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명절을 며칠 앞두고 내게도 뜻하지 않게 지름신이 강림하셨다. 극도의 내핍생활을 실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광화문의 교보문고에 들러야 했다. 그곳서 구매한 물품은 소녀시대 2집과 책 한 권. 책의 제목은 최근 장안의 화제를 부르고 있다는 ‘삼성을 생각한다’. 삼성 비자금의 실체와 사용처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가 쓴 책이다. 어제부터 틈틈이 읽기 시작했는데 한마디로 재미있다. 가히 ‘연예인 X파일’ 수준이다. 경제민주화 같은 복잡한 화두까지 굳이 염두에 둘 필요도 없이 재미 하나만 찾는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책일 듯싶다.
▲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밝힌 <삼성을 생각한다> © 사회정론 | | 교보문고서 책을 사는 과정에서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경험했다. 매장에 설치된 도서검색용 컴퓨터로 조회했을 때는 재고가 없다는 메시지가 떴다. 계산대에서 별도로 주문을 하라는 거였다. 책을 주문하려고 계산대에 갔더니 직원이 약간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책을 건네주는 것이었다. 누구 눈치라도 살피는 건가? 결론적으로 재고 없다는 메시지에 속지 말라는 말씀이다. 단지 서가가 아닌 계산대 옆에 쌓아놓고 판매할 뿐이다. 권력은 그 자신의 내밀함을 본질적 생명으로 삼는다. 나는 너를 볼 수 있지만, 너는 나를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 권력은 더욱더 비밀스럽고 은밀한 형태를 띠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건희 씨는 김정일과 서태지 뺨치던 특유의 신비주의 마케팅을 요즘 들어 완전히 걷어치운 인상이다. 대중 앞에 모습을 자주 드러내기 때문이다. 동계올림픽만 보면 이건 거의 노출증 환자를 연상시킨다. 심지어 그는 꼭꼭 감춰둬야 마땅할 귀한 딸자식들까지 언론매체에 서슴없이 공개하였다. 삼성은 무소불위인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이 정상적 유통경로를 밟지 못하게끔 방해할 정도로 삼성은 힘이 세다. 반면, 총수 일가 전체가 출동해 일종의 ‘감정노동’에 종사해야 할 만큼 삼성재벌의 위세는 예전과 비교해 많이 약화되었다. 이쯤해서 한 가지 의문을 던져야겠다. 삼성에서 ‘참여정부’라는 정권의 브랜드까지 받아온 친노386 정치인들은 삼성과 그 지배구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백원우 씨는 정동영 씨의 복당을 맹렬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의 말인즉슨 옳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친노386 정치인들의 행동하는 양심과 깨어 있는 시민의식은 삼성 문제에만 부딪치면 쓰고 버린 콘돔만도 못하게 흐물흐물해지고 만다. 이것이 우리가 삼성을 생각할 적마다 노무현 정권을 바늘에 꿰인 실같이 함께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진표와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반대, 한명숙과 한미FTA 강행이 그러하듯이. 혹시 책값이 없어서 그럴까? 안희정 씨든 백원우 씨든 친노386 정치인들이 책값이 모자란 탓에 삼성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내 없는 살림이나마 김용철 변호사 책 몇 권쯤은 선물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는 바이다. 더불어 소녀시대 CD도 옵션으로 끼워주겠다. 그럼에도 삼성을 생각하기가 싫다면 친노386한테 국민이 해줄 수 있는 말은 오로지 이것뿐이다. “이 철없는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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