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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탈북이 정동영장관과 통일부가 할일인가
[주장] 북한주민 탈북은 반북단체 분열책, 식량지원통해 탈북사태 막아야
 
이재봉   기사입력  2004/08/23 [13:54]
남쪽 정부가 7월초 민간인들의 김일성 조문 방북을 막음으로써 남북 사이를 싸늘하게 이끌기 시작했다면, 7월말 베트남에 머물던 탈북자 460여명을 남쪽으로 데려옴으로써 남북 관계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탈북자 대규모 입남과 관련하여 한나라당을 비롯한 극우 수구 세력이 대대적인 환영 논평을 낸 것은 이해할 만 하다. 그들이 남북 관계의 진전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부장관이 "몇년 안에 탈북자 1만명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한 것은 참 한심스럽다. 그런 인식 수준을 가지고 남북 사이의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정책을 다듬고 펼쳐나갈 수 있을까.

대규모 탈북과 입남으로 실질적으로 그들의 복지가 향상되고 궁극적으로 북녘의 인권 실태가 나아진다면 일시적으로 남북 관계가 얼어붙는다 할지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왜 북녘을 탈출하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 남쪽에 들어오는지 정확하게 따져보고 그들이 남쪽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냉정하게 살펴보면, 대규모 탈북과 입남이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리라 생각한다.

첫째, 그들은 왜 북녘을 탈출하는가. 김정일 체제가 싫어 뛰쳐나오기도 하고, 잘못이나 죄를 저지르고 처벌이 두려워 도망쳐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배가 고파 국경을 넘는다. 우리 남쪽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60-70년대엔 박정희 체제가 싫다고 해외로 몰래 떠나거나 합법적으로 떠났다가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고, 1980-90년대엔 죄를 짓고 도망친 '높은 사람'들이 더러 있었으며, 2000년대엔 자식 교육을 위해 탈출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지금도 뉴욕이나 로스엔젤레스 같은 미국의 대도시엔 불법으로 체류하는 한국인들이 꽤 많다.

남북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남쪽 사람들은 주로 미국에 불법 체류를 하고 북녘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에 불법 체류를 한다는 점이다. 또한 남한에는 중국이나 필리핀 그리고 뱅글라데쉬와 파키스탄 등지에서 온 불법 체류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불법 체류는 세계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듯이, 배고픈 북녘 사람들이 식량을 구하거나 돈을 벌기 위해 중국에 건너가 불법적으로 머무르고 있는 게 그렇게 특별한 상황은 아닌 것이다.
 
둘째, 그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남쪽으로 들어오는가. 그들 가운데 처음부터 남쪽으로 들어오기 위해 북녘을 탈출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배가 고파 국경을 넘었다가 미국이나 남한의 반북 단체들의 부추김과 도움에 의해 외국 대사관의 담장을 뛰어넘는 경우가 많다. 터놓고 말하자면 회유나 공작에 의한 탈북 및 입남이라는 말이다. 그러한 반북 단체들은 대부분 종교를 앞세워 탈북자들이 사람답게 살도록 이끌어주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진정 북녘 인민을 위한 인도적 배려보다는 김정일을 향한 원한과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적대감을 지니고 탈북자들에게 접근하여 남한으로 불러오는 것이다.
 
그 단체들의 진짜 목표는 북녘 사회를 비난하며 뒤흔들어 김정일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있다. 만약 그들이 원하는 대로 북녘 사회나 김정일 체제가 무너지는 게 좋다면 남북 관계가 일시적으로 얼어붙는들 어떠랴만, 북녘의 붕괴는 가능성도 낮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에 관해서는 오래 전부터 논문을 발표해왔으니 여기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 한 가지만 아래에 든다.
 
셋째, 그들은 남쪽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한국 전쟁 이후 1950년대부터 19990년대까지 북녘을 탈출하여 남쪽에 들어온 사람들은 전부 합해 1000명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크게 늘어 2001년엔 500명이 넘었고 2002년엔 1000명이 넘었으며, 이번엔 이틀 동안에 460여명이나 몰려 들어왔다. 이를 전부 합치면 지금까지 50여년 동안 약 5000명이 북에서 남으로 건너온 셈이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는 남쪽 정부로부터 많은 돈과 높은 자리를 받은 사람도 있고, 성공한 사업가도 있으며, 유명해진 연예인도 있지만, 대부분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나름대로 잘 적응하여 사는 사람들은 10%를 조금 넘을 뿐이라는 통계가 나와있다.
 
2000년대 들어 한꺼번에 많이 들어와 갑자기 생긴 현상이 아니라, 탈북자들이 어느 정도 대접받던 1990년대말 800명 시대에도 그랬다. 게다가 이들은 경제적 어려움보다 심리적 고통을 더 심하게 겪는 듯하다. 이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운 점은 남쪽 사람들의 차별과 냉대라는 말을 자주 듣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둑이나 강도 같은 죄를 짓고 감옥에 가는 사람들도 생겼고, 다시 남쪽을 탈출하려다 붙잡힌 사람들도 나타났으며, 심지어 목숨걸고 들어온 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나온 것 아닌가. 기껏해야 800명도 제대로 껴안지 못해 이런 현상이 빚어졌는데, 5000명은 어떻게 감싸안을 것이며, 몇년 안에 무슨 묘수로 만명을 받아들일지 걱정스럽다.
 
나아가 북녘 사회가 무너져서 수십만 수백만이 남쪽으로 몰려온다면 어떤 참사가 빚어질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까놓고 말해 북녘의 지도자가 예뻐서도 아니고 북녘 체제가 맘에 들어서도 아니라, 남북 양쪽의 혼란과 고통을 피하기 위해 대규모 탈북과 북녘의 붕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줄 의지도 없고 그들이 남쪽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이끌 능력도 없으면서 대규모 탈북과 입남을 부추기고 자랑스럽게 떠벌이는 게 과연 바람직한 처사인지 냉정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이번의 탈북자 대규모 입남과 관련하여 북녘 당국의 반응을 보면 앞으로 상당한 기간 남북 관계가 진전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북녘에서 발표한 성명의 일부를 소개한다.
 
"남조선 당국은 지난 27일과 28일 이른바 '탈북자'들을 대량 남으로 끌어가는 반민족적 행위를 감행하였다. 이 행위는 우리 인민들을 대상으로 벌인 이른바 남조선 당국의 조직적이며 계획적인 유인 랍치 행위이며 백주의 테로 범죄이다. 따라서 우리는 남조선 당국의 이 범죄를 북남 관계와 조국 통일 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하기로 공약한 6.15 공동 선언에 대한 전면 위반이고 도전이며 우리 체제를 허물어 보려는 최대의 적대 행위로 된다고 인정한다.... 북남 관계에 돌이킬 수 없는 엄중한 장애를 조성하고 있는 남조선 당국의 반민족적 랍치 테로 범죄를 절대로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응당한 계산을 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할까. 우선 배가 고파 일시적으로 중국에 머무르고 있는 순진한 사람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가족과 고향을 등지고 고국을 배반하도록 불순하게 꼬드기는 공작은 당장 멈추어야 한다. 물론 무슨 이유로든 북녘을 탈출하여 스스로 남쪽으로 들어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따뜻하게 맞아주고 정성스레 지원해주는 게 도리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탈북자가 아예 생기지 않도록 도와주는 게 아닐까.

탈북자들은 앞에서 얘기했듯 경제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방법은 쉽고 간단하다. 탈북의 가장 큰 이유는 배고픔이기 때문에 북녘에 식량 지원만 충분히 해줘도 목숨 걸고 중국 땅을 밟는 사람들은 크게 줄어들지 않겠는가. 그게 진정으로 인도적 차원에서 북녘 동포를 돕는 방법이요 남북이 평화롭게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 필자는 원광대 교수로 본문은 필자가 주관하는 <남이랑 북이랑> (2004년 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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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8/23 [13:5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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