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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색 장기화에 깊어지는 통일부의 '고민'
 
윤석제   기사입력  2008/04/28 [19:40]
"여러가지로 고민 중에 있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위해 정부가 준비중인 방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통일부 간부들이 한결같이 내 놓는 대답이다.
 
통일부 관료들은 또, "북측에서 연일 계속 우리측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대화를 하자고 먼저 제안하기도 어려운 일"이라며 북한의 비난 강도가 좀 줄어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도 덧붙이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고민을 하면서도 해법을 내 놓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남북 관계는 더욱 더 경색돼 가고 있다.
 
당초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일본 방문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을 풀고 대화 분위기로 전환되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컸으나 대통령의 느닷없는 '연락 사무소 설치 제안'이라는 미국발 발언이 나온 뒤 지난 주말 북한이 직접적인 거부 의사를 밝힘에 따라 기대했던 분위기 전환은 당분간 어렵게 됐다.
 
이런 가운데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언제라도 북한과 대화가 재개될 경우 곧바로 정책이 구체화 될 수 있도록 조직의 가동 상태를 항상 80% 이상 수준에서 유지하라고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이때문인지 매주 토요일 통일부는 장.차관과 국장급 간부들이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 모여 이른바 "브레인 스톰"이라는 전략회의를 진행하는 등 휴일도 없이 나름대로 열심히 '고민' 중에 있다.
 
덕분에 각 국.실별 과장과 서기관 이상 대부분의 간부들은 일이 있던 없던 휴일에도 알아서 출근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정작 통일부는 '고민에 고민'만을 할 뿐 남북관계를 풀 만한 가시적인 정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통일부가 실체는 있으나 제 구실을 못하는 주요 원인은 내부적인 요인과 외부적인 요인이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조직 해체라는 위기에 놓인바 있었던 통일부는 내부적으로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다"라는 상황인식이 팽배해있다.
 
'햇볕정책'과 '포용정책' 분위기 속에서 마음껏 정책을 펼칠 수 있었던 지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때와는 분위기가 달라져도 너무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무엇보다 몸 조심이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통일부 관료들은 지금의 통일부 위상을 "중환자실에서 회복실로 옮겨진 환자상태"라고 인식하고 있다.
 
가까스로 소생한 환자가 '죽'대신에 딱딱한 '고기'를 먹겠다고 덤빌 경우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질 수 있어 몸조심을 하자는 판단이다.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경색 국면을 풀 돌파구를 제시하고 싶어도 먼저 움직일 수가 없다는 게 통일부의 속앓이다.
 
이와관련해 통일부 주변에서는 불가피한 때를 제외하고는 외부 노출을 삼간채 계속 잠수중인 김하중 장관의 수면위 부상이 언제일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김 장관의 부상은 정부내에서 뭔가 현재의 대북경색 국면을 풀기위한 실마리가 마련됐음을 뜻하는 신호라는 희망섞인 기대감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김 장관이 물 위로 언제 모습을 드러낼 지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통일부가 스스로 몸 조심을 할 수 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남북문제에 대한 청와대측의 생각이나 분위기가 좀처럼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연락 사무소 설치를 제안하면서 북한과 건전한 대화를 해 나갈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통일부 마져 발표를 보고서야 알게된 '연락 사무소 설치'제안에 대해 대북전문가들은 성사가 될 수만 있다면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풀 수 있는 제안이지만, 일에는 단계가 있다며 성사 가능성에 대해서는 정작 회의적인 분석을 내 놓은바 있다.
 
그리고 결과는 예상했던대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북한이 강도높게 비난하면서 제안을 정면 거부해 버렸다.
 
복잡하게 얼키고 설킨 실타래의 단초를 풀 가능성을 던져주기 보다는 오히려 남북 경색 장기화의 빌미를 제공하는 구실만 하나 더 늘려준 셈이 됐다. 올해 5월은 남북문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서해안의 꽃게잡이 철이 다가오고 있다. 화해무드가 조성됐던 상황에서도 발생했던 서해 무력충돌이 '선제 공격' 운운하며 양측 고위 군 관계자들이 독설을 퍼부은 지금의 분위기에서 아무일 없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정부 당국이 바라고 있다면 이는 안일한 상황인식이다.
 
특히, 남북이 자체 어선에 대해서는 철저히 통제를 한다고 해도 몰려드는 꽃게를 따라 중국의 어선이 양측의 접경지역으로 접근해 올 경우 이를 제지하고 감시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오인에 의한 우발적 충돌 가능성은 항상 잠재돼 있다.
 
5월은 또 악화되고 있는 북한의 식량사정을 우리가 실질적으로 돕고 나섬으로써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느냐를 결정 지을 중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국제기구와 우리 정부 당국, 그리고 대북 전문가들에 따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북한에서 식량 배급에 어려움이 발생하는 등 북한 식량 사정이 심각해 질 수 있는 시기는 올 여름이라는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부족한 곡물 생산량의 4분의 1 가량(50만톤) 정도를 매년 담당해 온 우리가 동남아에서 식량을 구입해 북에 전달하려면 적어도 3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해 5월이 지나면 자칫 때를 놓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와함께, 오는 8월 중국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공동 응원단이 경의선 남북철도를 이용해 함께 참가하는 문제를 성사시켜 한반도가 대결의 장이 아닌 화합의 장이라는 모습을 세계에 알리고자 한다면 더 이상 시간을 늦출 수 없다.
 
철도의 개.보수 등 기술적인 문제를 풀기 위한 시간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한다.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이 북한이 먼저 고개를 숙이고 나올 때까지 절대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면 모르겠으나 대화를 통해 경색된 남북의 지금 상황을 풀고자하는 생각이 있다면 정치적. 상황적 입장에만 너무 연연하지 않고 실질적 대화 진전을 이끌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의 '타이밍'을 적절히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 CBS정치부 윤석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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