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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불가능하다면 소수자와 약자의 정의를
[책동네] 분쟁지역전문가 김재명 <나는 평화를...>이 던져준 충격과 경외
 
황진태   기사입력  2006/03/22 [07:13]
분쟁지역전문기자 김재명이 펴낸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는 그동안 저자가 프레시안, 신동아, 국방저널, 국방일보 등의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글들을 다듬어서 묶은 책이다.

저자는 책의 발간 목적을 "현실적으로 '영구평화'가 불가능하다면, 나는 차라리 평화를 기원하기보다 아득한 절망 속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소수자와 약자, 못 가진자들의 정의가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쪽을 택하겠다"며 이 책의 제목인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도 “이러한 바람의 연장선"이라고 밝혔다.  

▲ 김재명 지음,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     © 지형, 2006
이 책은 저자가 동티모르, 이라크, 시에라리온, 볼리비아, 쿠바 관타나모, 아프가니스탄 등 각 국의 생생한 분쟁지역 보도기사와 사진과 함께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분쟁지역에 관한 미시·거시적인 안목이 잘 버무러진 국제정치분야에서의 스테디셀러로 남을 것으로 예상되는 명저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도중에 곳곳에서 울컥하고, 눈물이 치밀어 오른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이삼성이나 노엄 촘스키, 하워드 진의 저서들을 읽을 때는 결코 이런 격한 감정까지 겪은 적은 없었다.

아무래도 국방저널 김은지 기자의 서평에서 밝히듯이 "빛 바랜 국제 정치 이론이나 현실주의 정치학자의 이름을 들먹이며 전쟁의 메커니즘을 분석하려 들던 우리를 숙연케 하는 이 책은 굶주림과 갈등과 분쟁의 혈흔이 점철된 공간과 시간의 좌표 속에서 저자의 고민이 치열하게 어우러져 탄생한 수작이다"는 평이 나의 '가슴의 묵직함, 불편함'을 어느 정도 설명해준다.

얼마 전 이라크 침공 3주년을 기념하여 침공이래 가장 큰 대규모 공습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번 공습에 대한 부시의 핑계를 들어보면 "이라크가 내전 상황에 처하지 않았고, 민주화 과정에 드러나지 않는 진전이 있었다며 저항세력을 진압하기 위한 힘든 싸움"이란다.

미국의 '테러(terror)와의 전쟁'이란 단어는 명백한 오류(error)다. 2004년 봄에 이스라엘 군의 헬기미사일에 숨을 거두기 전에 김재명은 하마스의 창립자 셰이크 아메드 야신과의 인터뷰에서 야신의 발언은 중심국에 찌든 주변국 우리들의 시각에 전환을 가져온다.

"서방언론에 늘 잘못 표기된 부분인데, 자살이 아니라 순교이다. 이슬람은 자살을 금기시한다. 그들은 자신을 불살라 투쟁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영토회복과 독립을 위해 흘리는 피는 고귀한 것이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고민하여 생각해 보라.

사람 목숨이란 다 귀한 것이다. 당신네 한국이 한때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알고 있다. 그 시절 일본에 저항한 운동가를 한국사람들이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 대대로 살던 사람들을 난민으로 쫓아내고, 다시 총으로, 대포로, F-16으로 죽이는 것은 국가테러이다. 그들이 우리의 저항운동을 테러라 부른다면 일종의 '테러 균형'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가슴 뜨끔한 대목이다. 내전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라크에 여전히 명분도 실익도 없이 발을 내밀고 있는 한국군을 보면서 정작 아프리카의 독재국가들이나 팔레스타인 등에서 필요로 하는 평화유지군으로서의 파견이야말로 절실하다.

미국의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 전략에 놀아난 보수매체에 찌든 우리들에게 김재명의 글과 사진을 통해 진실을 인식하는 순간이야말로 '충격과 경외'를 일으킬 것이다. 국제정치학도를 비롯하여 현재 각 국에서 돌아가고 있는 비정상적인 사태에 대한 이면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김재명의 본 저작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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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3/22 [07:1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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