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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물난리에서 얻는 교훈
[논단]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 통해 끔찍한 전쟁 가능성을 줄여나가야
 
이재봉   기사입력  2006/08/07 [17:58]
   요즘 한반도 정세가 매우 불안한 것 같다. ‘불안하다’고 말하지 않고 ‘불안한 것 같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두 달 가까이 나라 밖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신문이나 방송은 물론 인터넷 접속까지 잘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6월 중순부터 중국과 미국에 나와 있는 동안,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를 빌미로 미국과 일본이 북한에 대한 유엔 제재를 이끌고, 남한이 부분적으로 동조함으로써 북미 관계에 이어 남북 관계도 얼어붙고 있는 모양이다. 특히 남한이 북한에 대한 식량과 비료 지원까지 거부하는 바람에 북한은 이산 가족의 만남을 취소하는 등 남북 당국 사이의 접촉이 끊어지는 상태에서, 북한이 극심한 장마 피해로 8.15 공동 행사 및 8월 중순부터 계획되어 있던 ‘아리랑’ 공연을 하지 않기로 결정함에 따라 남북 민간 사이의 교류마저 크게 줄어들게 될 것 같다.
 
 2년 전인 2004년 7월엔 남한 정부가 김일성 주석 조문 방북을 불허하고 베트남에 머물러있던 탈북자들을 대거 남한으로 불러옴으로써, 한 동안 남북 사이에 계획되었던 정부 차원의 행사는 물론 민간 차원의 행사조차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등, 2000년 6월 정상회담 이후 최악의 남북 관계가 빚어졌었는데 이번엔 그 때보다 더 악화할 것 같은 조짐이 보인다. 오죽하면 북한은 수천명이 죽었다는 소문까지 떠도는 막대한 수해를 입은 처지에서 수해 복구를 위한 남한 적십자의 인도적 지원까지 거부했을까.
 
  지난호에 썼듯,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는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속임수 또는 위협 전술이었다. ‘대포동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는 체하면서 중거리 미사일과 단거리 미사일까지 쏘아 올린 것은 미국의 정보력을 우습게 만들어버린 듯하다. 미국이 정보 위성과 정찰기들을 동원하여 축구공 크기 만한 물체의 움직임까지도 추적할 수 있다는 터에, 미국과 주변 국가들이 예상치 못했던 미사일을 여기저기서 몇 발이나 쏘아 올린 것은 상대방의 정보력을 시험해보며 자신의 미사일 정확도를 과시한 셈이 아닐까. 속임수와 위협 전술을 섞어 협상력을 높이려 했던 것 같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사일 발사가 국제법 위반이 아니고 정당한 주권 행사이지만,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에서 보듯, 미국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 사회를 무시하며 무슨 핑계나 어떤 구실로든 다른 나라를 폭격하거나 침략할 수 있는 나라다.

  국제 사회는 법과 이성보다는 힘과 국익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불법이 아닐지라도 미국의 일방주의와 호전성이 한반도를 전쟁터로 이끌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비위에 거슬리는 나라를 선제 공격할 수 있다는 미국의 엄포에 어느 정도 방어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자신은 건드릴 생각을 하지 마라는 북한의 ‘선제 방어’용 시위일 수도 있겠지만 위험한 짓임엔 틀림없다.
 
 또한 미국과 남한이 각종 첨단 무기들을 동원하여 정기적으로 대규모 합동 군사 훈련을 해오고 있는 마당에 북한은 그에 맞서 미사일 발사 훈련을 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주장을 펼 수도 있겠지만, 핵무기나 미사일은 첨단 무기들 가운데서도 대량살상무기 (WMD)의 대표격이기 때문에 주변 국가들에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게다가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까지 발사하자 남한 사회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 ‘남한 적화용’이라는 억지와 금세 전쟁이라도 터질 것처럼 위기를 조장하는 호들갑이 북한에 대한 부정적 여론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지지도가 바닥을 헤매는 노무현 정부가 미사일 발사 이전에는 비교적 냉정함을 유지하다가 발사 직후부터 과민 반응을 보이게 된 배경이리라. 물론 정부가 식량과 비료 지원을 미사일 시험 발사와 연계하며 남북 장관급 회담을 파국으로 이끈 것은 큰 잘못이었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두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터에 북한에 엄청난 물난리가 났다고 한다.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에도 장마 피해가 극심한 모양이지만, 여길 가나 저길 가나 산에 나무를 찾아보기 어렵고 모든 기반 시설이 취약한 북한 쪽의 피해가 훨씬 클 것이다. 몇 천명이 죽었다는 소문도 들리고 사망자와 실종자가 몇 만명에 이른다는 보도도 나온다. 이런 어려움을 당해놓고도 남한 적십자의 인도적 지원까지 거부하는 북한 당국의 오기도 얄밉고, 이에 적절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는 남한 당국의 무능도 한심스럽다.
 
  이럴 때엔 민간 차원에서 먼저 막힌 물꼬를 터주는 게 바람직하다. 10년 전인 1990년대 중반 북한에 ‘100년만의 물난리’가 닥쳤을 때 우리는 어른이나 아이나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녘 동포 돕기 운동에 나섰고, 2년 전인 2004년 룡천에서 폭발 사고가 났을 때도 다양한 지원 활동을 펼쳤다. 그러한 대북 지원이 남북 사이의 적대감을 줄이고 긴장을 낮출 수 있었듯이, 이번에도 민간 차원에서 먼저 모금 운동을 벌임으로써 어려움에 처한 북녘 동포를 돕는 한편 속좁은 양쪽 당국자들이 다시 손잡을 수 있도록 이끌게 될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이나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이 큰 어려움에 빠졌을 때 남한에서 북녘 동포 돕기 운동을 펼치자 이 기회에 북한을 몰아붙이면 북한 붕괴와 흡수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이 꽤 많이 나왔다. 북한이 무너지면 흡수 통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나의 반박에 제대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한 대학생의 대꾸는 “까짓 것 한 판 붙으면 될 것 아닙니까?”였다.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마침 지난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전후하여 남한의 극우 세력 가운데서는 미국이 북한을 폭격해야 한다는 주장을 서슴없이 내놓은 철없는 어른들도 적지 않았다. 만약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면 김정일을 비롯한 위정자들만 죽고, 그 때문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면 북녘 군인들만 죽을까.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대원들보다 죄없는 민간인들이 훨씬 더 많이 죽었고, 이라크에서는 반군이나 후세인 지지자들보다 무고한 생명들이 훨씬 더 많이 사라지고 있는 사실을 통해 전쟁의 끔찍스러움과 처절함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걸까. 요즘 레바논에서도 헤즈볼라 대원들보다 애꿎은 시민들이 훨씬 더 많이 희생되고 있지 않은가.
 
  이미 여러 차례 얘기했듯이, 김정일이 예뻐서가 아니다. 북한 체제가 좋아서도 아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서도 아니다.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을 통해 끔찍한 전쟁의 가능성을 조금씩이라도 줄여나가자는 것이다.
 
  이 글을 쓰기 하루 전인 8월 3일 대구 근처에 사신다는 분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6.25 때 ‘북한 괴뢰군’과 싸우다 부상을 당한 ‘상이 용사’ 출신으로 70중반에 이르신 분이라는데, 아직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가끔 이메일을 주고받는 사이다. 이 분의 제안을 그대로 아래에 소개하며, ?남이랑북이랑?에서도 북녘 수해 복구를 위한 모금 운동을 전개하고자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아놓은 성금 가운데 일부를 8월 <남이랑북이랑> 운영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북녘에 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아울러 밝힌다.
 
 “이재봉 교수님, 쌀 안주고 비료 안주면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온다고 식량 지원을 끊었습니까? 미사일 시험을 대남 공격에 두었습니까? (통일부장관) 이종석씨가 그 정도밖에 안됩니까? 부시가 그렇게도 무서운가요? <남이랑북이랑>에서 북한 수재민 돕기 성금 모으기는 하지 않습니까? 아래 영어 격언으로 친구와 자식놈들로부터 성금을 끌어낼까 합니다.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Koreans in need are Koreans indeed.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참된 친구’라는 말을 ‘어려울 때 도와주는 한국인이 참다운 한국인’이라는 뜻으로 바꿔본 것인데 말이 되는지요? 은행 계좌를 하나 선정해 주십시오.
 
 북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미안하지만 재작년의 용천역 대폭발 사고 때처럼 큰물 난리가 동족의 화해를 촉발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북한에서 親南派 (친남파)를 늘어나게 할 수 있을 것이고, 개성 공단이나 금강산 특구 같은 것이 북한 땅에 늘어나면 날수록 전쟁 발발의 위험도 상대적으로 감소할 것이고, 평화적인 통일의 날은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요? 그 때가 비록 먼 훗날일지라도 전쟁은 하지 않아도 될 것 아니겠습니까? 동족간의 증오와 반목을 싫어하는 시골 노인 드림.”
 
  (북녘의 수해 복구 지원을 위한 계좌를 따로 만들지는 않겠습니다. <남이랑북이랑> 소식지에 소개되는 모든 계좌에 8-9월 중에 들어오는 회비 또는 성금은 모두 수해 복구 지원 비용으로 내놓을테니 많이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 글쓴이는 원광대 교수로서 <남이랑북이랑>(http://pbpm.hihome.com)의 편집인이며, 본문은 소식지 89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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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8/07 [17:5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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