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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진단] 동해물이 마르고 일본해가 넘친다
'Default Value'로서의 동해와 일본해의 병행표기ba.info/
 
이승훈   기사입력  2002/10/02 [17:03]
{IMAGE2_LEFT}정부는 한반도 동부 해역의 명칭에 대해서 '일본해 표기를 삭제하고 아무 것도 표기하지 않는 안'을 이끌어 낸 것에 대해서 소정의 외교적 성공을 거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이를 '절반의 성공'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언론들은 이 주장을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받아쓰고 있다.

'일본해를 삭제하고 아무 것도 표기하지 않는 안'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한다면 '절반의 성공'이라는 말을 쓸 수가 없다. 이렇게 '일본해를 삭제하고 아무 것도 표기하지 않는 안'을 가지고 찬반투표를 하게 한 것은 오히려 우리 나라 외교와 우리 협상 대표단의 패배라고 해야한다. '일본해를 삭제하고 아무 것도 표기하지 않는 안'의 의미에 대해서 한번 곰곰 생각해보자.

정부는 '일본해를 삭제하고 아무 것도 표기하지 않는 안'을 '이끌어 냈다'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 언론들도 이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표현에는 「(어떤 무엇을 우리가 주도적으로) 확정시켰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어폐가 있다. 사실은 우리가 '이끌어 냈다'는 표현을 쓸 만큼 어떤 무엇을 우리가 주도적으로 한 것도 없고 확정시킨 것도 없다.  동해표기문제와 관해서 정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에 이끌려 다니기만 했을 뿐이다.  

'일본해를 삭제하고 아무 것도 표기하지 않는 안'을 표현할 때 '이끌어 냈다'는 표현을 쓰고, '절반의 성공'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아마도 '일본해를 삭제하고 아무 것도 표시하지 않는 안'을 일단 일본해 표기를 삭제한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해 놓은 상태에서 그 해역 표기와 관해 추후 대책으로 어떻게 표시하느냐와 관해서 당분간 '아무 것도 표기하지 않는 안'이 나온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이 아닐까하고 생각된다. 아니면 정부가 국민에게 자신의 실책을 속인 것이던가.

그래서 정부는 이 안에 대해서 '절반의 성공'이라는 표현을 쓰고 '일본해라는 표기가 사라졌다는 데에 의미를 둔다'고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일본해라는 표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투표결과에 따라서 내년에 지도가 어떻게 바뀔 지를 모르는데 당장 어떻게 세계 여러 나라의 모든 지도에서 일본해를 삭제할 수가 있는가?

그 수정안이 나온 당시에도,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일본해는 국제적으로 계속 통용되고 있었고 수정안이 철회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본해 표기를 삭제하고 '아무 것도 표기하지 않는 안'과 '일본해 표기를 삭제하고 아무 것도 표시하지 않는 안'은 구별해야한다.  일본해 표기 삭제 문제도 그렇고 그 안 자체도 그렇고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일본해 표기를 삭제하고 아무 것도 표기하지 않는 안'은 찬반투표를 통해 결정된다. 이 때 기권과 반대표가 찬성표보다 많으면 일본해 표기가 그대로 유지된다. 정부는 도대체 이루어놓은 게 뭐가 있다고 '절반의 성공'이라는 말을 하는 것인가?    


[관련기사] 한-일 `동해 표기' 치열한 외교전 (연합뉴스 9월 1일자)

정부와 협상대표단이 동해표기 문제를 들고 나갔으면 반드시 한국과 일본은 다툼이 생기면서 그 결과 여러 가지 안이 제시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안들 중에서 가장 나쁜 결과가 나온 것이다. 물론 우리의 주장이 아예 받아들여지지 않고 일본해 표기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결의가 나오는 것이 가장 나쁜 결과이겠지만 그렇게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반도 동부 해역이 수 천년 전부터 19세기까지 동해로 불려왔다는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며 이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IHO기금 부담금액 순위 12위인 우리 나라가 항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는데 이러한 우리의 항의에서 일정한 규범적 효과가 생기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주장이 아예 받아들여지지 않는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고 봐야한다.

'일본해 표기를 삭제하고 아무 것도 표시하지 않는 안'을 좀 더 분석해보자. '일본해로 표기 (유지)하기'의 대대(對待)는 '동해로 표기(회복) 하기' 이다.  타당성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일단 그 두 주장은 일본과 우리 나라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된 주장이다. 참고로 북한은 일본의 일본해 표기 주장에 맞서서 한반도 동부 일본 서부해역을 '한국해' 내지는 한국동해(韓國東海)'로 표기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해를 삭제하고 아무 것도 표기하지 않기'는 일본으로서도 우리 나라로서도 상호양보를 한 안이다. 즉 일본과 우리 나라에서 중립적인 안이다.  일본으로서는 최근 100년 가까이 국제적으로 일본해로 표기 되어온 것에서 생기는 무엇을 양보한 것이고 우리로서는 춘추전국시대 이후 19세기까지 2000여 년 동안 동북아에서 동해로 지칭 되어온 것에서 생기는 무엇을 양보한 것이기 때문이다. - 춘추전국시대가 아니고 요·금(療·金)시대 이후라는 학설도 있다

일본과 우리 나라에서 중립적인 안이라는 점에서는 '동해·일본해 병행표기하기'도 마찬가지이다. '동해·일본해 병행표기하기'와  '일본해를 삭제하고 아무 것도 표기하지 않기'를 비교해보면 일단은 둘 다 모두 우리 나라와 일본에서 중립적인 안이지만 실제로는 우리 나라로서는 '일본해를 삭제하고 아무 것도 표기하지 않기'가 불리하다. 최근 100년 가까이 국제적으로 일본해로 통용되고있다는 사실과 일본의 국력과 홍보력 때문에 아무 것도 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국제적으로 이전까지 통용되었던 일본해가 계속 국제적으로 사용될 것이며 병행표기되면 최소한 국제적으로 동해가 지도상에 부각되는 반면에 아무것도 표기가 되지 않으면 동해가 좀처럼 부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추후 몇 십 년 후 해양의 경계 제5차 개정판에서는 일본해가 단독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더 높아지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동해/일본해 병행표기하기'는 우리가 제대로 항의만 하기만 하면 저절로 확보되는 안이다. IHO의 결의안에 의하면 동해와 같이 몇 개 주권국가의 영향하에 있는 바다 명칭에 있어 하나의 이름으로 통용되지 않을 경우에는, 현재 관련국가에서 쓰고 있는 명칭을 새로운 이름이 조정될 때까지 모두 표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974년에 채택된 지명표준 결의안(A 4.2.6)이 바로 그것이다.

A4.2 International Standardization of Geographical Names

A4.2.6  It is recommended that where two or more countries share a given geographical feature (such as, for example, a bay, strait, channel or archipelago)

under a different name form, they should endeavour to reach agreement on fixing a single name for the feature concerned. If they have different official languages and cannot agree on a common name form, it is recommended that the name forms of each of the languages in question should be accepted for charts and publications unless technical reasons prevent this practice on small scale charts. e.g. English Channel/La Manche.


또한 UN경제사회협의회 7분과 중 하나인 UN지명전문가그룹에서는 매 3년마다 지명표준화에 관한 UN협의회가 열리는데, UN지명전문가그룹의 지명표준화에 관한 제3차 UN협의회는 결의안 제 20조에서 둘 내지 그이상의 나라들이 접하고 있는 지리 형상에 관련해서 만약 어느 지리형상을 함께 하는 나라들이 있다면 하나의 지명으로 고정하는데 합의하기까지 노력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만약 하나의 공통 이름으로 합의하는데 이르지 못할 때에는 관련된 각 나라들이 쓰는 지명을 받아들이는 것(병행표기)을 국제간 지도작성법의 규칙으로 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결의안을 정했다. 이 결의안에 따르자면 한국과 일본 정부가 합의를 하기까지 동해와 일본해라는 지명을 병기하여야 하는 것이 원칙인 것이다.

초중고생 네티즌 9000여명이 만든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http://www.prkorea.com는 동해표기와 관련한 꾸준한 문제제기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일본해(Sea of Japan)와 동해(East Sea)를 함께 표기한 세계지도 수정안을 공식결정, 발표토록 한 것을 비롯하여 전세계 23군데 사이트에 동해-일본해 표기를 병기하도록 하는 성과를 얻어냈다. 정부도 하지 못했던 일을 어린 네티즌들이 해낸 것이다. 반크가 무슨 힘이 있어서 이런 성과를 얻어낸 것이 아니다. 단지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에 동해-일본해 병기라는 성과를 얻어낸 것이다. 즉, UN지명전문가그룹의 지명표준화 회의의 결의안 원칙과 IHO의 지명표준 결의안 (A4..2.6)의 원칙상 논란이 되는 지명이 합의되기 전까지는 논란이 되는 지명을 병기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반크의 사실 주장이 진실이라면 한국과 일본이 서로 합의를 도출하기 전까지는 이렇게 문제제기를 하여 한일 사이에 논란이 존재하는 한 동해-일본해를 병기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동해-일본해 병기라는 성과를 얻어낸 것이다.    

네티즌 단체들이 일을 해도 이렇게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도록 하는데 우리 정부와 대표단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처리하였기에 '한반도 동부 일본 서부 지역에 아무 것도 표기하지 않는 것과 일본해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중에서 하나를 찬반 투표로 결정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 나라가 항의를 했다면 동해-일본해 병행표기(최소한, 일본해를 삭제하고 아무 것도 표기하지 않기)는 'Default Value'인데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아마도 우리 나라가 동해단독표기를 주장하지만 '동해단독표기 주장을 유보하고 동해-일본해 병행표기가 되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시키지 못해서 아마도 그것이 '동해단독표기 주장을 양보하고 동해-일본해 병행표기가 되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집행위에 인식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게 아니면 일본의 무지막지한 로비에 대응을 제때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와 대표단은 IHO지명표준 결의안(A 4.2.6)과 UN지명전문가그룹의 지명표준화에 관한 UN협의회 결의안 제 20조를 근거로 해서  '동해-일본해 병행표기 (혹은 해당해역 아무 것도 표기하지 않기)'는 투표의 대상이 아니라 'Default Value'로서 자동적으로 인정되어져야 할 것임을 주장했어야 했다. 그리고 총회에서 토의되었어야할 내용 내지 투표의 대상은 '한국의 주장이 사실이냐 사실이 아니냐'임을 주장했어야 했다.

{IMAGE1_RIGHT}즉 한반도 동부 해역은 역사서와 고지도 등을 볼 때 춘추전국시대 이래로 19세기까지 수 천년동안 동북아 국가들 사이에서 동해로 불려왔다는 주장, 대영박물관 등에 있는 서양의 고지도들 에서도 동해, 한국해의 표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주장, 19세기말부터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의 결과 동해가 일본해라고 표기되기 시작했으며 1919년 국제수로회의에서 식민지조선의 의사가 배제된 상태에서 일본제국이 독자적으로 제출한 자료에 의해 1929년부터 국제적으로 일본해로 공인된 것은 절차적 불법이라는 주장,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한국을 포함한 동해관련국가들이 동해 표기 회복을 원하는 데에 반해 동해관련국가들 중에서 일본만 유일하게 일본해 표기 유지를 원하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이 지금 대립 중인 사실이 존재한다는 주장. 단일 주권이 독자적으로 인정되는 내해(內海)가 아닌 이상(남한, 북한 ,러시아, 일본 등 한반도 동부 해역 관련 4개) 당사국 합의를 배제한 일국의 일방적인 지명 제정은 현대에서는 용납되지 않고 있다는 주장...

이러한 우리의 사실주장들이 진실이냐 아니냐를 총회에서 토의하고 결정했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총회에서 우리 한국의 사실주장이 진실로 밝혀졌다면 IHO결의안, 지명표준화UN협의회 결의안 등을 근거로 해서 동해-일본해 병행표기 (혹은 일본해 삭제 후 당분간 아무 것도 표기하지 않기)는 투표할 필요도 없이 자동적으로 결정되어졌어야 할 사안이었다.

Default Value로서의 동해-일본해 병행표기, 혹은 아무 것도 표기하지 않기를 주장하지 못한 것은 우리 정부와 협상대표단의 커다란 실책이라고 할 것이다. / 논설위원

자유... 백수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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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10/02 [17:0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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