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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를 보면 대권이...당신이 아는 광고의 종말
노후보의 흑백광고가 이후보의 만화를 압도하는 이유ba.info/css
 
민경진   기사입력  2002/11/29 [00:22]
“앞으로 꼭 필요한 투자 외에 출장비, 광고비 같은 불요불급한 잡경비(miscellaneous expenditure)는 가급적 줄여나갈 계획이다.” – 삼성

{IMAGE2_LEFT}세르지오 자이만은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는 ‘클래식 콜라’ 캠페인을 진두지휘한 코카 콜라의 마케팅 책임자였다. 최근 그가 낸 새 책 '당신이 아는 광고의 종말'에 대한 서평이 파이낸셜 타임스에 실렸는데 그는 삼성의 임원이 아마도 IMF를 전후해 단행한 경비절감을 앞두고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 위의 발언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 '즐겨요, 코카콜라'를 '즐겨요, 자본주의'로 패러디한 포스터. 출처 www.subvertise.org  

광고가 어떻게 잡경비로 분류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의 생각에 광고는 새로운 사업과 매출확대를 위한 ‘투자’인데 출장비나 사무용품 구입비와 같은 잡경비 취급을 받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삼성 같은 회사가 아직도 광고를 잡경비로 여길 정도로 뒤떨어진 인식을 보이고 있다면 국내 유수 기업들이 마케팅과 광고를 바라보는 평균적 시각을 짐작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이는 광고업계 전체의 책임이 될 수도 있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 같은 경우 사이트 개설 후 한동안 매년 초기자본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돈을 광고에만 쏟아 부었는데 만약 누군가 그 예산을 잡경비라고 부른다면 아마존의 마케팅 담당자는 보통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에게 광고는 회사의 사활을 걸고 집행한 투자였기 때문이다. 닷컴의 경우 네티즌 사이에서 얼마나 확실한 인지도를 확보하느냐가 회사의 초기생존을 좌우한다.

하지만 기업의 회계장부에서 광고비는 여전히 투자가 아니라 경비로 처리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세기 제조업 마인드는 물건은 만들어 놓으면 소비자가 사게 마련이고 광고란 판매를 원활하게 돕는 불가피한 경비라고 본다. 하지만 요즘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살 물건이 없어 못사는가? 소비자는 이미 만들어 놓은 물건 사주는 존재로 취급 받기를 거부하고 이제 내가 원하는 혹은 내 기대를 뛰어 넘는 물건을 기업들이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변화된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하고 20세기 제조업 마인드에 갇힌 기업은 앞으로 생존이 어려울 것이다.

세르지오 자이만은 소위 재미있는 광고가 과연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심각하게 묻는다. 보고 재미있게 웃기는 했는데 정작 그 광고가 무엇을 팔겠다는 것인지 기억을 못한다면 광고주는 돈을 낭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광고 제작자들 역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신문 방송이 이미 엄청난 광고로 차고 넘치는데 재미없는 광고로 어떻게 소비자의 시선을 끌 수 있느냐는 항변이다. 그나마 재미가 있어야 소비자의 리모콘 버튼을 잠시나마 붙들어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광고의 포화현상 때문에 방송프로그램은 갈수록 광고처럼 그리고 광고는 갈수록 영화처럼 변하고 있다. 문제는 재미가 있으면서 물건도 잘 팔리는 운 좋은 광고는 좀처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보드카 앱솔루트와 건전지 에버레디 광고가 재미와 판매 모두를 충족시킨 보기 드문 경우라고 생각하고 있다.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첫번째 TV광고가 방영된 뒤 네티즌 사이에 찬반의견이 분분하다. 노후보의 광고는 인터넷을 통해 잠깐 보았지만 필자가 지금 외국에 있는 탓에 광고를 제대로 보지 못해 뭐라 평할 계제는 아니다. 다만 TV광고의 효과는 그 자체만으로 판단을 내릴 수는 없고 어느 프로그램에 광고가 방영되었는지 그리고 앞뒤로 따라붙은 광고는 무엇인지 살펴 본 뒤에야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어느 프로그램이나 광고는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어 다른 광고들 자체가 하나의 배경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상 주변 여건, 즉 컨텍스트를 고려해야만 진정한 광고효과를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노무현 후보 TV CF 보기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

이회창 후보는 초기 보혁 논쟁 등의 혼란을 겪고 나더니 정권교체론을 이번 대선의 최종 슬로건으로 채택한 같다. 반대로 노무현 후보는 새 정치, 낡은 정치론을 들고 나와 자신이 새 정치에 적임자인 새 대통령이란 컨셉을 일찌감치 분명히 했다.

{IMAGE1_RIGHT}이회창 후보의 정권교체론은 야당 후보로서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야당의 존재의미가 원래 정권교체 하는 것이고 김대중 정권의 부패와 매끄럽지 못한 국정운영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다수 있는 만큼 보혁논쟁에 비해서는 훨씬 설득력이 높은 구호다. 문제는 이미 금년 내내 써 먹을 만큼 써 먹어 앞으로도 약발을 발휘할 지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현 정권에 실망하고 비판적인 지지자는 이미 금년 보궐선거와 지자제 선거에서 그 분을 풀어 버린지 오래 전이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표가 모여서 바로 35%에 달하는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정권교체론의 약효는 거기까지가 한계다.

반대로 노 후보의 낡은 정치 청산론은 어떨까? 이회창 후보의 한나라당이라고 낡은 정치 혐의에서 더 하면 더 했지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한나라당 지지자를 포함한 대다수의 생각이므로 폭넓은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지지정당을 막론하고 자리에만 앉으면 정치인들 씹는 것이 국민적 스포츠이니 누구라도 여기에 이의를 달긴 어려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일보 조사에서 '낡은 정치 청산'이 50.1%, '부패정권 심판'이 36.6%에 이르는 공감대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앞으로 이 두 가지 슬로건에 부동층 유권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선거 판세를 좌우할 핵심 키워드 중 하나다.


어쨌든 광고나 슬로건이나 변하지 않는 교훈은 반드시 언행일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고에서 약속하고 보여준 것을 지킬 자신이 없다면 먼저 잘 못된 것을 고치고 실력을 키운 뒤에 광고를 하라는 것이 세르지오 자이만의 충고다. 사실 너무 뻔해서 충고라고 할 것도 없지만 이런 자명한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있기에 수 많은 기업들이 번드르르한 광고만 한 뒤 약속을 지키지 못해 낭패를 당하고 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아니 한만 못한 것이다.

비록 대선 전이라도 두 후보가 광고에서 약속한 것을 충실히 지켜주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광고의 설득력은 한층 올라갈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 한나라당의 도청문건 폭로 전술은 실책이라는 생각이다. 문건의 사실여부에 상관없이 대선용으로 집행된 흑색전술이란 것이 너무나 뻔해서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이런 전술은 노 후보의 ‘새 정치.낡은 정치’ 슬로건을 재확인 해주는 부메랑으로 날아 올 수 있다.

노 후보가 그저 “봐라 한나라당 선거전을 보니 낡은 정치집단 임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고 일갈 해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흑색선전과 폭로전이 구시대 정치인의 단골 선거전술 임은 원래 온 국민이 다 아는 사실 아니던가?

jean

* 필자는 [테크노 폴리틱스](시와사회, 2002)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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