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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N'Roll Diary] 밴드는 가고, 음반은 꽂이에 남아 (1)
 
김수민   기사입력  2002/10/07 [20:20]
- 마루, 신조음계 -


‘내가 찍은 밴드’들이 하나둘 거친 시대의 안개에 묻혀갈 때 느낀 씁쓸함, 그리고 그 씁쓸함이 거듭될수록 이제는 무심해져가는 자신에 대한 씁쓸함. 그 달갑지 않은 감정들을 남에게 전염시키고 서로 공유하고픈, 나의 심보를 공개하고자 한다.

마루

한중 수교 10주년을 맞아 방영된 <내 사랑 링링>을 보다가, 탄성을 지른 사람이 있다면 게중 몇몇은 그룹 ‘마루’의 팬일 것이다. 극중에 등장하는 신경질적인 작곡자 역할을 맡은 사람이 다름 아닌 마루에서 보컬리스트로 활약했던 오상우였기 때문이다.

{IMAGE1_LEFT}윤도현밴드가 데뷔 당시 ‘강산에의 아류’라는 빈정거림을 받아내야 했듯, 마루도 ‘윤도현밴드의 워너비’라는 의심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내가 보기에 이유는 단 한가지다. 강산에나 윤도현밴드처럼 마루 역시 한국적 락을 표방해서, 혹은 그렇게 알려져서가 아닐까. ‘아류’니 ‘워너비’니 하는 도장들은 밴드에게 “곧 사형이 집행될 것”이라는 선고라고도 할 수 있다. 만일 그 고비를 넘기면, 좀 심하게 말해 ‘롤링스톤즈 아류 소리를 듣다가 수퍼 밴드로 떠오른’ 에어로스미스 같이 대접을 받을 수도 있다. 윤도현밴드의 경우, 강산에와 비교되는 등급을 넘어서서 오히려 강산에에게 쏟아졌던 스포트 라이트를 분할시키기까지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마루의 1집은 당시 새로이 부상하던 ‘인디’씬의 쾌거라 할 만한 수작이었다. 블루지, 펑키, 포크의 다양한 자양분을 접수했던 윤도현밴드와는 달리, 마루의 음악은 “서구 록과 한국 록”, “하드 록과 포크 록”의 사이에 존재하는 ‘마루’라는, 설명 이상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파워는 윤도현밴드에 못, 아니 안 미쳤으나, 윤도현밴드에 비해 쾌활하고 직선적인 모습을 갖추었다. 가사의 표출방식도 중력의 진지함보다는 사춘기의 발랄한 반항을 연상케 했다. <상실의 나라>는 무겁고 위협적인 트랙에 속하지만, <내가 배운 게(개?)> <꿈깨> 등은 하드하면서도 대중에게 접근하기 쉬운 노래들이었다. 노래방에도 수록되어 있는 발라드 넘버 <너와 함께 있으면2>도 빼놓을 수 없다.

단언컨대, 윤도현밴드와의 견줌이 발생한 것은, 내재적 원인보다는 외재적 근거에 있었다. 데뷔 음반에 윤도현밴드의 멤버들(유병렬, 엄태환, 윤도현)이 참여했다는 점, 록 뮤지컬 <하드 록 카페>에 윤도현밴드와 더블 캐스팅되었다는 점 등.

마루 2집도 기대를 모으기 충분한 작품이었다. 전작과 달리, 모던한 곡과 발라드 곡으로 채워진 2집은 1집에 매달렸던 팬들 일부의 변심을 댓가로, 마루의 변화와 윤도현밴드와의 차별화를 달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오상우의 보컬 스타일이 모던 록 쪽에 더 걸맞는 것으로 판단, 그 앨범을 높이 사는 편이다. PR곡으로 공중파를 탔던 <다른 고백>은 마루가 표방한 ‘커피보다 진한 중독’의 결정체다.

그러나 오상우의 탈퇴 후 마루는 ‘좀 더 지켜봐야 할’ 팀이 되었다. 다음카페의 팬클럽에는 새 멤버인 ‘소리’의 목소리가 올라왔으나 나는 판단을 유보하기로 한다.

신조음계

{IMAGE2_RIGHT}내 주위 록 동호인들 사이에서 현재 ‘가슴’의 운영자인 박준흠 씨가 편집을 맡았던 ‘서브’가 ‘핫 뮤직’을 위협했던 시절이 있었다. 가장 큰  원동력은 필진이나 필치, 내용에서 온 것이 아니라 서브가 제공했던 샘플CD의 힘이었다. 나는 그 CD의 'Naked Dance'에서 신조음계를 처음 만났다. 화려하지는 않은 연주였지만 그루브감은 순식간에 전신을 휘감았고, 어딘가 모르게 에릭 마틴을 닮은 듯한 목소리도 호소력이 강했다. 내 발걸음은 레코드 샵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나는 청음 후 약간 실망했다. 음반은 거의 발라드 음반이었다. 'Daddy' 같은 ‘좀 센’ 곡들도 있었지만 그 모양새들은 대체로 평이했고, Intro에서 쏟아져 나온 기성 명곡들의 탄력 높은 리프들(가령 딥 퍼플의 'Burn')이 암시하는 바가 본 내용에 담겨져 있지 않았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크게 알려지지 않은 팀의 흥행성 획득을 위한 전략이 아니었을까. 또한 유감스럽게도 그 음반은 데뷔작이 아니었고, ‘신인’(?)에게 걸었던 기대도 반감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음반을 ‘훌륭한 발라드 음반’이라고 정의하는 데에는 주저함이 없다. 나는 윤도현밴드의 <먼 훗날> 등이 보여주고자 했던 ‘블루지’하고 좀 더 ‘락의 본질에 가까운 발라드’를 좋아하는 편이고 신조음계의 록 발라드가 그에 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들의 발라드가 좋았다. 특히나 오버 그라운드 밴드들의 몇몇 곡들처럼 ‘엔카필’을 바탕으로 하여 락 사운드를 섞어놓은 것이 아니라서 맘에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이 밴드가 ‘제2의 부활’쯤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후에, 그 판단은 보컬 이성욱에게만 적용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이성욱은 김기영의 공석을 채우며 부활의 새로운 보컬이 되어 있었다. 역시 부활표 발라드라고 명명될 수 있는 <안녕>은 이성욱의 독특한 비음을 얻어 길거리로 방송전파로 술집으로 카페로 퍼져 나갔다.

부활의 싱어는 한번 더 교체되었고 지금은 이승철의 음색을 부활의 신곡에서 들을 수 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성욱을 생각한다. 그렇다, 나는 그의 부활 탈퇴를, 그리고 앞서 신조음계의 해체를 아쉬워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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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10/07 [20:2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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