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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인가 '집총거부자'인가?
'국방의 의무'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곽동운   기사입력  2004/07/05 [23:19]
한국에서는 이미 대체복무제도가 굳건히 시행되고 있다. 공익근무요원, 산업체 기능요원, 교도소 지키는 교도대, 의무소방관 등등. 약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인원이 대체복무를 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4~6주간 매우 기초적인 훈련 과정을 마친 후 각자 집으로 돌아가 병역을 마칠 때까지 출퇴근한다. 물론 이들은 기초 훈련을 받을 때 사격을 하지만, 기초훈련 기간을 제외하고는 총과는 전혀 무관한 복무를 한다. 어쨌든 그들도 국가공동체를 위하여 묵묵히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다하고 있다.
 
집총 거부자들도 사회봉사와 같은 국가공동체에 필수 역할을 부여해 달라고 하는 만큼 국역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는다. 집총 거부자들은 국역을 무임승차로 때우는 게 아니라 형태를 달리한 의무를 요구하는 것이다. 즉, 총을 들지 않는 ‘공익 근무를’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반공이데올로기에 입각한 국방의 의무는 집총을 거부하는 국역을 인정하지 않는다. '빨갱이'는 주적이기에 사격의 표적이지 협상테이블의 상대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반공을 국시로 한 이상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어떻게든 사격을 해봐야 하고, 소총분해결합을 해봐야 한다. 이런 경직된 국방의 의무는 그 기간에 상관없이 군복 착용, 사격, 내무 생활, 상관에 대한 절대복종이 존재해야만 승인된다.
 
시대가 급속히 변하고 있지만, 반공이데올로기에 입각한 국방의 의무는 그 큰 몸집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기초 군사훈련의 유무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판단하는 기준에서 삭제해도 무방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군사전문가들뿐 아니라 국방부조차 무거운 보병위주의 한국군을 현대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상군 위주의 병력집중적인 군 편제에서 벗어나, 결국에는 상비군 감축으로 나아가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들은 이미 문민의 정부 시절부터 솔솔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소련이 붕괴된 90년대 중반 이후 상근예비역 제도와 공익근무제가 연이어 시행되었다. 한편, 상비군 초과보유라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되 유사시에는 병력자원으로 쓸 수 있는 약 20여 만 명의 훌륭한 장정들이 존재한다는 건, 국방부 측에서는 남는 장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익근무는 전투가 주목적이 아닌 만큼 국방부가 용단을 내려 종교 신념을 이유로 집총을 거부하는 사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총 안 드는 대체복무제를 신설하는 것이 국방부로서 그리 쉽게 내릴 결정은 아니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비록 총을 들긴 하지만 실질적인 대체복무제라 할 수 있는 공익근무제도도 도입하지 않았나? 상근예비역과 공익근무제 도입을 적극적인 대국민 여론수렴에 기반해서 실시하지는 않았다. 이제까지 진행된 국방부의 상비군 감축 프로세스에 비추어 보자면, 집총 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병역제도 신설 주장이 그리 황당한 목소리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군사훈련이라는 과정을 통과해야만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라는 인식만 바꾸면 충분히 총 안 드는 대체복무제도도 도입할 수 있다고 본다.
 
집총 거부자들이 다 보충역 판정을 받았거나 공중보건의와 같은 특수한 기술의 소유자들이었으면 국방부의 고민은 좀 덜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군입대 시기가 20대 초중반인 것을 감안한다면, 징집대상자들이 특수한 기술을 습득할 시간상의 여력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집총거부 대체복무제를 열어두면, 병역 거부자들보다 병역기피자들이 봇물처럼 밀려든다는 예측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지적일 수 있다. 어쩌면 국방부는 한 줌도 안 되는 집총 거부자들이 두려운 게 아니라 기존 징집제도의 변형이 더 두려운 게 아닌가 여겨진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국방의 의무에 대한 시각 변화를 요구한다. 국가공동체를 위해 복무를 했으면 그 나름대로의 역할을 인정하여 국방의 의무를 이행했다고 여기면 안 될까? 국가안보는 튼실한 국가공동체에 기초하지 않는 이상 사상누각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국방부와 집총 거부자들의 윈윈 게임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 추신>

나는 윗 글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을 단 한 차례도 쓰지 않았다. 그렇다. 본인은 병역거부운동 진영이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에 미련을 두는 모습이 이해가 안 된다. 현역병들이나 예비역들에게서 가장 쉽게 나오는 말이 "총을 들면 비양심적이냐?"는 해묵은 항변이다. 군에 다녀온 사람들은 이 말에 엄청난 저항감을 느낀다는 걸 아시는가? 필자도 '육군 소총수 출신인데 그럼 나도 비양심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거부감을 느꼈다. 국방부측에서도 현역병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 집총거부자들에게 강경하게 대응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양심'과 '비양심'으로 이분화된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이 그릇됐다고 목청을 높이는 것보다 아예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가뜩이나 사람들 설득하기도 힘든데 저항감부터 느끼게 해서는 될 일도 안 될 것이다. 

곽동운/ 예비군 6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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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7/05 [23:1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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