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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밑에 장남호 같은 부하가 하나만 있어도...’
[연재소설 무궁화동산 n 안가14] “당신은 손도 참 따뜻해요.”
 
오동명   기사입력  2012/10/08 [03:02]
전형기와 노재헌은 일일회원들을 다 동원해 사원성향분류를 해나갔다. 일일회는 입사동기모임으로 출발했지만 세를 확대시키기 위해 대외명분은 사원친목을 내세워 후배들도 끌어들였다. 이름을 달고 있는 동기모임은 일일회 외에는 없었고 친목도모 이상의 욕구를 가진 후배들이 자발적으로 입회해 일일회 초창멤버보다도 더 열성을 보였다. 그 중 눈에 띄는 인물이 총무부의 장남호 과장이었다. 사원분류는 전적으로 장남호에게 맡겨졌고 군의 소·중대장인 양 온 몸을 바쳐, 특히 전형기에게 올인했다. 이번 일만이 아니었다. 전형기와 장남호의 관계는 하도 유별나서 오래 전부터 오야봉과 따까리, 또는 마님과 마당쇠로도 공공연히 불렸다. 전형기에 대한 장남호의 헌신은 충성을 넘어 굴종적이기까지 했기에 상당수 간부들에게는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내 밑에 장남호 같은 부하가 하나만 있어도...’

장남호는 자회사인 경호회사의 두 청년을 골라내 전형기에게 깍듯이 보고했다.

우선 유도대학을 나온 유도 유단자이며, 무엇보다도 최근에 안전관리부에서 이들의 비리를 조사해 회사사정위원회에 보고서를 올렸고 퇴직이 결정돼 있었다. 회장유고로 최종통보가 미뤄지고 있었다. 갓 입사한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하여 사내여성사원모임인 여우회에서 공식적으로 위원회에 상신해 조사가 이뤄졌다. 듣고 있던 전형기가 호방하게 웃어보였다.

“역시 장남호구만. 적임자를 아주 제대로 뽑아냈어. 성추행? 하하하. 장 과장, 앞으로 장 과장이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질 거야. 더 중대한 일이 많이 주어질 거라 이거지. 장남호도 이제야 어깨를 펴고 살 날이 곧 오겠구만.”

전형기는 검은 등받이 의자에서 일어나 장남호에게 다가가 양 손으로 양 어깨를 축구공 집듯이 꽉 쥐었다. 장남호는 절도 있게 목을 꺾어 핫 소리를 내며 굽실거렸다. 

엄마의 죽음을 보기엔 스무 살은 어린 나이였다. 부들부들 떨며 그칠 줄 모르는 눈물만 팔뚝으로 쓸어내던 아들을 차마 들여보낼 수 없었다. 고흥걸은 시신이 되어 돌아온 아내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도착했다. 이미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패해 있었다. 손가락을 보자 울음을 속앓이하며 가슴에 두고만 있을 순 없었다. 울컥, 울음이 목줄을 찢으며 탄식처럼 터져 나오고 말았다. 목줄은 타들어갔다. 온 몸 곳곳을 가는 바늘들이 쑤셔댔다. 따갑지 않고 뜨거웠다. 되돌려 놓지 못할 막막함은 울부짖던 울음을 흐느끼게 했다. 울음을 가슴에 다시 담아 넣었다. 기름종이는 없었다. 봉숭아물이 안개처럼 옅고 고르게 물들어 있었다.

“새 손톱이 나올 때까지 봉숭아물은 지워지지 않아요.”

손톱이 자라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던...

지나간 삶을 추억하는 것은 그 삶을 다시 한 번 사는 것과 같다고 했던가. 추억함으로서만 다시 살아야 할 여자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남이 되어 있었다. 알아볼 수 없어 다행이다 하면서 다시 치받아 올라오는 원망스런 울음을 간신히 눌렀다. 추억의 마지막 흔적은 상흔이 되어 아내의 손에 쥐어져있었다. 손으로 다가가 아내를 잡았다. 의사인지 장의사인지 흰 가운을 입은 입회인이 막았다.

“감염될 수 있습니다.”

그를 흘려보고 몸에서 조금 떨어져있던 아내의 왼손을 몸쪽으로 붙여줬다. 마지막으로 맞잡은 아내의 손, 더 잡고 있으려 해도 아내가 고흥걸의 손을 밀어냈다. 부드럽게 밀리는 아내의 손을 꽉 잡으려하면 아내는 더 손을 빼는 듯했다. 어여 올라가라던 마지막 손짓처럼. 가장 빠르게 가슴에 전해왔던 따뜻한 손길은 싸늘히 식어 차가워져도 다르지 않았다.

“손을 씻으라잖아요.”

세심사 앞에서 였다. 이혜민은 고흥걸의 첫 손짓을 피했었다.

“당신은 손도 참 따뜻해요.”

고흥걸은 저체온증이 있어 손발이 남보다 차가운 편이다. 하지만 아내는 그 손이 따뜻하다고 자주 말하곤 했다. 아내의 따뜻함은 체온이 아니었다. 정감이었다.

온 얼굴이 붉게 젖어있는 아들은 내내 울고 있었던 듯했다. 병원 밖에서 아들을 다시 보았을 땐 눈물은 그쳤지만 입을 계속 웅얼웅얼거리고 있었다.

“아빠, 자살이라니, 엄마가 무슨 이유로?”

잊혀졌던 삼년 전의 일이 불현듯 살아났다. 회장 셋째 딸의 죽음에 대해서 고흥걸이 했던 말을 아들이 똑같이 하고 있었다.

무슨 이유로.

자신에게 질문하던 고흥걸에게 들려온 대답은 자신의 무력함이었다. 알아도 어찌 할 수 없는, 알아내고서도 어찌 해볼 수 없는 삼년 전의 무력감이 다시 찾아들었다. 하지만 달랐다. 외부의 힘에 체념하고 포기해야 했던 그 때와는 달리 아내의 일은 자기 자신을 갈등과 회한으로 그 때보다 더 무력하게 만들었다.

비가 오는데 혼자 내려 보내야 한 불찰. 함께 있자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 무심. 이름을 부른 뒤 뒤돌아보는 아내를 그냥 보내던 소심. 다시 돌아서는 아내의 눈물을 보고도 닦아주지 못한 비정.

그 때 이러지만 않았더라도, 그 때 이러기만 했더라도.

아들이 절통해 하고 있는 아버지를 깨웠다.

“전혀 들으려하지 않고 이미 조사가 끝났다고 막무가내인 경찰에다가는 재조사를 요구해놨어. 아빠가 경찰서로 가봐야 해. 난 대학생이지만 아직 미성년자인데다가 엄마는 아빠가 보호자니까 경찰도 아빠가 정식으로 신청하라고 하고 있어. 가자, 어서. 지체할 일이 아냐, 아빠. 이러고만 있으면 안 돼. 엄마는... 엄마가 왜? 왜? 왜냐고 아빠!”

또 울먹거리려하다가 다시 입을 웅얼웅얼하며 눈물을 애써 누르고 있었다. 얄찍한 데가 있고 희번덕대는 젊은 형사가 무슨 근거로 타살이냐고, 이미 끝난 단순한 자살이라며 여전히 불퉁스럽게 되레 소리쳐대자, 중학교 국어선생님 얼굴을 한 수사과장이 뭔 일인데 하며 형사 등 뒤로 다가왔다. 형사를 나무랬다. 하지만 곧 똑같이 변해갔다. 더 야비했다. 국어선생 같다던 인상착의로 기만을 당한 기분마저 들었다. 죽은 정금태가 왜 떠올랐을까.

“정 그러시다면 살인유력 용의자로 남편인 선생님을 다시 조사해야 되는데...”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치 둘이 짠 듯이 형사가,

“유치장 신세를 져야죠. 다른 살인자를 찾아내기 전까지는.”

하며 고맙단 말은 못하고 더 법석대니 이 나라 민주주의 국가가 이래서 더 문제라는 말을 내깔리고는 형사실을 빠져나가버렸다. 형사실의 형사들이 깔깔깔 웃어댔다.

“어쩌겠소?”

가짜 국어선생이 소곤대듯 귀 가까이에 대고 말했다. 근거도 없이 경찰이 이래도 되는 거냐고 고동욱이 따져 물었다.

“엄마가 마지막 만난 분이 바로 아버지시고 그런 뒤 엄마는 변사체로 발견됐다고. 근거? 충분하지 않나?”

수사과장은 추리소설을 강의하고 있는 국어선생 같이 말하고 있었다.

“이건 직무...”

고흥걸이 아들의 팔을 잡았다. 이러자 가짜 국어과 과장이 이 때다 싶었는지,

“시신은 언제 가져갈 겁니까? 언제까지고 내버려둘 순 없습니다.”

“뭐라고? 내버려둔다고?”

아들이 달려들자, 가짜답게 국어선생은 말투를 백팔십도 바꿨다.

“방치만 할 수 없고 장례를 치러 안타깝게 죽음을 하신 고인의 넋이라도 편히 해드려야 하는 게 남편과 자식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이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곡해마시고.”

아들은 이거 안 되겠군, 하며 다시 입을 중얼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흥분을 참아내려 했다. 수사과장이 보고 씩 웃으며 제 오른발로 이유 없이 바닥을 긁어댔다. 숙인 고개 아래로 웃음을 계속 지어댔다.

“여기서 조사를 자꾸 기피하면 충남경찰서에 조사를 의뢰하겠소. 아버님, 가시지요!”

고동욱은 슬프게 웅얼웅얼거리며 아버지의 허리를 안았다. 고흥걸은 지피는 혐의자가 있다며 전형기의 연락처인 경리부장실 전화번호를 전형기 이름 옆에 적어 수사과장에게 전달했다.

“이 사람을 조사해보면 단서가 나올 겁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경찰서를 나오자마자 아들이 물었다.

“그 사람이 누군데? 경리부장? 회사 사람?”

서울 집에도 회사에서 사람이 찾아왔다고 했다. 고흥걸을 찾았고 안부 차 들린 것 같지는 않았다고 했다. 동네를 들쑤시고 다니며 아버지의 행적을 좇더라고 했다.

“아빠가 회사에 대한 글, 일테면 회장살해 등에 대해 글을 쓰고 있어? 동네사람들이 이렇게 알고 있던데, 그래? 그래서 시골로 내려간 거라고도 하던데, 그래?”

“아니다. 그런 일 없다. 단지 쉬러온 것뿐이다.”

이 말을 마치자마자 고흥걸은 큰 실수를 했구나, 하며 나온 경찰서로 도로 뛰어 들어갔다. 깔깔 웃어대던 형사들이 또 실실 웃어대며 과장님은 퇴근 중, 이라고 했다. 한 형사가 따라 나와 야근하고 방금 전 퇴근했다고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전해줬다. 시동을 건 차에서 차창이 내려지고 누군가 밖을 내다보고 지나쳤지만 수사과장이란 생각은 그 땐 들지 않았다. 그였다는 예감에 다시 밖으로 뛰쳐나왔다. 벌써 차는 경찰서 앞 마당을 빠져나가고 없었다. 다음 날 출근시간 전부터 수사과장을 기다려 그를 만났다. 어제 준 쪽지는 없는 것으로 하고 돌려 달라 했다. 그는 온화한 국어선생이 서정시를 학생들에게 읊어줄 때와 같은 미소를 띠고 잠시 기다리라며 과장실로 들어갔다. 이거냐? 돌려줬다. 감사하다고 하고 아내의 문제는 더 생각해보고 곧 다시 찾아오겠다고 한 후 경찰서를 나왔다.

돌려받은 종이가 복사본이라는 것을 안 때는 한참 뒤였다.

계속>>>
저자 오동명은 1957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제일기획, <국민일보>, <중앙일보> 사진기자로 근무했다. 한국기자상(출판부문, 1998년), 민주언론시민언론상(특별상, 1999년) 충남대와 전북대에서 저널리즘 강의를 했다. 현재 제주도에 살며 제주대에서 신문학원론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사진으로 세상읽기>, <부모로 산다는 것>, <자전거 텐트 싣고 규슈 한바퀴>, <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 사진집 <사랑의 승자>, <오동명의 보도사진 강의>,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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