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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의 '화이또' 발언이 무슨 논란거리인가
사이버 임진왜란의 민간인 공격, 예술작품 포르노로 변질
 
황진태   기사입력  2004/01/15 [12:03]

일본인 탤런트 유민씨가 “화이또” 발언으로 ‘사이버 임진왜란’의 민간인 피해자로 구설수에 오른 듯하다. 최근에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에 편입하려는 야욕으로 인하여 가뜩이나 역사에서 만큼은 한국이 유달리 신경이 날카로워진 때에 일본이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독도망언등으로 한국인들의 속을 뒤집고 있다.

국가적 차원의 이러한 시비는 중국과 일본에게 종속된 역사적 경험이 있는 한국인들에게 사이버 임진왜란을 통해서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논란과 공격의 범주는 구별해서 임해야 하지 않을까. 전투에서 군인이 애꿎은 민간인까지 공격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이다.

▲유민    
한국에서 유민의 방송활동이 그간 한일간에 형성된 다층의 이질감을 완화하는 데 일조했다는 것은 그녀의 방송활동을 보아왔던 시청자들이라면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교류의 일익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칭찬하다가도 드라마에서 유민의 “화이또”란 발언만을 가지고서 유민을 사이버 임진왜란에서의 불만의 배출구로 만든 것은 불합리하다.

유민이 출연한 드라마 홈페이지 게시판에 한 네티즌은 “어제 사이버 임진왜란이 일어난 거 아시죠? 물론 일본인 유민 씨가 싫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유민 씨, 화이또 대신 파이팅이라고 해주세요. 파이팅이란 발음이 안 된다면 앗싸~ 좋고~ 등 얼마든지 다른 표현들이 많습니다”라는 등의 대부분 네티즌 의견에서 사이버 임진왜란과 유민을 엮어내는 억지논리가 발견된다. ‘화이또’라는 영어의 변형된 발음이나 ‘파이팅’이란 영어의 변형된 발음이나 원음인 ‘fighting’과는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주장부터가 합당하기나 한가.

이러한 ‘언어의 차이’는 ‘문화적 차이’를 대변한다. 기자는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유민이 한국 연예계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이 그만큼 문화적 포용력이 넓어졌다는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그렇다면 이러한 기자의 판단은 지금까지 오류였을까. 유민은 한일간의 문화적 교량이 되어주었는데 지금 왜 이런 교량파괴가 시도되는 걸까.

특히나 한국의 유민에 대한 이중적인 판단 잣대는 유민이 출연한 영화 신설국에서도 발견된다. 사실 신설국이란 영화는 그간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작품성 있는 영화로 평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이상하게도 대한의 남정네들의 독특한 인터넷 취향으로 인하여 신설국에서 작품성은 사라지고 포르노로 재단 된 영상만이 인터넷에 유포되면서 유민을 한갓 성적대상의 노리개로 전락, 그로 인한 그녀에게 안겨진 심적인 아픔과 한국에서의 연예활동을 불투명하게 만든 행위에 대해서 참회는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타국의 풍부한 문화마저 포르노로 압축하는 신기한 작태와 포르노로 재단한 신설국의 국내유입은 정보통신법 상 불법인 반면 유민의 ‘화이또’ 발언은 방송법에 저촉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유민의 몇마디 발언만을 가지고서 한국인들이 비판할 자격은 가히 피상적 논리로도 빈약한 것이다.

유민이 ‘화이또’를 발언했던 드라마에서 유민은 한국인도 아닌 ‘일본교환학생’으로 나오고 있음으로 일상 생활에서 미국 흑인이 흔히들 말하는 ‘웁스(oops)’나 한국인이 말하는 ‘앗싸’처럼 몸에 체화된 언어로써 ‘화이또’ 발언은 극의 리얼리티를 한층 높여주고 있다. 혹시 어색하더라도 극의 리얼리티가 떨어지더라도 극중에 일본교환학생 유민이 ‘앗싸’라는 한국토속적인 언어로 말함으로써(강요함으로써) 일본의 독도망언에 대한 심리적 보상감을 받으려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인터넷 임진왜란은 민간인을 인질로 잡은 저질 전투에 불과하다. 

또한 유민이 설사 ‘화이또’라는 발언에만 치우쳐서 그간 그녀가 한국인들이 일본인에게 갖는 문화적 이질감에 대해서 주의하며 노력했었다는 점이 맹점화 된 것도 언급해야 겠다. 한국 남정네들이 포르노로 재단했던 신설국이 곧 개봉된다. 이번에 새롭게 신설국의 포스터를 찍기 위해서 유민이 기모노를 입고 촬영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연기활동을 시작한지 3년 동안 유민은 자신의 ‘한국화’를 위해서 지금까지 한복만 입고 기모노는 단 한번도 입지 않았다고 한다.

왜 이러한 유민의 ‘한국화’를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은 매체에서 부각시키지 않은가. 혹시 한국의 네티즌들이 유민의 3년 만에 처음 입는 기모노에 대해서 만큼은 이상하게도 ‘관용적’인 것은 신설국을 포르노로 보았던 한국 남정네들의 취향이 반영된 건 아닌지 의구심이 생긴다. 그러니까 일본어 사용하는 것은 거슬리지만 눈으로 보고 즐길 것은 즐기겠다는 이중성 말이다.

▲사이버 임진왜란, 위사진 : 일본에 한싸이트가 한국을 비하하는 사진을 올린 모습, 아래: 한국에 한싸이트에서 제작된 히로시마원폭을 기념하는 우표모습
중국 역사에서 한족이 만주족에게 점령당했으나 한족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문화로 인하여 결국 만주족이 한족으로 동화되었듯이 사이버 임진왜란에서 한국이 승리하고자 한다면 문화적 포용성의 확대 밖에는 없다. 그래서 일본 교복을 입은 일본 남성의 사진을 가지고서 일본인들은 죄다 변태라느니 하는 수준 낮은 공격으로 맞받아치는 것은 신설국을 포르노로 둔갑시킨 한국 남정네들의 전적으로 볼 때 결코 유리한 게임이 아니다. 최소한의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서 비판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이버 임진왜란에 괜한 민간인을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이 없도록 배제하도록 하자. 지금 한국의 네티즌만큼이나 일본의 네티즌들도 -누가 옳고 그르던 간에- 감정이 격양된 것은 피차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본은 최소한 ‘민간인’까지 건드리지는 않는 듯하다. 얼마 전 가수 보아가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공연한 게릴라 콘서트는 순식간에 2만 명의 관객을 모으는 흡입력을 보여주었었는데 한국에서 유민의 인기도 만만치 않지만 일본에서 보아의 인기는 곧 발매될 3집 앨범의 선주문이 80만장이란 사실만 보더라도 가히 상상을 불허한다.

그런데 여기서 유민보다는 오히려 보아가 ‘한일 역사감정의 희생양’이 되기에 적당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매체를 통하여 한국에서처럼 사이버 임진왜란과 엮어서 ‘한국인’ 보아에 대한 시비는 없다. 이는 한일 간의 역사감정이 충돌하더라도 민간차원의 문화교류는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음으로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전제된 것이 아닐까.

앞으로 양국간의 상생을 위해서라도 보다 질 높은 사이버 임진왜란을 치르도록 하자. 한국이 독도를 지키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결국은 논리에서 승부가 날 것이다. 그리고 양국 국민들은 비난보다는 비판을 한일 민간외교의 두 주춧돌, 보아와 유민의 활동에 끊임없는 관심을 보여주자./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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