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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즙파동 ‘엿 먹어라’와 국제중 복고댄스
[하재근 칼럼] 초등학생도 입시경쟁, 교육도 40년 전으로 되돌아가는가
 
하재근   기사입력  2008/11/01 [17:36]
31일, 서울시교육청이 국제중 설립을 확정 고시했다. 아름다운 10월의 마지막 밤이다. 원래 다음 달 고시 예정이었으나 국제중 설립에 속도를 내기 위해 황급히 고시했다고 한다. 급하긴 급했나보다. 

드디어 중학교 평준화마저 위험해지고 있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 건 ‘무즙파동’, ‘엿 먹어라’다. 이것들은 중학입학시험이 아직 있던 1960년대에 벌어졌던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이 있은 후 국가는 중학입시체제를 폐지했다. 적어도 초등학생만은 입시과열에 시달리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였다. 이제 사십여 년 만에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려 한다. 40년 전으로 돌아가는 복고댄스다. 

초등학생도 이제 입시경쟁에 매진하란다.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의 아버지라며 추앙하는 게 유행인데, 초등학생이 무슨 죄가 있는지 이 아이들더러 건국 시절로 돌아가란다. 선진화하겠다더니 경제위기도 원점으로, 교육도 원점으로, 복고 태풍만 몰아치고 있다. 

- 무즙파동과 창칼파동 -

아래는 2004년 2월 11일 KBS 뉴스의 한 대목이다.

“책이 첫 선을 보인 것은 1966년, 38년 전입니다. 값은 350원, 당시 처음 나온 라면이 하나에 10원할 때입니다.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무즙파동이 벌어지고 김기수 선수가 복싱바람을 몰고 온 그 시절입니다.”

책을 소개하는 어떤 기사다. 여기서 1966년의 시대상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라면값과 두 사건을 짚었는데 그 중 하나가 ‘무즙파동’이다. 1966년을 대표하는 사건이었다는 뜻이다. 정말 대단했었나보다. 이 요상한 단어는 무엇인가?

1964년 12월 7일 실시된 서울지역 전기(前期) 중학교 입시의 자연과목 18번 문제.

다음은 엿을 만드는 순서를 차례대로 적어 놓은 것이다.

①찹쌀 1kg가량을 물에 담갔다가 ②이것을 쪄서 밥을 만든다 ③이 밥에 물 3L와 엿기름 160g을 넣고 잘 섞은 다음에 60도의 온도로 5∼6시간 둔다. 

위 ③에서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 무엇인가? 

정답은 보기 1번 디아스타아제였다. 그런데 보기 2번 무즙에서 사단이 났다. 초등학교 자연 교과서에 ‘침과 무즙에도 디아스타아제가 들어 있다’라는 대목이 있었단다. 오답처리된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무즙이 왜 안돼!‘

이 무즙파동에 대한 동아일보의 당시 사설. 

“무즙으로 엿을 만드는 실험까지 해 본 학부모가 있다고 한다. 서울시내는 이 문제로 온통 떠들썩한 상태이다. 합격자 발표를 연기하는 일이 있더라도 신중한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당국은 오락가락했는데, 오답처리하면 무즙측에서 항의하고, 무즙도 맞다고 하면 디아스타아제 학부모들이 교육청 농성에 들어가고. 이렇게 몇 개월을 끌다가 서울고법 특별부가 “무즙도 정답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간신히 수습된다. 이 사건은 신문 1면을 장식하는 등 당시 중학입시과열의 폐해를 상징하는 유명한 일화가 됐다.

그때 무즙 진영 학부모들이 무즙으로 곤 엿을 들고 교육청에 쳐들어가 ‘엿 먹어라’라고 했단다. 이것이 ‘엿 먹어라’라는 욕의 유래라고 한다. 한편에선 엿 먹으라는 욕은 그 전부터 쓰였고 그 의미는 엿이 성기를 뜻하는 데 있다고 한다. 이쪽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신문기사에도 버젓이 무즙파동이 ‘엿 먹어라’의 유래라고 나올 때가 있다. 무즙파동이 미친 파장이 얼마나 강렬했으면 그 전부터 쓰던 말까지 그때부터 새롭게 시작된 말이라고 인식하게 됐을까?

1968학년도에는 ‘목판화를 새길 때 창칼을 바르게 쓴 그림은?’이라는 문제가 나와서 이른바 창칼파동이 벌어졌다. 이때도 복수정답 시비가 생겼고 학부모들이 경기중학교장을 연금하기도 했다. 이런 사건들을 겪은 후 중학교 서열체제를 없애버렸다. 일류중 입시는 아이들에게 시킬 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초등학생들은 중학교 입시 때문에 각성제를 복용해가며 공부했다고 한다.

- 교육청에 상기시켜 주고 싶은 말, ‘엿 먹어라’ -

이제 다시 라면이 처음 출시됐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 최초의 라면을 지금 시장에 내놓으면 어떤 반응이 있을까? 모르겠다. 어쨌든 그 당시 있었던 일류중학교 체제는 이제 다시 우리 현실에 등장하게 됐다.

최초의 라면이 어떤 반응을 초래할 진 알 수 없지만, 구식 일류중이 어떤 반응을 불러올 지는 분명히 예측할 수 있다. 시장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을 것이다. 막대한 학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아이를 들여보내기 위해 부모들은 흥분할 것이다. 최초의 라면은 아마도 아이들에게 먹이지 않을 것 같은 부모들인데 말이다.

지금 생기는 국제중은 시작에 불과하다. 일단 서울 국제중이 제 궤도에 올라서면 곧 다른 지역에서 ‘왜 우리 지역은 국제중을 만들지 않는가?’라고 나설 것이다. 분권화 기조에서 각 지역의 열망을 어차피 막지 못한다. 지역마다 생겨나고, 서울에선 그 수를 늘리는 가운데 중학체제는 서서히 40년 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제 막 복고열풍의 첫 스텝을 밟았다.

대학입시를 볼 때마다 입시파동이 벌어지고, 문제논란이 일어난다. 그리고 학생이 반드시 자살한다. 이제 초등학생이 그 일을 벌이게 생겼다. 40여 년 전, 라면이 처음 출시됐을 때 중학입시 때문에 벌어졌던 ‘무즙파동’과 그때 교육청에 던져졌던 ‘엿 먹어라’라는 비난이 부활할 날도 머지않았다. ‘엿 먹어라’라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돈다. 엿이 생각나는 10월의 마지막 밤이다.
* 필자는 문화평론가이며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는 http://ooljiana.tistory.com, 저서에 [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 - 자유화 파탄, 대학 평준화로 뒤집기]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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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11/01 [17:3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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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장 2008/11/06 [10:37] 수정 | 삭제
  • "한국의 교육수요자들은 한 마디로 ‘정신병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교육수요자들의 정신병을 보여주는 지표는 사교육비의 추이다. 사교육비가 커질수록 정신병도 깊어진다. 바로 ‘1류병’이다. ....내 자식만 1등하길 바라는 수요자들의 정신병적 탐욕이 계속되는 한 교원평가를 천년만년 해도 교육붕괴는 계속 된다." (하재근)

    하재근씨와 본인이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학벌없는 사회'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알수 있는 대목이다. 만약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가 저런 몰상식한 소리를 했다간 명예훼손으로 구속되어 있을터인데....묻고 싶다. 성질이 올라 내뱉은 말인가 아니면 진짜로 그 많은 대부분의 부모들이 '내 자식 1등'을 위해 '정신병적' 집착을 하고 있다고 믿는가? 자기자식 1등을 위해 달리는 학부모가 몇 %나 될까? 많은 문화적 사회적 철학적 인간관계적 이유들을 감춰 버리며 한국 사회(교육)현실을 왜곡해 내는 크나큰 오류이다.

    '학벌없는 사회'는 시민단체로서 책임있는 발언을 해야할텐데, 그 자리를 계속 지키는 이유가 조직 내부에 있는가 개인에게 있는가 궁금하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일을 할 사람이 없다는 식이라면...
  • 처사 2008/11/03 [14:13] 수정 | 삭제
  •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문제는 위에서부터의 개혁이 먼저라는 생각을 합니다.
    밑으로부터의 의식개혁이 문제가 아닙니다. 학벌이 생존이 되는 세상에서 돈도없고 빽도 없는 민초들은 어금니 악물고 공부라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위에 댓글님의 말씀에 공감하며, 저는 솔직히 하재근씨의 글에서 어떤 깊이나 진정성을 잘 모르겠네요.
  • 시간남으면 2008/11/03 [00:59] 수정 | 삭제
  • 부족한2%

    서울대-연세대-고려대가 '정상적'으로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면.....

    돈(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체제는 방임하거나 오히려 공고히 떠받드는데 일조하면서 돈(자본)좀 벌어 잘 살아보겠다는 힘없는 백성들한테만 삶의 철학이 빈곤하다느니 돈벌이에 혈안이 되었다느니 까대며 욕짓거리 하는 꼴 아니에요?

    좋은 대학 나와야 출세하고 돈 많이 버는 세상인데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수월한 방법으로 좋은 중학교 들어 가겠다는 게 뭐가 문제라는 거에요? 매를 들고 누굴 때리려는 거에요 !


    서울대 연고대가 독점적 패권으로 나라를 망가뜨리고 있다면,,,,

    외국으로 유학가려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있는 국제중을 설립하는 것이 왜 문제가 있다는 거에요?
    서울대-연고대를 기피하고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문제에요 아니면 외고나 특목고처럼 국제중도 서울대-연고대를 들어가는 특수경로가 될 것이 뻔하기에 그러는 거에요? 능력있는 집안 아이들이 주로 들어갈 것이라고 본다면, 그 능력있는 집안들 대부분 또한 나라 망가뜨리고 있는 학벌좋은 집안이잖아요. 안그래요?


    서울대-연세대-고려대가 '정상적'으로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면...

    왜 대학에 대해서는 그런 서열이나 선호도나 선망이 용인되고 인정되면서 중학교나 고등학교엔 그런 선호도나 서열을 용납하지 않는 거에요? 철옹성의 권위를 쌓고 사회의 권력을 배출하는 그래서 초등 중등과정의 궁극 목표로 자리잡고 앉아 모든 것을 규정하고 강제하는 '부정의' 실질적 두목인 '대학의 파워'를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으면서 맨날 힘없는 초등-중고교를 가지고 알가왈부 교육개혁질 하는 거에요?


    서울대-연세대-고려대가 '정상적'으로 '정상'이기에...

    거기 들어 가려 경쟁하는 남이사 사교육을 하든 고액 과외를 하든 국제중을 가든 왜 참견하는 거에요? 걍 놔두세요. 그것도 능력이잖아요. 대학 '서울대'는 다 허락되고 중등은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다면 웃기잖아요. 폼만 잡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바꾸고 싶다면 어디를 향해 매질을 해야 하는지 눈을 똑바로 뜨세요.


    그래서 대학평준화를 주장하고 있다고요?

    그럼, 서울대고 지랄이고 '학벌' 그 따위 게의치 않는 사람들은 걍 대충 교육마치고 잘먹고 잘살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왜 또 그런 사람들을 무식하다거나 3류인생인 것처럼 낙인찍는 짓거리 해요? 이 땅의 엄마 아빠들을 '정신병자'들이라거나 '칼을 쥔 미숙아'들이라고 생각한다면서요? 너무한 거 아닙니까? 사회 바꾸는데 누구랑 손잡고 운동할 참인지 정말 개념있는 사람들인가요? 노동자 농민이 '미숙아'나 '정신병자'들이라면 그들과 손잡고 시민혁명은 커녕 계급혁명이 가능이나 하겠어요?

    한쪽은 미숙아나 정신병자로 취급하고, 다른 한 쪽인 서울대와 명문대의 권력과 이상과 품격과 선망과 인격의 아우라는 그토록 사회에 강고하게 구축하여 피할수 없는 이슈로 끌어 올려 놓고, 사람들 머리와 생각과 상상력 안에 세뇌시키고 각인시켜 놓아 그래서 그 존재의 위대함에 포섭되게 하면서, 이제 구호로 '대학평준화'를 외치면 동의 안따르는 시민들로부터야 말도 안되는 미친넘 소리 듣는 거 뻔하잖아요. 그거 알면서 계속하는 거에요 아님 모르는 멍청한 운동가에요?


    운동인가 반동인가-타파인가 강화인가, 이런거 따져보고 있나요? 학교다닐때 주입식 입시공부만 한 사람들이죠?

    '학벌타파'와 '교육개혁'운동에서 기존 '프레임'에 의한 '기술방식'은 오히려 학벌체제 이데올로기를 강화해 흡인력을 키워왔던 오류투성이었습니다. 아예 '반동'이지요.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어떤 사람에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코끼리를 떠올릴 것이다" "상대편의 프레임을 단순히 부정하는 것은 단지 그 프레임을 강화할 뿐이다" 라는 말 한번쯤 새겨 들어 보셔야 해요. 운동의 쌩기초에 대해 고민은 부족하면서 관성적으로 주둥이질 하고 명예욕으로 글질 하는 그 버릇들 좀 고치라고 그 바닥에 충고 좀 하세요.
  • 허허 2008/11/01 [22:03] 수정 | 삭제
  • 아마 엿만 먹을 게 아니라. 욕도 실컷 먹을 거다.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