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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장영실의 날, 대한민국에 장영실은 없다
[고발] 조선 천민출신 위대한 과학선현 장영실 홀대는 현재까지 이어져
 
김영조   기사입력  2007/10/25 [23:40]
▲호서대학교 총장실에 있는 장영실 영정. 아산장씨 평균 얼굴을 추출하여 최근 그렸다고 한다.     ©호서대학교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과학자는 누구일까? 과학자들은 하나같이 세종시대의 장영실을 꼽는다. 장영실은 부산 동래현 출신의 노비지만 인재임을 알아챈 태종이 발탁했고 세종이 정4품 호군까지 올려놓았다. 그는 자격루는 물론 대 ·소간의(大小簡儀), 휴대용 해시계 현주일구(懸珠日晷)와 천평(天平)일구, 고정된 정남(定南)일구, 앙부(仰釜)일구, 주야(晝夜) 겸용의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태양의 고도와 출몰을 측정하는 규표(圭表) 등을 만든 위대한 과학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사)과학선현 장영실기념사업회(www.jangyoungsil.or.kr)”를 만들고, 매년 10월 26일을 장영실의 날로 정하여 행사를 하며, 장영실과학상을 주고, 동상을 세우는 등 최고의 과학자임을 드러내기에 애를 쓴다. 장영실기념사업회말고는 현재 우리나라는 장영실을 얼마나 기리고 있을까?
 
우리는 이를 확인하고자 몇 군데 답사를 하고, 문헌을 확인한다. 맨 먼저 여주의 세종영릉을 방문했다. 이곳에는 장영실이 만든 각종 과학기구를 복원 전시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처음부터 실망을 안아야 했다.
 
먼저 오목해시계(앙부일구:仰釜日晷)를 보자. 세종실록에 보면 글자를 모르는 백성을 위해 12지신 그림을 그려 넣었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여기엔 그림은 없다. 나중에 확인해 보았지만 역시 덕수궁 오목해시계, 서울 홍릉 세종대왕기념관의 오목해시계, 아산 호서대학교의 오목해시계도 역시 그림은 없다. 무엇을 보고 복원한 것인가?

앙부일구만이 아니었다. 해시계의 하나인 정남일구에도 큰 흠이 보인다. 아래쪽에 고정하려 한 것으로 보이는 쇳조각이 붙어 있다. 복원한 것과 전혀 다른 것으로 눈에 띄게 쇳조각을 붙인 것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문화재에 대한 감각이 이렇게 없단 말인가?
 



▲세종영릉에 복원해놓은 오목해시계(앙부일구). 세종실록에 글씨를 모르는 백성을 위해 12지신 그림을 그려 넣었다고 했지만 여기엔 보이지 않는다.     © 김영조
 
▲세종영릉에 복원해놓은 정남일구 아래 쪽에 고정하려 했는지 쇳조각을 대어놓았다.     © 김영조
 
▲세종영릉에 복원한 자격루. 자격루의 중요장치인 자동시보장치가 없다.     © 김영조

최초의 자명종 시계 자격루는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원래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는 자동시보장치가 달린 것이다. 그런데 여기 복원한 것은 인형이 나와 시간을 알려주는 자동시보장치는 생략하고, 그저 파수호, 수수호, 그리고 부전 등 시계장치만 있다. 자격루는 자동시보장치가 위대한 것인데 정작 중요한 것은 빼놓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천문∙과학기구 복원이 이 지경인데 다른 것들은 어떨까? 먼저 동래현이 있던 부산 동래구와 부산시에 확인을 해본다. 동래구의 축제에 장영실 이름을 단 학생 과학체험 행사만 있을 뿐 그 어디에도 행사나 시설은 없다. 그런데 다행히 아산시가 장영실을 아산시 인물로 정했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었다.
 
▲관리하지 않고 방치해 공사장 안에 외롭게 서있는 장영실 동상     © 김영조

먼저 천안아산역 앞에 동상이 있다 하여 달려가 본다. 그런데 이 어찌 된 일인가? 공사장 안쪽에 온통 건축 자재들 속에 묻혀 있다. 물론 공사 이전에도 방치되어 있었다. 그렇게 장영실 선현은 아무도 찾지 않는 외로움 속에 서 있다. 동상 옆에는 장영실상을 세운 내력이 적혀 있다. 하지만 온통 한자 투성이여서 읽기가 거북스럽다.
 
아산시 문화관광과에 확인해보았더니 아는 사람이 없다. 분명히 장영실기념사업회와 아산시가 공동 건립한 것으로 쓰여있는데 모른단다. 이런 난감할 데가 있나? 장영실기념사업회에 확인하니 아산시장실에 관리 소홀을 여러 번 항의했지만 묵묵부답이라고 하소연한다.
 
아산시는 현재 아산시 인물을 장영실로 선정하고 장영실과학관을 민자간사업으로 건립하려고 제안서를 받고 있다는 말을 아산시 시설경영과 담당자에게 들었지만 동상 하나도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뭘 기대할 것인가?
 
▲호서대학교(아산)에 있는 장영실연구소. 연구소를 알리는 비석이 차에 가려 잘 보이지 않고, 같은 건물에 근무하는 직원도 연구소를 몰랐다.     © 김영조

포기하고 장영실연구소가 있다는 호서대학교 아산교정으로 가보았다. 그런데 아무도 장영실연구소를 알지 못한다. 심지어 교무과 직원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이곳저곳에 묻다가 대학 홍보과에서 도서관 뒤편 어디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겨우 차 뒤편에 숨어있는 연구소 비석이 보인다.
 
하지만 연구소장은 외출중이고, 관련자는 아무도 없다. 1층에 있는 직원조차 장영실 연구소의 실체를 모르고 있었다. 연구소장과는 전화 통화도 되지 않는다.
 
겨우 총장실에 있다는 영정과 오목해시계 복원품만 확인한다. 영정은 당시에 그린 것이 아니고 최근 장영실기념사업회에서 아산 장씨의 표준 얼굴을 추출하여 그렸다고 한다. 오목해시계 복원품은 창들에 방치되다시피 해 안타까웠다.
 
이제 아산에서 기댈 곳은 안산장씨대종회가 조성했다는 장영실 묘소와 추모비다. 물어물어 인주면의 아산 장씨 선산에 당도했다. 묘역 근처에 이르기까지 그 어디에도 안내판은 없었다. 아산에서 10년 택시를 몰았다는 기사도 모르고 그 기사가 전화한 아산이 고향이 지역 유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산시 인주면에 있는 장영실 묘소는 가는 길에 전혀 안내팻말이 없었고, 15년 경력의 택시운전사도 몰랐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겨우 더러워진 안내판이 보인다.     © 김영조  

▲아산장씨대종회에서 가묘지만 묘소를 잘 만들어 놓았다. 옆에는 추모비를 세웠다.     © 김영조

대신 가묘지만 번듯하게 해놓았다. 추모비도 한자가 지나친 것 말고는 그럴싸하다. 우리는 간단한 재물을 상석에 올려놓고 절을 했다. 후손들의 잘못을 우리라도 빌고 싶었다.
 
그 며칠 뒤 우리는 광화문에 있는 장영실기념사업회에서 이만길 상임부회장을 만났다. 그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장영실을 기리려고 그동안 한국과학기술원(KIST), 국립서울과학관, 기상청 뜰앞 등 7곳에 동상을 세우고 장영실과학상을 주어왔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정근모 전 과학기술부 장관, 이수성 전 국무총리 등이 회장을 맡아 많은 일을 했지만 정부와 언론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어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23일 늦은 2시 국립서울과학관에서 장영실을 기리는 과학기술전국대회가 있다 하여 가보았다. 아쉽게도 좌석 161개의 행사장은 차지 않았고, 젊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공동주최자인 아산시 관계자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무대 뒤편 위에는 행사를 알리는 펼침막이 걸려 있지만 토씨 “의 날” 자 빼고는 모두 한자뿐이다. 축사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글이 위대한 과학이라고 말했지만 공허한 외침이었다. 또 이승만과 박정희 예찬론이 난무한다. 어디 딴 세상에 온 듯 정신이 없다.
 
이래서 장영실을 기린다는 것이 제대로 될 것인가? 젊은이들과의 소통을 위해서도 이런 방법은 재고해야만 한다.
 
▲장영실기념사업회 이만길 상임부회장 이 부회장은 장영실 기리는 많은 일을 했다. 지폐에 실린 자격루 그림을 보면서 장영실을 얘기한다.     © 김영조
 
▲과학기술전국대회 공동주최자인 아산시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았고, 젊은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무대 위 펼침막에는 "~의 날" 밖에는 온통 한자투성이다.     © 김영조
 
답답하다. 건국대학교 전기공학과의 남문현 교수는 장영실에 관한 한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남 교수는 그동안 자격루 등 많은 천문과학기구를 복원해왔다. 그런데 그는 대담 요청에 미리 질문 요지를 보내라며 견제하고 본인이 복원했다는 자격루도 11월에 하는 일반 공개 전에는 보여줄 수가 없다고 딱 잡아뗀다. 대담은 포기했다.
 
여주 세종영릉관리소에 복원유물 문제를 거론해본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어서 전문가의 검토를 거친 뒤 적절하게 보완하겠다는 답변만 들었다.
 
오늘 26일 “장영실의 날”에 장영실은 없다. 아니 대한민국엔 장영실은 없다. 조선시대 최고의 양반 지식인인 사관들은 장영실이 자동 물시계를 발명한 것을 추켜세우면서도 그 끝머리에는 그가 관노 출신임을, 마치 천형의 도장을 찍듯 낙인을 찍고 있다.
 
아직도 우리는 그를 천민 출신이라 멸시하는가? 신분을 초월한 보편 과학 정신을 아직도 무시하는가? 위대한 과학자 장영실을 홀대하고도 우리나라가 발전하기를 바라는가? 어불성설이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야만 한다. 장영실을 지폐 인물에도 올리고, 장영실을 기리는 과학관을 만들며, 장영실꿈나무를 키워야만 한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글자를 만들어주신 세종임금도 홀대하는 대한민국에 장영실을 기리라고 주문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주장한다. 과학발전은 나라 발전의 주춧돌이다. 대한민국이 발전하기를 바란다면 장영실을 기리는 일에 온 정성을 쏟아달라고 말이다.
   
* 이 기사는 ‘장영실과 갈릴레이’라는 책의 출판을 앞둔 목원대학교 김슬옹 겸임 교수와의 동행취재로 이뤄졌다. 차후 세종영릉 복원유물 문제를 기사로 다루면서 문화재청의 생각을 들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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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10/25 [23:4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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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jscjs 2007/10/31 [23:54] 수정 | 삭제
  • 이런 일들이 어디 한 둘인가요? 끝까지 책임지지 않으려면 생색내기용 기념사업회 같은 건 애초에 벌이지 않았으면 차라리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불행한 천재 장영실을 생각하면 훗날의 이런 홀대가 더욱 가슴 아파요.

    장영실은 에디슨에 버금가는 천재 발명가이지만 천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살아생전 홀대를 받았고, 비참하게 사라졌지요.
    장영실이 세종의 가마를 제작했는데, 어느 날 세종의 가마가 부러지는 사고가 나서 장영실은 장형 100대를 선고 받았대요. 세종이 형을 감하라는 명렬을 내렸지만, 이미 80대를 맞은 후였다고 해요. 그 이후로 아무도 장영실을 본 적이 없다는데, 소문에는 궁궐박으로 쫒겨났다고도 하고 장독으로 감옥에서 죽었다는 말도 있는데, 너무 안타깝고 슬픈 얘기지요.

    시대가 버린 천재 과학자를 후대가 또 다시 홀대해서는 안될텐데..
    과학자가 꿈인 아들 손을 잡고 자랑스럽게 찾아가볼 수 있도록
    장영실의 날이 하루 빨리 본래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 김종필 2007/10/31 [22:58] 수정 | 삭제
  • 참으로 부끄럽다.

    나름대로는 막연히 우리 것들이 소중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으면서도
    정말 어떤 것들을 귀하게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역경을 이겨내고 당시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측우기와 해시계를 만들어
    자타가 인정하는 조선 최고의 과학자를 후손들이 홀대하고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점에 대하여 나부터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누구나가 과학한국을 외치고는 있지만 과학발전을 위한 우리의 근간이
    무엇이고, 우리가 무엇을 아끼고 소중히 여겨야 하는가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된 것 같다.

  • 이선숙 2007/10/31 [20:54] 수정 | 삭제
  • 기생의 아들로 동래현의 관노로 있을 때 재능이 뛰어나 세종대왕의 명으로 중국에 파견되어 공부한 조선 전기 과학자 장영실. 그는 어려서부터 매사를 자세히 관찰하고 원리를 캐내는데 열심이 있어 1423(세종 5년) 도천법으로 인재를 뽑을 때 동래현감과 경상도 관찰사의 추천으로 세종대왕에게 천거되어 상의원 별좌 벼슬에 임명되어 궁중기술자로 활동하였다. 1424년 물시계를 완성하여 정 5품의 행사직으로 승진하고 1432년에 천문관측기구인 간의를 제작 계획에 착수하고 천제의 움직임과 그 위치를 관측하는 천체관측기구 혼천의를 완성하였다. 1437년 대간의, 소간의 및 휴대용 해시계인 현주일구, 천평일구, 방위와 시간을 아는 정남일구, 암부일구, 일성전시의, 규표 등을 만들었다. 1434년 새로운 형태의 물시계 자격루를 완성하여 그 공로로 대호군에까지 승진하였고 1438년 다시 천상시계와 자동물시계 옥루를 만들었다. 1433년 활판기술을 대표하는 갑인자와 그 인쇄기를 완성하였으나 현재 전해지지 않고 인쇄본만이 전해지고 있다. 1441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 수표를 발명하였다. 1442년 그의 감독으로 제작된 왕의 가마가 부서져 투옥되고 장형을 받은 뒤 파면 당했다.
    이조 천재 장영실의 업적에 관심을 갖지 못함에 호서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벤처에 꿈을 가지고 호서대 총장으로 계셨던 정근모 총장님이 조금 더 신경을 써 주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 김종혁 2007/10/31 [20:20] 수정 | 삭제
  • 정말 스스로 제자신이 모르는게 너무 많구나를 생각케합니다.
    3여년전에 여주의 어떤학자가 보여줄께있다하여 따라가 '해시계'
    오목해시계 앙부일구 [仰釜日구] 를 본적이 있었습니다만 다만
    참으로 과학적인 기초시스템및 자료가 부재한 세정시대에.......
    그리구서 세종시대에는 참으로 뛰어난 학자들이 많이 있었구나 고작 이정도

    오늘에와서 공부하면서
    이렇게 기중한 지식을 하나 배워가는구나하고
    참으로 부끄럽게 나 스스로 매우 '무식' 하구나 합니다

    그러나
    '가묘'라 하셨지만
    저런경우는 '버드나무 판' 나무에 姓 를 쓰고
    혈육에 가까운 사람이 '버드나무 판을들고 ' 招魂 하여 모시는것인데
    매우 의미있는 묘지가 될수도있습니다

    일반가정에는
    수해나 기태재해로 죽었을경우
    가족들이 묘지를 만들때 저렇게 하여 자자손손 묘를 관리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최초의 과학자
    위대한 인물 '장 영실' 영혼앞에 머리숙여 사죄드립니다
    역사를 올바르고 하나라도 더 알도록 노력할것을 이기회에 말씀드립니다
  • 김영란 2007/10/31 [17:34] 수정 | 삭제
  • 얼마 전부터 장영실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었다.
    과학자의 꿈을 키우고 있는 초등2학년인 우리아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천재 과학자 장영실..
    30년 동안의 찬란한 공적을 세우며 승승장구하던 그가 어가 때문에 한순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살아진 것도 안타까웠는데,
    과학혁명을 이끈 천재 과학자 장영실이 우리의 주먹구구식 정책 앞에 무시되어지고
    더불어, 우리 과학도들의 희망이자 꿈이 함께 무너지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

    21세기를 짊어질 우리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부끄러울 뿐이다.
  • 김현숙 2007/10/31 [12:20] 수정 | 삭제
  • 기사를 보면서 누구를 탓하기보다 그런 우리나라의 현실에 참담한 마음이 듭니다.그 짧은 역사로 세계 최강국의 자리에 있는 미국이 짧은 역사만큼 역사속 위인으로 받들 인물조차 변변치 않아 어떻게든 위인을 만들어 내려 애쓰고 있는 마당에,그 반만년 수려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선 오늘날 우리를 있게한 옛 선현들의 피와 땀이 어린 역사를 홀대하고 방치하고 있으니 부끄럽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과학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아이들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장영실'을 꼽습니다. 여의도 공원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 주변의 여러가지 발명품들과 그 당시를 재현해 놓은 그림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그곳에 있는 발명품들 또한 약식으로 만들어진 것들 이었습니다.제대로 재현된 발명품들은 도대체 어디가면 볼 수 있을지요. 안타까운 일입니다.우리의 찬란한 역사는 언제쯤, 어느곳에서 제대로 빛이 나줄까요...
  • 김기덕 2007/10/31 [11:23] 수정 | 삭제
  • 안그래요?
    탁상 행정...
    저는 더 심한 곳을 알고 있습니다.
    서울에 있어요.
    관악산 한 줄기에 호압사라는 절이 있는 산이 있습니다.
    그 산 꼭데기에 암자가 하나 있고요
    바로 옆에 한우물이라는 신라시대 때 만들어진 작은 연못이 있었습니다.
    예전엔 연꽃두 만발하고, 연못에 곤충 작은 고기들도 많았죠.
    주변엔 나무들도 울창하고.

    그 연못에서 100 여미터 떨어진 장소엔 [해태상]도있습니다.
    이 [해태상]은 경복궁을 바라 보고 있죠.

    어느날 그 연못 바닥에서 신라시대 유물이 발견 됬다고 하더니.
    유물을 발굴해야 한다며 마구 파헤쳤죠.

    그리곤...유물을 모두 발굴 한뒤.
    연못을 복원 한답시고...

    새로이 화강암을 깍은걸 둘레에 쌓고...
    물 새로 담고.
    식물은 한개도 없고...
    곤충...물고기 다 없어지고,

    그랬어요...지금은 물이 썩어가고 있죠.

    여기저기 그런 모습은 많은듯 합니다.

    우리나라 행정. 관리 등등의 한계죠.

  • 손혁수 2007/10/31 [00:52] 수정 | 삭제
  • 장영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이런 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신 기자분께 감사드림니다. 장영실의 생애에 대한 호기심이 밀려듭니다. 장영실에 대한 책을 꼭 읽어 봐야 겠습니다.
  • 박시내 2007/10/31 [00:09] 수정 | 삭제
  • 장영실의 날.. 만든 취지는 좋으나 속으론 볼 것 하나 없군요..
    사실 이 기사를 보지 못했다면 장영실의 날이 있는 줄도 몰랐을
    저도 반성해야 하지만 날을 만들고 취지에 맞게 성공적으로 끝까지 갈
    열정적인 사람이 없는 듯 하여 그것 또한 안타깝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우리들이 정작 중요하게 생각할 것들이
    물에 젖은 종이의 잉크처럼 번져 없어지는 듯 하여..
    속상하기만 합니다..
  • 신은시 2007/10/30 [23:46] 수정 | 삭제
  • 무심히 지나쳐 버린 나 자신..
    우리의 모습...
    부끄럽습니다.
    지금이라도 빨리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 이선화 2007/10/30 [23:08] 수정 | 삭제
  • 회사의 특성상 회사 건물앞에 장영실 동상이 세워져 있다.
    간혹 지나가던 행인들이 이 동상이 누구인지 참으로 궁금해 한다.
    측우기에 쓰였을법 한 자를 들고 있는 장영실 동상
    내겐 누구보다도 가까운 장영실 동상이건만 하지만 그 이름을 내건 또 모를 이익관계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 박미숙 2007/10/30 [22:52] 수정 | 삭제
  • 나 자신부터 부끄러움에 감히 고개를 들수가 없습니다.
    나 자신부터 역사에 대해 알려고도... 소중하게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 자신부터 장영실의 날이 있다는것 조차도 몰랐습니다.
    부끄럽습니다...
  • 김기자 2007/10/30 [21:47] 수정 | 삭제
  • 과학계는 '새 지폐에 우리 과학자 얼굴모시기 운동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장영실을 단일화하고 서명운동을 벌여 한국은행에 전달하는 등 지속적이며
    적극적인 움직임을 펼쳐온 가운데 고액권 초상인물로 과학계 인물인 장영실
    이 선정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인 것을 알려졌다는 보도를 봤었다.
    과학계에서 나선다는 것은 이제서야 자신의 밥그릇을 찾는것이 아닌가 싶어
    반가운 소식이다
    에디슨은 그렇게 추앙되면서 장영실을 묻어 뒀다는것은 본문에 밝힌것과
    같이 출신. 지연. 학벌이 중요시 되는 우리사회의 풍토가 지난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화 깊숙이 지배하고 흡수되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제라도 자신을 알고 좋은것을 가릴줄 아는 이성을 키워야 하고 무엇보다도
    선구자적으로 실천해 나갈 수 있는 촉매적인 역활을 우리 스스로 해야한다
    는 것을 반성하고 우주를 지향하면서 뿌리를 감추는 일은 없어야 할것이다
  • 장효진 2007/10/30 [16:09] 수정 | 삭제
  • 그동안에는 잘살기 위하여 살아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살만 합니다.
    지금 부터라도 우리 선조들의 행적도 더듬어 봐야겠습니다.
    말로만 할것이 아니고 진정으로 배울것은 배워야 겠지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더이상 소실되거나 잊혀져 가지 않도록
    우리가, 내가 관심을 가져야 겠습니다.
    누구를 탓할것이 아니고 우리모두가 반성하고
    이제부터라고 널리 알리고 계승할 것은 계승해야겠습니다.
  • 이초욱 2007/10/30 [13:55] 수정 | 삭제
  • 이러면 되지 않는다. 장영실 누구지?
    과학자 장영실로만 기억을 하는 것도 우리세대가 마지막이 되는 것은
    아닌지...
    현재 이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밑거름에는 조상들이 있고 그들이
    이루어 놓은 결과에 의해 지금의 나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고 보존함으로써 더 큰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들의 과제인데도 불구하고 많이 소홀하고 무관심했던 것 같다. 외국어 하나 더, 지식 하나 더,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과연 우리의 과거를 버리고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중요하단 말인가?

    갑자기 "소통"이란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조상들과 그리고 젊은이, 어린이들과 어떻게 소통을 할 것인가?
    기리자! 배우자! 소홀하지 말자! 소중히 여기자! 소통하자!
    우리 대한민국 모두의 소통을 위하여 기리고 기억하고 소중히 여겼으면 한다.
  • 진성진 2007/10/30 [11:45] 수정 | 삭제
  • 옛날말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공업, 과학 분야에 관련성이 있는 공무원이었다면 이렇게 방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국회의원의 상당수가 인문계출신이다 보니, 이공계는 점점 힘을 잃고, 실력에 비해 대우를 못 받는 사태가 오고 말았습니다.
    해외기술유출, 인재외국행 이런 일들이 그들만의 일은 아닙니다. 우리의
    잘못이 큽니다. 모두 반성합시다.
  • 김수일 2007/10/30 [00:48] 수정 | 삭제
  • 지금 우리세대에 장영실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젋은 사람들은 장영실이라는 사람이 누구인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지난 뉴수가 생각난다. 우리나라 역사가 필수가 아닌 선택과목이라 공부를 하는 사람이 없다는 뉴스를 보고 한숨이 나온 적이 있다. 의무적으로 배워야 할 역사가 선택사항이라니앞으로 우리의 역사는 하나의 우화가 될지도 모른다. 정말 답답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렇게 되다보니 장영실이 이렇게 위대한 일을 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어저면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자인 장영실을 세계 널리 알려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고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고 부끄럽기만하다.
    우리가 국민학교 시절에는 꿈을 물으면 80%가 과학자였는데 지금은 우리나라에 장영실 같은 과학자를 꿈꾸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얼마나될까? 아마 과학자라는 대답보다는 가수 연애인 대통령이 더 많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자녀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고 더 높은 꿈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이다. 앞으로 장영실 같은 과학자가 많이 나오기를 희망해 본다.
  • 이예숙 2007/10/29 [21:39] 수정 | 삭제
  • 그 시대는 천민들에게 열려지지 않은 시기인데도 아주 훌륭한 업적을 남긴 장영실이 더더욱 빛나 보인다. 그리고 그의 과학적 기구들을 통하여 현재에 과학이 발전하는데 공헌을 한 분인데 이렇게 홀대를 하다니 문화유산 보전인 면이나 과학자로서 후대에 물려 줄 정신등이 중심이 없는 것 같다.
    이런 것들이 돈이 많이 된다면 아마도 휴게소 마다 복원되어 있을 것이다.선진국일수록 문화유산을 중요시 여기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사는데 급급하지 않고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취재를 읽으면서 우리나라도 어서 빨리 돈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후대에게 물려 줄 만한 문화,정신등에 여유로운 삶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한선정 2007/10/29 [18:47] 수정 | 삭제
  • 위대한 과학자라고 국사 한켠에 있던 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 그런 위대한 과학자로 불리게 된 이유인 유물에 대해 연구하고 복원을 해놓아야 후세들이 그 것을 보고 느끼는 바가 있을 것 아닌가. 외국의 유명한 과학자나 문학가들 탄생지에는 그들을 기리는 박물관도 있고 섬세한 복원물도 있어 배우려는 학생들이나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것을 여러 TV 프로그램을 통해 보았을 것이다. 배우는 학생들과 후세들의 자랑스러움이 되기도 하고 본받으려는 계기가 된다. 더 나아가서는 단순한 기념사업회가 아닌 온 마을이 관광도시화 되기도 한다. 뭘 한가지 해도 똑 부러지게 할 수는 없는걸까?
    아니지, 벌써 낙심은 하지 말자. 우리도 할 수 있다. 위대한 과학자를 낳은 우리나라가 아니던가. 오늘 이렇게 과거를 돌아보는 기사가 써졌으니 한 두 사람이라도 반성하고 되새겨 본다면 앞으로는 정말 괜찮은 사업회도 생기고 제대로 된 복원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길 진심으로 바란다.
  • 정은화 2007/10/29 [16:12] 수정 | 삭제
  • "장영실" 이름을 본 순간 아! 우리나라에 훌륭한 과학자가 있었지..라고
    떠올려졌습니다.
    그만큼 장영실에 대한 관심이 많이 없었던 탓인것 같습니다.
    부산에 사는 나인데 동래구에 축제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으니 너무 부끄럽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기 보다 겉치레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장영실이 천민이었건 간에 우리나라 역사에 훌륭한 과학 업적을 남긴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함은 우리 후손들의 몫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무관심은 더이상 안됩니다.
  • 김상호 2007/10/29 [11:06] 수정 | 삭제
  • 우리 나라가 과학을 천시해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들이 여러 기록에서 밝혀져왔다. 그 중 장영실과 같은 유능한 과학자가 그 재주를 알아본 태조와 세종과 같은 위대한 지도자의 영향 아래 탄생할 수 있었음은 익히 아는 바이다. 다른 나라 과학 기술에만 눈을 돌릴 일이 아니라 제발 우리 것에 눈을 돌려 우리 과학의 자긍심을 갖는 일에도 신경을 썼으면 한다. 장영실의 날을 만들고 장영실 꿈나무를 키워야 한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우리 과학이 발전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노력했으면 한다.
  • 곽향미 2007/10/29 [02:21] 수정 | 삭제
  • 돈되면 눈이 뻘겋게 설치고 돈안되는 일이라면 나몰라라 뒷짐지는
    대한민국의 실상이네요..
    어떤 과학이든 기초가 있는법~
    현재의 과학이 발달한 것은 모두 과거의 자료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리고, 양반이 조금마한 것이라도 발명하면 위대해서 보존하고,
    쌍놈이 위대한 것 발명하면 홀대하는가?
    노무현 대통령이 장영실에 대한 이런 홀대를 보면 화날것 같은데요..
    무얼하시고 계신지???? 同病相憐 아닐까요??
    한국의 역사가 아무리 깊으면 뭣하는가?
    역사의 깊이를 말해주는 자료도 하나 못 챙기는데~~~
    저역시 힘이 약한 사람으로써 약간의 볼멘소리가 나네요..
  • 이문숙 2007/10/28 [20:12] 수정 | 삭제
  •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에 기여한 많은 과학자가 있지만 아직도 그 진면목이 드러나지 않은 면들이 많다. 선생님의 노력이 그런 일에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시중에 나온 과학자위인전집도 거의 모두가 외국인 일색이었다. 요즘은 조금 나아졌지만.
  • 장명심 2007/10/28 [18:13] 수정 | 삭제
  • 장영실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위대한 일을 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자인 장영실에 대하여
    세계적으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함에도
    엉성한 관리에 안타까운 마음이다.

    우리나라에 장영실 같은 과학자를 꿈꾸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얼마나 많은가!!
    여러가지 과학에 대한 대회도 많이 생겼고,
    과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는데
    미래의 장영실이 될 아이들에게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과학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 정신과 발명품들을 보여주어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이 나라에서 많이 배출되고
    과학부분에 노벨상도 받을 수 있도록
    장영실에 대한 연구와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도록 노력하길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 정지용 2007/10/28 [13:19] 수정 | 삭제
  • 아아.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이러한 내용의 기사를 볼 때 마다 가슴이 아프다. 언제까지 이렇게 보여주기식의 눈가리고 아웅하는 문화재 복원과 지키기운동 우리 것을 되찾자는 식의 활동을 전개 할 것인가.
    장영실 세종대왕 어렸을적 위인전을 몇번이고 읽은 기억이 난다. 단순히 오목해시계와 자격루 복원문제만이 아니다. 시인들 생가나 위인들 박물관을 보면. 시멘트 덧칠을 해놓거나 철골 구조물이 무성의 하게 드러나 있는것을 볼 수 있다.
    위인전을 읽고 감명받은 어린아이들이 그러한 광경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단순히 그렇게 복원을 한 관계자만을 탓할게 아니라 이러한 정보를 공유하고 널리 알려서 우리 국민 전체적인 공동의 문제로 인식하고 뿌리부터 고쳐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전남희 2007/10/28 [11:39] 수정 | 삭제
  • 우선 나 자신부터 반성해본다.
    과연 우리는 선조의 소중한 유산을 얼마나 아끼고 보존하려 했는지 생각해본다. 지금 나를 지탱해주는 많은 것은 조상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것들이 많다. 세계 곳곳에는 아직도 자신들의 언어를 문자화하지 못한 나라들이 많다. 우리가 쓰는 말, 우리의 위대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그 밑거름이 되어 고생했던 선조의 눈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사대주의에서 비롯된 고루하고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관리들이 있다면 빨리 깨우쳐야 한다. 우리 것을 지키는 것이 곧 세계화의 길임을 알 때만이 진정한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은 우뚝 서리라 생각한다.
  • djdudgml 2007/10/28 [06:15] 수정 | 삭제
  • 당연히 장영실이 없을 수 밖에 서로 떠 밀고 있으니 장영실이 어디에도
    찾기가 힘이 드는것 같으다. 나도 문회한이기는 마찬가지인것을,
    옛것을 보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 그렇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겉치레가 심한 우리나라, 그 누구도 옛것에 대한 자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