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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통제가 ‘천안함 진실’을 침몰시켰다
[김영호 칼럼] 언론통제는 결국 의혹증폭, 추측보도, 국민불신만 초래해
 
김영호   기사입력  2010/04/12 [05:08]

 천안함 침몰 구조-수색작업을 보노라면 한마디로 참담한 느낌이다. 이 나라의 국방지휘체제, 위기관리능력이 이 정도로 엉터리인지 놀라기에 앞서 슬프다. 사고발생 보름이 지나도록 사고원인을 놓고 국방부 장관과 대변인의 입에 따라 북한소행설, 어뢰피격설, 기뢰폭파설, 암초충돌설, 선체결함설, 피로파괴설, 내부폭발설이 난무하고 있다. 국방책임자가 확실한 증거-근거도 없이 개연성-가능성을 즉흥적으로 제시하면서 일어난 사태다. 국방책임자의 오락가락, 갈팡질팡하는 발언이 신뢰추락, 정권불신으로 확산되면서 국민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앞뒤가 틀린 실체 없는 정부발표에 언론도 혼란에 빠져 원인의 개연성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추측보도를 쏟아내 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생존자는 사고현장을 지켜본 증인이다. 생존자가 단수라면 목숨이 걸린 위난상황에서 부분적인 상황만 인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생존자가 58명이니 그들의 증언을 종합해서 분석하면 사고원인의 윤곽이 드러난다. 그 중 다수가 직업군인으로서 전문적이고 다양한 승선-직무경험을 가졌다. 그들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하면 실체적 진실에 접근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생존자를 격리시켜 언론의 접근을 차단하니 진실은 없고 추측과 억지가 춤추는 상황을 연출한 꼴이다. 국방부는 생존자가 아닌 선체의 파손부위만이 진실을 알고 있는 듯이 떠드나 함수도 함미도 수십m 바다 밑에 가라앉아 말이 없다. 그런데 선체의 파손부위를 보지도 않고 사고원인을 멋대로 진단하니 신뢰추락과 함께 정권불신을 부른 것이다.

생존자는 사고원인을 여는 열쇠를 쥐고 있다. 왜 천안함과 같은 거함이 백령도 근해 1마일까지 갔는지 그들은 알고 있다. 1200t 초계함이 그곳에 간 이유를 알면 이 사고의 단초가 풀린다. 수심이 낮은 곳을 항해했으니 암초충돌설이 나온다. 해군은 사고해상의 파고가 2.5m로 높아 피항했다고 말하나 백령도 기상대의 관측은 1m이다. 생존자는 파고도 증언할 수 있다. 내부폭파이든 외부폭격이든 폭발이 있었다면 화염, 폭음, 연기, 물기둥, 기름냄새가 생긴다. 그들이 그것을 보고 들었다면 어뢰피격설, 기뢰폭파설과 함께 내부폭발설이란 가설이 성립된다. 여기에다 파편부유물, 기름띠, 화약냄새가 있었다면 무게를 더해준다. 이 부분은 구조작업을 편 인천해경 501호 승조원한테서도 부분적인 증언이 나올 수 있다. 그것도 없이 북한소행설로 연결하는 추론이 나오니 논란이 더 커진다.

 사고발생 시각도 생존자는 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국방부는 3월 26일 오후 9시 45분→9시 30분→9시 25분→9시 22분으로 수정을 거듭했다. 해경은 발생시각을 9시 15분으로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에다 9시 15분 2함대 사령부가 해군 작전사령부로 최초보고했다는 문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그럼에도 국방당국은 9시22분을 고수하고 있다. 어느 시각을 믿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 시각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의문투성이다. 이런 판에 국방당국이 TOD(열상관측장비) 동영상 녹화자료를 9시 33분 이후만 언론에 공개해 은폐의혹을 증폭시켰다. 9시 23분부터 촬영되었는데도 말이다. 여기에다 더 없다던 동영상 3개가 더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원인규명의 결정적 단서인 교신일지, 상황일지를 군사기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교전상태가 아니라면 무엇이 군사기밀인지 먼저 말해야 한다.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이런 정보공개거부가 의혹을 키워 국민의 분노를 사는 것이다. 

 해군과 국방부 관계자는 천안함을 인양한 후에 절단면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혔다. 다음 날 비난여론이 빗발치자 결정된 바 없다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왜 파손면이 아닌 절단면인가? 절단면은 끊어 내거나 잘라낸 부위를 말한다. 절단면이라면 용접부위가 산화나 피로에 의해 찢어졌다는 뜻인가? 사고원인의 실체적 진실을 알고 있는 파손부위까지 외부공개를 거부하겠다니 진실을 은폐하려는 의도이외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여론이 악화되자 열흘도 넘게 지나 마지못해 생존자 기자회견을 가졌다. 하지만 의혹해소에는 도움을 주지 못했다. 다만 물기둥, 화약냄새, 어뢰탐지가 없었다, 굉음이 두 차례 있었다는 정도의 증언만 나왔을 뿐이다. 군조직의 특성상 처음부터 수뇌부가 밝힌 내용과 배치되는 증언을 기대할 수 없는 기자회견이었다. 각본대로 움직였느니 입을 맞추었느니 하는 따위의 소리가 나오기 마련이다. 

 국방부 출입기자는 기자실과 화장실만 출입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안까지 군사기밀이라는 딱지를 붙여 대면취재, 정보공개를 거부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그 고압적 자세가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고 사실은폐, 정보공개거부를 예사로 안다. 언론을 통제의 대상으로 아는 타성적 악습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사고 직후 생존자 기자회견을 통해 생생한 증언을 가감 없이 들었다면 사고원인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고 국민불신을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구조작업은 촉각을 다투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생명을 구하는 일에는 온갖 늑장을 부리면서 생존자의 언론접촉을 막는 데는 기민했다. 결국 언론통제가 의혹증폭, 추측보도, 국민불신을 초래했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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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4/12 [05:0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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