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우리를 웃기게 만드는 '석두(石頭)' 언론인
노대통령을 '바보'로 만들고 자신은 현명하다는 언론인에게
 
권태윤   기사입력  2003/07/23 [12:35]

언어가 다른 나라 사람의 말이 아니라면, 같은 말을 듣고 전혀 다르게 이해하는 데는 크게 세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말 이해력이 너무 떨어져 엉뚱하게 이해하는 경우와,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이해하면서도 다른 목적으로 일부러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 그리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선택적으로 골라듣고 조합해 전혀 엉뚱한 해석을 내리는 경우가 그것이다.

정말 이해력이 떨어져 남의 말을 엉뚱하게 이해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본의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고의적으로 달리 해석하는 경우나,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취사선택해 전혀 다른 해석을 하는 것은 악의가 있는 행패에 가깝다. 우리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수구언론들의 보도태도를 비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기자회견 모습     ©청와대홈페이지
노무현대통령은 얼마 전 대선자금 공개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통해 김근태 의원의 양심고백을 예로 들면서,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이 결국 비난을 받는 어리석은 일이 되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 노대통령의 발언이 “김근태 의원은 어리석다”는 것이 아니라, 용기 있는 고백을 한 사람을 칭찬하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비난하고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는 우리 정치권과 사회의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태도를 안타까워 한 말이란 것쯤은 별 무리 없이 이해될 수 있는 말이다.

결국 노대통령의 발언은, 선의의 양심적인 고백마저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느 일방만의 대선자금 공개가 일방적 비난으로 매도되고 공개의 진정한 목적마저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한 것이다. 이런 너무도 평범한 발언을 두고 우리 언론은 또다시 이를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

[관련기사] 심재석, 누가 김근태를 웃음거리로 만드나?, 대자보(2003.07.22)

▲한국일보 기사     ©한국일보홈페이지
한국일보 신효섭 정치부차장은 제목부터 꼬일 대로 꼬인 23일자 ‘양심고백이 웃기다니…’라는 제하의 글에서 “노 대통령이 김근태 고문을 문자 그대로 '바보'로 만들어버리고, 자신은 '감출 것은 감출 줄 아는 현명한 정치인'으로 자처하는 우(愚)를 범했다.”고 단정하며, “여야를 향해 솔직하게 양심고백을 하자면서 정작 용기 있게 양심고백한 사람을 그렇게 해 버리면 자기 말에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까? 혹시 실수였다 하더라도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고 충고한다.

이건 정말 코미디요, 기자의 실수였다 하더라도 해서는 안 될 해석이다. 정치부 차장기자 신분인 그가 정말 이해력이 떨어져 그런 해석을 했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특히 “노대통령은 김근태 고문을 문자 그대로 '바보'로 만들어버리고, 자신은 '감출 것은 감출 줄 아는 현명한 정치인'으로 자처하는 우(愚)를 범했다”는 그의 말이야말로 정작 “한 기자는 노대통령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고 자신은 현명한 기자로 자처하는 우를 범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나쁘게 듣는다 하더라도, 노대통령이 그런 식으로 김근태 고문을 욕보이고 자신만 현명한 정치인으로 자처하는 우를 범했다고 들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는 지난 대선과정에서 중앙일보 기자가 당시 노무현 후보의 ‘안 시장’발언을 ‘에이 썅’으로 잘못들은 것이나, 조선일보 기자들이 툭하면 학자들이나 시민단체의 글이나 발언을 전혀 엉뚱하게 해석해 선의를 왜곡하고 당사자들의 명예에 손상을 입힌 잘못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게다가 언론의 이런 전혀 다른 해석과 이해력은 기자 자신의 수준 낮은 인식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대중에게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고, 결국 대중들이 잘못된 이해를 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언론사의 기자 채용 시 이해력 테스트를 강화해야 하는 것인지, 멀쩡한 기자들의 귀를 난청으로 만드는 언론사의 시스템을 고쳐야 하는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없어 더욱 답답할 따름이다.

* 필자는 '좋은 글을 통해 우리를 생각하는 PEN21사이트( http://www.pen21.com/ ) 운영자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3/07/23 [12:35]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