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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기 못잡은 노무현, 정권을 내놓다
[2007년 되돌아보기] 건설족에 휘둘려 분양가상한제등 실기, 무능 초래
 
홍헌호   기사입력  2007/12/25 [20:37]
나는 솔직히 말해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숱한 비난이 쏟아지는 현재의 상황에서 그에게 돌팔매를 추가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그가 자신의 실수에 비하여 충분한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내가 거기에 비난을 더 추가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요즘 노무현 지지자들과 대통합민주신당 인사들이 노무현 정부를 평가하는 것이나  노무현 정부 이후의 진보진영 진로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그들 주장이 매우 부적절하다고 판단되어 몇 자 적는다.
 
노무현 지지자들은 여전히 노무현의 방향과 정책 이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에 그보다 좌로 가서도 안 되고 우로 가서도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근거는 아주 간단하다. 좌로 가서 안되는 이유는 좌로 가면 민주노동당처럼 낮은 지지밖에 받을 수 없기  때문이고 우로 가면 안 되는 이유는 우로 가면 이명박처럼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통합민주신당 인사들도 내용은 약간 다르지만 유사한 주장을 한다. 노무현이 좌로 가서 실패한 것이므로 앞으로 자신들은 좀더 이명박 쪽으로 우향우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이들의 주장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을까. 과연 노무현은 항상 옳은 입장을 견지했는데도 불구하고 좌우의 음해성 공격에 부당하게 희생당한 것일까. 아니면 노무현은 지나치게 좌측으로 갔기 때문에 국민들의 신망을 잃은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둘다 옳은 주장이 아니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 글에서 나는 정치인 노무현이 어떤 과정을 거쳐 국민들의 신망을 잃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부동산 정책을 통해 짚어 보기로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운명은 그가 김진표라는 인물을 정권인수위 부위원장으로 발탁하면서부터 서서히 꼬이기 시작했다. 김진표라는 인물이 누구인가. 노무현정부 초대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를 지낸 인물 아닌가. 지금 그는 대통합민주신당 정책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김진표씨는 2003년 10.29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이보다 더 강력한 대책을 요구하는 네티즌들의 요구를 “사회주의적 요구”라고 비난했다. 당시 시민단체와 네티즌들의 김진표 부총리에 대한 거부감은 컸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그를 꾸준히 중용했다. 나는 그가 노대통령으로 하여금 국민들의 간절한 염원이었던 분양가 원가공개 공약을 뒤집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김진표씨가 교육부총리가 되어 교육부에 가서 주로 한 일이 무엇일까. 그는 그의 평소 색깔 그대로 지금 이명박 후보가 주요 교육공약으로 내놓은 것과 유사한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는 교육단체들의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자립형 사립고 모델 확대에 진력했다.
 
김진표씨에 이어 참여정부 제2대 경제부총리로 발탁된 이헌재씨는 또 어떤 일을 했는가. 그는 2003년 만들어 놓은 10.29대책을 후퇴시키고자 애를 쓴 인물이다. 2004년 7월 외신을 통해 미국에서 부동산 거품에 대한 경고론이 나오기 시작하자 이헌재 사단은 정말로 신속하게도 2004년 7월 “부동산 시장 연착륙 방안”이라는 것을 내 놓는다. 물론 그 주요 내용은 부동산 시장 규제완화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10.29 대책에 따라 “1세대 3주택 이상 소유자의 양도세율 60% 부과”시기가 2005년 1월 1일로 다가오고, 2004년 하반기 들어 양도세 60%를 회피하고자 하는 매물들이 나오면서 강남 아파트가격이 평균 1~2% 정도 빠지자, 이헌재는 이 조치의 시행 시기를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다
 
그리고 이런 주장에 반대하는 청와대 정책기획위원회 이정우 위원장과 힘겨루기에 돌입한다. 상황이 흥미롭게 돌아가자 조중동과 경제지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정부와 청와대 비서실이 권력암투에 돌입한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가기 시작한다.
 
다행히도 두 사람의 의견충돌은 이헌재의 부동산 투기혐의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그가 낙마함으로써 흐지부지 없던 일이 되고 만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헌재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몰이가 과도하다며 이헌재의 낙마를 공개적으로 크게 안타까워했다.
 
2005년이 되어 부동산 시장은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판교가 초호화 아파트 단지로 개발될 것이 분명해짐에 따라 주변지역 후광효과가 매우 클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기 때문이다. 원래 판교가 분당처럼 개발됐다면 5만호 정도가 들어가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서울시와 경기도는 물론 환경부, 환경단체들도 모두들 판교에 아파트가 대량공급되는 것에 반대했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판교에 아파트를 대량 공급하면 강남과 경기도의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 환경부와 환경단체는 쾌적한 환경확보를 이유로 판교 아파트 대량 공급에 부정적이었다. 결국 판교는 분당보다 인구밀도가 두 배나 낮은 쾌적한 신도시로 개발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양가를 높이는 부작용을 수반하는 것이기도 했다.
 
2005년에 들어 판교 아파트 분양가가 1500~2000만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자 후광효과를 노리고 분당과 용인시의 아파트 가격과 강남 4개구의 아파트 가격이 급속도로 오르기 시작했다. 버블 세븐지역 아파트 가격도 덩달아 치솟았다.
 
이때 노무현 대통령이 크게 당황했던 것 같다. 노대통령은 6월 중순 내각에 긴급 지시를 내려 시민단체의 주장을 충분히 참고하여 전향적인 부동산 정책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이것이 바로 8.31 대책의 탄생 배경이다.
 
우여곡절 끝에 보유세 강화, 1세대 2주택자 양도세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8.31 대책이 발표되었다. 당시 경제부총리는 8.31대책으로 강남 아파트 가격이 30% 정도(10.29 대책 이전 가격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8.31 대책이 나온 지 몇 달이 지나도록 시장은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8.31 대책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종부세를 제외하고 <거래세 인하-재산세 인상>조치는 사실 정책적 효과가 거의 없는 것이었다. 구호는 난무했지만 재산세 인상 폭은 그리 크지 않았고 달랑 종부세만 남았는데 종부세의 위력이 발휘되는 시기인 2008년과 2009년은 한나라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매우 큰 시기였다. 종부세 과세 대상자들은 일단 지켜 보자는 입장을 취했다.
 
다음으로 8.31대책에서 기대가 컸던 것이 1세대 2주택 소유자에 대한 양도세 50% 부과 조치였다. 그러나 이 조치도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부분의 다주택 소유자들이 1세대 1주택으로 세대를 위장분산시켜 놓았고 또 1세대 다주택 소유자들도 일단 정권교체를 기대하며 버텨보자는 입장이었다.
 
8.31 대책의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자 그 후속책으로 나온 것이 바로 2006년 3.30 대책이다. 이번에는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8.31대책과 3.30대책으로 가을에는 버블세븐지역 부동산 가격이 20~30% 떨어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왜 그랬을까. 3.30 대책은 재건축에 대한 개발이익환수를 목표로 하는 것이었는데 이 대책은 애초부터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개발이익 환수액을 결정할 때는 개발비용 뿐만 아니라 개발의 기회비용까지 공제해 주어야 하는데 그 기회비용의 산정기준을 구(區)별 아파트 가격상승율로 하다보니 환수할 게 별로 없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강남구 OO동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2002년 3억이던 아파트를 헐고 2억을 들여 재건축했더니 2007년 가격이 10억이 되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동기간 강남구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150%였다고 가정하자. 이 때 3.30 대책으로 환수되는 개발이익은 어느 정도일까. 아파트가격 10억에서 사업개시시점 가격 3억 빼 주고 개발비용 2억 빼 주고 기회비용 4억 5000만원 빼 주고 나머지 5000만원을 부담금 과표로 삼아 부담률 20~30% 적용하여 1000~1500만원 정도 부담금으로 징수하는 게 고작이었다.
 
물론 3.30대책의 이런 계산방식은 실무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어쨌거나 3.30대책의 효과는 그렇게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8.31대책과 3.30 대책이 별로 신통치 않은 결과를 내고 있을 무렵인 2006년 여름, 이번에는 은평구에서 판교사태와 같은 사태가 발생했다. 판교에서 고분양가가 주변 아파트 가격을 끌어 올렸던 것처럼 은평뉴타운에서도 고분양가가 주변 아파트 가격을 끌어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판교가 인구밀도를 낮추어서 분양가를 높였다면 은평뉴타운은 뉴타운개발 방식으로 분양가를 높였다는 점이다. 뉴타운개발방식은 전통적인 재개발방식보다 더 많은 도시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것이었으므로 분양가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물론 건설비리로 인한 고분양가 책정 문제는 별개의 문제로 두고 볼 때 말이다)  
 
서울에서 소외지역이었던 은평지역 뉴타운이 제2의 판교 역할을 하며 고분양가로 주변 주택가격을 끌어 올리자 수도권 전 지역의 재개발 가능지 주택가격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8.31대책과 3.30대책이 효과도 보기 전에 노무현 정부는 의외의 복병을 만난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복병을 진압할 별다른 추가 대책을 모색하기도 전에 돌발사태가 터졌다. 공급확대론을 주장하던 시장주의자들을 대변하여 추병직 건교부 장관이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다. 추병직씨는 별도의 투기수요 제어장치도 없이 공급 확대로 부동산 가격을 잡겠노라고 선포했다. 그의 돌출행동은 불타기 시작하던 부동산 가격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서울시 아파트 가격은 무려 30% 이상 올랐다.
 
사태가 심각하게 전개되자 노무현 정부는 그 동안 지속적으로 거부하던 시민단체 요구를 그제서야 부랴부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부 때도 존속하던 분양가 상한제가 2006년 말에 와서야 겨우겨우 재도입된 것이다. 그러나 때는 이미 한참 늦은 뒤였다.
 
2007년 벽두에는 금융기관들도 대출규제강화에 나서기 시작했다. 분양가 상한제가 실시되면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고 그렇게 되면 거품 붕괴 우려도 있기 때문에 금융기관들이 자발적으로 위험회피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이 때 청와대로부터 뜻밖의 논평은 나왔다. 거품이 일시에 붕괴하면 곤란하니까 금융기관들이 대출규제 강화에 신중을 기하라는 것이었다. 말이야 옳은 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무능’을 고백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보수적인 금융사들이 2007년 벽두에 대출규제를 그렇게 강화했을까. 청와대에서는 오래 전에 금융사들이 대출규제를 강화하도록 제도화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냥 손을 놓고 있다가 금융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니까 이제 와서는 딴지를 건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렇게 딴지를 걸도록 코치한 것일까. 당시 현대건설의 이해를 반영하는 현대경제연구원과 삼성물산(건설부문)의 이해를 반영하는 삼성경제연구소가 거품 붕괴 위기론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부동산 전문가들 중에서 이 두 연구소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노무현 지지자들은 지난 5년 동안 언제나 항상 노무현은 옳다는 환상에 사로 잡혀 있곤 했다 그러나 사실 노무현은 그렇게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 허술했다.
 
그리고 또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들의 신망을 잃은 이유는 그가 좌파적이어서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좌파적인 정책이 긴요할 때도 고집스럽게 우파적인 정책을 고수했다. 8.31 대책 때 조중동은 세금폭탄론 운운하면서 노무현을 좌파로 몰고 갔지만 부동산 규제 정책 중에서 가장 우파적인 정책을 고르다 보니 그가 세금정책을 택한 것 뿐이었다.
 
현재 부동산 주요 규제정책은 크게 세 가지인데 분양가 상한제, 대출규제정책, 조세정책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좌파적인 정책이고 어느 것이 가장 우파적인 정책인가. 분양가 상한제가 가장 좌파적인 정책이고 조세정책이 가장 우파적인 정책이다. 그런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정부도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하여 분양가 상한제를 고수한 반면, 노무현은 2006년 말까지 이 제도 재도입을 고집스럽게 거부했던 것이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대통합민주신당 인사들이 노무현 대통령이 너무 좌파적이어서 민심을 잃었다고 주장하니 정말 어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노무현 지지자들이 2003년부터 비판자들이 대안없이 노무현을 비판만 했다고 하니 이 또한 어이가 없는 주장이라는 이야기다.
 
노무현 지지자든 비판자든 노무현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통해 진보진영의 미래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이 지나치게 좌파적이어서 민심을 잃었으므로 우향우 하자거나 노무현 이외에 대안이 없으므로 그를 따르라 하는 것은 적절한 주장이 아니다. 노무현은 좌파적인 정책을 써야 할 때 적시에 그것을 쓰지 못하고 고집스럽게 우파적인 정책에만 매달렸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하고 실패했던 것이다.   
* 필자는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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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12/25 [20:3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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