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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군부독재시대 민중 판화가의 삶 전파 탄다
24일 EBS 다큐 <시대의 초상>, 이철수씨의 작품과 삶, 작품세계 조명
 
김철관   기사입력  2007/07/22 [02:06]
수수한 한복 차림의 자유로운 농사꾼처럼 보이나 세상을 보는 시각만큼은 날카로운 한 판화가가 있다. ‘그림으로 시를 쓰는’ 판화가는 다름 아닌 민중판화가 이철수 씨. 
 
▲민중판화가 이철수 씨의 최근 모습     © EBS 제공
현재 충북 제천의 시골마을에서 ‘우리 산 찾기’ 운동을 전개하면서 살고 있는 그는 80년 군부독재시절 민중판화가로 유명하다. 이철수 민중판화가의 삶의 여정이 전파를 탄다. 24일 저녁 10시 50분부터 방송될 EBS 다큐멘터리 <시대의 초상>에서는 ‘여전한 슬픔과 분노-이철수 편’(연출 김영상)이 소개된다.
 
“걸레를 빨아서 얼굴을 닦고, 수건이 젖어있으면 어지러운 주변을 닦아요. 금방 빤 걸레는 수건보다 훨씬 깨끗하죠.” 현재 그는 그와 관계된 모든 것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듯 진지함이 엿보였다. 하지만 1980년대 내내 격렬한 미술운동을 하던 민중판화가라는 사실.
 
시대의 아픔을 상투적인 선전물에 가깝게 표현한 지난날 자신의 작품을 반성하고, 현재 연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대중들과 친밀하게 소통하길 원한다. 늘 모자라는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내고 살고 있다. 최근 일종의 반성문이라 할 수 있는 그림과 글을 선보이면서 사회와 시대에 대해 아직도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판화가 이철수 씨. 
 
“나는 동업자들에게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진짜 삶, 대중에게 관심이 있었을 뿐이죠.”
 
민중의 고난한 삶과 애환을 서정적이면서도 힘있는 필치로 그려내 8~90년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등 투쟁 현장에서 곧잘 인용됐던 그의 판화는 순전히 독학에 의한 연마의 산물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정규 미술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은 그는 한때 개인적 자조와 열등감에 빠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대와 민중의 삶에 대한 열정과 창작의 노력은 다행히 80년대 후반 이념의 소용돌이에서 정치성에 압도돼 있던 흐름에서 일찌감치 떨어져 서울을 떠나 시골로 향했다.
 
“유명한 사람들 많이 아는 거, 내 책임 아니예요. 다행히 삶의 진실성을 보여준 분들 만나 지금이 있었죠.” 
 
▲이철수 씨의 작품집 <자고나면 늘 아침>, 세상에 대한 연민과 따뜻한 응시로 채워져 있다.     © 도서출판 삼인, 2006
전시회에 찾아온 고 권정생 선생에게서 쉬운 언어와 소박한 삶을 배웠다. ‘몽실 언니’, ‘강아지똥’ 삽화를 그렸다. 이현주 목사를 통해 고 무위당 장일순 선생을 만났고, 권정생 선생 댁에 놀러온 전우익 선생을 만났다.
 
그는‘전체주의적이다’라는 한마디에 작품 활동을 중단한 적도 있다. 89년 독일 전시회에서 만난 한 여류미술가가 던진 한 마디에 충격을 받았던 것. 바로 “한국의 민중예술이 나찌즘 예술과 다를 게 뭐냐. 전체주의적인 냄새가 난다”는 말 때문.
 
“80년대 그림을 통해서 사회에 했던 발언보다는 조금 더 정직한 내 목소리를 소홀히 했다는 반성이 많았어요.”
 
폭압적인 사회에 보내는 저항이 격렬하게 표현된 80년대 그의 그림과 달리, 조용하고 차분한 언어로 그의 분노는 현재 우리들의 황폐해진 내면을 향한다. 80년대 노동운동을 하는 현장에 걸린 자신의 그림을 보면서 뭔가 좀 다른 그림이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고.
 
시대적인 알리바이를 만드는데 급급했다고 말하는 그는 지난날 우리시대의 아픔을 보는 듯 했다.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대접, 지금같이 소홀해서는 안 되죠.”
 
몸을 움직여 사는 사람들이 받는 푸대접은 말할 것도 없고, 농업 또한 마찬가지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가 ‘땀 흘린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 모른다면서 따갑게 질책을 한다. 비록 그림을 그려 먹고 살지만 땀 흘려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늘 눈앞에서 보고 또 옆에서 흉내를 내기도 한다는데, 정작 우리 입에 들어가는 ‘농사’라는 것은 그가 접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공부가 된다고.

▲이철수 씨의 작품     © 이철수
 
“앞으로 말로 충분하지 않으면 손짓발짓이라도 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그가 비교적 미술에 대한 욕심이 적어보이는 이유는 미술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일보다는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소통의 방식을 찾는데 고민이 많기 때문이다.
 
작고 소외된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그의 관심이 곧 미술의 한계점을 극복,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아닐까. 그림에 글을, 그리고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면 손짓발짓이라도 하겠다는 그의 올곧은 마음은 그가 세상에 보내는 화두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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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7/22 [02:0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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