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이 범죄가 아니라니
포털 사이트들이 즐겨 다루는 기사를 살펴보면 성범죄가 빠지지 않는다. 연일 터지는 성범죄 때문에 요즘 이들은 대박이 터졌지만 아무리 그래도 신나게 다룰 일이 따로 있다.
성범죄 피해를 당할 일이 없는 사람에게는 재미를 주는 기사가 누군가에게는 고통이라는 점을 왜 모르는가.
성범죄 기사를 읽어내는 것이 내게는 괴롭다. 살아오면서 성추행에 가까운 피해도 입은 적이 있고 과민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일상에서 성폭력 피해의 두려움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고 살고 있는 나다.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운 최근의 초등학생 피살 사건 때도 한동안 마음을 진정하기 힘들었다. 그런 경험은 나만 겪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여성들에게도 해당되리라 믿는다.
여성 대상의 범죄는 모든 여성을 피해자로 만드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내가 피해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나와 무관한 일로 치부해버리는 건 쉽지 않다.
그동안 성폭력에 대한 공소시효와 친고죄를 폐지하고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라는 목소리에 정부는 화답한 적이 없다. 지금 정부가 부랴부랴 내놓고 있는 대책에도 그런 점은 고려되지 않았다.
시간과 노력이 오래 걸리는 법과 제도의 정비보다는 공권력을 통해 성범죄 전력자의 인신을 장악하는 것이 정부로서는 권위도 세울 수 있고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것으로 국민에게 과시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성폭력 기사, 누군가에게는 고통
그래서 성범죄자에게 야간 외출 금지령을 내리는 기상천외한 대책이 나오게 된다. 또 '화학적 거세'를 들고 나오는 한나라당을 보면 왜 그들의 성(性)인지 수준이 성추행범 최연희를 싸고도는 정도밖에 안되는지 알게 한다. '거세'로 성범죄를 예방하겠다는 건 성폭력을 성욕의 일종으로 보는 시각에서 나올 수 있는 발상일 뿐이다. 욕망은 범죄가 아니다. 스스로의 이성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은 처벌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비난만 받으면 족하다. 비난도 지나쳐서는 안 된다. 술에 책임을 전가하거나 남자의 본성이 원래 그렇다고 하거나, 이도 저도 안 되면 여자가 먼저 유혹했다고 하면 된다.
성범죄를 과도한 성욕으로 착각하니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서의 범죄는 술김에 통제력을 잃어 저지른 '실수'로만 치부되는 것이다. 남는 건 남자의 술버릇과 본성을 알지 못하고 술자리에 늦도록 동석한 피해 여성에게 돌아갈 화살이다.
성범죄 전력자에 대한 외출금지령과 전자 팔찌 채용 주장은 집에 일찍 귀가하지 않는 여성이 성폭력 피해자라는 인식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 있지 않다.
성폭력은 결코 성욕과 같을 수 없으며, 밤낮의 구분과도 상관이 없다. 성범죄에 대한 초보적 인식의 결여는 여느 시민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성범죄에 대한 초보적 인식 결여
초등학생 피살 사건에서 어린 아이에게 차마 성욕을 품을 수 있느냐는 것이 적지 않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어린 아이가 성폭력의 희생이 되었다는 데 경악하는 사람들은 성인 여성의 피해는 있을 수 있는 일로 이해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범인이 어린 아이에게 품었던 건 약자에 대한 지배욕일 뿐 넘치는 성 욕구가 아니다.
모 교도소 간수가 세상에서 격리되어 누구의 도움도 받을 길 없는 여성 재소자에게 가한 것이 성적 충동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남성성이 우월한 것으로 인정받는 가부장 사회에서는 남성이 자신의 성을 과시하는 것은 권력 의지의 표현에 속한다.
성을 이용하여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확인하는 성폭력의 먹잇감은 여성과 어린이 등의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우월한 남성 최연희가 자신의 신분에 비해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식당 주인으로 착각한 신문사 기자에게 가한 건 권력 행사말고는 없다. 초등학생 살해범은 피해 어린이의 부모에게 술 먹고 저지른 실수를 용서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성폭력을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건 성범죄자나 정치모리배들일 뿐이겠는가. 범죄에 가당찮은 욕망을 갖다 붙이는 사람들, 당신들이 범인을 욕할 자격이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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