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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 쾌감' 즐기는 ‘사디스트 언론들’
조중동 바이러스는 국민들에 의해 퇴출당하고 말 것
 
권태윤   기사입력  2003/06/19 [15:57]

초등학교 2학년 때 도회지에서 시골로 이사를 온 나는, 이사 온 첫날 처음 보는 녀석과 느닷없이 한바탕 싸움을 벌인 적이 있다. 가뜩이나 이사를 와서 어리벙벙한 상태에 있었는데,  녀석이 다가와 눈을 치뜨고 나를 노려보더니 "네가, 나를 한주먹에 KO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며?"라고 말하며 다짜고짜 주먹을 날렸다. 엉겁결에 원인도 모르는 주먹에 얼굴을 맞은 나는 쌍코피를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비릿한 코피를 맛본 순간 나도 이성을 잃고 주먹을 마주 날렸고, 이내 우리는 서로 멱살을 잡고 발길질을 하며 이리저리 땅바닥에 나뒹굴며 한참을 싸웠다.

어처구니없는 싸움을 하게 된 이유를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마을에 동네아이들 싸움 잘 붙이기로 소문난 형이 꾸민 계략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아이들이 피를 흘리며 싸우도록 만들어 놓고 그는 뒤에서 낄낄거리며 그 장면을 즐겼던 것이다. 평소에도 그는 동네 아이들 싸움 붙이는 일을 상습적으로 저지르며 그걸 즐긴다는 말을 들었다. 낯선 마을에 이사 온 동생뻘 되는 아이를 반갑게 맞이하기는커녕 싸움을 붙여놓고도 능글맞게 웃던 그 얼굴을 참으로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없었다.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면 이런 부류의 인간들은 참으로 많았다. 하지도 않은 말을 꾸며내 아이들을 이간질을 시키고, 가뜩이나 화를 참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계속해서 "참지 말고 혼내주라"라고 충동질 하는 그런 족속들 말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해서도 역시 그런 인간들을 많이 만났다. 직장 동료들 사이를 끊임없이 이간질시켜 결국에는 조직 전체를 망가뜨리는 인간들도 봤고, 갈등관계에 있는 동료나 부부사이의 문제에 끼어들어 도리어 분열을 조장하고 싸움을 키우는 인간들도 봤다. 이런 종류의 인간들은 끊임없이 '악마의 속삭임'을 퍼뜨리며 서로를 미워하게 만들고, "싸울 것을 왜 말로 하냐?"는 식으로 싸움을 부추기면서 쾌감을 느낀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이런 이들은 자신들이 '즐기기' 위해서 숱한 다수를 괴롭히는 암적(癌的)인 존재다. 이들이 더욱 악질적인 이유는, 그렇게 자기가 모략을 꾸며서 다투게 만들어 놓고는, 어느새 태도를 바꾸어 "이러면 쓰냐?"며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훈계를 늘어놓는다는 점 때문이다. 이쯤 되면 어이가 없어 할말을 잃게 된다.

▲조중동은 황색신문?!     ©대자보
언제부턴가 나는 '조중동'이라는 신문들을 보면, 분열을 조장하고 싸움을 부추기면서 쾌감을 느끼던 고향의 그 못된 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의 언론들, 특히 '조중동'으로 통칭되는 수구언론들은 스스로 권력의 감시자이자 '파수꾼'임을 자처하길 좋아한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파수꾼(把守꾼)'이란 말 그대로 못된 이를 지켜내고 잡아내는 이다. 그러나 '조중동'의 그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을 그들 스스로가 말하는 진정한 파수꾼은 결코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물론 내가 이처럼 강하게 그들의 주장을 부정하는 것은 그간 그들이 보여준 악의적인 분열조장 행태 때문이다.

언론이 건강한 사회의 공기(公器)로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화해와 통합을 추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갈등관계에 있는 가정이 있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그들 부부를 화해시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진정한 '가정 파수꾼'이듯, 언론 역시 그러해야만 한다. 부당한 권력이나 비리를 감시하는 일의 목적 역시 그런 행위를 통해 더 건강한 권력, 더 깨끗한 정의를 위한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조중동'은 어떠한가. 입으로는 건강한 감시와 비판을 주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파괴적 분열조장을 통한 쾌감 즐기기에만 매달리고 있다.  

갈등과 대립관계에 있는 남북문제를 바라보는 시선만 해도 그렇다. 그들은 도무지 남북이 화해하고 협력하는 꼴을 가만두고 보질 못한다. 화해와 협력을 위해 힘과 지혜를 모으도록 하고, 남북이 서로 양보하고 협력해 희망적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돕지는 못할망정 사사건건 훼방을 놓고 이간질을 시켜 도리어 갈등을 키우고 불안을 증폭시키는 짓에 열을 올린다. 이들이 이 나라와 이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바라는 언론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이런 언론이라면 입을 다물고 침묵하는 것이 바람직한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훨씬 가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 정도이다.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일에도 아주 열심이다. 신문 팔아먹는 재미에만 미쳐 지난 수 십 년간  지역주의에 편승해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충족시키려는 반민족적 사이비 정치꾼들과 부화뇌동해 끊임없이 영호남의 갈등을 조장하고 부추기는 '분열쾌락 중독증'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도 반성하고 고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지역갈등을 치유하는 일을 바라기는커녕 도리어 그것을 즐기고 있는 한, 또 이런 '분열 책동자'들이 우리 신문시장의 70% 이상을 석권하고 있는 한 이 땅의 고질병인 지역갈등을 치료하는 일도 그만큼 힘과 시간이 더 들 것이다.

부유층과 특권층의 권익만을 대변하며 계층간 갈등을 부추기는 일도 이들이 즐기는 단골 메뉴요, 사용자와 노동자의 사이를 갈라놓지 못해 안달하는 일도 이들의 '놀이' 중 하나다. 본질적인 문제는 고민해 볼 생각도 없이 교육집단간 분열과 투쟁을 부추기는 일이나, 이념갈등과 세대간 분열을 조장해 편을 가르고 서로 싸우도록 뒤에서 조종하는 짓도 이들이 즐기는 '놀이' 가운데 하나다. 이들은 하루라도 정부를 물어뜯고 공직자를 이간질시키고, 집단간 갈등을 부추기지 않으면 신문에 곰팡이라도 돋는 모양인지 지치지도 않고 갈등과 분열 조장에 열을 올린다. 어떤 언론인은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까지 퇴출종용을 받았으면서도 정신을 못차리고 미국에 가서도 '분열조장 지원사격'을 포기하지 않고 있을 정도다. 이런 모습을 보노라면 그들의 '신문사 헌장'이 "우리는 민족분열과 사회갈등 조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입만 열면 "정권이 편 가르기에 앞장서고,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들은 무조건 적으로 몰아 부친다"는 소릴 태연히 내뱉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서도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의 입을 봉하려는 의도"라는 과대망상증까지 보여준다.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그리고 한반도라는 민족의 살림터에서 그간 '조중동'이 민족의 화해와 평화, 지역간 세대간 화해와 통합을 위해 과연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기여한 적이 있는지 돌아보라는 말이다. 그리고 말로는 화해와 통합을 내뱉으면서도 실제로는 끝없이 적개심을 부추기고, 적의에 불타 서로를 미워하게 만든 진짜 장본인은 누구인지 단 한번만이라도 자신을 성찰해보라는 것이다.

▲ 조,중,동 하는 꼴들이 꼭...     ©대자보
우리의 언론, 특히 '조중동'은 이제 사회의 건강한 공기(公器)라고 볼 수도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다. 물론 그것은 그들이 자초한 결과다. 제국주의의 압제와 군사정권의 강압에 굴종해 더러운 웃음을 팔 때부터 이미 그들은 건강한 감시자요 진정한 파수꾼이 아니라, 사나운 주인의 금고만을 지켜주는 비굴한 잡종견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얻어맞으면서도 주인이 두려워 복종하던 개가, 착한 주인, 좋은 세상 만나서 감사한 줄을 모르고 도리어 그런 주인을 졸로 보고 으르렁거린다면 그 개가 갈 곳이라곤 보신탕집 밖에 달리 없을 것이다. 독재시대에는 "난 파수꾼이 싫어요! 오로지 독재자, 당신만의 충복이랍니다!"를 외치다가, 민주화된 세상이 되자 아무런 반성도 없이 느닷없이 "난 진정한 민주주의의 파수꾼이요, 국민의 대변자다!"라고 주장하는 건 아무래도 낯짝 간지러운 일이다.

이제라도 '조중동'은 자신들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드러난 본색에 걸 맞는 주장을 하라는 말이다. 그들이 진정한 권력의 감시자요, 건강한 비판자요, 국민의 파수꾼이 아닌 것은 그간의 행적으로 이미 충분히 입증되었다. 이 땅과 국민들에게 필요한 언론은 제국주의에 굴종해 아부하던 매국언론, 독재에 아부해 치부하던 사이비 언론, 자기 옷에 뭍은 똥은 보지 못하고 남의 옷에 뭍은 겨만 탓하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철판 언론'이 아니다.

갈등하는 대상들을 화해시키고 통합시키기 보다는, 앞장서서 분열을 조장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언론은 이미 언론이랄 수도 없는 '공공(公共)의 적(敵)'일 뿐이다. '사스' 보다도 더 치명적인 '갈등 바이러스'를 수 십 년간 퍼뜨리며 그동안 순진한 국민들을 중독 시킨 죄 또한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이들 '조중동'이 언제까지 '분열 바이러스' 배포 역할을 계속할지 알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이런 바이러스로 나라와 민족을 분열시키는 책동을 계속하다가는, 이성과 상식이라는 면역력을 갖춘 국민들에 의해 반드시 퇴출당하고 말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만 할 것이다.

* 필자는 '좋은 글을 통해 우리를 생각하는 PEN21사이트( http://www.pen21.com/ ) 운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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