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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아닌 여론조사로 대통령 뽑을텐가
[김영호 칼럼] 정당정치 소멸, 정책-인물검증 실종, 여론조사만 춤춰추나
 
김영호   기사입력  2007/12/06 [18:11]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대통령 선거다. 언론은 누가 대통령감으로 적합하지 부적합한지 거의 따지지 않는다. 꼬리를 무는 여론조사를 통해 누가 앞서느니 누가 뒤서느니 하며 그야말로 경마(horse race)중계하듯 보도한다. 아니면 장바닥을 누비는 후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각본에 따라 연출하는 이미지만 전달한다. 정책점증도 자질검증도 대변인의 저급한 거짓공방에 밀려 나버렸다. 이대로 가면 여론조사가 대통령을 뽑을 판이다.
 
 한국언론재단이 발행하는 <신문과 방송>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금년 1월 1일~4월 10일 100일 동안 10개 종합일간지와 3개 지상파 방송이 보도한 여론조사는 모두 691건이다. 자체조사가 130건, 외부조사가 561건이라고 한다. 13개 매체가 한 달에 209건 꼴로 여론조사를 보도한 셈이다. 경제지, 지방지, 주간지, 월간지, 케이블TV, 인터넷매체가 보도한 여론조사를 포함하면 그 숫자는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조사빈도도 더 늘어났을 테니 선거가 여론조사 홍수 속에 치러지는 형국이다.
 
 소위 범여권의 주자가 부각되지 않자 출마의사를 밝히지도 않은 인사들을 끌어넣어 경쟁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출발선에도 서지 않아 전국적인 인지도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인데 그들을 조사대상에 포함시켜 중도에 포기하게 만든 꼴이 됐다. 그 숱한 여론조사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는데도 여론조사는 끝없이 이어진다. 여론조사는 선거를 가름하는 만능수단이 되어 정당의 후보경선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여론조사가 당원의 의사와 달리 반영됨으로써 정당정치의 근간마저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
 
 여론조사의 조사대상을 모집단(population)이라고 한다. 대통령 선거라면 전체 유권자가 이에 해당한다. 현실적으로 이런 여론조사는 불가능하다. 결국 모집단을 가장 근사하게 대표하는 표본을 추출해야 한다. 지역간의 인구-남녀-연령비율 등을 반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은 정치적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기를 꺼린다. 응답률이 10%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한다. 조사수단인 유선전화 가입률이 57.2%에 머문다는 점도 부정확성을 높인다. 표본의 대표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표본수가 클수록 오류발생률이 낮다. 하지만 제한된 비용과 시간 때문에 표본수를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신속성을 요구하는 언론사의 여론조사라면 더욱 그렇다. 설문이 유도적이라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방법이 적합한지도 문제이지만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더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언론의 가장 큰 폐해는 정파성이다. 지지후보에 미칠 유-불리에 따라 주관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따라서 어느 여론조사나 오류와 함께 의도성을 지니기 마련이다. 매체간에 지지율 편차가 크다면 언론사의 정파성이 개입됐을 개연성이 있다.
 
 조사결과는 모집단의 추정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예사로 간과한다. 어느 후보의 지지도가 15%인데 표본오차가 ±3%라면 전체유권자의 지지도는 12~18%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차범위의 의미를 무시하고 단정적으로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전체 유권자의 15%가 그를 지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 오차범위 이내의 경합관계인데도 누가 누구보다 앞선다는 식으로 보도한다. 그것도 제목에 소수점 아래까지 서열화해서 말이다. 심지어 조사주체가 다른 여론조사를 단순비교해서 격차가 줄었느니 늘었느니 보도한다. 조사대상-시기-방법 등이 다르기 때문에 이것은 위험한 장난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잦은 여론조사가 될 사람 밀어주자는 '악대차 효과'(bandwagon effect)나 약자에게 동정과 연민을 보내 응원하는 이른바 '동정표' '동정효과'를 만드는 이른바 '패배견 효과'(underdog effect)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그런데 언론이 인기측정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여론조사를 신앙처럼 신봉하자 정치권은 마치 신탁(oracle)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언론과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는 단일화이다. 이명박-이회창씨를, 정동영-문국현-이인제씨를 묶는 정치실험이 성사되면 그 잣대는 정당경선에서처럼 또 여론조사가 될 것이다.
 
정당-책임정치가 소멸하고 정책-인물검증이 실종한 상태에서 여론조사가 정치적 야합을 위한 도구로 등장할 모양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이 23일에서 6일로 줄었다. 현대판 점성술이 더욱 기승을 부릴 판이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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