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B급좌파 김규항의 '진보의 거처'는 어디일까?
[책동네] 인간사유의 탁월한 GPS 기능, 김규항의 <나는 왜 불온한가>
 
황진태   기사입력  2006/03/08 [21:57]
읽기는 쉽지만 독후감 쓰기는 힘든 김규항의 글
 
‘B급 좌파’ 김규항의 글을 읽으면 머릿속이 불편해진다. 그래서 필자가 김규항에 대해서 얘기한 것은 고작 2년 전 김씨가 펴낸 어린이잡지 <고래가 그랬어>의 창간호를 소개한 정도였다. 그의 글은 읽기는 쉽지만 그에 반비례하여 독후감 쓰기는 곤혹스럽다.

▲B급좌파를 자처하는 김규항 씨의 칼럼집 <나는 왜 불온한가>     © 돌베개, 2005
지난 가을에 출간된 그의 칼럼집 <나는 왜 불온한가> 또한 미루고 미루다 이제서야 읽기를 결심했고, 내가 믿었던 길이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면서 어긋났음을 확인해야만 했다. 김규항의 글은 한 인간의 사유를 짚어주는 GPS 기능이 탁월하다.
 
그 페미니즘
 
얼마 전 ‘대안있는 진보’를 표방한 싱크탱크에 합류한 한 소장학자를 만나서 주고받은 이야기가 페미니즘, 환경 등의 시민단체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근본적 장벽을 무너뜨리는 작업은 외면하고 자신의 단체를 알리는 이슈제기에만 집착한다는 비판이었다. 이 근본장벽을 깨뜨리지 않는 이상 현재 논의되는 시민단체들의 주장은 현 체제를 유지시켜주는 마스터베이션일 뿐이다.
 
김규항은 ‘그 페미니즘’이란 칼럼에서 “주류 페미니즘은 다른 이의 사회적 억압에 정말이지 무관심하다. 이를테면 주류 페미니즘은 모든 사회적 억압의 출발점인 계급문제에 대해 정말이지 무관심하다. 그들은 아마도 여성이라는 계급이 일반적인 의미의 계급보다 더 근본적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
 
주류 페미니즘이 그런 저급한 사회의식에 머무는 실제 이유는 그 페미니즘의 주인공들이 작가, 언론인, 교수(강사) 따위 ‘중산층 인텔리 여성들’이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는데 필자와 소장학자의 대화에서도 현 페미니스트들이 한국의 시공간과 적합하지 않은 미국의 주류 여성학을 공부하고 온 ‘중산층 인텔리 여성’이 빌딩에서 저임금으로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들에 대해서 고민하느냐에 대해서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유한하기 짝이 없는 그들(페미니스트)은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사회적 억압을 일반화하여 카타르시스하는 데 열중함으로써, 모든 여성이 제 억압과 싸워 보편적 인간해방운동에 이르고 정당하고 필연적인 기회와 가능성을 성실하게 차단한다.”
 
주류 페미니스트들이 빌딩 아주머니에 대한 맹점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가부장제와 싸운다는 주류 페미니즘은 실은 그 선전 장치의 성실한 일부다”는 김규항의 지적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밤의 주둥아리들
 
“밤의 주둥아리들...” 필자를 두고 한 소리 같다. 김규항은 인터넷 논객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오늘 적지 않은 한국의 청년과 노동자들(물론 사무직을 포함한)은 밤마다 인터넷의 복덕방에 모여든다. “노무현이 말야....” “정몽준이 말야...." "이회창이 말야....” 신문 쪼가리에서부터 출처가 불분명한 풍문에 이르기까지 온갖 시사 자료들을 꿰찬 채 그들은 밤이 새도록 한국 정치의 운영자 노릇을 하는 것이다.”
 
지방선거와 대선 시즌이 되면 또다시 인터넷 정치토론사이트가 불붙을 것이다. 필자 또한 한때 “한국 정치의 운영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한 적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정치평론이 아니라 정치공학에 집착하는 내 모습에 환멸을 느꼈다.
 
“서글픈 일은 그토록 정치에 열중하는 그들이 예나 지금이나 정치에 당하기만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정치에 당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이 열중하는 정치가 실은 그들의 정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칼럼사이트 <서프라이즈>를 기점으로 한 인터넷 민주주의 실험의 의의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노무현 씨가 대통령이 되고나서 겪었던, 지금 짚고 있는 현존재를 돌이켜 볼 때 기성정치에 올인 할 ‘시민계급’이 아니라 노동자의 입장에서 농민을 엄호하고 빌딩 아줌마에 대해서 이주노동자에 대해서 고민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밤의 주둥아리”가 되어야 한다.
 
대안있는 진보
 
최근에 ‘대안있는 진보’를 내세운 싱크탱크들이 속속 출범하고 있다. 비판은 쉽지만 대안 만들기는 정말 어렵고 막막한 작업이다. 공부의 양을 잡더라도 사유의 시간으로도 비판할 때의 두배, 세배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마도 아니 당연히 공부의 그 끝은 없을 것이다. 지리를 전공하는 필자가 중심국이 아닌 ‘주변국의 지정학’을 공부하려는 것도 ‘대안있는 진보’를 향한 일환이다. 김규항과 같은 논객들에게 욕을 먹고 머릿속이 불편하지 않으려면 부단히도 노력해야겠다.
 
필자가 받았던 자극을 다른 독자들도 체험하여 공유하고 싶다. 김규항의 <나는 왜 불온한가>의 일독을 강력히 추천한다. 제도권 지면을 떠난 김규항의 글이 다시 제도권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필자와 같은 “밤의 주둥아리들”이 함부로 나불되지 못하도록...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6/03/08 [21:57]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B급 좋아 2006/03/23 [14:13] 수정 | 삭제
  • 김규항이 뉴라이트에 침묵한다? 그것들을 굳이 비판할 가치를 못느끼는 것이겠죠. 김규항보다 온건한 사람들이 이미 충분히 비판하고 있단 말이죠. 삼성에 대해서는 비판보다는 저주에 가까운 비판을 오래 전부터 해왓으니 찾아 읽어보심이...
    페미니즘 문제는 김규항씨 비판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비난만 근거로 말씀들을 하시네요. 윗분 말씀도 김규항 논지가 아니거든요. 김규항의 원래글을 읽어보시면 누구나 끄덕일 만한 수준의 이야기일 뿐이거든요. 제 생각에는 페미니즘은 외려 김규항의 정당한 비판에 한동아리로 반발하는 모습 자체가 문제가 아닌지...
  • B급 싫어 2006/03/09 [15:27] 수정 | 삭제
  • 김규항의 시각에서 보면 페미니즘도 시민운동도 모두가 주류이고 기득권 세력이다.

    그의 가시돋친 공격의 화살은 늘 자기 혼자 주류라고 '우기는' 운동 진영에게만 향해져 있다.

    그는 정작 삼성이나 뉴 라이트 등에 대해서는 예의 그 가시돋친 발언을 삼가한 채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이런 그가 과연 진짜 '좌파'인지 의문이다.
    좌파적 색채로 스스로를 포장한 채, 열심히 운동진영만 비판하다가
    보수 기득권 세력의 눈에 띄어 투항해버리는 사이비 좌파 논객들을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보아 왔다.

    그를 굳이 좌파라고 할 수 있는 근거는 딱 한 가지 뿐이다.
    다원주의를 인정할줄 모르는 박제된 계급환원주의에서 인식의 성장이 멈춰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설령 그가 좌파라 해도 그것은 김규항은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B급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 구로구민 2006/03/09 [08:04] 수정 | 삭제
  • 물론 황진태씨나 김규항씨가 룸싸롱 가는게 뭐가 문제냐 라는 식의 형편없는 마쵸가 아니라는 점은 믿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는 점은 신자유주의적 계급모순이 여성이나 생태문제보다 더 "근본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있다고 봅니다.
    생태주의 혹은 여성주의를 왜 주의라고 부릅니까?! 그것은 여성 혹은 생태라는 범주를 중심으로 전일적 세계관을 이루고 있기 때문아닙니까. 마치 사회주의가 계급 중심의 총체적 역사관을 구성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지요. 내가 보기에 김규항씨나 위의 기자 분은 여전히 계급문제가 일차적이다라는 유물론의 기본 전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독단적 인식틀을 가지고 있음이 지적되어야 할 것 같네요. 그러니 유시민 마냥 해일이 밀려 오는데 한가하게 조개 줍고 있다는 말이 그냥 자연스레 나오는 거지요. 근본주의 혹은 원리주의는 우리 시대 넘어서야될 이분법적 사고방식입니다. 그것은 적어도 현재에는 타인을 나로 보기보다 극단적 타자화하는 사유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물론 페미 중에도 과거 특정 여대 출신 기독교 중산층 가정 출신의 페미니스트들이 갖는 한계나 문제점을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계급문제가 근본이라 보는 귀하들에게도 마찬가지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한국의 계급론자들 어떻게 하고 있나요?! 과거 사회주의자나 혹은 노조지도자들이 행사 끝나고 룸싸롱 가서 여성을 돈 주고 사는 것 공공연한 사실 아닙니까?! 정규직 남성노조가 비정규직 여성들을 얼마나 차별하는 것도 이미 알려진 일 아닙니까?!
    비정규직 청소부 아주머니는 페미니스트 보다 오히려 가부장적 계급론자들이 더 가슴 깊이 새겨야 하는 코드라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김규항씨는 페미니즘에 관해서는 좀 더 공부가 필요한 듯 합니다.
  • 독자 2006/03/09 [07:24] 수정 | 삭제
  •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무조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이 나라의 척박한 현실을 그는 왜 외면하는가?
    그는 거기에 어떠한 도움을 주었는가?
    그가 비판하는말은 새겨들을 필요가 분명 있지만..그러나 다소 무책임한 발언이 아닌가? 당신은 노동자의 인권보호에 비정규직 빌딩청소부 아주머니의 인권은 고려대상이 되는가? 당신은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 이것때문에 주류 페미니즘이 비판받아야 할 이유가 없는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