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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 한 지역언론사의 좌절과 고난
6천여 도민이 만든 경남도민일보사의 파동을 접하며
 
정문순   기사입력  2003/11/07 [10:39]

경남도민일보는 지난 1999년 개혁적 독립 언론을 표방하며 6200여 명 도민 주주의 힘으로 창간된 지역 일간지이다. 전체 주식이 도민과 사원의 소유로 구성된 이 신문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측면에서 한때 모범적이고도 희귀한 언론의 사례로 평가된 적도 있다. 여느 신문들 특히 지역 언론들처럼, 취재 과정에서 촌지나 취재비가 오가거나 특정 단체나 인물의 광고성 기사가 실리는 일도 당연히 없다.

▲경남도민일보 인터넷판     ©경남도민일보
창간 초기부터 계도용 신문 보급의 폐지에 목청을 높이고 친일 인사의 기념관 건립에 반발한 것 등으로 자치단체로부터 미운 털이 박히다 급기야 '겁 없는' 마산시와 사장으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 것도, 당국과 좋게 지내기 일쑤인 여타의 지역 신문사라면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언론 운동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신문사 형편이 좋아질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시민 단체 간사 수준의 월급으로 이를 악물고 버텨온 기자들을 비롯한 직원들의 존재도 마치 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을 때마저 있다.  

그러나 갖은 악전고투에도 불구하고 신문을 찍는 일만으로는 제대로 기업을 꾸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배고픈 지역 신문사의 처지에서 숨통이 트일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중앙 언론이 신문 시장을 물 샐 틈 없이 틀어쥐고 있는 현실에서 개혁적 지역 언론에 대해 지역민들조차 쉽사리 호의적이지 못한데다, 관공서나 지역의 실력자들과의 누적된 불편한 관계는 광고 수주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졌다. 올해는 1억원이 넘는 창원시의 공고에서도 제외되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은 기사에서 때때로 개혁적 색깔이 후퇴하는 조짐을 부추기거나 편집에 대한 경영진의 간섭을 낳게 했고 그것은 그나마 있던 독자들마저 등을 돌리게 함으로써 경영난의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되었다. 

자본금 20여억원으로 출발한 기업이 4년도 못 되어 본전을 다 까먹고 누적 적자만 15억에 이른다면, 신문사 구성원들은 살아남기 위한 몇 가지 가능한 선택 앞에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가령 광고를 따기 위해서라도 지역의 유력자들을 비판하는 기사는 자제하고, 회사에 목소리 높인 노동자들을 대폭 줄이며 월급은 제때 주지 않거나 각자 신문 영업 수당으로 임금을 대체하게 하는 수법은, 재정의 열악함을 자본과의 결탁으로 해결하려는 구태의연한 지역 신문의 경영진이 서슴지 않는 것이다. 다른 한편 노동자들로서는 자신들에게 '이슬만 먹고' 일하게 해놓고서도 재정난 악화를 막지 못한 경영진에게 회사 운영을 전적으로 맡겨놓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부를 것임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경남도민일보노동조합 홈페이지, '개혁언론실천'과 '생활임금 쟁취'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쓰여있다.     ©경남도민일보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 노조가 임금 인상과 함께 직원들의 경영 참여와 편집권 독립을 사측에 주장한 것은 각성한 언론사의 노동자로서 가질 법한 권리 의식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못지 않게 신문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자신들 스스로에게 회사의 주체라는 책임감을 짊어지움으로써 경영난을 타개하겠다는 적극적인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 부사장과 전 경영관리국장이 중심이 된 상임이사들이 택하고자 한 방향은 뜻밖에도 토착자본과 밀착된 여타 지역신문사의 전형적인 경영 방식이었으며 그들에게 노조의 경영 참여 요구는 경영권 간섭 아니면 경영권 장악 음모일 뿐으로 받아들여졌다. '강성노조' 때문에 광고가 안 들어오니 이대로는-창간 때 표방한 개혁 언론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공공연한 주장이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신문이 도민주 신문에 값하느냐는 의문은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차돌에 바람이 들면 썩돌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오늘날 경남도민일보 사태를 불러오게 된 구 경영진의 행보에서 옛 경남매일신문 파동 때 지금의 직원들과 한솥밥을 먹은 이들로서, 창간 당시 개혁 언론 창달에 매진하겠다고 한 왕년의 결의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이들의 모습은 회사의 위기를 맞아 책임을 통감하는 것과는 반대로 오히려 자신들에게 방해가 될 만한 세력을 솎아내고 경영권 독점을 위한 계기로 십분 활용하는 악덕 경영주의 행태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노조와의 임·단협 협상 타결 조인식을 하루 앞두고, 임금 인상 요구를 들어주다가는 회사가 망한다며 이사진 총사퇴를 선언하더니 정작 자신들의 사표가 수리되자 무슨 이유에선지 돌연 부당성을 성토하며 11월 중 임시 주주 총회를 통해 몇몇 대주주의 위임을 받아 새로 이사진을 구성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중이다.

총 주식의 25% 이상을 소유한 소수의 대주주들이 구 경영진의 손을 들어줄 임시 주총이 개최될 경우 경영진을 새로이 꾸리고 재도약을 결의하려는 신문사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재앙이 올지 모른다는 것이 구성원들이 갖는 위기감이다. 그래서 법원에서 허가를 받은 주총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겠다는 내부의 격앙된 목소리도 들려온다. 도민들의 손으로 어렵사리 키워낸 신문이 제 갈 길을 가느냐 친자본으로 꺾이고 마느냐의 갈림길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파동은 다른 언론사에 의해 내부의 경영권 다툼으로 종종 비하되기도 한다. 

개혁언론으로서 경남도민일보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는 이들은 이번의 파동이 더 나은 신문으로 거듭 나기 위한 쓴 약으로 작용하는 데 그쳐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자기 자본도, 남에게 기댈 자본도 없는 개혁적 지역 언론이 오뚝이처럼 일어설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할 사명감이 이 신문에 있는 한, 경남도민일보의 위기는 이들과 경남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들의 성공과 좌절은 그대로 한국 언론사의 명암으로 남게 될 것이다. 자본과 권력에서 자유롭고 참여 경영이 실현되는 희귀한 언론사가 꽃 필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이 물과 햇빛을 주는 일이 절실하다. / 편집위원

* 필자는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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