에서 하신 정세토크를 보면 장관님께서는 통미봉남은 북한의 선전전술이 아니라 한국 스스로 자초한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북한이 기획한 고도의 전술이라고는 보기 어렵다는.

정 = 통미봉남을 만들기 위해서 남한과는 대화 안 한고 미국과만 얘기한다? 그건 아니지. 김영삼 정부 초기에는 남북관계의 접점을 찾기 위한 탐색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때는 별다른 긴장이 없었습니다. 내가 당시에 청와대 통일비서관이었어요.

통 - 그것 때문에 문화일보와 티격태격하신 이야기도 봤습니다.

정 = 어이가 없는 일이지요. 족보 따지기 좋아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어떻게 출신을 속이고 삽니까? 어디 이민 간 것도 아닌 바에야. 그건 이만 얘기합시다. 노태우 정부 때도 마찬가지고, 심지어 전두환 정권 때도 집권 초기에 남북대화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는 않았습니다. 정권 초기에는 남북관계가 으레 경색된다고요? 아주 잘못된 Information입니다. 책임을 안 지려고 하는 거지.

통 -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의 관점에서는 역대 최악의 정권인가요?

정 = (웃으면서) 뒤끝에서는 좀 나아질지도 모르지.

통 - 클린턴 장관은 북한이 핵을 만든 책임은 한국의 햇볕정책이 아니라 부시 행정부의 잘못된 판단에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이를 보면 오바마 정부는 부시 정부와 대북정책에 있어서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정= 다르죠. 우선 첫째로는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은 간단히 말해서 ‘선악’을 기준으로 수립됐습니다. 선악도 사실은 상대적인 겁니다. 자기가 볼 때 악이라는 거지. 하지만 이쪽에서 욕하는 악의 세계에 들어가면 그 안에서 편이 또 갈립니다. 선악을 기준으로 대외정책을 수립하다 보니까 이라크도 침공한 겁니다. 독재자라는 이유로 후세인을 제거한 거지. 그러니 북한이 보기에는 김정일 역시 후세인처럼 (미국에 의해) 악으로 분류된다는 거야. 사악한 집단이나 체제와 대화하는 것도 악이라고 믿으면 어떻게 되느냐? 대화할 필요가 없어지기 마련입니다. 압박을 하면 손들게 돼있다는 저차원의 판단과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통 - 저차원이라고 하기 보다는 차라리 저질이라고 봐야 맞겠네요. (웃음)

정 = 국제정치라는 것은, 또 외교라는 것은 선악을 기준으로 하면 대책이 나오지 않습니다. 국가가 자국민을 상대로 하는 정책에서는 선악을 기준으로 집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세계에서는 절대적으로 누구는 악이고, 누구는 선일 수는 없습니다. 국내적으로 정부는 선이고 범죄자는 악일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징벌할 수가 있습니다. 국제정치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큰 나라들끼리는 말할 것도 없고, 큰 나라가 작은 나라들을 상대할 때도 결국은 득이 무엇이고, 실은 무엇이고 하는 득실에 따라서 상대방을 다루게 되어 있습니다. 필요하면 협상도 하고, 필요하면 제재와 압박도 하는 겁니다. 그게 국제정치고 외교입니다. 선악 기준에 입각해 북한을 다뤘기 때문에 도리어 악을 더 악으로 키운 겁니다.

2006년 10월 9일에 북한이 핵실험을 합니다. 그리고 10월 15일자 워싱턴 포스트와 10월 16일자 뉴욕 타임스의 기사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워싱턴 포스트는 첫째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계속되는 대북적대시 정책이 오늘날 북한으로 하여금 핵폭탄을 만들게 했다고 지적합니다. 기본적으로 수교가 안 된 상태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은 적대적이었다는 겁니다. 부시 정부 시대에 이러한 적대정책이 극에 달함으로써 결국 북한이 거기에 저항 내지는, 미국의 위협을 사전에 예방하는 차원에서 핵을 만들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분석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그 다음 날 더 구체적인 진단을 내놓습니다. 부시 정부는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을 구실로 북한을 압박했는데, 북한이 만들었다는 핵폭탄은 불행히도 우라늄이 아니라 전임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미국과의 합의에 의해 못쓸 뻔했던 플루토늄 연료봉을 꺼내어 이를 재처리한 거라는 이야기죠. 한마디로 부시 잘못이라는 거지. 그런 비판과 반성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오바마 정부는 그 반대로 갈 겁니다. 그렇다고 북한을 선으로 본다는 뜻은 아닙니다. 득실을 기준으로 정책을 추진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득실은 무엇이냐? 물론 오바마도 선거운동을 하면서 부시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북한이 핵을 갖도록 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힐러리는 우라늄으로 잘못된 압박을 가했다고 구체적으로 말했고. 오바마 정부에서는 득실을 기준으로 대북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할 겁니다. 북한이 비록 문제를 일으켰지만 북한이 지금은 놓지 않으려는 핵을 폐기시키려면 무엇을 북한에 주어야 할 것인가? 북한이 바라는 게 뭐겠는가? 미국과 수교하고 싶다는 겁니다. 먹고살 수 있게끔 경제지원 해달라는 겁니다. 수교를 해주면 체제를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부시 정부 때처럼 김정일 체제를 붕괴시키겠다는 말은 안 할 겁니다. 되지도 않을 테니까.
 
북한은 동유럽이나 중동에 있는 국가들과는 다릅니다. 북한 뒤에는 경우에 따라서는 결정적으로 북한을 살려줄 수 있는 배후국가들이 있습니다. 중국도 있고, 러시아도 있고. 이라크는 그런 배후국가들이 없었기 때문에 무기력하게 당한 겁니다. 부시 정부는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를 너무 간단하게 생각한 거죠. 오바마 정부는 그런 여러 가지를 모두 감안해 득실 기준으로 하겠다는 겁니다. 핵폭탄을 폐기하겠다는 건 뭐냐? 바로 그 위험한 국가가 핵을 가짐으로 해서 핵이 확산되고, 그것이 테러집단에 넘어갈 경우 미국이 위험해진다는 미국 사람들의 안보불안 심리를 없애주겠다는 겁니다.

통 - 9.11 사태 같은?

정 = 그렇지. 미국 국민들이 발 뻗고 자게끔 만들려면 북한의 국가이익이 무언지를 파악해 그걸 충족시켜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이 핵을 폐기할 준비가 되어 있으면 미국도 국교정상화와 경제지원을 해줄 용의가 있다는 얘기를 한 겁니다. 용의나 준비나 비슷하다고 볼 수 있으니까. ‘핵폐기 대 국교정상화와 경제지원’, 이거란 말이에요. ‘행동 대 행동’으로 바꾸겠다는 거죠. 그런데 부시 때는 네가 핵을 가지고 있는 건 나쁜 일이야, 그리고 너는 나쁜 놈이야, 나쁜 놈이 나쁜 걸 가지고 있는 건 나쁘니까 먼저 그걸 없애, 내가 뭘 할지는 네가 그걸 없앤 다음에 나중에 얘기해줄게,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러니 누가 핵을 포기하겠습니까?
 
부시는 선악 기준이었지만, 오바마는 득실 기준으로 갈 겁니다. 전자는 선 북핵폐기, 후 보상이었습니다. 후자는 처음부터 득실로 계산하면서 북한의 득과 미국의 득을 맞바꾸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국교정상화와 경제지원을 핵폐기와 교환하는 방식으로 처음부터 협상을 시작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특별한 미국 국내정치적 지형변화가 없는 한 오바마 정부 임기 안에 북핵문제가 해결될 수가 있다고 봅니다.
 
▲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 AFP

왜 그러냐? 클린턴 정부에서 이런 식으로 문제를 풀려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경수로 건설도 경제지원책의 일환입니다. 북한에서 생산되는 전기가 200만㎾밖에 안 되는데 거기다가 또 200만㎾를 얹어주겠다는 약속을 한 겁니다. 미국 중간 선거가 그로부터 보름 정도 후에 있었는데 하필이면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말았습니다. 의회가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사사건건 발목 잡는 바람에 북한에 약속한 수교협상도 못하고, 경수로 공사도 마치지 못했습니다. 그때와 달리 민주당이 계속 정권을 잡고 의회를 장악한다면 이번 기회에 문제를 끝낼 수 있을 겁니다. 내년에 미국에서 중간선거가 있는데 오바마가 워낙 인기가 좋으니까 특별한 일만 없으면 그대로 갈 수 있죠.

또다시 통미봉남을 자초할 셈인가

- 통 :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선악도 아니고, 득실도 아니고 정확히 무엇을 지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핵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또다시 통미봉남의 처지에 몰렸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특히 정부정책부터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 정 : (한숨을 내쉬며)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기본적으로 선악 기준입니다. 북한이 지금까지 잘한 게 뭔데 뭐 그걸 도와주고 퍼주느냐는 식입니다. 그러니까 선악 기준이지요. 북한이 밉지만 북한을 저렇게 방치하고 무시해서 생길 수 있는 득이 뭐고 실이 뭔지를 따지지 않아요. 버릇 고쳐야 한다는 투지. 마침 저쪽이 경제사정이 어려우니까 우리가 도와주지 않으면 결국에는 빌고 나올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 통 : 현인택 교수 같은 분을 장관에 임명하는 건 남북관계를 더 악화시키겠다는 의도가 아닐까요? 통일부를 아예 없애자고 했던 분인데. 강의석 군이 국방부 장관에 취임한 것처럼 황당무계한 일인데.

= 정 : 장관도 장관이지만 사실은 남북관계는 대통령의 뜻이 좌우합니다. 경제문제는 전통적으로 경제관료들에게 맡기지 않았습니까? 남북문제는 얼른 생각하면 민족문제기 때문에 정치적 계산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학자들이 얘기하는데 실은 남북문제만큼, 통일문제만큼 정치적인 문제가 없습니다. 왜? 분단국가이니까! 분단국가에서 통일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최고의 통치명분입니다. 군사정권이 61년부터 92년까지 지속됐던 이유가 뭡니까? 북한의 위협입니다. 북한이 쳐들어온다는 논리 때문이었습니다. 통일과 관련된 북한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이미지 메이킹 하느냐에 따라서 국민여론이 군부에 우호적으로 쏠렸던 겁니다. 그런 정도로 통일문제만큼 정치적인 사안이 없었습니다. 얼마든지 국내정치적으로 이용될 수도 있습니다.

- 통 : 박정희 대통령 같은 경우는 통일을 하겠다면서 독재를 하지 않았습니까?

= 정 : 그렇지. 유신이 바로 그거였지.

- 통 : 그렇다면 장관님이 말씀하신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의 (대북)인식을 오도하고 있다.”는 지적은 단순한 립 서비스인가요? 원래는 대통령 자체가 문제가 있는데.

= 정 : 남북관계는 대통령이 결심하면 얼마든지 방향이 바뀔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이걸 잘 아는 사람들이 대통령 주변에서 대통령에게 생각을 바꿀 것을 건의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대북정책을 유지하는 것보다 수정하는 것이 국내정치적 상황에서 훨씬 득이 크다는 소리를 주변에서 하면 여기에 따라갈 수 있는 분이라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기업인 출신이기에 남는 장사다 싶으면 할 테니까. 그런데 아직은 남는다는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냄새가 아무리 나빠도 건강에 좋다 싶으면 코 박고 먹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홍어도 그래서 먹는 것 아닌가? (일동 웃음)

- 통 : 오바마 정부가 바꾼다고 하면 이명박 대통령도 여기에 영향을 받을 수 있겠네요.

= 정 : 그렇죠. 남북관계가 더 악화되면 반드시 국내여론이 변화합니다. 잘 들어봐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들어간 사람들이 처음에는 다 주전론이에요. 그러다가 임금도 추위에 떨고, 밑에서 백성들은 다 고생하고. 특히나 전쟁이 나면 여자들이 제일 힘들어하죠. 전쟁이란 게 참으로 야만적인 거니까. 농성을 하다 길어지면 주화론자가 득세를 하게 되어 있어요. 그게 원리입니다.

- 통 : 그럼 북한이 고슴도치가 아니라 우리가 고슴도치일 수도 있겠네요?

= 정 : 우리는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고 하는데 북한도 그렇게 나온다는 거지. 자기네는 어차피 가난하게 살기 때문에 경제가 더 이상 망할 것도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한국은 당장에 민심이 흉흉해집니다. 안보상황이 불안해지면 경제부터 타격을 받습니다. 우리 국내적으로 이런 불안한 상태가 오래 가고, 특히 북한이 3~4월경에 무슨 일을 벌여 국민들이 안보불안감과 공황상태에 빠지면 현재의 여론이 완전히 뒤집어질 수 있습니다. 그게 하나에요.

또 하나는 미국이 동북아 전략 차원에서 북한을 끌어안음으로써 핵확산을 빨리 막아야겠다고 결심하는 경우입니다. 부시는 잘못된 정책으로 북한으로 하여금 핵실험까지 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이걸 빨리 해결하기 위해 미국이 북미수교까지 빨리 나아가게 될 때 우리의 처지가 외교적으로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통미봉남이 다시 오는 거지요. 그것에 대한 비판여론이 조성될 겁니다. 미북관계는 좋아지는데 남북관계는 언제까지 이럴 거냐 하는 통미봉남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면 거기에 떠밀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단호한 표정으로) 내 얘기는 그때가지 가지 말고 지금 하자는 겁니다. 지금. 어차피 그리 가게 되어있는데. 어차피. 밤을 아무리 즐기고 싶어도 새벽은 오는 법이니까. 그러니 잠을 자던지 내일을 준비하던지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이 밤이 계속될 것처럼 생각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미국 군부 쪽에서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려는 듯한 움직임이 있지 않아요? 거기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지요. 지금 기다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경우와 핵실험까지만 성공한 것과는 다릅니다. 핵보유국으로 인정된 다음부터는 북한의 몸값이 확 올라갑니다. 북한핵을 폐기시키기 위한 반대급부의 규모가 달라집니다.

- 통 : 요즘 애들 쓰는 말로 북한의 ‘스펙’이 달라진다는?

= 정 : 그렇지. 달라지지. 지금의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에서는 다섯 나라만 핵보유국으로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이죠. 나머지 인도나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은 미국의 편의(득실)에 의해서 그냥 눈감아 주거나 문제를 안 삼고 있을 뿐입니다. 미국의 재계니, 학계니, 언론계니 모두 장악하고 있는 것이 유대계입니다.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굉장히 많아요. 키신저도, 브레진스키도,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의 백악관 비서실장도 유대인입니다.
 
그러다보니까 그들의 조국인 이스라엘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미국이 무조건 눈을 감아버립니다. 석유문제 때문에 중동과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절박한 필요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동국가들과 이스라엘 간에 문제가 생기면 이스라엘 편을 들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정치의 한계죠. 여당이나 야당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들을 섭섭하게 하면 정치자금이 안 들어오니까.

- 통 : 핵문제는 북한과 미국의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북한과 가까이 있는 우리 국민들로서는 어쨌든 불안해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불안감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요?

= 정 : 미국은 핵탄두를 1만 개 이상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북한이 정확히 몇 개의 핵탄두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게 뭐가 겁나겠습니까? 그리고 현실적으로 북한이 개발한 미사일의 사정거리가 얼마인지는 아직도 답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설사 그것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고 하여도 북한이 몇 기나 만들 수 있겠습니까? 물론 핵미사일이란 게 한 방만 맞아도 타격이 크지만 그런 ICBM은 미국에 숱하게 많습니다. 그런 미국으로서는 태평양 건너편의 조그만 나라가 가지고 있는 무기가 그리 겁날 건 없습니다.

데니스 블레어 미국 국가정보국장이 이번에 한 말에 상당히 위험스런 대목이 있습니다. 그는 문제는 보유보다 확산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확산만 안 시키면 북한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걸 봐주겠다는 얘기입니다. 미국은 그래도 돼요. 하지만 한국은 다릅니다. 그런 경우에 실물이 공개됐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순간부터 우리나라는 대통령부터 갓난아기까지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합니다. 북핵이 제로 상태로 가야 한다는 점에서는 그래서 바로 우리가 가장 절박한 필요성을 느끼는 겁니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는 한에는 우리 방식으로, 이를테면 경제적 교류협력을 통해서, 또는 사회문화적 인도적 지원을 통해서 남북의 인심을 연결시키고, 정치적 신뢰를 형성하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해서 통일이 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분위기가 남쪽에 형성이 안 돼요.

지금 핵이 없기 때문에 북한의 먹는 문제라도 도와준 덕택에 북한의 대남경계심이 사라지고, 적대관계가 약화되는 효과를 거둔 겁니다. 저쪽이 핵을 가진 게 확인되면 이제는 절대로 아무 일도 못합니다. 즉 분단이 장기화하는 겁니다. 분단을 뛰어넘어 화해협력으로 가던 지난 10년 동안의 역사가 완전히 그야말로 고조선 역사처럼 옛날일이 되버리고 다시 분단의 시대로 돌아가게 됩니다. 수구꼴통뿐 아니라 중도적 사람들도 반북의식이 높아져서 그때부터는, 곧 북한이 핵을 가졌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부터는 경제협력은 진짜로 북한에 바치는 것이 되고 맙니다. 북쪽에다가 뇌물을 주는 셈이 된다는 말이지. 그런 식으로 성격규정을 하고 비난을 해도 그게 아니라고 해명할 길이 없어져요. 변명할 길이 없어요.

중국으로 눈길을 돌려봅시다. 중국은 북한이 핵무장을 하는 걸 미국이 혹시라도 방치해서 그 핑계로 일본이 핵무장을 할까봐 불안해합니다. 일본이 가지고 있는 플루토늄의 양은 중국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 숫자보다도 더 많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규모입니다. 다만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기 때문에, 그리고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구실이 없기 때문에 만들지 못할 뿐입니다. 북한이 그런 득실계산을 못할 바보는 아니라고 봅니다. 다시 문제를 우리 시각에서 바라봅시다. 핵보유를 인정받는 순간 북한은 상장한 주식과 같게 됩니다.

이명박 정권, 지방선거서 흥했다가 대선에서 참패할 수 있다

- 통 :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보수세력 내지 수구세력이 문제를 그런 쪽으로 유도하는 것이 아닐까요? 북한과의 긴장이 격화되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가 공고해질 테니까요.

= 정 : 그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겁니다. 손가락 곪은 줄만 알지, 염통 썩는 것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생인손 앓는 사람 별로 없데. 옛날에는 많았는데. 당신들도 벌써 모르네.

- 통 : 요즘에야 다들 항생제를 밥 먹듯이 먹고 다니니까요…. (웃음)

= 정 :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을 받으면 남북 간에 등을 돌리고 살게 됩니다. 남북이 등을 돌리고 살게 되면 우리 경제가 절대로 지탱이 안 됩니다. 4,900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먹고사는 방법은 수출밖에 없어요. 우리 GDP 자체가 수출로 먹고사는 구조입니다. 그걸로 국민소득 2만 달러 가까인 간 거죠. 그게 다 어디서 온 거냐? 신용등급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니 남북관계가 조금만 흔들려도 신용등급이 내려가서 해외투자가 빠져나가고 수출이 줄어들어요. 우선 주문부터가 안 들어와. 지금 개성공단이 그 지경 아냐? 납기일을 못 맞출지 모른다고 지레짐작으로 오더(Order) 자체를 안 준대요. 미국은 말로는 핵무장 용납 못한다고 하면서도 슬그머니 인정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국무부 얘기 다르고 국방부 얘기 다른데 그걸 어떻게 믿어?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일시적으로는 보수세력이 국내정치적으로 유리해질 수도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내년 지방자치선거 같은 데서는. 하지만 아까도 얘기했듯이 남북관계가 끊어지면서 경제가 계속 나빠지면 누가 그렇게 만들었냐는 소리가 나오게 됩니다. 보수세력이 우선은 당장 반사이익을 볼 지도 모르지만 이명박 정부 5년이라는 기간을 놓고 보면 꼭 그들에게 득이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내년 지자제 선거를 이기고 2012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완전히 패배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남북의 긴장구도가 오래가면 반드시 여론은 반대로 나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    ©CBS노컷뉴스

- 통 :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제기되면서 3남을 후계자로 추대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 와중에 북한 군부는 대남강경노선을 내비쳤습니다. 이를 김 위원장의 지도력이 약화됐다는 증거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 정 : 군부의 얘기는 대남용이고, 김 위원장의 얘기는 대미용입니다. 의도하는 방향이 다르지. 한국이 이렇게 나오니까 슬슬 통미봉남이 시작되는 거지. 미국한테는 6자회담 잘하겠다는 신호를 중국을 통해서 보내고, 싹 돌아서서는 군인들을 시켜서 남한에 대해 “우리를 등지고 얼마나 잘 사는지 두고 보자!”는 식으로 계속 위협성 발언과 행동을 하는 겁니다.

민주당은 DJ의 ‘3대 위기론’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 통 : 며칠 전에 민주당 정책연구원에서 민주당의 3대 위기를 말씀하셨습니다. 전통적 지지층이 등을 돌리는 바람에 폭삭 망했다고?

= 정 : (웃으며) 폭삭은 무슨?

- 통 : 위기라고 지적하셨다는 건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위기를 어떻게 헤쳐 돌파할지에 대해서는 저희가 듣지를 못했습니다.

= 정 : 위기의 남북관계의 해법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민주당에서) 얘기해달라고 해서 제목에 맞게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그 주제에 대한 얘기가 끝나고 나서 지금 남북관계만 위기만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작년 말과 금년 초에 세 가지 위기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당신네들은 평론가가 얘기하는 것처럼 받아들인다고 덧붙여 지적했지요. 김 전 대통령은 나라의 세 가지 위기, 즉 민주주의의 위기, 서민경제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가 심화되었다고 우려했습니다. 민주당이 이런 위기들에 잘 대처해서 이명박 정부와 싸우던지, 아니면 대안을 내놓든지 하여 위기를 극복하는 데 힘써달라는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나라의 정치지도자가 한 말씀을 평론가의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받아들입디다. 김 전 대통령의 말뜻을 알아들었으면 민주당이 가지고 있는 인재들을 잘 활용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고, 어떤 대안을 가지고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끌어낼 것인가를 고민해야지.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당신들 민주당은 왜 교양만 높이고 행동은 안 하느냐, 오늘 내 강연을 들었으면 교양만 높이고 갈 것이냐, 행동을 해라, 남북관계가 어떠어떠한 식으로 풀려나가야 한다고 민주당이 목소리를 내라, 이렇게 주문했습니다. 경제와 관련해서도 그 자리를 빌려서 얘기했습니다. 재경부 장관 출신이 민주당에 셋이나 있다고. 당대표가 산업자원부 장관이었다고. 그렇게 민주당에 경제전문가들이 많은데도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추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자료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라고. 리포트를 작성해 언론에 뿌리라고. 도표화할 수 있게 만들어가지고. 마이크 앞에서 사진만 찍지 말고. 스타의식을 갖고 사진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 서민경제의 위기를 어떻게 탈피할 것인가? 남북관계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관해 대안을 제시해야지. 연구원은 뭐해? 이명박 정권의 정책이 어떻게 잘못됐는지에 대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행동을 해야죠.

- 통 : 작년에도 민주당을 질타하신 적이 있습니다. 10.4 선언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시비하는 한나라당의 정치공세에 대해서 민주당이 무기력하게 침묵으로만 일관했다고요.

= 정 : 이 사람들이 거의 몰카 수준으로 조사를 해왔구먼(웃음). 그래서 내가 말한 겁니다. 나라의 이 위기를 잘 관리하지 못하면 당신네 민주당도 위기에 처한다고. 민주화세력이 민주당에 등을 돌렸어요. 서민들 역시 기대를 접고 있습니다. 당의 지지율이 왜 안 올라가겠습니까? 이제는 민족화해세력마저 민주당을 외면하려고 해요. 이명박 정부가 망치고 있는 남북관계를 민주당이 살려내지 않을까 기대해왔는데 아무 대책도 못 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대책을 잘 세우란 뜻이지, 민주당을 막 쥐어박은 건 아니라니까. (웃음) 사진 찍는 사람은 사진을 찍어야지. 민주당이 현장에서 국민들과 고통을 함께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라도 사진은 찍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전부 몰려가지는 말라는 거지. 수를 과시할 것도 아닌데. 설령 전부 몰려가더라도 사진 찍고 난 다음에는 대책을 개발해야 할 것 아닙니까? 국회의원이 83명이나 되는 당이 우 몰려다니면서 뭐하자는 건지. 함진아비 따라다니는 신랑친구들도 아닐 텐데. 가서 밥이나 먹고 술이나 마시는. (배석한 보좌관을 향해서) 그런데 인터뷰하러 찾아온 이 사람들, 성분은 괜찮은 사람들이야? (웃음)

- 통 : 저희는 MB 따라다니면서 삐라 뿌리는 사람들 아닙니다. (웃음) 일본 쪽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셋째 아들인 김정운이 후계자로 낙점되었다는 얘기가 나오던데요. 그게 신빙성 있는 이야기일까요?

= 정 : 3남이 후계자가 될 수도 있죠. 아버지가 귀여워하면 되는 거지. 애완용으로 귀엽다는 것이 아니라 나이는 어려도 똑똑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이라야 정치문제에 관해서도 아버지와 대화할 수가 있습니다. 둘째 아들은 여성적이라는 이야기가 들리고. 큰아들은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 아버지 눈에서 벗어나지 않았을까요. 다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김정일 이후의 북한의 리더십은 상징성과 실질적 권력을 동시에 겸비하는 리더십은 서기가 어려울 거라는.

- 통 : 그러면 북한판 입헌군주제?

= 정 : 비슷한 거죠. 만경대 혈통이니 백두산 가계니 하는 얘기들을 하고 있으니까 상징적으로 김일성 패밀리에서 누군가는 나와야 할 겁니다. 북한사회의 정치문화 자체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회주의 대가정론’이라고 해서 그동안 쭉 최고지도자에 대한 가부장적 복종과 질서를 유지하면서 충성과 효도를 연결시키는 통치를 해왔으니까요. 따라서 실질적 권력도 중요하지만 상징성 또한 무시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 통 : 그럼 최근 부상하고 있는 장성택 같은 인물은 ‘고명대신’ 같은 존재인지요?

= 정 : 그럴 수도 있지요. 어쩌면 일본 막부시대의 쇼군(將軍)처럼 될 수도 있고요. 제가 2004년에 중국에서 들은 얘기입니다. 중국의 북한 전문가로부터. 김정일 위원장이 아프기 전의 이야기입니다. 후계자를 지명해야 한다는 얘기를 자꾸 밑에서 했답니다. 거기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이 그게 자기 밑의 세대까지 되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는 겁니다. 상당히 확실한 입장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까지는…. 후계자를 절대로 지명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후계자를 지금부터 키워서 명실상부한 권력과 상징성을 겸비한 지도자로 만들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뜻으로 보입니다. 3남 후계설은 이렇게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소위 로열패밀리의 가계를 잇는 상징적 지도자가 있고, 실질적으로 문제해결을 담당할 경험과 능력을 가진 당정책임자로 이원화될 수가 있다는 거죠. 입헌군주제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 통 : 마지막 질문입니다. 장관님께서 현실정치에서든 남북관계에서는 어떠한 역할을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간략히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 정 : 역할이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인터뷰 같은 걸 통해서 이런 방향으로 정책이 나오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히는 것밖에 그 이상의 역할이 또 있겠어요? 내가 이 나이에 무슨 망신을 당하려고 정치판에 나가겠습니까?

- 대담 : 김준형, 공희준
- 정리 : 공희준
 
* 정세현 상임의장은 인터뷰 이후 지난 주 민화협 의장을 사임, 이에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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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3/27 [16:4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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