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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과 인위적 우상 '노무현'
독단에 빠진 신당론자와 인위적 우상론자들
 
시민25   기사입력  2003/09/22 [08:34]

개혁으로 미화된 신당

 

 개혁이란 변화를 속성으로 한다. 그리고 개혁이란 과거의 역사적 성과나 폐단을 전제한다.  온전히 과거와 절연된 개혁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노무현대통령이나 신당론자들은 스스로 변화를 주창하면서 화석같은 존재인양  모태인 민주당을 반개혁세력이라고 매도하며 신당을 감행했다. 민주당과 동색인 신당론자들은 자신들만 갑자기 열정적 개혁론자라 독선을 피우더니,  낯 부끄럽게도 새까만 기회주의자들과 이념적 간통을 저지르면서 낭만적 자유주의자 유시민(외부세력)의 코드에 감전되어 신당행을 강행하고 여전히 나는 순백의 개혁주의자!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 된다. 

 

대단히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지닌 신당이 탄생한 것이다. 모당인 민주당내의 동료들 주장도 극복하지 못한 인간들이 광범위한 스펙트럼내의 이질적 인간들과는 교감이 이뤄졌다는 소리다. 이런 독단과 궤변속에서 개혁을 주장하는 신당론자들이 어떻게 화합하고 부정적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사이비 즉, 참칭 개혁론자라 할 수 있다.

 

기득권을 고집한다고 비난하며  '구주류=민주당=반개혁세력'이라는 도그마속에서,  민주당의 수많은 당무회의중 오직 한개의 의사절차를 놓고 '민주당은 사망했다'라고 하는 저돌적인 정략배도 문제이고, 정당의 인적요소인 일부 의원(구주류)이 곧 민주당이라는 것도 부당주연의 오류에 빠진 구주류를 배제하기 위한 한갓 빌미찾기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은 끊임없이 자기혁신을 시도해 왔고 그것이 두번의 집권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내게 된 것이다.  신당론자들이 외치는 인적청산이란 유권자의 신성불가침한 고유 권리를  참칭하는 것이며, 진정한 정치개혁이란 제도만의 개혁이 아니라 국민정치의식의 제고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다 당연하다.  나아가 조령모개식으로 정당 간판을 바꾸는 것 또한 정치개혁의 대상이어야 한다. 이념이나 개혁노선이 하루아침에 급조되는 것도 아니다. 즉, 신당은 모당인 민주당의 이념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계까지 보이고 있다.

 

고질적인 언론의 보도태도 - 시장의 우상

 

기득권청산을 부르짖는 신당론자들은 온통 '기득권'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편향되어 있다.  기득권이란 무엇인가?  과연 부정적 개념인가?  기득권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특정한 자연인, 법인, 국가가 정당한 절차를 밟아 이미 차지한 권리'를 말하며 긍정적인 개념인 것이다. 즉 '이미 가진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황당하게도 '기득권=부정'이라고 마타도어되어 마치 기득권을 누리는 것이 곧 ‘부정’인양 호도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실존적 세계에서 기득권을 갖지 않는 인간이란 전무하다. 노무현이나 유시민이나 마찬가지며 심지어 갓난아기라도 부모의 기득권에 영향을 받는 것이 실존의 세계인 것이다. 그 누구도 자신의 과거와 단절된 현재의 미시적 실체만으로 평가될 수 없다. 그렇다면 신당론자들은 기득권이 없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한 솥밥을 먹던 동료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당원들은 기득권이 왜 마타도어되어 비난을 당해야 하는지 구체적 증거를 요구하여 신당론자들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될 것 같다.

 

문제는 비난의 대상인 기득권이 불법부당하게 획득하여 유지하고 있는가를 따져보아야 하는 것이다. 필자가 전에 남프라이즈, 동프라이즈, 서프라이즈, 시대소리, 진보누리등(가나다순) 정치웹사이트에 구주류의원들의 부정이나 비리를 댓글로 달아달라는 글을 게시한 적이 있었다. 상당한 시간후에도 아무런 댓글이 없었다.  잘못된 마타도어로 구주류가 애궂은 피해를 당한 억울한 사례인 것이다. 이런 비난은 또한 그들을 선출해 준 유권자를 욕보이는 명예훼손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것이 정치개혁을 부르짖는 신당론자들의 논리이고 정체인 것이다.  정치개혁은 유권자의 의식의 전향적 변화가 동시에 수반되어야 한다.  

 

 오히려 소외계층의 희생위에 방치되고 있는 영남패권이란 기득권이 성토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극복해야 될 대상인데도 불구하고, 신당론자들은 동료들을 마타도어하고 성토의 대상인 기회주의자들과 몸을 섞은 것이다.

 

기성언론의 부적절한 표현과 이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네티즌의 글쓰기도 문제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기득권을 유지 또는 조장하려는 수구언론과, 모든 것을 노무현대통령위주로 재단하고 정당화하려는 광신 노빠(맹목적 노무현주의자)들에게서 볼 수 있다.

 

이런 또다른 예가 '지구당제도', '지역주의', '님비'등의 표현에서도 발견된다.  지구당운영면에서 참여경선을 하든, 기존의 제도를 유지하든 어떤 것이 절대선이고 개혁이랄 수가 없는 것이다. 참여경선을 하더라도 금력이나 조직력 혹은 동원력이란 기득권을 바탕으로 추진되는 것이고,  또한 성질상 기득권을 전적으로 배제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다. 

 

 아예 정당제도나 지구당제도를 없애버리더라도 기득권의 절대적 배제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유권자는 기득권(과거나 경력)을 가진 후보를 보고 선택하는 것이지 단순하게 민주당후보라서 표를 주거나 무조건 표를 주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이 옳다는 것은 간단하게 입증이 가능하다.  공천된 민주당후보가 신당론자들의 말하는 호남지역에서 곧 당선이라는 결과를 낳지도 않았으며, 비호남의 민주당소속 의원들이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나아가 신참정치인을 위해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취지라면 신참정치인들에게 불리하지 않게 선거법 자체를 개정해야 근본적인 것이다. 사실 현행선거법은 신참정치지망생중 무소속 그리고 경제력이 약한 이들에게 진입장벽을 갖고 있다고 판단된다.

 

민주당을 호남지역당이라고 매도하며 전국정당화를 주장하는 것도 마타도어인것이다.  결국 새로운 권력에 줄서기를 했고 그들은 기회주의자이며 정치개혁을 외치면서 스스로 구태를 재연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많은 국민들의 정서도 이러할 것이다. 

지역주의란 개념의 사용도 그러한 예의 하나다.  인간이란 누구나 실존의 세계에서 궁극적으로는 자기본위나 이기주의자일 뿐이다. 다만 그러한 지역주의나 이기주의가 타인의 희생을 담보로 주장되어지고 소외지역의 인권을 유린하려는 극단적 지역주의나 극단적 이기주의가 문제인 것이다.

 

위도 핵폐기장 시비도 그렇다. 10년이상이나 지루하게 끌어온 국가적 현안인데 비민주적인 강행에 부안군민들이 외롭게 항쟁하는 자체를 지역이기주의라고 하는 태도는 우리 존재에 대한 지극히 피상적인 성찰에서 비롯되는 경박한 인식에 터 잡고 있는 것이다.

 

 '신당'이란 단어에도 이런 유사한 편향된 편견이 개재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물론 미묘한 차이가 있다. 세계최초, 최첨단 이러한 어휘는 모두 앞서 말한 부정적 편향과는 달리 긍정적 방향으로 편향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F.베이컨이 말한 시장의 우상에 갇혀 있는 것이다.

 

 님비현상에 대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말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러한 혐오시설을 유치를 감수하라고 말하려면 비효용(고통)에 상응하는 보상을 당연히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위적인 평등이라는 이념은 유린되어 처참하게 공권력과 기득권앞에 나뒹구는 찬밥신세가 되는 것이다. 이런 비민주적 사태에는 신당론자들은 왜 초연해 있는가?  과문한 때문인지 몰라도 낭만적 자유주의자인 유시민에게도 이런 비난을 할 수 있다. 아직 그의 글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대정신

 

지금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언론매체의 부정적인 역할및 언론의 쇄신문제도 중대현안이지만 '시대정신'이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이념대립의 분단체제하에서 우리의 '절대절명의 제1의 시대정신'은 한민족의 생존이다. 즉,  평화적인 민족공존을 거부하는 냉전수구세력의 망동을 제압하면서 대북포용정책인 햇볕정책의 성실한 계승과 적극적 추진인 것이다.  어느 누구도 생명을 잃고는 의미나 가치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햇볕정책의 자주성의 퇴조를 초래한 노무현정권의 패배주의적 실리주의 외교정책은 시대정신에 반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다음으로 남한내의 시대정신이라면 패배주의를 기초로 극단적 이기주의를 추구하는 권력추종형 기회주의자들인 친일부역배들의 올바른 역사적 평가와 그 잔재의 청산이다. 이들의 잘못된 작태를 바로잡아 역사를 바로세우는 것이 민족정기를 곧추 세우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의 당위성은 비단 그들의 행위가 반민족적이라는 것, 동포의 희생을 바탕으로 일신의 영달만을 도모했다는 비인도적인 파렴치한 행동의 응징이라는 과거지향적인 것만이 아니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 준동하고 있는 기회주의자들을 응징하여 일신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잘못된 행태를 방지하려는 미래지향적인 취지가 있는 것이며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의 몫을 제대로 돌려주는 건전한 사회를 만드는 개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극단적 이기주의인 기회주의자들과 같은 부류인 극단적 지역이기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패권주의 특히 영남패권주의와 낡고 폐쇄적인 권위주의의 청산이 곧 시대정신인 것이다.

 

이러한 중차대한 시대정신에 대해서 소위 지식인이나 절대선을 추구하는 종교인들 나아가 가장 대국민적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들조차 피상적인 인식에 머무르고 있고 외면당하는 우울한 오늘인 것이다. 

 

사실 노무현후보가 대통령이 되면서 기대가 컸었다. 그러나 구체적 국정수행을 지켜보면서 점차 실망으로 변해 버렸다.


최근에 노무현대통령이 펴낸 책을 읽어보았다. 도대체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서이다.  '94년에 '도서출판 새터'에서 발행된 《여보 나좀 도와줘》의 내용중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부산에서 출마해야 하는 이유는,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려고 지역구까지 옮기는 초라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도리를 따지기 이전에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책의 내용은 실존적 존재로서 인간 노무현의 자아의 발전을 살필 수 있었지만 지역주의 청산에 대한 진지한 이해나 일관되고 체계적이며 확고한 철학도 발견해 낼 수 없었다. 물론 인간이란 발전하는 존재므로 미래전향적으로 인간 노무현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해도 지금의 국정수행태도를 보면 그때의 피상적인 지역주의의 이해에 그치고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실망스럽기 그지 없는 것이다.

 

▲서프필진의 게시글에 흔히 볼 수 있는 등수놀이 댓글들     ©시민25

노무현후보의 당선직후에 노사모해체건이 이슈가 된 것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의 노사모가 대선기간에 열광적 지지와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긍정적인 역할을 익히 알고 있지만,  일부 노사모가 이끄는 정치웹진인 서프라이즈를 지켜보면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온통 인위적인 카리스마를 양산하기 위해 광분하고 있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필자가 과문한지 몰라도 서프의 필진들이 게시한 글의 댓글에만 유독 1등, 2등, 3등... 이런 황당한 등수놀이가 벌어지고 있다. 그들은 눈을 감고 귀를 막아버린 것이 아닌가?!  시대에 역행하는 퇴영적 현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맺는 말 

 

노무현대통령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지금의 현실인식이 절대선이라거나 스스로 신적존재라고 오만한 과신으로 분열적 정치개혁을 강행하려는 독선을 삼가라고 부탁하고 싶은 것이다.  왜냐하면 수천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대통령의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낭만적이상론에 치우쳐 개혁세력의 분열을 획책했다는 준엄한 국민들의 목소리에 겸허하게 귀 기울일 필요가 있으며 우리세대와 미래의 세대로부터 들려오는 절규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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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9/22 [08:3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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