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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판교로또' 해결할 의지있나?
[논단] 토지 개발부담금제도 도입이나 보유세율의 현실화로 광풍잡아야
 
이태경   기사입력  2005/02/24 [18:58]
판교발 투기폭풍이 부는가?

최근 서울과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시민들 사이에 가장 큰 화제는 단연 ‘판교입성’으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신도시 발표 당시부터 제2의 강남이라고 평가받으며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판교는 분양이 가까워올수록 집 없는 사람이나 집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최대의 ‘화두(話頭)’가 되었다.

집 없는 사람들은 입지가 좋은 판교에 오매불망 그리던 내집 마련을 위해, 집 있는 사람들은 큰 돈을 벌 목적으로 판교에 입성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러한 세간의 관심이 자칫하면 부동산 투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정부는 판교 청약을 올 11월로 늦추었다.

그러나 판교에 들어설 중대형 평형 아파트들의 가격이 평당 2000만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자 판교 주변에 위치한 용인, 수지, 분당 소재 아파트들의 가격은 이미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있는 실정이며, 이러한 불길은 급기야 서울 강남에도 옮겨 붙고 있다. 정부의 판교신도시 개발 발표 이후 판교와 그 주변의 땅값이 수십배 앙등한 사실은 여기서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을 듯하다.

애초 정부가 판교신도시를 건설하면서 내세웠던 목표는 주택공급을 통한 집값 안정, 강남수요의 대체 등이었지만, 이러한 목표들은 전혀 달성되지 못한 채 오히려 투기폭풍의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만 높아지고 있다.

도대체 정부가 선의를 가지고 출발한 판교신도시 개발이 이렇듯 엄청난 부작용을 낳고 있는 근본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판교 신도시 개발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불거지고 있는 문제점들은 우리에게 중대한 인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 인식의 변화는 30년간 지속된 정부의 공급 위주 주택 정책이 이미 오래전에 파산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노태우 정권 시절 주택 200만호 건설과 신도시 개발로 대표되는 공급 위주의 주택정책은 집을 더 많이 지어서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고, 서민들에게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발상으로 역대정권이 일관되게 추진해 온 정책이었다.

모든 것을 수요와 공급으로 이해하는 주류 경제학자들과 관료들에 의해서 강력히 지지된 공급위주의 주택정책은 애초 구상했던 취지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주택을 공급하면 할 수록, 신도시를 개발하면 할수록 서민들의 내집 마련은 어려워졌고 일부 건설업체와 소수의 부동산 부자들만 살찌운 현상이 보편화 된 것이다.

한마디로 해방 이후 지속된 공급위주의 주택정책이 초래한 결과는, 면적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땅값과 집값이 되겠다. 정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다.

아래 기사는 공급 위주의 주택공급이 왜 실패할 수 밖에 없는지를 잘 알려주기에 소개한다.

뛰는 정책위에 나는 집부자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극약처방으로 치닫을수록 집부자의 면역력은 강해진다. 집값 안정을 위한 정부와 집부자들의 숨박꼭질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집부자들의 투자내역서〓자영업자 김형철(가명)씨는 서울에만 15채의 아파트와 주택을 갖고 있다. 당장 급매물로 내놓아도 25억원은 너끈히 손에 쥘 수 있다. 김씨가 주택 투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는 지난 98년.
당시 한 상호신용금고의 채권관리부에 근무하던 김 씨는 알고 지내던 고객의 부동산 보유내역을 알고 깜짝 놀란다. 이 고객은 당시 경매를 통해 서울 전역에 70채가 넘는 아파트와 주택을 보유하고 있었다.
…"5두품짜리 주택을 사들여 성골이 되면 판다"는 게 김씨를 집부자로 만든 비결이다. 5두품짜리 주택이란 다름아닌 경매로 나오는 산동네의 허름한 주택.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런 주택을 구입해 여유를 갖고 기다리면 재개발을 통해 금싸라기 아파트로 신분상승(?)이 이뤄졌다.
…김씨는 오는 2007년까지 보유 주택수를 정확히 두배인 30가구로 늘릴 계획이다.
주부 정현숙(가명)씨는 자신이 바닥을 훤히 꽤뚫고 있는 강남권 아파트만 집중 공략한 케이스다. 정 씨가 보유하고 있는 강남권 아파트는 7가구. 시가 60억원을 훌쩍 넘는다.
정씨의 투자내역서는 도곡동 도곡2차(재건축) 53평형, 도곡렉슬(분양권) 43평형, 삼성동 중앙하이츠빌리지 32평형, 삼성동 상아아파트(재건축) 43평형, 삼성동 해청아파트(재건축) 50평형, 삼성동 한솔아파트 44평형, 삼성동 쌍용플레티넘 58평형 등이다.
…그렇다면 집부자들의 마지막 안착점은 어딜까. 건물 임대사업을 하고 있는 이은자(가명)씨가 해답이 될 수 있다. 이씨는 강남권 아파트 투자의 원조격이다. 이씨가 처음 강남아파트를 구입한 것은 20년전.
현재 5억원을 호가하는 AID차관아파트를 단돈 900만원에 샀다고 한다. 이후 사고팔고가 계속됐고 98년 1억2000만원에 같은 아파트를 추가로 구입해 최종적으로 6채를 보유했다.
이씨는 재작년 이들 아파트를 모두 팔았다. 매각금액 일부는 강남 노른자위 땅의 건물 신축에 재투자했다. 이 건물은 시가 35억원으로 매달 임대료만 1800만원이 꼬박꼬박 들어온다. [머니투데이 2005. 2. 22 원종태 기자〕

위의 기사에서 잘 나타난 것처럼 현재 땅값과 집값이 그토록 높은 이유는 땅이 비좁고 집이 적어서가 아니라 극소수의 사람들이 너무 많은 땅과 집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눈부신(?)활약에 자극받은 중산층은 부자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 집이 없는 사람들은 집 값이 더 오를까 두려워 열심히 투기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대한민국의 실상이다. 과장하자면 대한민국 성인 남녀는 거의 전부 투기꾼이거나 잠재적 투기꾼이다.

판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투기열풍은 정부의 어리석은 정책과 부동산 부자들의 탐욕, 집없는 사람들의 비원이 뒤섞인 일종의 블랙 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판교발 블랙코미디의 종식을 위해서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주택시장이 안정화되고 망국적인 투기열풍이 영구히 잦아들것인가? 그간의 경험이 말해주듯이 대증적인 처방이나 냉온탕을 오가는 부동산 정책을 가지고는 부동산 부자들을 이길 도리가 없다. 정부에서 아무리 청약통장 거래를 단속하고 세무조사를 한다고 한들 이익을 얻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하는 사람들을 당할 수는 도저히 없다.

‘이윤있는 곳에 자본 있다’라는 격언처럼 부동산을 소유해서 얼마든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현재의 구조가 온존하는 한 토지와 주택의 가격은 경향적으로 상승할 것이고, 부동산 양극화에서 비롯한 소득양극화는 극을 향해 치달아 갈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겨냥해야 할 부동산 관련 대책은 무엇보다 부동산 소유를 통해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은 현재 시가 대비 고작 0.1%에 머물고 있는 토지 보유세율을 지속적으로 현실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판교발 투기열풍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단기처방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판교발 투기열풍을 진정시킬 단기처방으로는 토지소유구조 관련 통계자료의 전면공개와 개발부담금제 재도입 추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토지소유 구조 통계의 공개는 올바른 토지ㆍ주택 정책의 수립을 위해서, 그리고 토지소유의 편중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토지공개념 제도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이미 폐지된 개발부담금제도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어렵다면 판교에서만이라도 시행하는 것이 타당하리라고 생각된다. 개발부담금제는 1990년부터 1998년까지 8년 동안 총 1조 6,397억원의 개발이익을 환수했는데, 이것은 한해 평균 2천억원 정도로서 너무나 미미한 액수였다.

2001-2003년 사이에 발생한 토지 자본이득은 212조원에 달하고 연평균 약 70조원의 토지 자본이득이 발생한 점, 2002년에는 명목 GDP의 20%에 육박하는 자본이득이 발생한 점 등을 감안할 때 개발부담금제의 도입은 판교발 부동산 광풍을 잠재우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고강도 단기처방을 펼치면서 중기적으로 토지 보유세율을 합리적이고도 강력하게 현실화시킨다는 분명한 청사진을 보인다면 판교발 투기광풍은 아마도 찻잔속의 태풍으로 그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정부의 부동산 정책 이정표는 정부의 정책을 신뢰하지 못하고 호시탐탐 투기대열에 합류할 기회를 노리는 부동산 부자들이나 실수요자들에게 분명한 신호를 주어 급속히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시킬 것이며 이는 곧 경기활성화의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부동산 시장 안정 더 나아가 참여정부의 성패가 판교 신도시 부동산 대책에 걸려 있다. / 편집위원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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