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자유무역협정) 6차 협상이 서울에서 열리는 가운데 2월 일괄타결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그 배경은 이번 회담에서는 협상진척이 없는 무역규제, 자동차, 의약품-의료기기, 위생검역이 아예 의제로 채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농업분야에서도 쌀과 같은 민감품목은 논의하지 않는다. 또 미국은 TPA(무역촉진권한법)에 따라 회담을 2월까지는 마쳐야 할 입장이다. 3월에는 USTR(미국무역대표부)이 의회비준을 준비해야 한다. 3~6월에는 의회비준을 위한 청문회가 개최된다. 한-미 FTA는 단순한 역내교역의 자유화가 아니라 포괄적인 경제통합을 의미한다. 즉 한국경제의 미국예속화를 뜻한다. 따라서 사회체제-경제제도에 일대변혁이 일어난다. 최재청 의원(열린우리당)이 조사한 바로는 국내법 1,163개중에 15%인 169개가 협상내용과 상충한다고 한다. 관련법령의 개폐가 필요한 것이다. 협상진전에 따라 그 범위는 더 늘어난다. 이것은 그 만큼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광범위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모든 국민은 협상내용에 대해 알 권리가 있고 찬반의사를 표시할 권리를 가졌다. 이 중차대한 국가적 사안을 놓고 노무현 정부는 작년 2월 의견청취-여론수렴도 없이 돌연 한-미 FTA 추진을 선언했다. 협상과정에서도 구체적인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국민적 설득작업이 없다. 이것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사회적 합의를 외면하는 행위다. 협상내용은 전문적이고 복잡하고 난해하다. 그런데 국익증진이라는 구호로 단순화하여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펴고 있다. 반면에 이해집단-계층의 의사표시는 억압하고 있다. 원정대가 미국에 가서 시위를 벌였으나 그곳의 관헌은 통제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 나라에서는 대규모 경찰병력이 원천봉쇄한다. 이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다. 농민들이 FTA를 반대한다고 외쳐도 메아리가 없다. 반대의사를 전파하려고 시위라도 벌이면 언론은 폭력성만 부각시킨다. 농민들이 참담한 심정을 알리려고 ‘나락 모으기’로 8,000만원을 모았다. 영화인들이 도와 ‘고향에서 온 편지’라는 35초 짜리 방송광고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것을 사전심의하는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가 ‘조건부 방송가’라는 판정을 내렸다. 특정한 내용을 삭제하지 않으면 방송할 수 없느니 사실상 방영불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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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12월 8일 경상남도 함안 장포마을에서 제작한 한미FTA 반대 TV광고 '고향에서 온 편지'의 한 장면. © 대자보 김한솔 | 문제가 된 부분은 농촌 할머니들의 대사내용이다. 한 대목은 “우째 됐던 끝끝내 막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야 될낀데…”이다. 다른 대목은 “한-미 FTA 이거 우리는 꼭 막고 싶은데…안 할낍니데이! 꼭 막아 내이소!”이다. 이 판정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침해다. 군사독재정권에서도 이 정도의 반대의사는 표현할 수 있었다.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연구원도 FTA가 체결되면 농업생산량이 40% 감소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생존권을 위협받는데 이런 말도 못한다는 말인가? 그런데 노 정부는 어떤가? 언론비판에 대해서는 국정브리핑을 통해 반박한다. 또 국정홍보처와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가 각종 매체를 통해 집중적인 홍보작업을 벌인다. 부정적인 영향은 극소화하고 긍정적인 효과는 극대화한 내용이다. 지난해 추석에 맞춰 11개 신문에 ‘농업은 나는 어머니입니다’라는 전면광고를 실었다. 한겨레가 FTA에 비판적이자 그 배달망을 통해 장밋빛으로 가득 찬 홍보책자 20만권을 배포했다. ‘KBS 스페셜’과 ‘MBC PD수첩’이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가 멕시코 경제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을 다뤘다. 그러자 정부부처가 합동으로 반박광고를 실었다. 또 5,000만원이란 해외취재비를 들여 관영매체인 국정브리핑과 KTV를 통해 즉각 대응하고 나섰다. 광개토대왕과 장보고를 내세워 한-미 FTA가 선진국을 약속한다고 흥분한다. FTA가 체결되더라도 미국의 관세율이 낮아 수출급증을 기대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런데 대외경제연구원이 성장률을 과다하게 예측하여 조작시비에 휩싸이기도 했다. 작년 1월에는 1.99%였는데 나중에 7.75%로 둔갑했다는 게 ‘KBS 쌈’의 추적보도이다. 지난해 홍보비로 70억원을 쓰고 올해도 65억원을 편성했다. 정보를 독점한 정부가 거액의 예산을 쓰면서 일방적인 국정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가장래가 직결된 사안은 국민적 참여 아래 공론화가 이뤄져야 한다. 독단적인 결정에는 국민적 저항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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