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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 혹은 자유의 무늬를 새겨라
[타투이스트 김건원씨 인터뷰] 문신은 예술이다
 
김홍민   기사입력  2003/10/03 [12:25]

"입영대기자가 몸에 문신을 하는 것은 병역 감면을 목적으로 신체를 훼손하는 경우에 해당(…)앞으로는 신검과정에서 문신한 사람을 가려낸 뒤 병역감면 의도를 판단해 사법당국에 고발할 계획"

지난 6월 13일 병무청의 고발로, 경찰이 타투이스트 김건원(본명 김유미)씨의 작업실을 급습, 작업 중인 김건원씨를 구속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그로부터 70일 후, 이번 사건에 대한 선거공판에서 수원지법은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죄를 적용, 김건원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하였습니다. 판결내용만 놓고 보면 김건원씨는 마치 우리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어지럽히고, 특히 군대를 기피하려는 불순한(?) 사람들에게 무분별한 시술을 해준 것처럼 보입니다.

문신이 예술인가 아닌가를 논하려거나 김건원씨가 무죄임을 입증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이같은 사태를 볼 때마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이러한 판결을 내린 검열자들의 논리, 즉 '미풍양속'과 '사회질서'라는 개념이 누구의 미풍양속이고 사회질서인가 하는 점입니다. 입대 전 자신의 몸에 문신을 하는 것이, 군대를 기피하기 위함인지 아닌지를 누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기치 않은 사건 이후 만난 김건원씨는 뜻밖에 매우 밝은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자신감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최근 다양한 영화와 뮤직비디오, 안정환이라는 걸출한 스타에 의해 이미 대중화된 문신을 다시금 음성화시키려는, 시대에 한참이나 뒤쳐진 법과 그 법을 고수하려는 분들께서는 기회가 닿으면 꼭 한번 김건원씨와 얘기를 나눠보라고 권해보고 싶습니다. 그럴 시간이 없다면 이 글을 읽어보는 건 어떨지?

다음은 2003년 8월 12일 김건원씨의 작업실에서 약 2시간에 걸쳐 나눈 대화의 기록입니다. 편의상 김건원씨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형식으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아웃사이더』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문신, 타투이스트 김건원 구명 및 타투법제화추진위원회 http://cafe.daum.net/artistgun


음…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보면

세살 때부터 방바닥에 그림을 그린 게 시작인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서 장난감 하나 없었는데, 어느 날 엄마가 색연필을 사다줬어요. 처음에는 달력이나 전단지 뒷면에 그림을 그리곤 했죠. 그것마저 없으면 방바닥이나 벽에도 그리고. 부모님이 혼내지 않으시더라구요. 바닥이나 벽에 그림 그리는 거… 다 낙서였죠, 뭐.

▲김건원씨     ©아웃사이더


중학교 때도 그림에 관심이 있었고… 이 다음에 수녀가 되서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었거든요. 가톨릭 유치원을 다녔던 영향도 있었을 거예요. 너무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 꿈을 포기한 게… 집에서 통금시간 같은 걸, 어렸을 땐 없었는데 아무래도 나이가 드니까, 그랬겠죠. 갑자기 룰을 만들어서, 뭐 일찍 들어와야 되고, 그러더라구요. 그 때 수녀라는 것도 굉장히 룰에 얽매이는, 힘든 거라는 걸 알고 나서, 아! 이거 내 갈 길이 아니다.(웃음)

문신을 처음 본 것도 그 무렵이었어요. 음악을 한참 많이 들었는데, 뮤직비디오나 음반의 재킷에 등장하는 뮤지션들의 몸에 문신이 있는 거예요. 처음엔 그게 뭔지 몰랐죠. 왜냐면 그 전에는 그 흔한 '一心'조차 볼 일이 없었으니까. 남자들처럼 사우나에 가는 것도 아니고, 또 여탕에는 문신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게 처음이었어요.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그래서 여기저기 물어보니까 그게 문신이래요. 몸에… 피부 안에 그림을 넣은 거래요.

하루는 MTV를 보는데, 몸에 문신을 한 하드록 밴드가 나오더군요. '머틀리 크루'라구… 그것두 나중에 알았지만. 보고 있으니까 막 짜릿짜릿한 게, 문신이랑 그들 음악이랑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그 사람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온몸이어도 표현하는구나. 조금 낯설긴 했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죠. 굉장히 강한, 하드한 음악을 하잖아요. 그게 몸에 있는 문신이랑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해됐죠. 고등학교 때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죠, 다른 나라에. 하지만 그걸 제 직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구요. 그냥 막연하게, 언젠가는 나도 내 몸에 문신을 해보고 싶다, 이런 호기심 정도. 그러다가 잠시 문신이 기억에서 사라졌어요. 자꾸 접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영화든, 잡지에서든 어디서도 전혀……. 고등학생이었으니까 대학에도 진학해야 되고, 졸업 후 프랑스 유학을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외국에 나가서 패션을 공부해보고 싶었죠. 저는 기본적으로 인체에 관심이 많았구, 패션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장식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방을 꾸미고, 나를 꾸미고, 친구를 꾸며주고…….

그렇게 잊고 살다가, 고등학교 딱 졸업하고 갑자기 문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직업으로까지야 생각하지 않았지만 너무너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배우겠다고 집에다 말씀드렸죠. 첨엔 엄마 아빠도 걱정을 하시구, 아무래도 당신들이 알던 세계가 아니니까. 그런데도 저를 말리지 않으셨던 이유가, 국내에는 배울 때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셨나봐요. 지가 어디서 배우겠나, 어떻게 하겠나 싶으셨을 거예요. 저도 가르쳐주는 곳를 찾았는데 없더군요.

누군가 기지촌 근처에 문신숍이 있다는 걸 알려줬어요. 부랴부랴 몇 군데 방문했죠. 저는 문신에 대해 전혀 사전지식이 없었는데, 아버님이 약사여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너무 비위생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기구도 너절하게 널려있고, 가계도 지저분하고 문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내가 배우기에 굉장히 비위생적이라는… 전문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외국에서 온 타투이스트를 만나게 됐어요. 그 때가 97년쯤.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실력이 있는 것 같고, 사실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잘 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한 중급정도. 그 때는 피부에 그림을 그린다는 게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지, 어떤 기술을 써야하는지도 모르고 있었을 때니까 그렇게 느꼈을 거예요. 제일 중요한 건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나를 가르쳐줄 수 있겠구나, 라는 확신을 준 거였죠.

그 사람한테 거액을 투자해서, 차마 집에다 손을 벌릴 수가 없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여기저기 돈을 빌려서, 배우게 됐어요. 그 때 생각을 하면, 아무래도 실력 있는 외국 타트이스트라는 소문 때문에 갱스터들도 드나들고… 아찔한 순간들도 많았죠.

아무튼 실력이 있는 건 틀림없는데 그 사람은 비즈니스적인 측면을 굉장히 강조했어요. 타투는 예술이기 이전에 비즈니스다. 저한테도 비즈니스적인 걸 강요하더군요. 예술로서보다는 어떤 기능, 상업으로서의 타투, 그런 사고방식에 저는 반감이 들어군요. 처음엔 그런가 보다 하고 배우다가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스티커도 아니고 한번 하면 평생 가는 건데 이래도 되는 걸까? 타투라는 게 이런 것이었나? 문제는 타투의 역사가 깊은 외국에도 많은 타투이스트들이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거였어요, 물론 예외도 있지만. 몇 달을 고민했죠. 

그러다 내린 결론이 뭐였냐면

문신도 예술이다. 막말로 사람 피부에 하는 일이라는 것에 대한 면죄부는 그걸 예술로 하는 길밖에 없다. 우리 나라에는 문신에 대한 역사가 없는데 외국에는 그 뿌리가 있다한들 그렇게 상업적으로 발전했다면, 후발주자로서 외국의 사례를 거울삼아 이것을 예술의 한 분야로 정착시키자. 그래, 그게 정도(正道)다.

타투는 벽에 걸었다가 싫증나면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신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내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사람들이 원하는 걸 해줬을 때, 자기 몸을 얼마나 아끼겠는가. 다른 사람들이랑 전시장에 가서 한번 봐야하는 그림도 있고, 사서 벽에 걸 그림도 있다. 타투는 많은 사람들이 보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자기가 소중한 사람, 자기를 이해한 사람들이 보고 감동할 거다. 그리고 중요한 건 죽을 때까지 자기 몸에 남아있다는 것. 딱 사람이 존재하는 만큼만 존재하는 진짜 예술이다. 그 사람이 늙을 때 같이 늙고, 아플 때 같이 아프고 썩을 때 같이 썩어서 없어져 버리는 거. 진짜 그 사람만큼의 가치를 다하다가 그 사람이 정말 예술적으로 멋있게 인생을 살면 그 문신도 사람들한테 멋있게 빛을 발하고 그 사람이 손가락질 받는 삶을 살면 아무리 멋있는 문신이라도 되게 나쁘게 인식되다가 죽는 거다.

정말 평생을 함께하는 거예요. 이것보다 더 멋진 예술은 없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가야 할 진정한 길이라는 생각이 딱 드는 순가 갑자기 모든 잡기들에 대한 미련이 사라지는 거예요. 음악을 하고 싶었던 충동. 그림에 대한 미련. 패션이든 뭐든 제가 굉장히 앞서간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모든 욕심을 버리게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내가 가야할 길은 문신이야. 이렇게 너무 강한 매력이 있는 예술이라는 걸 깨달았구요. 문신을 하면 할수록 그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됐구요.

하지만 그런 생각 때문에 비난도 많이 받았어요. 문신을 하는 다른 분들 중에는 이렇게도 말씀하세요. "이봐, 당신은 문신의 세계적인 흐름을 역행하고 있어. 당신이 그렇게 해주면 손님들이야 좋아하겠지만 오히려 나 같은 사람들은 피해를 본다구. 장사꾼으로 몰린단 말이야." 저두 제가 한 생각이 절대적이라고 보지 않아요. 그러나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아무리 타투를 가볍게 여기고, 패션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더라도 제가 시간을 투자해서 정말 문신에 대한 저의 철학들을 얘기하고 그 사람들의 몸을 아껴줬을 때 짜증은 낼지언정 결국 다들 고마워했거든요. 왜냐면 자기 몸이니까. 문신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남보다 자기 주관을 더 믿는 사람들이에요. 자기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는 사람들이죠. 다만 문신에 대해서 생각을 깊게 해볼 수 없었을 뿐.

제가 정말 그 사람들의 몸을 존중한다면 제가 생각한 것에 대해서 다 얘기해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먼저 깨달았으니까. 적어도 그 사람들이 타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줘야죠. 그렇게 얘기했을 때 그 사람이 그걸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거, 그 부분에서 제가 타투를 하는 게 예술이냐 그냥 상업이냐가 판가름 난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들 자기가 문신을 예술로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기준은 과연 뭘까? 그러다가 내린 결론이 그거예요. 정말 사람들을 위해서, 때로는 경제적인 부분이 손해가 나더라도 그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내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것. 그 사람이 만약에 '아 아직은 내가 때가 아니구나'하면서 가는 발걸음을 기분 좋게 보내줄 수 있느냐, 아님 다른 말로라도 꾀어서 자리에 앉히느냐, 하는 차이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저는 상담이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런 과정을 거쳐서 오직 그 사람만을 위한 문신을 만들죠. 타투 매거진이나 타투 플래시에 있는 똑같은 디자인, 세계의 누군가가 하고 있을 문신이 아니라 그 사람만이 가진 거면 더 좋잖아요. 오랜 설득과정을 거쳐서 자기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느껴서 돌아갔다가 다시 생각하고 일년 있다가 온 손님도 많아요. 어쨌거나 저는 그런 과정을 굉장히 중요시했고, 점점 제가 제대로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외국의 타투이스트들은 돈을 잘 번대요. 여러 번 기회가 있었지만, 제가 한국에서 타투를 하려고 결심한 데는 (너무 오바한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사명감도 있어요. 우리 나라의 타투 문화가 예술적인 면에서 수준 높고 진지하게 자리 잡으려면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된다고 봐요. 문신은 조폭이나 하는 거라는 생각들, 조폭들의 전유물이라는 선입관은 이제 버려야 돼요. 우리나라도 곧 엄청나게 퍼질 텐데 지금 누군가가 바로잡지 않으면 이거 외국이랑 똑같아지겠죠, 더 나빠지던지. 지금 상황은 타투를 자주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거기에 대한 철학이 없었기 때문에 생겨난 거 같아요. 그래서 문신이 얼마나 매력적인 장르인지 그 가치를 사람들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정착시키고 싶었죠.

물론 제가 아직 어리고 경력이 쌓인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주 깊이 있는 철학을 정립했다고 할 수는 없어요. 다만 제가 공부한 바에 따르면, 문신은 우리의 사대주의, 예컨대 신체발부 수지부모 같은 가치관과 중국처럼 죄의 형벌로 쓰이기도 하면서 오늘날 이렇게 터부시되었다고 봐요. 하지만 우리와 비슷한 문신 역사를 가진 일본만 해도 이제는 인식들이 많이 바뀌었거든요. 그 사람들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이레즈미'라는 독창적이고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 나라는 너무 척박하잖아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힘이나요. 비록 한국에서 늦게 시작했지만 외국의 사례를 교훈삼아 그런 긍정적인 부분을 더 발전시키자. 일본이나 미국의 문신 문화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지 말자. 내가 이 나라의 모든 문화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는 없지만 내가 관심 있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만큼은 해보자. 나라도 하자. 왜냐면 아무도 그렇게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래서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었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인터넷을 뒤져보니까 없더라구요. 문신 스티커 사이트라구 하나 있긴 했어요. 그런데 그것도 스티커를 만드는 게 아니라 문신을 하는 창구였어요. 예를 들어 얼마에 등 한판 떠 드립니다. 용 한 마리에 얼맙니다. 뭐 이러면서 창구로 이용되고 있더라구요.

그걸 보니 갑자기 머리가 딱딱 아파지더군요. 위생에 대한 개념은 말할 것도 없고 타투에 대한 개념이라든가, 사전지식이 너무 없는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수요만 늘리는 거는 거꾸로 가는 거다. 역행하는 거다. 그렇게 봤어요.

고민하다가… 그래, 일단 사람들에게 정보를 알리자. 문신이라는 게 왜 가치가 있는 거고, 위생이라는 게 왜 중요한 거고, 오늘날 문신의 종류가 얼마나 많고 외국에는 얼마나 오랫동안 역사가 있어왔는지 그리고 스타일도 얼마나 다양하고 테크닉도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려서 문신을 받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에게 자극이 되도록 해야겠다. 스스로 판단해서 자정이 될 수 있게끔.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사이트를 영리적으로 운영할 수가 없더라구요. 왜냐면 거기서 제가 장사를 해버리면 설득력이 없어지잖아요. 장삿속으로밖에 안 보이니까. 당연히 그 부분은 별로 고민하지 않고 바로 포기했어요. 왜냐면 정말 진정한 예술가한테는 돈이 따라오는 시대라고 생각하거든요.(웃음) 요즘에는 진짜 한길만 파면 빛을 보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마침 저희 고모가 외국어대학교 일어 교수님이셨어요. 그 분께 아르바이트생을 좀 구해달라고 했죠. 외국에는 문신의 역사에 관한 자료들이 많은데 그걸 번역하기 위해서 그 당시에 큰 돈을 주고(그 분께는 작은 돈이었겠지만, 저한테는 되게 큰 돈이었거든요) 번역해서 당시에는 거의 유일하게 제대로 된 문신의 역사 관련 자료를 제 사이트에 올렸어요. 다음 같은 포탈사이트에서도 쓰겠다고 연락오고, 두루넷에서도 정보 좀 써도 되냐고 연락오고 인터넷에서 많은 사이트들이 연락을 하더군요. 그래서 그 때 돈을 받을까 하다가, 그러지 말자. 그냥 저희 사이트에서 퍼왔다는 것만 공지해 달라고 했죠. 이후에 사이트들이 한두 개씩 늘어나더라구요. 관심은 있었지만 다들 엄두를 못 내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때 더욱 실감했죠. 중요한 거는 내가 실력을 쌓아갈 때구나. 그 당시에는 전혀 법에 대해서 몰랐어요. 불법인지 합법인지도 잘 몰랐구요. 이런 문화 자체가 아예 없었기 때문에 인식 자체를 바꾸면서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 된다는 것만 생각했었거든요. 그렇다면 지금은 섣불리 움직이기보다 제대로 실력을 쌓고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게 제일 중요한 거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프랑스로 갔어요. 물론 혼자였죠. '어스트갈리츠'에서 열리는 '살롱 드 타투'에 가서 보니까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입만 딱 벌어지고. 하루 종일 거기 앉아서 타투이스트들이 작업하는 걸 구경했어요.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구요. 훌륭한 타투이스트들도 많이 만났죠. 제가 작업한 사진을 들고 갔는데 그 친구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심지어 제 작품을 본 한 손님이 저한테 의뢰도 했어요. 얼마나 기뻤던지. (제가 배우려고 갔기 때문에 기계를 전혀 안 가지고 갔어요. 보통은 기계를 가지고 가서 문신을 그려주고 그 돈으로 여행 다니고 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사정을 설명해줬더니 옆에서 듣고 있던 타투이스트들이 기꺼이 기계를 저한테 빌려주는 거예요. 자기 도구 쓰라고. 굉장히 이례적인 일인데… 자신의 기계를 빌려주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그 사람에게 작품을 해줬는데, 나중에 기계 빌려준 친구는 돈도 안 받는 거예요.

그렇게 한 20일 체류하다가 한국에 왔어요. 뭐, 20일쯤 해서 얼마나 늘었겠나, 하는 생각으로 왔는데 막상 와서 작품을 해보니 속도가 굉장히 빨라져 있더라구요. 지금 이 숍은 프랑스 가기 바로 전에 옮긴 거예요, 2000년도에. 더 쾌적한 환경으로 계속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서. 저는 사실 돈을 거의 못 벌어요. 돈만 벌면 다 재투자하거든요. 더 좋은 잉크가 있으면 원래 쓰던 거 다 안 썼어도 새 거를 사야 돼. 왜냐면 사람 몸에 들어가는 거니까. 보통은 잉크 사면 마지막까지 그냥 써버리거든요. 저는 그렇게 안 해요. 그러니까 더 알맞은 환경을 만들 수 있게 재투자 하는 게 저한텐 중요하거든요.

프랑스에 갔다 온 후에는 인터넷에서 외국 사이트랑 잡지 보면서 더 실력 있는 타투이스트를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던 와중에 일본 요코하마의 '엘로우 블레이즈'라는 타투숍을 운영하는 '시게'를 알게 됐죠. 너무너무 매력적이더라구요. 자료를 찾아보니 일본의 최고 실력자라고 해도 될 만큼 훌륭한 사람이었어요. 제가 보기에는 그랬어요. 작품을 잘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너무 성실한 거 있잖아요. 저는 그걸 제일로 치거든요. 문신하는 사람의 테크닉보다, 테크닉도 성실하면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는 거지만, 일단 작건 크건 스타일이 다르건 어떻건 간에 작품 하나하나에 충실해야죠. 일단 저랑 너무 잘 맞을 것 같아서 무슨 일이 있어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차피 일본은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구요. 일본은 타투 수준이 굉장히 높으니까.

그래서 편지를 썼죠, 영어로. 그동안 타투이스트들을 찾아다니느라 외국을 돌아다녀서 그런지 영어가 조금 늘었거든요. 내용은 뭐, 나 일본에 갈 건데 꼭 만나고 싶다, 인터넷을 통해 당신의 작품을 봤다, 연락달라, 그런 편지였죠. 며칠 후에 답장이 왔는데, 언제든지 웰컴이다, 우리 숍은 여기에 있다, 그러더군요. 너무 기뻐서 바로 비행기 날짜를 잡았어요. 그리고 나서 가겠다고 편지를 보냈는데 거의 가기 바로 전날 답장이 왔어요. 미안한데 너무 바쁘니까 나중에 오면 안 되겠느냐고. 고민이 됐지만, 어차피 시게 아니어도 일본에는 멋진 타투숍이 많으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기로 결정했어요. 그리고 짧은 시간이라도 시게를 만나보리라. 이 사람은 정말 바쁜 타투이스튼데 지금 바빠서 못 만나면 나중에는 더 바빠질 거고 그 때 가면 답장도 안 해 줄 거다, 그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답장에다가 솔직히 겸사겸사 가는 건데 못 만나도 상관없다, 괜찮다면 잠깐만 봐도 된다, 나에 대해서 부담 갖지 마라, 이렇게 보냈어요. 그랬더니 그게 아니라 내가 스튜디오에 없다, 당신을 보살펴줄 사람도 없다, 그러면서 오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너 없어도 된다, 그게 인연인 거지, 나중에 볼 날이 있을 거다, 나는 당신의 숍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인연이 된다면 보는 거고 안 된다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사실 거기 나는 일본이라는 데를 처음 가본다, 반드시 가겠다.

그리고 일본으로 떠났어요. 겨우 물어물어 숍에 도착했더니 "엘로 부레이즈 데쓰" 그러잖아요. 그 때야 비로소 내가 일본에 왔구나 라는 게 실감이 나더군요. 그래서 "하이 잇쯔 건상 후 프럼 코리아" 라고 했더니 거기 있는 프렌티스가 쳐다보면서 씩 웃어요. "시게, 쉬 케임". 시게가 일하다가 저를 쳐다보더니 굉장히 황당해 하면서 장갑을 벗으려고 해요. 타투할 때는 장갑을 끼고 하거든요, 소독장갑. 그래서 제가 벗을 필요 없다고. 왜냐면 일의 진행과정을 아니까. 일 하다보면 브레이크 타임이 있거든요. 거기 앉아서 책 좀 보고 있겠다고 그랬더니, 괜찮겠냐고, 계속 괜찮겠냐고 정중하게 물어보더라구요. 앉아있으니까 '치사또'라고, 부인이 차도 주고 말도 걸어주고 참 친절하게 대해줘요. 숍 매니저도 겸하고 있다고 했어요. 치사또랑 너무 대화가 잘 되구… 제가 가져간 포트폴리오를 보더니, 시게 너 어렸을 때랑 너무 비슷한 거 많다면서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원래 제 작업실은 오픈해 있는데 웬만한 타투숍 가면 다 막혀 있거든요. 약간 거리를 두죠. 그래서 타투하는 사람 작업을 보는 거나 가까이 가는 게 어떻게 보면 실례예요. 그래서 밖에 있는데 치사또가, 시게 가까이 가서 하는 거 보라고, 공부하라고 이러는 거예요. 그 안에 들어와서 보라는 게 어떤 의미겠어요.

쉬는 시간에 작품을 보더니 시게도 너무 좋아하더라구요. 처음에 갈 때만 해도 잠깐 얘기만 하려고 그랬는데 나만 괜찮으면 일 끝나고 같이 밥을 먹으면 어떻겠네요. 그리고 잠도 자기 집에서 자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너무 영광이죠. 일본 사람들은 원래 자기 집에 손님을 청하지 않는다면서요. 그래서 나중에 끝나고 밥 먹는데 나보고 너무 용감하고 작품도 멋지다고 굉장히 좋아해요. 그렇게 친구가 됐어요. 게스트 타투이스트로 같이 일해보는 건 어떠냐는 제안도 받고. 그렇게 한 열흘 정도 일본에서 체류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영화 작업은 그 사이사이에 했어요. <조폭 마누라> 할 때는 일본 가기 전이에요. 프랑스 가기도 전이지요. 일본 갔다와서 영화 작업이 또 들어왔어요. 류승범씨랑 안성기씨 나오는 영화였는데, 일본에 다시 가야했기 때문에 못 했어요.

실은 6월 14일날

일본에 가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13일에 일이 터진 거죠. 전 첨에 기잔줄 알았어요. 그냥 쓱 들어오더니 사진을 찍잖아요, 아무 말도 안 하고 영장도 없이. 「경향신문」이랑 인터뷰가 있었기 때문에 기자인가 했는데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타투하러 온 사람 같지도 않고… 누구냐고 물었더니, "형삽니다" 하더군요. 뚱뚱한 형사가 빼빼마른 형사한테 "압수해" "연행해" 하니까 저는 영문도 모르고… 사실 법적인 사안도 전혀 몰랐죠, 법률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하나는 알고 있었어요. 부작용이 발생하거나 문제가 생겨서… 신고가 들어가면 의료법 위반으로 간주되어진다는 거요. 그래서 저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했죠. 왜냐면 철저하게 준비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있을 일이 없고, 미리 충분한 상담을 하니까.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공개적으로 영화 작업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타투이스트라고 매체에 알렸죠. 만약 그런 현실을 알았다면… 무서워서 못했을 거예요. 암튼 영장 보여달라고 그랬더니 무조건 가보면 안대요, '긴급체포'라고. 긴급체포는 또 무슨 소리야, 영장을 보여줘야지. 그래서 제가 미란다 원칙 읽어달라고 그러니까 무조건 가보면 안다고 막 짜증을 내더니 막무가내로 데리고 가데요. 그 날 제 친구가 놀러 왔는데 그 친구도 여기서 같이 일하는 공범으로 몰렸어요. 수갑이 채워진 채 차에 탔는데, 안에 어떤 사람이 수갑을 차고 앉아있다가 고개를 딱 들어요. 낯이 익더라구요. 제가 몇 년 전에 문신을 해줬던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이 절 보자마자 하는 얘기가 "저 누나한테 군대 뺄려구 문신한 거 아니라고 얘기했어요, 누나 상관없다고"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사건의 전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더군요.

원래 그 사람이 3년 전에 저한테 문신을 받으러 왔었는데 너무 즉흥적인 거 같아서 돌려보냈어요. 너무 생각이 앞서는 거 같다. 그랬는데 1년이 지나고… 자기가 그동안 많이 생각을 했는데 문신을 꼭 하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다 큰 어른이고 또 1년 동안 생각을 했다니까 해 주기로 했죠. 그래서 너만을 위한 걸 만들자. 제가 이틀 밤을 세고 디자인을 해서 시술을 해줬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그 사람은 공익근무를 하다가 재조사를 받으면서 구속이 됐다고 하대요. 공익에서 복무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유가 문신이었던 사람들은 전부 재조사를 받았대요. 저는 지금도 솔직히 그 친구가 군대 뺄려고 문신을 했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웃기는 게… (경찰서에서 진술할 때) 그 친구는 그냥 좋아서 문신을 했다고 하는데도 "너 군대 뺄려고 했잖아" 하면서 자꾸 밀어붙이는 거예요. 저 같은 경우도 정말 황당한 게 진술을 하는데 "자격증 없이 불법시술 한 거지?" 이래요. 그래서 "자격증을 정말 받고 싶은데 자격증을 주는 제도가 없어서 못 받았습니다"하니까 "없이 한 거잖아, 예/아니오로 대답해" 그러길래 우리 나라 법에 진술할 때 예 아니오로 대답해야만 하는 법이 있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차피 이렇게 해봐야 검사들이 다 읽어보지도 않고 이렇게 해봤자 언제 다하냐고 해요, 진술을. 오늘 이거 다 해야 되는데, 불필요한 거니까 빨리 하고 가는 게 유리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나를 도와줄 거는 문서밖에 없다, 문서로 남는 거밖에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게 없다,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무죄가 될지 결정하는 게 이거 아니냐, 질문 자체가 모순인데 그걸 어떻게 대답하냐, 받고 싶었지만 못 받았는데 그걸 어떻게 하냐, 내가 그것 때문에 병원에서도 일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도대체 자격증을 주는 데가 없으니까 그렇게라도 해서 경력을 인정받고 싶었던 거다. 그런 얘기 하고, 아저씨 너무 피곤하시겠지만 토씨 하나 빼지 말고 다 적어달라고 했어요.

구속이 돼 있었을 당시에는 앞이 캄캄하고 믿기지가 않았어요. 물론 시련을 각오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이 정도까진 줄은 몰랐죠. 이젠 괜찮아요. 현실이 이렇다면 이거 내가 넘어야할 산인 거다. 근데 가장 지혜롭게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생각을 했더니, 여기서 나 잘났다고 하기보다는 (왜냐하면 내가 사는 곳은 한국이고 한국 사람에게 타투 문화를 알리려고 하는 거니까) 모르는 걸 알게 해줘야겠다. 모르니까, 아니야, 라고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문화 행사라든가, 타투 전시회, 이런 걸 끊임없이 하면서 인식을 바꿔야겠다, 하고 마음먹었어요. 근데 좀 답답하긴 해요.(웃음) 그렇게 해야 될 앞날이 고달픈 거 있잖아요. 판사한테 진술할 때도 그렇게 얘기했어요. 나는 이런 마음으로 이렇게 해왔고, 당연히 영리도 목적이지만 영리보다 중요한 건 내 스스로 한국의 타투이스트로서 자랑스럽게 여기는 거다.

중요한 건, 어떤 분이 말씀하셨듯이,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 이걸 빌미로 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한테 타투라는 문화에 대해서 좋은 인식을 심어주는가에 달려 있다고 봐요.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타투가 긍정적인 문화로써 자리 잡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만드는 게 일단 일차적인 계획이에요. 물론 재판 결과가 좋아야 하겠지만.(웃음)

* 본문은 격월간『아웃사이더』15호(http://eoutsider.co.kr)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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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10/03 [12:2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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