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의언론시평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경찰곤봉에 갇힌 ‘침묵의 광장’
[김영호 칼럼] 불통만 있고 침묵 강요당하는 광화문광장은 '잔디밭' 불과
 
김영호   기사입력  2009/08/11 [16:37]

 서울광장에 이어 또 하나의 광장인 광화문광장이 생겼다. 광장이란 단순히 넓은 곳이란 뜻을 넘어 의사소통을 꾀할 수 있는 공공의 장소를 일컫는다. 그런데 서울광장이나 광화문광장은 그 뜻과는 거리가 멀다. 서울시청과 경찰청이 광장에서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어기면 무차별적으로 연행한다. 광장에서는 입은 닫고 눈만 뜨고 머물다 가라는 식이다. 이렇게 정치적 탄압을 자행하려면 광장이라고 부르지 말고 ‘서울풀밭’, ‘광화문꽃밭’ 또는 ‘광화문돌길’이라고 이름 붙였어야 옳다.

 광장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아고라(agora)라는 집회장에서 유래한다. 아고라의 어원이 ‘모이다’라는 뜻에서 나왔듯이 시민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던 열린 공간이었다. 사상적-정치적 토론을 하던 곳이기에 사람들이 쉽게 모일 수 있는 야외공간을 아고라로 삼았다. 직접민주정치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민회를 소집하는 장소였던 것이다. 바로 여기서 민주주의가 꽃피기 시작했다. 

 나라가 커지고 인구도 많아져 모두 광장에 모여서 국사를 토론하기 어려워지자 직접민주주의는 점차 간접민주주의 형태로 바뀌었다. 국민의 대표를 뽑아서 의회로 보내 거기서 국가문제를 논의하는 의회정치가 발달하게 된 것이다. 선거철에는 후보자의 정견발표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마저 도시생활이 복잡해지면서 점차 없어지는 추세다. 이제는 언론매체를 통해서 그들의 활동을 알고 정견을 듣는다. 언론이 정치와 국민을 잇는 매개자가 된 것이다.
 
▲ 야4당과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3일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시와 경찰의 '광화문광장 집회 시위 불가 원칙'에 항의하며 조례 개정안을 촉구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날의 기자회견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박원석 참여연대 사무처장 등을 강제연행했다.     © CBS노컷뉴스

 의회가 제 기능을 다 해 국민의 의사를 잘 전달한다면 국민이 굳이 광장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한다면 광장으로 모일 까닭도 없다. 의회가 국민의 대표기관이기를 포기하고 언론이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한다면 광장은 시민을 부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치권력은 시민의 자발성과 참여성을 보장하는 광장을 증오하는 속성을 지녔다. 광장이 권력독점을 위협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MB정부는 출범하자마자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에 크게 뎄다. 그 탓에 사람이 모이거나 촛불이 비치기만 해도 경기를 느끼는지 경찰의 무리가 곤봉과 방패를 들고 달려온다. 비판적 시민집회라면 미리 경찰버스로 물 샐 틈 없이 차벽을 둘러쳐서 접근조차 막고 저항하면 곤봉세례가 쏟아진다. 하지만 4-19혁명, 5-18항쟁, 6월항쟁을 겪으면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민주주의를 훈련받은 시민이기에 공력력의 폭력에 굴종을 거부한다. 

 MB정부의 국정전반에 대해 국민의 불만이 팽배하다. 출범초부터 지지율이 바닥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실이 그것을 말한다. 언론법 파동, 4대강 논란, 남북대결 조성, 용산참사, 노동-인권탄압, 서열위주 교육정책, 서민증세 등등 다수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정책을 무자비하게 밀어붙인다. 신문시장을 지배하는 친여신문들이 결속력을 과시하며 반민주적-비타협적 자세를 독려한다. 한나라당이 다수당이라는 이유로 반대당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아 의회는 타협과 대화를 통한 조정기능을 상실해버렸다. 소통의 매개가 없는 정치적 비판자-반대자가 나갈 수 있는 길은 광장 밖에 없다. 

 그러나 경찰의 곤봉이 서울광장을 봉쇄해 집회-표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박탈한다. 새로 단장한 광화문광장에서도 똑 같은 짓을 자행한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3일 그곳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노상기자회견을 갖는다는 이유로 모두 연행했다. 지난 8일(토요일) 이른 저녁 서울광장, 광화문광장 일대 여러 군데에서 ‘언론악법 원천무효’를 주장하는 1인 시위가 있었다. 그들은 팻말을 들고 있었을 뿐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경찰소대병력이 포위하고 모든 언행을 제지했다. 아니면 방패로 가려 행인들이 보지 못하도록 했다. 보다 못해 행인들이 항의했으니 마무가내였다.

 청계천에서 광화문으로 가는 길목마다 경찰이 일렬로 가로막고 있었다. 젊은 서양 남녀 대여섯 명이 지나가다 “이거 무솔리니나 스탈린이 하던 짓 아냐? 뭐 이런 나라가 있어?”라고 지기들이 끼리 하는 말이 들렸다. 아마 누구한테 왜 이러는지 들은 모양이다. 광장이라면서 경찰력이 법치라는 이름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짓을 예사로 안다. 이런 광장이라면 필요 없다. 소통은 없고 불통만 있는 곳이라면 그것은 광장이 아니다.

 열린 공간이란 의미로서 광장이 아니라 완상이나 관광을 목적으로 시가지를 조경하려고 했다면 잔디밭이나 꽃밭을 조성하지 말았어야 한다. 처음부터 잘못된 발상이다. 잔디밭이나 꽃밭은 유럽 문화를 흉내낸 것이다. 유럽 도시가 서울과 같은 위도에 있더라도 겨울이 서울보다 따듯하여 잔디가 잘 자란다. 한국은 농경국가였지만 유럽은 유목국가로서 목축업이 발달하여 풀밭 가꾸기를 좋아한다. 서울은 겨울이면 풀이 꽁꽁 얼어붙는데 무슨 잔디밭인가? 돈 장난이다. 꽃밭도 유럽의 성(城)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정원이다. 
 
▲     © 대자보

 서울은 전통미-고유미가 없는 도시다. 50년 이상 된 유명한 건축물조차 거의 없다. 콘크리트, 유리, 철골이 지은 현대식 고층건물이 불쑥불쑥 솟은 국적불명의 도시다. 서울광장에 전통정원을 가꾸었더라면 한국적 정취를 물씬 풍길 수 있었을 것이다. 전통조경을 살려 연못을 만들어 연꽃을 심고 정자와 폭포도 만들고 소나무도 심었더라면 관광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훌륭한 전통미를 살리는 관광명소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경찰이 출입을 막는 땜질 투성이 잔디밭이 무슨 매력이 있는가?

 광화문광장의 유럽식 꽃밭, 돌길, 분수가 앞으로 모습을 드러낼 광화문과 그 너머 경복궁의 전통미와 무슨 조화를 이뤄내겠는가? 그 이질성이 부조화만 연출할 것이다. 세계 어느 대도시나 나름대로 가로수가 있는 큰 길(boulevard)이 있어 그 도시의 얼굴로 자랑한다. 파리의 상제리제 하면 개선문과 함께 우람한 가로수의 행렬을 떠올린다. 서울의 그것이라면 세종로였다. 그런데 수령 100년 가까운 아름드리 은행나무들을 싹 뽑아내고 돌길, 분수, 꽃밭을 만들어 놓고 광장이라고 떠들면서 시민의 입은 닫으란다.

 서울광장이나 광화문광장이나 유럽 도시의 광장을 보고 흉내낸 모습이다. 보고 배우려면 똑똑히 보고 배워야 한다. 광장마다 시민이 모여 국사를 논의한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겉만 배우지 말고 속도 배워야 하지 않나? 경찰곤봉에 에워싸여 소통도 교감도 없고 불통만 있는 광장, 침묵을 강요당하는 광장이라면 열린 광장이 아니라 닫힌 광장이다. 광장에서 시민의 외침이 울리지 않게 하려면 정치를 잘 하라. 그러면 시민들이 그곳에 모여 메아리 없는 소리를 외칠 까닭이 없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9/08/11 [16:37]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