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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도 모르면서 국정을 논하지마라!
넷플릭스 성공의 비결, 너희가 알고리즘을 아느냐?ba.info/css.html'
 
민경진   기사입력  2003/01/06 [18:38]
{IMAGE1_LEFT}영화 한편을 서울에서 부산으로 보내는 가장 빠르고 저렴한 방법은 무엇일까? 초고속 인터넷 회선으로 전송하면 될까? 답은 그냥 우편으로 DVD 한 장을 보내는 것이다. 고화질 영화 한편이 보통 4GB 정도 되는데 이 정도 크기의 파일을 일반 초고속회선으로 전송하려면 시간도 문제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초고속 통신망 보급률 1위인 한국이 이런 형편이니 아직도 태반의 이용자가 전화모뎀을 사용하는 미국의 경우야 말 할 나위가 없다.

넷플릭스는 바로 이런 점에 착안해 우편 DVD 대여사업을 벌여 크게 성공한 미국의 회사다. 영화 팬이 한 달에 20달러 정도의 이용료를 내면 무제한으로 DVD를 빌려 볼 수 있고 반납기한도 없다. 넷플릭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고싶은 영화를 신청하면 며칠 후 우편함에 신청한 DVD가 도착해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편리한 때에 동봉한 반송봉투에 DVD를 담아 우체통에 넣어주기만 하면 된다.

간단하지만 획기적인 비즈니스 아이디어로 넷플릭스는 순식간에 74만 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했고 보유하고 있는 DVD의 개수만도 320만개에 이른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진정한 파워는 고객의 영화선택 행태를 추적하는 시네매치라는 데이터 베이스 프로그램에 있다. 수십만 고객의 영화선택패턴을 추적해 공통된 기호를 추출해 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아폴로 13호>를 선택했다면 내부 알고리즘의 계산으로 도출된 <혹성탈출>이란 영화도 추천하는 시스템이다. 보고 싶은 영화가 무엇인지 항상 분명한 것은 아니기에 비디오 가게 주인에게 요즘 잘 나가는 영화가 무어냐고 묻는 것보다는 고객의 기호에 적중할 확률이 훨씬 높다. 유사한 기호와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빌려 본 영화를 같은 카테고리에 속하는 것으로 판별된 고객에게 다시 추천해 주는 이런 방식은 아마존의 도서추천시스템에서 이미 시도된 바 있다. “이 책을 사신 분은 이러 저러한 책들도 좋아하십니다.”라는 메시지는 국내의 인터넷 서점에서도 이미 자주 나타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인터넷 상에서는 고객들의 기호와 취향에 대한 정보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확보되기 시작하면 이전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 했던 새로운 데이터로 탈바꿈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민중의 집단적 지혜와 판단력의 십시일반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와 유사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좋다고 선택한 무엇이 있다면 십중팔구 내게도 좋을 것이라는 경험 법칙이다. 사람들이 무슨 책을 살지 모를 때 베스트셀러 목록을 참고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넷플릭스와 아마존 모델은 컴퓨터의 도움으로 고객 한명마다 일일이 맞춤서비스 하는 경지까지 도달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일반 대여점에 들리는 고객이 인기 좋은 블록버스터 영화에 쏠리는 정도가 심한데 비해 넷플릭스의 고객은 극장에서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한 숨은 걸작과 독립영화 등에도 두루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좋은 영화이고 일단 보기만 하면 틀림없이 좋아할 영화임에도 비디오가게 주인의 무지 탓에 모르고 넘어갔던 숨은 영화들을 넷플릭스의 추천 덕에 새로이 발견해 내기 때문이다. 홍보예산이 부족한 독립영화 제작자들은 넷플릭스의 이런 독특한 배급 시스템을 이용해 양질의 영화를 소개할 의지를 갖게 됐다고 한다.

네티즌의 집단적 지혜(Collective Wisdom)를 모아 공유하는 알고리즘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검색엔진 구글의 작동방식이기도 하다. 기존 검색엔진의 경우 중요도에 상관없이 검색결과를 무차별적으로 보여줄 뿐이지만 구글은 특정 단어를 검색하면 대다수의 네티즌이 일관되게 원하는 결과를 추출해 가장 효용가능성이 높은 결과물의 순서대로 재배열 해준다. 구글의 “운 좋은 예감”이란 버튼은 바로 이 기능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웹 페이지마다 존재하는 하이퍼링크는 그 네티즌이 표출한 지혜와 판단력을 계량하는 척도로 활용할 수 있다. 하이퍼링크란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사이트가 가볼 만한 곳이라는 개인적 판단 즉 추천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구글에 접속하는 네티즌들의 수가 많아지고 검색하는 웹 페이지의 하이퍼링크가 많아질수록 즉 네티즌들의 집단적 판단과 지혜의 축적도가 높아질수록 구글의 적중률은 그만큼 높아지게 마련이다. 구글은 지혜와 판단력의 십시일반이라는 인터넷의 원칙에 충실해 대박을 터뜨린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노무현 당선자 측에서 인터넷을 활용해 각료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인사에서 국민참여를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벌써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에서는 파퓰리즘이니, 인기위주 정책으로 국정을 웃음거리로 만들 생각이니, 빈정거리며 딴지를 걸고 있다. 자기 신문에 오르는 하마평으로 각료의 생사여탈을 쥐락펴락하던 옛날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면 인터넷 시대에 국민들의 집단적 지혜와 판단력의 미덕에 대해서도 관심을 돌려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형편에 무지하고 몰라서 그랬다면 더구나 용서할 수 없다. 명색이 미래를 예측하고 독자를 인도하라는 신문이 눈이 휙휙 돌아갈 정도로 급변하는 인터넷 세상의 물정을 모른다면 똑똑한 네티즌들에게 더 망신당하기 전에 오늘부터 언론 노릇 포기하라고 권하고 싶다.

jean  

* 필자는 [테크노 폴리틱스](시와사회, 2002)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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