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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선의 배후세력, 미국의 역할
부시와의 춤을, 이회창 후보를 미는 미국의 속셈은ba.info/css.html'>
 
민경진   기사입력  2002/12/14 [01:16]
{IMAGE1_LEFT}며칠 전 뉴욕의 UN 본부에서 한 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미 국무부 관리들이 UN 본부에 진입해 이라크가 제출한 1만5천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와 CD롬 원본-삼성 로고가 찍혀 화제가 된 바로 그 CD롬-을 탈취하다시피 가져갔기 때문이다. 국무부가 “탈취”한 서류는 곧 반환되었지만 당장 유엔 안보리 회원국과 이라크가 노발대발했다. 이라크가 제출한 서류는 원본이므로 미국 측에 넘겨주기 전에 안보리 회원국의 동의 하에 공동으로 실사를 하기로 당초 합의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UN과의 합의마저 무시하는 미국의 이런 무모한 행동은 이라크와의 전쟁에 집착하는 미국의 속내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말로는 평화적 해결이란 외교적 수사를 동원하고 있지만 국무부의 서류 탈취 사태는 예상과 달리 유엔 결의안에 적극 협조하고 급기야 엄청난 양의 서류까지 자발적으로 제출하고 나선 이라크에 기습을 당하고 당황하고 있는 미국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 천하가 다 알다시피 미국의 의도는 한 마디로 중동 지역에서 팍스 아메리카나, 즉 미국의 패권에 의한 평화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럼즈펠드 국방장관 역시 미국에 사사건건 딴지를 걸고 나오는 후세인 정권을 전복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임을 공공연히 밝히기도 했다. 이라크가 UN 결의안을 준수하든 말든 상관없이 기어이 한 판 전쟁을 벌여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키고 아울러 지금 망명 중인 이라크의 반정부 인사들을 불러들여 친미정권을 세우는 것이 미국이 원하는 시나리오다.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팍스 아메리카나, 즉 미국의 패권에 의한 세계평화라는 목표는 미국의 변함없는 대외정책이었고, 이 정책은 한반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다만 집권세력의 성격과 우선순위에 따라 베트남처럼 무력동원으로 귀결되거나 남미처럼 CIA를 동원한 친미정권 수립으로 혹은 IMF를 내세운 금융정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해방 이후 한국에서 정권을 잡은 세력은 단 한번도 친미정권이 아닌 적이 없다. 이승만 정권은 말 할 나위도 없고, 박정희는 쿠데타 직후 케네디에게 인증을 받으러 워싱턴으로 날아가기도 했지만 결국 임기 말에 독자적인 핵개발을 추진하다 암살을 당했다. 김재규는 사형을 당하기 전 자기가 입을 열면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알 듯 말 듯 한 말을 해 암살 배후에 대한 세간의 궁금증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DJ가 대통령에 당선된 `97년 대선에서도 미국의 의중은 암암리에 유포됐다. DJP 연합의 효과도 있었지만 평소 DJ지지자로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속속 DJ진영에 합류해 대세론을 재확인 해 주었는데 아마도 대세론의 핵심 중 하나는 미국도 DJ를 밀고 있다는 이심전심이었을 것이다.

DJ가 미국의 지원을 받았던 것은 당시 아시아 금융위기 상황에서 미국의 클린턴 정권이 추진 중이던 월가 금융자본의 세계화 정책에 DJ의 경제정책이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DJ는 당선 후 클린턴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충실히 이행해 미국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결국 미국은 여당이나 야당 후보를 가리지 않고 미국의 패권 유지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은 항상 암묵적 지원을 했던 셈이다. DJ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필자 역시 재벌오너와 노동자가 한 목소리로 외쳤던 “토착자본의 싸구려 팔아치우기”란 항변에 심정적인 동조를 한 적도 있지만 당시 국가파산 위기에서 그러면 과연 어떤 대안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시원한 답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만 밝혀 두기로 하자.

`97년 대선 당시 팍스 아메리카나의 대표선수가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 로렌스 서머스 백악관 보좌관, 앨런 그린스펀 연준의장의 경제관료 삼각 체제였다면 2002년 오늘 팍스 아메리카나의 대표선수는 럼즈펠드 국방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보좌관 그리고 딕 체니 부통령의 매파 3인방이다. `97년 팍스 아메리카나의 테제는 금융자본의 세계화였고, 2002년 팍스 아메리카나의 기본 테제는 테러전쟁을 명분으로 한 범세계적인 미국의 무력패권 재확인이다.

{IMAGE2_RIGHT}지금 대선정국에 접어든 한반도에 불고 있는 미국 발 북풍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낙인찍은 것은 부시가 어느 날 갑자기 기분이 내켜 마음대로 내뱉은 것이 아니라 바로 무력을 바탕으로 한 팍스 아메리카나의 재확인이라는 공화당 정권의 세계전략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부산일보 손문상 화백의 만평

어제 파이낸셜 타임즈 보도에서 확인된 것처럼 미국은 아예 대놓고 이회창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 무력에 바탕한 팍스 아메리카나 전략, 그리고 악의 축에 끼워 넣은 북한에 대한 압박 정책에 대북 강경책을 주장하는 이회창 후보가 가장 적절한 파트너라는 판단을 일찌감치 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은 DJ정권을 포함해 한반도에서 단 한번도 자신이 원하지 않는 정권이 탄생하는 것을 지켜 본 적이 없다. 2002년 한반도에서 반세기동안 예외가 없었던 그 간의 이 전례가 깨어질지 아니면 지속될지는 이제 12월 19일에 한국의 유권자들이 던질 한 표의 향방에 달려 있다.

방금 CNN 뉴스는 미국이 예멘 대통령의 항의에 굴복해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 운반선을 방면하기로 결정했다는 속보를 전하고 있다.

jean

* 이 칼럼 때문에 필자를 반미주의자로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굳이 딱지를 붙이자면 용미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대책 없는 주한미군 철수에도 반대한다. 미군이 좋아서가 아니라 지금 미군이 철수하면 한국군은 까막눈이 되기 때문이다. 더 자세한 것은 나중에 말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 필자는 [테크노 폴리틱스](시와사회, 2002)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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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12/14 [01:1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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