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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적 민주주의’인가 ‘본질주의적 의회주의’인가
[기획연재-최장집 강연 ] 이대근, 李정권에 진보적 시민사회 활성화 가능
 
안일규   기사입력  2008/02/24 [17:33]
▲최장집 ‘민중에서 시민으로’ 강연 토론

토론자 : 강정인 교수(서강대 정치외교)
토론자 : 김명인 교수(인하대 국어교육, 계간 <황해문화> 주간)
토론자 : 이대근 박사(경향신문 정치·국제 에디터/부국장, 고려대 정치외교학 박사)
강연자 : 최장집 교수(고려대 정치외교)

첫 토론자로 나선 정치사상, 정치이론 분야에서 권위있는 강정인 교수는 대체로 최장집 교수의 진단과 방법론에서 비슷한 관점을 보였다. 그의 토론관점은 최 교수 주장에서 부족한 논리에 대한 문제제기였으며 두 번째 토론자로 나선 김명인 교수는 민중문학을 주장해온 지식인으로 최장집 교수의 ‘시민적 민주주의’를 ‘본질주의적 의회주의’라는 새로운 말로 규정했으며 아직 ‘민중’은 유효하고 반신자유주의가 의미 있다고 주장하면서 최 교수와는 방법론에서 정면으로 대치되는 주장을 폈다.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이대근 에디터는 앞 두 토론자와 달리 현실적인 문제에서 진단했다.

이번 글은 지면관계상 같은 맥락인 강정인 교수와 최장집 교수의 토론은 제외하고 진보진영의 논쟁으로 초점을 맞추는 김명인 교수와 최장집 교수의 대치되는 ‘방법론’을 중심내용으로 마지막에는 이대근 에디터의 현실 진단 부분을 짧게 넣는 것으로 구성했다.

김명인, 최 교수의 ‘시민적 민주주의’로는 충분치 않아

김명인 교수는 최 교수의 민중에서 시민으로 가자는 구호에 대해 “‘민중’은 용도폐기되고 ‘시민’에 주체의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가”라며 모두가 시민이라는 입장(민중=시민)은 관념적 보편성에 불과하며 실제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에서는 ‘보편적 시민’은 존재하기 힘든 것이라 말한다. 그는 7~80년대 혁명적 민중론이 시민적(부르주아적) 경로를 혁명적으로 뛰어넘는 ‘민중적 민주주의 사회’로 민중의 용도폐기는 민중적 민주주의의 와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세계질서의 ‘현실성’을 수리하는 입장에서 일종의 개량주의적 의회주의 기획 아래 우리 사회 구성원들을 포섭해 들이기 위한 개념적 장치라고 한다면, 현재의 점점 더 비인간화하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질서 아래서 끝없이 ‘시민적 정체성’을 부정당하고 있는 ‘민중’, 혹은 ‘소수자’들이 과연 그 범주에서 온전히 시민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김명인.2008.20)

김 교수는 최 교수에게 의회주의적 정당정치에 포섭되지 못하거나 포섭되기 거부하는 ‘혁명적 잉여’와 현재의 자본주의 지배체제 사이에서 낭만적이면서 비전을 실천하고자 하는 비의회, 비정당주의적 ‘급진적 행동’들이 역사적 유효성을 상실한 것인지 최 교수가 말하는 ‘시민적 민주주의’가 그것들을 전부 포괄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묻는다.

최장집,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최소주의적 민주주의 중요성

최장집 교수는 김 교수의 주장을 정당 중심의 의회민주주의, 시민적 사회주의는 충분치 않고 민주주의 구현을 위해서는 민중의 의미 재정립과 운동이 민중적 의지·이상을 실현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으로 정리한다.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 실현에는 운동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정당 중심 정치의 실패, 김 교수는 운동을 통한 민중적 참여, 민중적 투입 실패로 엇갈린다. 최 교수는 이러한 관점 차이는 민주주의 정의 문제도 있어 쉽지 않다고 말한다. 민주주의 정의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나눈다.

민주주의 두 가지 의미

보통선거권, 주기적 선거를 통한 대표 및 정부의 선출과 언론·사상·결사의 자유보장 등
: 일련의 제도적 자치가 구비되고 실천되는 특정 형태의 통치체제
인민주권, 인간의 자유와 평등의 구현
: 체제가 함축하는 이상과 가치

민주주의가 두 가지 요소를 함께 포괄하고 있어 저의 어려움, 명확한 경계 구분 어려워


프랑스혁명 모델(루소)

미국 모델(제임스 매디슨 헌법 혁명)

합리주의적, 이상주의적 전통

현실주의적, 경험주의적 전통

인민과 인민주권 의미, 공공선 개념·의미, 대표/대의적 중간집단의 역할 이해 상이해.
구체적 현실의 민주주의에는 이 두 가지 요소 모두 섞여있어.


이기주의 구현 체제로서의 민주주의

평등 실현 체제로서의 민주주의

현실에서 실현된 민주주의

전통은 약화되거나 거의 소멸



한국 민주주의는 프랑스 혁명주의적 공화주의 전통, 민주주의의 가치와 이상에 대한 큰 의미부여, 평등주의의 질서의 가치가 이기주의 질서의 가치보다 강하다.


최 교수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악화되는 순환의 고리를 발견하게 된다고 말한다. 운동을 통한 민주주의->민주주의 제도적 작동->보수적 정치인들과 정당체제로 운영->운동에서의 민주주의 기대(경제적 민주주의, 사회적 민주주의 실현)실패->다시 운동 강조하게 되는 순환을 반복하게 되는 구조를 말한다. 이제 이 고리를 끊고 새로운 순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최 교수는 고리를 끊기 위해 최소주의적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최장집, 속박과 억압으로의 해방 투쟁이 최소주의적 민주주의 실현에도 성공 못해

최 교수는 ‘혁명적 민중론’에 대해서 최소주의적 민주주의 실현에도 성공하지 못했다며 지금까지의 운동을 통한 민주주의 경험이 보여주는 현실이라 말한다.

사회적 시민권은 노동자, 농민을 포함한 생산자 집단과 사회저변층, 소외대중에게 시민권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최소주의적 민주주의 내용이 곧 이들에게 보편적 시민권의 확대되는 것이라 말한다. 운동을 통해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의 제도적 실천을 통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최 교수의 견해다. 민중의 용도폐기는 아니며 민중적 민주주의의 가치의 최대치는 실현 불가능이라 말한다.

자유주의적 대의제민주주의의 제도와 절차가 아닌 어떤 직접민주주의적 형식을 통해 내용적으로 “실질적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다.(최장집,2008.42~43)

김명인, 신자유주의/반신자유주의로 구분되어야

김 교수는 신자유주의 찬/반이 아니라 부정적 효과 완화/개선의 정치행위 혹은 정책의 문제라는 최 교수에 두 가지 단서를 제시한다.

①한국적 신자유주의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보다 정확하게 확산되어야 한다는 점-신자유주의의 힘이 권위주의적 군부권력을 해체하는 주요한 외인이었으면서 동시에 그렇게 얻은 민주화, 자유화가 사회경제적 민주화(사회적 시민권)의 확보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 압력으로 작용하여 현재까지 민주화권력의 ‘좌충우돌’과 궁극적 우경화를 낳았다는 사실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릴 수 있어야 한다(김명인,2008.21~22)

②한국적 신자유주의는 이명박 정권 탄생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한 시장만능주의나 세계화의 이데올로기만이 아니라 수구적 냉전반공주의 및 전통적 천민자본주의와 교묘하게 결합하여 재벌지배구조 개혁, 시장합리화 등은 거부·지연시키고 불합리한 자본가 편향정책, 이윤구조 온존, 그에 대한 반대와 저항을 반미·좌경 등으로 모는 특수한 이데올로기적 협잡물을 형성하고 있다(김명인,2008.22)

김 교수는 단순히 찬/반이 아니더라도 신자유주의의 한국적 특수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화에 대한 강한 이데올로기 투쟁은 많으면 좋다는 주장을 한다. 민주/반민주가 아니라 신자유주의/반신자유주의로 구별되어야 하며 한국사회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 하나의 대안적 모색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장집, 급진주의와 관념주의, 중산층적 계급관·보수주의와 연결?

최 교수는 정치경쟁의 대립축이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로 구성되는 것은 다른 수준의 문제로 진영간 정치경쟁/대립의 맥락에 놓이는 거대담론이라 말한다. 거대담론을 둘러싼 찬성/반대의 경우, 운동은 권위주의 타도라는 목표설정에서 볼 수 있듯이, 부정적 에너지를 결집하는데서 훨씬 더 큰 효과를 갖는다.(최장집,2008.43)

최 교수는 반대에 어떤 대안을 가져다 놓을 것인가의 문제에서 집단적 힘의 동원방식은 무기력하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가 무엇이고 반신자유주의는 무엇이냐는 복잡한 문제를 간단하게 어려워 운동은 관념적이고 구체성을 갖기 어렵다고 말한다. 민주화운동을 사례로 든 최 교수는 군부독재타도를 위해 연대한 민주화세력은 민주화 이후 어떤 민주주의인가의 컨센서스 구성에 실패했으며 정규직/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는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관점이 필요한 건가라 묻는다.

한국정치는 대체로 거대담론을 둘러싼 갈등축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이것은 현실을 개선하기보다 유토피아적 또는 관념적 상상을 자극했고, 에너지를 동원하는데 커다란 효과를 가졌지만 현실을 개혁하는데 있어서는 터무니없이 무력했다. 우리가 신자유주의 반대를 위해 결집할 때 그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실제의 노동문제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개선코자하는 열정을 가졌는가?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최장집,2008.44)

최 교수는 급진주의와 관념주의 배면에 실제 노동문제에 대한 무관심, 그것을 노동자계급 문제로 생각하는 중산층적 계급관이 아닌지 의구심을 갖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민주화 이후 담론의 급진성을 신뢰하지 않고 한국 급진주의의 부분들이 맞닿아있는 보수주의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대근, 李정권에서 진보적 시민사회 활성화 가능성 있어

이대근 에디터는 혁명, 해방, 통일, 탈식민주의 등 한국적인 과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사회는 정상화될 수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한국에서 민중이 시민으로 해체되고 재구성함으로써 한국사회는 다른 서구 사회가 직면했던 모순과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적 과제의 보편성을 회복시켰다고 말한다.(이대근,2008.25)

한국의 정치는 갈등을 부정하고 축소해 차이를 부정하고 서로 중간으로 수렴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이는 갈등의 축이 없고 폭도 좁고, 사회적 약자에게 불리한 사회구조가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신진보, 유연한 진보, 제3의 길은 좌/우 구별 회피이며 여전히 좌파가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결과라 말한다.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못하는 것은 민주주의 공고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의 획일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진단한다.

한국에서 오랜 국가주의 전통은 국가에 대한 고정관념이 형성되었으며 국가의 이익, 국가가 결정한 정책은 공공의 이익 대변이고 시민이라면 무조건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매우 강하다고 말한다. 수도이전, 한미FTA, 한반도 대운하 등을 예로 들면서 국가의 정책이 되면 대체로 찬성론이 우세해지며 국가의 프로젝트가 클수록 국가의 판단에 의존하는 경향도 높아진다고 말한다. 시민이 각자 권리의 주체로서 자기이익을 표출하고 옹호해야 하나 실제로는 국가목표에 동조한다는 것이다.(이대근,2008.26)

한편 이대근 에디터는 최 교수의 이명박 시대 “강한 국가 대 강한 대통령 대 약한 시민사회”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보였다. 민주정권 10년동안 정부와 진보적 시민사회, 운동은 같이 취급돼 쇠퇴되어왔으나 李 정권과는 엄연히 달라 진보적 시민사회가 강력한 국가와 대통령에 맞서 다시 활성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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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2/24 [17:3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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