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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대통령의 ‘본색(本色)’은 무엇인가?
'할말은 하겠다'에 속은 약소국 국민의 상처받은 자존심
 
권태윤   기사입력  2003/05/20 [17:09]
노무현대통령의 미국 방문시 행한 발언들을 두고 말들이 많다. 특히 노대통령이 그간 자신에 대해 다소 미덥지 못하게 생각하는 미국 정/재계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해 ‘아부’로 비춰질 정도로 과한 발언을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많다. 한총련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노대통령을 겨냥해 기습시위를 벌인 일도 이런 사회일각의 비판여론이 표현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대통령 입장에서는, 그간 껄끄러웠던 한미간의 관계를 원만하게 해소하고 돌아왔다고 평가하기에 이런 비판에 대해 다소 억울하다는 느낌을 갖는 모양이다. 노대통령이 1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석상에서 자신의 미국방문이 “서로의 우의를 다지고 한미공조를 하기 위한 것이지 싸우러 간 것이 아니다”면서 특히 문제가 된 발언에 대해 “미국을 칭찬한 발언이나 감사를 표시한 부분에 대해 일부에서 문제 삼고 있지만 미국 역시 한국에 대해 여러 차례 극찬에 가까운 감사표시를 했다”고 강조한 부분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번 노대통령의 미국 방문시 행한 발언들은 비판을 받을 만 하다. 비록 국익을 최우선시 해야 하는 대통령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의 발언은 지나쳤다고 인식되기에 충분하다. 누군가의 지적처럼 “정작 미국이 아니었더라면 남북이 분단되는 결과도 생기지 않았고, 당연히 노대통령이 감방에 있을 이유는 애당초 없었을 것”이다. 결국 첫 미국방문에 들뜬 나머지 너무 낯간지러운 발언을 해버린 셈이다.

이를 두고 노대통령은 “미국에 싸우러 간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야 물론이다. 어느 누가 싸우러 가라고 하지도 않았거니와, 시비 걸려면 한국에 앉아서 말 몇 마디만 해도 충분한데 미국까지 비싼 세금 낭비해가며 날아가 그럴 필요도 없다. 당연히 싸우러 가지 않았지만, 아부하러 가지도 말았어야 했다. 싸움보다도 더 국민을 열 받게 만들고 부끄럽게 하는 것은, 우리와 상대도 되지 않는 강자에게 행하는 비굴할 정도의 찬사다.

노대통령은 또 “미국 역시 한국에 대해 여러 차례 극찬에 가까운 감사표시를 했다.”며 그것이 주고받는 ‘립서비스’였을 뿐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약소국이 강국에 대해 늘어놓는 찬사와, 강국이 약소국에 대해 행하는 찬사는 겉으로 드러난 단어는 같다고 하더라도 그 속뜻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약소국의 그것은 생존을 위한 아부요, 강대국의 그것은 말 그대로 어린아이 기 살려 주는 식의 토닥거림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노대통령의 미국방문이 굴욕적이었다거나, 문제가 많았다고 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국민들의 의사를 배반했다는 점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은 이미 일정부분 위험(?)을 감수했다. 미국에 “할 말을 하겠다.”는 후보가 대통령이 될시 수구보수세력이 그토록 위협하던 경제적 어려움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점을 이미 다 예상하고 감수할 각오를 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친미정당인 한나라당의 후보가 아니라, “할 말을 하겠다.”는 젊고 당찬 후보를 선택한 것은, 그만큼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할 말도 못하는 약소국 국민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치료받고 싶은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수구냉전세력에 의해 부풀려지고 과장된 측면도 많지만, 대선 기간부터 지금까지 한미간 공조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것도, 따지고 보면 ‘노무현’이라는 브랜드가 큰 이유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아부에 가까운 발언으로 미국의 마음을 사려한 노대통령의 발언은, 대선운동기간 동안 그가 보여준 행보가 다분히 비판적인 대미정서에 편승한 것이었을 뿐이었느냐는 배신감을 던져주기에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의 지지자들이 지난대선에서 미국으로부터 오해를 받든 어찌됐건 다소 ‘불안한 브랜드’를 선택했던 것은,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물론 “미국에 할말을 하는 대통령”을 말한다. 지나칠 정도의 칭찬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노무현 이라는 브랜드에 덧씌워진 오해를 털어버릴 수 있었을 것이며, 상호 우의를 다지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니 ‘아부’라느니, ‘저자세 굴욕외교’라느니 하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고, 이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대통령의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미국방문시 행한 여러 발언들 가운데 북한체제와 통일문제 접근방식에 대해 많은 수정과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부분은 더욱 자세한 해명이 필요하다. 한미공조를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남북간의 직접적 관계와 접촉성과를 훼손해버리는 나쁜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자신보다 더 오랜 세월동안, 그리고 깊이 있게 남북문제를 연구하고 고민해오며 햇볕정책을 추진해오는 과정에서 극우세력들로부터 온갖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아오면서도 묵묵히 추진해 온 김대중 前대통령이 만들어낸 성과들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어쨌거나 비싼 비용을 치러가며 이만큼이라도 진전된 남북관계가 노대통령의 한미공조를 위한 발언들로 인해 후퇴되기라도 한다면 두고두고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는 노무현대통령이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며 사사건건 충돌하라고 주문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자신이 선거기간동안 주장했듯 딱 그만큼만 “할말을 하는 대통령”이길 기대할 뿐이다. 그렇지 않고 한미공조에만 매몰되어 수구냉전세력의 입장만 대변한다면, 도대체 한나라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았을 때와 과연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회창이 아니라 노무현을 찍은데 대한 차이가 무엇인지를 보여 달라는 말이다. 나라의 자존심을 지켜 주길 기대하며 그에게 한 표를 건넸던 국민들로서는 너무도 당연하고 소박한 기대 아닌가?  

* 필자는 '좋은 글을 통해 우리를 생각하는 PEN21사이트(http://www.pen21.com/ ) 운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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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5/20 [17:0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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