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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진의 칸느통신] 신경제의 풍경
인터넷시대 유신본당과 수구언론은 떠나야ba.info/css.html'>
 
민경진   기사입력  2002/10/26 [23:33]
1.
동구 밖에 소를 놓아 먹인다. 주인 없는 마을 땅이니 아무나 와서 소를 방목하고 마구잡이로 풀을 뜯겨 결국 풀 씨가 말라버린다.

사유재산제도의 불가피성을 지적할 때 자주 거론되는 일화다. 사물에는 주인을 정해 주어야지 그냥 공공재산으로 놓아두면 이렇게 절제를 모르는 사람들 탓에 자원이 고갈된다는 주장이다.

인터넷 경제에는 전혀 다른 논리가 적용된다. 정보가 있다. 이 사람 저 사람 몰려와 다들 정보를 취해 지식을 얻고 돈을 번다. 그래도 그 정보자산은 고갈되지 않고 가치에는 변함이 없다.

지난 주말에는 인터넷 공공재가 어떻게 실물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체험하는 기회를 가졌다.

{IMAGE1_LEFT}어린 시절 프라모델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 드물 것이다. 이 프라모델과 맞먹는 수준의 정교한 모델을 인터넷에서 PDF파일로, 그것도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곳이 수백 곳이 넘는다. 다운로드 받은 파일을 프린터로 인쇄해 만들면 몇 만원 주고 산 웬만한 프라모델 보다 훨씬 정교한 종이모델을 만들 수가 있다.

◀ 종이로 만들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아무리 수백, 수천만 명이 몰려와 다운로드를 받아도 PDF파일은 망실되거나 가치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수 많은 네티즌의 자산을 불려 놓는다. 기존의 경제학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인터넷 경제의 새로운 공공재 현상이다.

2.

미국대륙에 철도가 깔리고 동서횡단철도의 완성이 코 앞에 닥친 19세기 중반, 미국의 선박회사들은 보스턴에서 화물을 실은 배를 남미대륙 끝까지 내려보낸 뒤 남극을 거쳐 당시 골드러시로 북적대는 샌프란시스코까지 실어 날랐다.

누가 먼저 샌프란시스코 항구까지 도착하느냐에 따라 화물의 가치는 천양지차였다. 먼저 도착하면 거액을 거머쥐고 2등은 알거지가 된다. 이러니 얼마나 빠른 쾌속범선을 가지고 있느냐가 부를 결정했는데 당시 동부의 선박 왕은 곧 철도가 완성되고 증기선이 보급되는 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엄청난 목재와 돈을 투입해 어마어마한 크기의 범선을 만드니 그것이 바로 챌런지 호다.

챌런지 호는 처녀항해에서 선상반란과 괴질에 시달리다 결국 몇 차례 항해도 해보지 못하고 난파하고 마는데 그때쯤에는 이미 대륙횡단철도가 연결되어 화물수송의 바턴을 이어받는다.

3.

한국산 철강이 덤핑판정을 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베들레헴 제철은 2차 대전만 해도 세계최대의 제철소였다. 양차대전에 투입된 전함과 대포, 그리고 금문교를 짓는데 쓰인 철재는 모두 펜실베니아의 제철소에서 생산된 것이다.

베들레헴 제철은 전후 폭증하는 철강수요에 맞춘다며 `50년대 기준으로는 엄청난 액수인 100억 달러의 자금을 투입해 이미 구식이 된 고로를 개.보수했는데 바다 건너 독일의 티센크룹과 일본제철은 구식 용광로 대신 '미니밀'이라 불리는 전기로를 도입해 값싼 철강을 신속하게 만들며 몸집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고철을 모아 전기로로 필요한 철강재를 저렴하고 신속하게 만들어내는 신생 제철소에 베들레헴 제철은 점차 경쟁력을 잃고 만다. 여기에 포철에다 중국의 제철소까지 가세해 미국시장에 몰려들자 베들레헴 제철은 반덤핑관세를 방패로 버티다 결국 지난 `98년 문을 닫고 만다. 베들레헴 제철소는 지금 산업박물관으로 개조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4.

{IMAGE2_RIGHT}한 시대가 가고 새 시대가 왔는데 한물 간 고물차를 붙들고 광내고 다시 달려보려 애면 글면인 사람들이 많다. 산업시대의 논리는 석양으로 저물고 이제 디지털경제 시대다.

범선은 아무리 재주를 부려봐야 결국 범선이고 석탄용광로는 아무리 용을 써도 전기로를 당하지 못한다. '유신본당'을 자처하는 어느 정당이 그렇고, 아직도 지역감정을 선동하고 여론조작 악습을 버리지 못하는 어느 유력신문이 또 그렇다.

떠나야 할 때 떠나지 못하고 변해야 할 때 변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챌런지 호처럼 난파하거나 베들레헴 제철소처럼 박물관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jean

* 필자는 [테크노 폴리틱스](시와사회, 2002)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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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10/26 [23:3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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