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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편집권 갈등, 너는 도대체 누구냐?
[언론비평] 편집권은 매체의 인격권이지, 특정 개인의 것이 아니다
 
박상기   기사입력  2007/01/29 [21:15]
시사저널 금창태 사장은 자신이 발행인 겸 편집인이므로, 편집권은 편집인인 자기에게 있으며, 편의에 따라 그 권한을 편집국장에게 위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금창태 사장 역시 고용 사장으로서 직급이 사장일 뿐 시사저널 소유지분을 별로 가지고 있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사주는 심상기 회장이고, 그의 선임에 따라 사장직과 발행 편집인 직을 맡아서 일하는 월급사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마치 조선일보 방회장이나 되는 듯이, 혹은 중앙일보 홍회장이나 되는 듯이, 혹은 동아일보 김회장이나 되는 듯이, 무소불위의 절대적 권한을 가진 왕회장급 오너 행세를 한다는 말이 들리고 있다. 특히 시사저널 기사삭제 사태 이후 사주 심상기 회장은 거의 안 보이고, 초강경 왕 편집인의 서슬만이 충정로 하늘을 찌르는 것 같다.

  © 박상기

그런 절대권한을 사주 심회장이 몽땅 위임했다고 치자. 그만한 경륜과 능력이 있다고 보아서, 당연히 그런 대우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금사장이 내세운 논리인 "편집권은 편집인 것"이 과연 맞는 말인가 같이 생각해보자.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편집권의 정체성과 소재에 관해서 시사저널 사태는 많은 논란을 야기할 것 같고, 그래야만 한다. 우선 이에 대한 토론을 위해 나의 의견을 거칠게나마 밝힌다. 여기에 대해서 이견이 있거나 아니면 같은 의견이거나 아무튼 의견을 제시하면 좋겠다.
 
편집권은 매체의 인격권이지, 특정 개인의 것이 아니다
 
편집권은 매체가 온전히 존속할 때 "그 매체로 하여금 정상적이고 합리적으로 매체활동을 함으로써 정체성을 유지하게 하는 지속적 권한"이다. 매체가 사라지거나 심각히 정체성을 잃을 때는 자동으로 사라진다.

그러므로 '편집권'이라는 말속에는 그 매체의 온전성을 해치거나 발간정신, 편집방향, 매체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모든 시도로부터 매체를 지키려는 데서 연유하는 인격권으로 봐야한다.

예를 들면, 어떤 불량한 편집인이나 발행인이 금품, 외압, 로비, 정치적 성향 등에 의해서 매체의 온전성을 해치는 행위(기사 삭제, 기사 강요, 확대포장, 편향보도 등등)를 시도하거나 강요할 때 이를 막는 것이 편집권이지, 특정 지위를 이용해 매체훼손 행위를 강행하는 것은 편집권에 해당하지 않는다.

반대도 성립한다. 다른 세력(편집국 기자, 노조, 필자 등등)이 정치적 단결에 의해서건, 이념적, 혹은 다른 이유로 지면을 유린하거나 변질시키려고 할 때는 이를 지적하고 경고하고 금지케 하는 저항이 편집권인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61년 5월16일 새벽, 육군소장 박정희는 쿠데타를 일으킨 다음 방송국을 점령하고 아나운서에게 혁명공약을 낭독하게 하고, 신문사를 점령하여 톱으로 혁명 기사를 우호적으로 쓰도록 했다. 이때 편집권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쿠데타군의 폭력으로부터 매체의 추락, 매체의 변절, 매체의 굴종을 누가 어떻게 막느냐에 달린 것이다.

그 상황에서, 편집인은 쿠데타 세력에 굴종하여 변질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한 양심적인 실무 편집기자가 목숨 걸고 제작을 거부했다면, 과연 그 신문의 편집권은 누가 지킨 것인가. 물론 편집인부터 목숨 걸고 그런 압박에 굴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전 기자들이 그 편집인을 따라서 죽기를 각오하고 제작을 거부했다면, 그건 아름다움이고 언론의 멋진 승리이겠지....
 

▲시사저널 노조원들의 편집권 독립을 위한 천막농성장.     ©박상기 기자

편집권이란 그 매체의 인격권인 것이다. 따라서, 편집인이냐 편집국장이냐 기자냐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지 말고, 매체를 인격체로 생각하여 그 매체의 인격을 어떻게 보전하고 높이느냐는 입장에서 판단해야 편집권의 바른 정의가 가능한 것이다.

돈을 댄 사람이거나 돈 댄 사람이 임명한 월급장이 사장이라고 해서 사회의 공기인 언론의 편집권을 몽땅 틀어쥘 수 있다면, 돈 많은 삼성이 공중파, 케이블 등 방송에서부터 각종 신문, 잡지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들이면 대한민국 모든 편집권, 즉 언론 자유는 삼성에게 귀속되는 것인가? 아마 삼성전자의 일년 흑자만 가지고도 그런 매집은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다. 얼마나 위험한 논리이고, 비언론적인 발상인가.

그리되면, 편집권은 경제권력에게 귀속될 수밖에 없다. 이런 끔찍한 언론관에 의해서 우리 언론사회에서 "편집권은 편집인 것"이라는 해괴망측한 논리가 퍼질까봐 심히 걱정된다. 해괴망측하다는 것은 내 생각이지, 다른 언론인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묻는다. 언론계 밥을 먹었거나, 지금 먹고 있는 사람, 또 언론을 공부해서 밥 먹는 전공자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다. 금창태 씨가 맞는지, 내 말이 맞는지....

편집권 투쟁 등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분쟁 쌍방은 직위를 떠나 평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고 토론하며, 협상해야 한다

편집권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분쟁 쌍방의 한 측이 사장이라는 인사권을 가진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징계 등의 억압적 방법으로 다른 한 측을 압박하는 것은 법의 평등정신에 맞지 않다. 협상의 수평적 대위법에도 맞지 않는 불평등구조이다.

무단 기사삭제라는 분쟁의 원인유발자가 발행인 겸 편집인이자 사장(사용자)이라는 강자의 위치에서, 이에 항의하는 기자들(노동자)들에게 파면 감봉 정직 등 징계를 가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금사장이 직접적인 원인유발자가 아니라면 모르되, 원인유발자일 경우에는 이미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조사, 검증, 협상, 판단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대립적 갈등을 풀어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일 것이다.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가되, 이미 노사가 절충할 수 없는 단계에 진입하면, 분쟁 쌍방은 직급을 떠나서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옳지, 분쟁유발자가 우월적 지위를 계속 유지하면서 인사권을 무기로 압박을 하면 갈등은 더 커지고 문제는 악화된다.

이 점은 비단 시사저널 사태만이 아니라 노사분규 현장에서 흔히 산견되는 모순이다. 노동법을 개정해서라도 시정되어야 하지 않은가 생각하고, 진정 노동운동은 이런데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어떻게 분쟁 유발자에게 우월적
▲ 박상기 기자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며 징계와 압박의 칼춤을 추게 하는가. 이 점 또한 노동운동을 하거나 노동법에 밝은 강호제현의 의견을 듣고 싶은 부분이다. 


* 박상기 기자는 고려대 불문과 졸업.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새>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20여년 동안 언론계에서 활동하며 월간 <한국인>과 주간 <시사저널>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주요작품으로 <홍수의 밤> <사해> <대기발령> <밤꽃> 등 20여 편의 중, 단편을 발표했으며, 작품집 <서울피라미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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