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쇼와 가요 대전집', 부천영화제 최고문제작
히로히토 천황 시대에 대한 전전과 전후 세대들의 노스탈지아
 
이성원   기사입력  2004/07/19 [03:41]

국내의 수많은 영화제들 가운데 유독 많은 마니아층을 하고 있는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PiFan)가 지난 목요일 개막식과 함께 열흘간의 일정에 돌입했다.


여타 영화제와는 달리 호러, 판타지 등 비교적 비주류로 분류되어 왔던 장르를 전면에 내세운 PiFan만의 독창적인 성격으로 인해  장르 영화의 마니아들이 몰리는 이 영화제의 꽃은 단연 심야 상영회. 제1회 PiFan에서 <킹덤>의 밤샘 상영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이래로 심야 상영은 부천 영화제의 성격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총 6개의 심야 상영 이벤트가 열리는데, 매 이벤트마다 각각 4편씩의 영화가 배치되어 심야의 영화 감상이 생활화된 올빼미 영화 마니아들의 선호와 더불어 가격대비 성능에서도 최고의 만족도를 선사한다. 그 첫 번째 심야 상영 이벤트가 바로 지난 금요일에 열렸다. 역시 총 4편의 작품이 상영됐는데, 가장 논란이 된 작품은 단연 일본의 중견 감독 시노하라 테츠오 감독의 <쇼와 가요 대전집>.

 

▲ 미도리 클럽
  

예측불허의 스토리 전개와 황당한 결말로 인해 영화가 끝나자 관객석들은 여기저기서 제각기 다른 반응들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쇼와 가요 대전집>은 외형적으로 블랙 코미디 형식을 띠고 있지만, 영화의 숨겨진 메타포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쇼와’라는 단어의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1989년에 사망한 일왕 히로히토는 역사상 최장기간을 재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재임하는 기간 동안 중일 전쟁과 세계 대전이 일어났으며, 한국의 치욕스러운 식민지 수탈과 종군위안부 등 각종 악행 또한 히로히토의 재임기간 동안 벌어진 일이다. 결국 그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범 가운데 하나이며, 일본 파쇼의 상징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는 제대로 된 한국의 의무 교육을 이해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쇼와 (昭和)가 바로 이 히로히토의 연호이다. <쇼와 가요 대전집>은 우연한 장난으로 시작된 중년 여성에 대한 한 청년의 추파가 두 집단의 치열한 복수전의 양상을 띠면서 결국 도심 한복판에 원폭 투하라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황당무계한 사건드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이 어처구니없는 복수극의 양축에 서있는 집단은 모두 ‘미도리’라는 이름을 가진 30대 이혼녀들의 모임인 ‘미도리 클럽’과 가끔씩 모여서 별 볼일 없이 빈둥거리며 건너 집 여성의 벌거벗은 알몸이나 훔쳐보는 기적을 기다리는 이시하라와 그 젊은 친구들이다. 이 두 집단 사이의 공통점은 오직 하나. 쇼와 시대의 흘러간 가요들을 즐긴다는 것이다. 마치 종교와 같은 그들의 모임에 있어 결국 쇼와 시대의 가요들은 찬송가이며, 불경인 셈이다. 이 두 집단의 갈등 양상은 너무나 명백하게 현존하는 일본의 구세대와 신세대의 그것을 은유적으로 내포한다.


모두 이름이 미도리라는 공통점을 지닌 ‘미도리 클럽’. 몇 해 전부터 일본은 극우화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히로히토의 탄생일인 4월 29일의 명칭을 ‘쇼와의 날’로 바꾸는 국경일 개정안을 가결시키고, 쇼와 천황 기념관을 착공하는 등 노골적인 과거를 찬양하며 파쇼의 망령이라는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바로 ‘쇼와의 날’ 이전 4월 29일 국경일의 명칭이 바로 ‘미도리(녹색)의 날’이다. 결국 미도리 클럽은 일본의 극렬 우익 세력을 자연스럽게 대표하는데, 그들은 노골적으로 쇼와 시대를 찬양하고 SM 복장으로 야외에서 가라오케를 즐기는 청년들을 향해 “저런 놈들 때문에 우리가 전후 복구를 한 거야?”라는 발언도 서슴지 않으며 미군이 철수하면서 버린 바주카포를 구해 청년들을 처단한다.
 
▲ 이시하라 일행


이시하라 일당에게 미도리 클럽은 부티크에서 옷을 사 모으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그라탕이나 먹는 정신 나간 존재, 혹은 바퀴벌레를 물리치고 세상이 멸망해도 끝가지 살아남을 유일한 존재인 아줌마들일 뿐이다. 이시하라 일행은 결국 이 정신 나간 아줌씨(!)들을 처단하기 위해 정체모를 상점 주인에게서 소련제 구식 권총을 구입해 나름대로 복수를 한다. 결국 이 두 집단의 대결 양상은 극으로 치닫고 결국 홀로 남은 이시하라는 시내 한복판에 자신이 직접 제작한 원폭을 시내 한복판에 투하함으로써 이 처절한 복수극의 종지부를 찍는다.


영화는 전적으로 어느 한 집단을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쇼와 시대는 침략과 전쟁 발발, 그리고 패전 이후의 전후 복구를 거쳐 다시 강대국의 위상을 알리기까지 일본의 상황은 다각도로 변해왔다. 쇼와 시대는 결국 그들에게 있어 기존 세대와 전후 세대와의 갈등의 시대이며, 망령인 동시에 추억이고, 그들이 풀어야할 숙제이고 언젠가 두 집단이 언젠가 만나게 될 접점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쇼와 가요 대전집>은 한국의 관객들에게 불편한 잔상을 남긴다. <쇼와 가요 대전집>은 쇼와 시절의 대표적인 노래들이 각각의 챕터의 타이틀을 차지하는데, 마지막 챕터에 등장하는 곡의 제목이 <우리 다시 만나요>라는 점과 이 작품이 무라카미 류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심정적으로 의심의 여지를 남겨둔다.


심야 상영을 보는 내낸 바로 앞좌석이 텅텅 비어있었는데, <쇼와 가요 대전집>이 시작되자 일련의 젊은 여성 관객들이 우르르 몰려와 바로 그 좌석을 차지하고 작품을 감상했다. 그들은 특히 출연 배우들의 외모에 연신 감탄하는 것으로 보아 이 작품에 등장하는 꽃미남 배우들의 열혈 팬인 듯싶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이후로 그들은 다시 좌석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이 작품 하나를 보기 위해 티켓을 구매한 듯 싶었다. 물론 그들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도 최소한 몇몇 여배우들의 멋진 몸매를 보면서 환호성을 지를 때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연기하는 극중 캐릭터들이 이 땅의 암흑기를 만들었던 바로 그 시기에 대한 노스탤지어아를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한번쯤은 인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어머니, 할머니가 겪은 수치를 상업적으로 이용한 여배우와 연예 기획사에게 우리들이 손가락질을 할 때 정작 이러한 만행을 저지른 장본인들이 뻔뻔스럽게 그 시절을 그리워는 영화를 제작한다는 현실 자체가 어쩌면 더 크나큰 치욕일지도 모르겠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4/07/19 [03:41]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